동설한에 해발 1520미터에서 줄을 두 시간 섰다

국립공원케이블카, 엄격한 환경영향평가 통해 가치갈등 줄여야

/최수경

 

겨울철이면 덕유산국립공원 설천봉 케이블카 탑승은 하늘의 별 따기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부터 내리 5일간 강풍으로 운영하지 않았다.

온전히 걸어서 올라간 사람들이 만끽한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덕유산은 설경이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온 산이 상고대 혹은 눈꽃 핀 장관을 연출한다.

상고대는 기온이 내려가면서 대기 중 수증기가

미세한 물방울로 변한 뒤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것을 뜻한다.

 

밤새 내린 서리가 하얗게 얼어붙어 마치 눈꽃처럼 피었다는 의미에서 '나무서리'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상고대를 덕유산 1400미터 고지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데, 바로 덕유산 케이블카 덕분이다. 

▲ 해발 1520m 무주덕유산 설천봉에서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사람들.

주중임에도 겨울 덕유산 케이블카 이용객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 최수경    


나는 지인의 이야기에 새벽부터 배낭을 꾸렸다.

아이젠과 스틱, 스패츠를 챙겼고, 컵라면과 커피에 필요한 따뜻한 물을 챙겼다.

긴 산행이 자신 없어 일단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눈꽃을 보며 도보로 내려오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무주덕유산리조트에 도착하자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한 줄이 줄잡아 600여 미터였다.

케이블카 운영을 6일 만에 재개한 날이라 순백의 산행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이 모두 몰려든 것 같았다.

각오하고 왔으니 망설임 없이 세 시간을 기다렸다.

설천봉에 오르니 과연 듣던대로 눈꽃 세상이었다.

이미 눈이 다 녹은 아랫녘에서는 상상도 못 할 장관이었다.

 

설천봉에서 향적봉 구간은 줄지어 걸으며 사진 찍느라 지체하는 사람들로 인해 속도가 나지 않았다.

어떤 이는 흐름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 탐방로에서 벗어나 사진을 찍었다.

인간 간섭에 따른 자연경관 파괴와 외래생물 번성
  

 상고대와 눈꽃이 어우러진 향적봉 주변 나무들 ⓒ 최수경


정상인 향적봉에 다다르자 안개와 구름이 교차하며 시야를 달리했다.

설악산 대청봉 표지석을 세 개는 세워야 한다는 농담처럼, 덕유산도 향적봉 표지석 한 개가 민망할 만큼,

인증 샷을 위한 대기 줄은 길었다. 가늠컨대 한 시간은 기다려야 표지석을 마주할 것 같았다.

오전에 케이블카를 기다리며 세 시간을 써버렸기 때문에

걸어서 백련사로 하산하는 계획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선택의 여지 없이 설천봉에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긴 줄에 합류했다.

 

한 시간 반을 눈 위에서 강풍과 싸우며 미동 없이 서 있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평일이 이 정도면, 주말 설천봉 케이블카 광장은 발 디딜 틈 없다고 했다.

이 광장이 과거 주목 군락지였음은 이미 역사 속 일이다.

덕유산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향적봉 1614m)으로 백두대간 중심부에 있다.

행정구역상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등 영호남을 아우르는 4개 군에 걸쳐 있다.

무주구천동으로 유명한 덕유산 북쪽의 계곡은 여름철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1975년에 10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설경을 쉽게 볼 수 있는 케이블카는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에 있다.

이 부근의 98ha에 이르는 면적이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있다.

 

향적봉 주변 지역은 주목군락, 사스래나무군락, 철쭉꽃군락 등이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특산수종인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잣나무 등도 분포하는 귀중한 고산지역 숲이다.

칠봉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능선은 이미 상급 코스의 스키장 도로가 되었다.

사람들이 탐방로에서 벗어나 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간 곳들이 모두 산림유전자원보호림 지대인 것이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바라본 설천봉 ⓒ 최수경

 
등산로의 환경훼손을 유발하는 주요인은 이용강도와 지형적 특성이다.

등산객들의 집중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 토양조건이 매우 불량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간섭에 따른 자연경관의 파괴와 외래생물의 번성으로 생물유전자원 도태압력은 현저하게 커진다.

케이블카의 양지와 음지가 교차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지팡이 짚은 노모를 모시고 올라온 3대가족이 설천봉 정상 카페 창가에서

면화 같은 눈꽃 송이를 내다보는 풍경은 따뜻했다.

 

아름다운 풍경에 즐거워하는 노모와 행복해하는 자식들 표정이 눈에 선하다.

설산을 경험하고파 세 시간도 아랑곳하지 않고 곤돌라를 기다린 나 같은 의욕쟁이들은 또 어떤가.

이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경관 서비스를 누릴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의사결정 방법 필요
          

 덕유산의 깃대종인 구상나무 탐방로가 설치되기 전(2014년) 나무뿌리가 드러난

구상나무(왼쪽), 탐방로를 설치한 후의 구상나무(오른쪽) ⓒ 최수경  


국립공원 생물자원 보존과 관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식물상은 어떤 지역의 인문사회환경의 영향은 물론 기후와 풍토환경을 반영한 생태적 지표이다.

덕유산국립공원은 남방계식물의 북방한계선 또는 북방한계식물의 남방한계선이 되는 특이지역에 해당한다.

향적봉과 중봉의 산정 부위에서는 가문비나무, 구상나무, 주목,

까치밥나무 등의 아고산 식생이 분포한다.

이러한 식물들은 아고산지역의 지형, 기후, 토양 등 조건이 열악하고

생태환경이 취약하여 외부 환경변화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즉, 백두대간 마루금과 같은 아고산대의 능선부는 생산력이 낮아

간섭과 파괴가 반복적으로 진행되면 원래의 상태로 회복이나 복원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천봉 스키 슬로프를 고르고 있는 장비 ⓒ 최수경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덕유산국립공원 내 무주리조트는

자연생태계와 경관을 대규모로 파괴함으로써 국립공원의 가치를 크게 손상시켰다.

 

1982년 16만7000평의 대규모 덕유대야영장이 개발된 이후,

1984년부터 덕유산국립공원에서 추진되어 온 무주리조트 개발(쌍방울)과

무주양수발전소 건설(한국전력)은 지난 26년간의 국립공원 관리행정사에 중대한 파괴 사례이다.

온 국민 누구나 이용하도록 국립공원구역에서는 특정인(회원)을 위한 콘도시설을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나 도, 군의 땅을 매각, 임대해주고, 국립공원의

자연보존지구를 변경해 주면서까지 국립공원제도의 근간을 훼손한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전히 시대를 관통하는 정치적 사회적 요인이 영향을 주었겠지만,

이러한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제도적으로 과학적 지식의 한계,

환경가치의 계량화 문제와 이로 인한 대안평가 문제,

운영상으로는 평가보고서의 부실과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덕유산 설천봉 스키 슬로프 중 하나는 칠봉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능선에 도로를 내었다. ⓒ 최수경

   
국립공원은 국토의 대표적인 자연풍경지를 보호하면서 후손들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지정 및 관리하는 곳이다. 국립공원 지정이 오래된 곳일수록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규제에 의한 낙후로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켰다.

따라서 공원 탐방객의 편익을 도모하고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집단으로 개발 관리하고자 집단시설지구를 지정해 개발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원시설들이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롭게 계획되기 보다는 대규모로 계획되고,

탐방객의 유치를 위한 유흥적 목적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케이블카 등과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은 사유지를 중심으로

관광이용의 요구가 높아져 민원 발생의 요인을 야기한다.

전국 여기저기에서 케이블카 설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케이블카 사업은 환경보전과 지역개발 간의 가치 갈등이 극명하게 존재한다.

 

정치적 요인도 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한다.

이럴 때일수록 가치 충돌을 해소하고 합의 가능성을 제고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환경영향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보존과 개발, 이해관계자간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의사결정 방법이 필요한 때이다.

"강릉산불, 도로서 멀수록 피해 적어…

임도가 차단선 역할 못해"

"도로가 산불 진화에 효과적이라는 데이터 없어"

/ 홍석환 부산대 교수

 

경포 덮친 강릉산불 작년 4월 대형산불이 발생한 강원 강릉시 경포 일원에서

임도나 도로가 산불 차단선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부산대 홍석환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산림 내 도로의 확대는 대형산불을 막을 수 있는가?'라는 논문에서

"그간 발생한 대형산불 중 도로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인

강릉 대형산불 피해지역을 현장 확인한 결과"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런 결과는 산림 내 임도가 진화 차량과 인력, 산불 방어선 역할로

산불 진화에 효과적이라는 산림청 논리와 배치된다

 

경포 산불 피해지역 도로밀도는 168.9m/ha에 달해

우리나라 임도밀도 3.9m/ha에 비해 무려 43배나 높다.

산불 지역 곳곳이 촘촘하게 도로가 연결돼 있다는 얘기다.

 

149.1ha의 산불 피해지역 경계로부터 50m 이내에 조성된 도로는 59.6㎞이며,

도로에 의해 단절된 산림은 모두 83개소로 파편화돼 있다.

더욱 짙어진 강릉 산불의 상처

 

그러나 이들 지역은 불똥이 날아가 번지면서 피해가 발생,

도로가 산불 차단선 역할을 하지 못했음이 확인됐다고 홍 교수는 밝혔다.

 

특히, 낮은 강도의 피해가 발생한 지역은 오히려 도로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75m 이상 지역이었고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었다.

 

임도(도로)가 많아 진화 차량과 진화인력의 접근이 쉬운 곳이 오히려 피해 강도가 컸다는 것이다.

도로에서 멀수록 오히려 산불 피해가 적었다.

 

홍 교수는 "아무리 임도가 많아도 산불은 막을 수 없다"며

"경포 산불 피해지역에서 산림 내부 혹은 인접한 도로가 산불 진화에

효과적이라는 데이터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종이컵 규제 해제라는 대담한 퇴행

 

"우리만 하는 규제"라는 설명도 틀려

배려 필요하면 영세업자에 한정할 일

최소한 양면코팅컵 사용은 단속해야

 

/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장

 

지난 7일 환경부는 종이컵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플라스틱 빨대 및 비닐봉투는

단속을 무기한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2019년 11월 22일 일회용품 규제 로드맵에서 발표된 주요 정책이 4년 만에 모두 좌초 위기에 몰렸다.

 

이번 발표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종이컵 규제 제외다.

일정 부분 후퇴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의 대담한 퇴행은 상상도 못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음식점 내 종이컵 사용이 폭증하고 있는데

누르지는 못할망정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환경부는 종이컵 규제 국가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관계가 틀렸다.

독일, 프랑스는 올해부터 매장 내 종이컵 사용을 금지하고 있고 네덜란드에서도 내년부터 금지된다.

 

지자체 차원의 규제까지 포함하면 사례는 더 많다.

반나절만 조사하거나 전문가들에게 몇 번 전화만 돌려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정부 발표가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가? 이번 발표가 얼마나 졸속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설령 다른 나라에서 규제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음식점 테이블마다 종이컵을 쌓아놓고

손님이 마음껏 사용하도록 하는 소비가 확산되는 추세라면

이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한 종이컵에 뜨거운 음료를 담으면 내부 비닐 코팅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떨어져 나온다는 연구도 많아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종이컵 규제도 필요한 시점이다. 도대체 환경부는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가?

 

규제를 풀어주더라도 종이컵 사용이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안이한 생각이다.

매장 내 플라스틱 컵 사용만 금지하고 종이컵 사용을 허용하면 종이컵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플라스틱 컵 규제가 강해질수록 종이컵으로의 전환 속도가 빨라질 것이고,

이것을 막으려면 플라스틱 컵 규제를 느슨하게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시행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매장 내 종이컵 사용을 허용해 준 상태에서 테이크아웃 종이컵을 규제할 명분이 없지 않은가?

매장 내 사용 종이컵도 보증금을 부과하면 된다는 논리도 있는데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막말이다.

 

자그마한 분식집이나 푸드 트럭에서 어묵 국물을 마실 때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지적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영세한 음식점까지 당장 규제해야 한다는 무자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회용 비닐봉투의 경우 33제곱미터(㎡) 미만 사업장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음식점 일회용품 규제도 필요하다면 영세 사업장을 배려하는 보완을 하면 된다.

 

종이컵을 규제 대상에서 빼겠다는 발표는 철회하는 게 맞다.

규제를 합리화하겠다면 음식점 면적을 고려해서 규모 미만인 곳에 한정해서 완화해야 한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양면 코팅 종이컵은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

자원재활용법의 일회용 봉투·쇼핑백 규제에서 종이봉투와 단면 코팅된 종이봉투는

규제에서 제외하고 양면 비닐 코팅된 종이봉투는 규제 대상이다.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단면 코팅된 종이컵만 규제에서 빼는 것이 맞다.

매장 내 플라스틱 컵 사용은 확실하게 단속하겠다고 명확하게 발표해야 한다.

 

그래야만 보증금 제도를 비롯해 일회용품 규제가 완전히 붕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일회용품 규제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환경부의 발표를 아직까지는 신뢰하고 싶다.

 

플라스틱 재활용 많아질수록, 재생원료 유해성 문제도 커진다

 

플라스틱 재생원료 유해성 논란 잇따라
플라스틱 순환경제, 재생원료 내 유해성 관리 가능해야

/ 한국일보

 

지난 4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용인재활용센터에 각 가정에서 쏟아져 나온 플라스틱 폐기물이 가득 쌓여 있다. 용인=뉴시스

 

스웨덴 예테보리대가 중심이 된 국제연구팀은 지난달 11일 인도 등 13개 개발도상국의

플라스틱 재생원료를 분석한 결과 살충제와 의약품 성분 등 수백 가지의 독성 화학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 지난해 3월에는 영국 런던 브루넬대 연구원들이 재생원료가 함유된 페트병에서

새 페트병보다 더 많은 화학물질을 배출할 위험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논란이 됐다.

그 이전에는 전자제품 폐플라스틱 재생원료로 만든 장난감에서

브롬화 난연제가 검출돼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최근에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플라스틱 재생원료 유해성 논란은 가볍게 지나가서는 안 된다.

빗발치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재활용을 통한 재생원료 사용 확대로 돌파하려는

플라스틱 산업계는 더욱더 현재의 논란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재생원료 사용량이 많아지고 사용범위가 넓어질수록

재생원료 유해성 문제가 크게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독성의 경로는 다양하다.

비스페놀, 프탈레이트, 과불화 화합물, 브롬화 난연제 등 착색, 착향, 내열 등 기능성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첨가되는 다양한 화학물질뿐만 아니라 제조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합성되는

다양한 부산물 혹은 의도하지 않게 첨가된 불순물도 엄청나게 많다.

 

살충제나 각종 화학약품을 담은 용기에 남아 있는 내용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유해물질 관리가 정교하지 않으면 재생원료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재활용 횟수가 누적될수록 플라스틱 제품 내 유해물질이 농축될 수 있다.

 

쓰레기로 배출되는 각각의 플라스틱에 어떤 유해물질이 섞여있거나 묻어있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고

해당 정보를 활용해 선별 및 재활용 과정에서 유해성을 능수능란하게 통제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분리배출, 선별, 재활용 시스템과 기술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같은 재질 중심으로 선별하다 보니 유해물질의 종류와 양을 통제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재생원료 내 유해물질 함유 실태가 어떤지에 대해서도 알기 어렵다.

 

플라스틱 오염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혹은 전문가 중에는 플라스틱을 유독 폐기물로 분류하고

재활용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플라스틱 재생원료 유해성에 관한 통제가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높아지지 않는다면

이런 주장을 단순하게 비현실적인 극단적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플라스틱 재활용 양만 늘린다고 플라스틱 오염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플라스틱 순환경제로 가려면 재활용 양을 늘리면서도 재생원료 내 유해물질에 대한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

폐기물 배출부터 재생원료의 생산 및 유통 관련 물질흐름 전 과정에 대한 통계관리가 상세해야 하고,

용도별 재생원료의 유해성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

 

폐기물 종류별 유해성 정보를 기준으로 깨끗한 폐기물만 따로 모으거나

유해한 폐기물을 따로 모아 일반적인 폐기물 흐름에서 배제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향후 폐기물 관리에서 보증금 방식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재활용 과정에서 유해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기술적 대응도 강화돼야 한다.

 

재활용이 플라스틱을 구원하려면 재생원료의 안전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그럴수록 재활용 비용은 비싸질 수밖에 없다. 저렴한 재활용을 원한다면 재활용률을 높일 수 없다.

플라스틱 산업의 딜레마다. 재활용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싸고 쉽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확한 재활용 통계 구축, 재생원료 수급 첫걸음

플라스틱 재질·용도별 세부통계 갖춰야
실효성 있는 재생원료 수급 계획 가능

/한국일보

 

지난 1월 경기 김포시의 한 소형 폐가전 재활용 선별장에서 선별 완료된 폐플라스틱 모습. 곽주현 기자

 

플라스틱 제품 내 재생원료 사용이 의무화되는 추세가 되면서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이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중심으로 포장재 등 플라스틱 제품 내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 규제가 도입하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탄소발자국 감축을 위해

재생원료 사용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앞으로 재생원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글로벌 공급망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재생원료 공급 문제는 쓰레기 문제를 넘어서서 산업에 필요한 원료 공급의 문제가 되고 있다.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고품질 재생원료 공급이 되지 않는다면 산업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고품질 재생원료를 공급할 수 있는 준비가 잘 돼가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플라스틱은 다양한 재질이 다양한 용도와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재질만 하더라도 페트(PET),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스티렌(PS) 등 매우 많다.

음료·식품, 화장품, 위생용품, 생활용품, 장난감, 전자제품 등 용도도 다양하다.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재질·용도별 플라스틱 소비량과

쓰레기 발생량, 재생원료 품질수준 및 품질등급별 생산량,

재생원료 용도별 사용량 등에 대한 세부 통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각 재질 및 용도별 세부적인 통계는 구하기 어렵고,

재활용 통계도 물질 재활용과 에너지 회수 구분 없이 집계되고 있다.

음료용 페트병 정도에 대해서만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을 뿐 나머지는 깜깜이다.

 

포장재에 대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나 환경공단, 생산자들은 20년 전 기준 및 분류에 따른 통계만을 관리하고 있을 뿐

변화하고 있는 환경을 대비한 새로운 통계관리는 미흡하다.

 

재활용이 가장 까다로운 비닐류를 예로 들어보자.

비닐 포장재에도 앞으로 재생원료가 사용돼야 한다면 무슨 준비가 필요할까?

 

우선 어떤 용도에 어떤 재질의 비닐이 사용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각 재질별로 비닐 포장재에 사용할 수 있는 품질의 재생원료를 얼마만큼 생산해야 할지 알 수 있다.

그다음 재활용 현황 파악을 통해 재생원료 공급이 가능한지를 가늠하고

공급이 어렵다면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분리배출 비닐 속에 단일과 복합 재질 비닐 비율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은 혼돈이다.

고품질 재생원료 공급은 안정적이지 않아 재생원료를 사용해야 하는 기업들이 불안을 호소하는데,

정작 중·저급 재생원료 수요는 부족해서 재활용 업체들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전환기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통계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야 정부든 기업이든 객관적인 현실 진단이 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