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艸丁) 권창륜 선생. [사진 초정서예연구원]
한국 서단의 대가(大家) 초정 권창륜 선생이 지난 1월 27일 새벽에 작고했다.
오는 15일 선생을 영원히 떠나보내는 49재의 마지막 재를 봉은사에서 올린다.
선생은 한국 서단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분일까?
마지막 재에 즈음하여, 지금 한국 서단이 해야 할 일을 직시하고
발전의 길을 찾기 위해 선생의 서예를 되돌아보기로 한다.
초정 선생은 광복 후 한국 서단의 1.5세대 서예가인 동시에 명불허전의 대가이다.
선생을 1.5세대라 칭하는 까닭은 나이와 이력 면에서 소전·검여·일중·강암·여초 등 1세대와
취묵헌·학정·하석·소헌·산민 등 2세대 사이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초정은 후배인 2세대들과 함께 1세대를 스승으로 모시는 한편, 2세대들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20세기 말인 1997, 1999, 2000년에 소암, 강암, 원곡 선생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2006, 2007년에 일중, 여초 선생이 떠나면서 한국 서예 1세대의 시대가 마감됐다.
이후 초정은 1.5세대로서 한국 서단에 새로운 원로이자 ‘권위’로 자리하게 되었다.
국내는 물론 중국·일본·대만에서도 인정하는 진정한 대가였기 때문에
상응하는 권위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유송암시(柳松庵詩, 2022)’. [사진 초정서예연구원]
1세대 서예가들이 활동하던 광복 후로부터 2000년대 새 밀레니엄 전까지는
우리나라 서예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전체 서예계에서 으뜸이었다.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후,
서예를 가장 부르주아적인 예술로 간주하여 핍박했고,
문화혁명 기간에는 사실상 서예를 말살 대상으로 여겼다.
일본은 유럽의 엥포르멜(Informel) 미술운동을 서예에 접목해
‘묵상(墨象)’이라는 이름의 전위서예를 실험하면서 한동안 전통서예를 소홀히 했다.
대만은 대륙에서 건너온 서예가들이 있긴 했지만,
대만 자체의 서예 전통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우리나라만 한글 전용이라는 어문정책과 붓 외에도 다양한 필기구가 개발된
필기 문화의 혁명, 컴퓨터 보급으로 인해 쓰는 행위 자체가 소멸해가는 악조건 속에서도
전통 서예를 견지했기 때문에 동아시아 1위가 될 수 있었다.
이 점은 광복 후, 한국 서단 1세대 서예가들이 이룬 큰 공로다.
초정은 천부의 자질과 끈질긴 노력을 겸비한 서예가였고,
그런 자질과 노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1위를 지킨 1세대의 서예를 누구보다 정통으로 이어받았다.
이에 1세대 시대가 막을 내리며 자연스럽게 한국 최고이자 동아시아 최고의 대가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난득호도(難得糊塗, 2010)’. ‘난득호도’란 ‘바보처럼 보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는 뜻이다.
운현궁 현판, 청와대 춘추문과 인수문 현판 글씨도 그가 썼다. [사진 초정서예연구원]
대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실력이 있어야 대가로 추앙받는다.
초정의 서예는 필획·결구·장법 등 서예 창작과 감상의 3대 요소를 다 충족하는 대가의 면모를 갖췄다.
추사 선생이 제시한 살아있는 필획에 대한 비유인
‘금시벽해’(金翅劈海, 전설상의 금시조가 바다를 가르듯 투철한 필획)와 ‘향상도하’(香象渡河,
물살이 센 강을 건너는 코끼리의 발걸음처럼 밀착도가 높은 필획)를 제대로 구현했다.
고금의 문자 결구를 면밀히 살피는 연구를 했고, 역대 명필의 장법을 열린 시각으로 고찰했다.
초정은 연마한 필획과 연구한 문자 결구와 고찰한 장법을
자신의 작품에 때로는 조심스럽게 때로는 과감하게 응용했다.
그러한 연구와 연마, 응용이 초정 서예의 실력으로 표출됐다.
구상하고 꾸미는 의도적 ‘표현’이 아니라, 안에서 차고 넘쳐 저절로 분출하는
‘표출’은 굳이 말 안 해도 대가의 권위로 드러난다.
대한민국 정부도 초정을 서예계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대가로 인정해
진정한 소통의 창구로 존중했고, 중국·일본·대만의 서예계도 초정을 최고봉의 서예가로 인정했다.
초정의 권위는 한국 서단의 ‘자존심’이었고, 서단을 감싸는 ‘수양산 그늘’이었다.
그런데 그 ‘자존심’과 ‘수양산 그늘’이 떠났다.
정부가 권위를 인정하던 소통의 창구가 사라졌고, 국제 서예계가 존중하던 대가의 붓이 멈췄다.
한국 서단이 범서단적으로초정의 작고를 애도하고
마지막 재에 즈음하여 함께 손을 모아 추모해야 하는 이유이다.
초정 선생 49재의 마지막 재를 마친 후, 행여 선생의 권위를 ‘내가 이어받아
행세를 해보겠다’는 섣부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된다.
권위는 아무나 갖는 게 아니다. ‘행세’에 앞서 실력을 갖춰야 권위가 생긴다.
실력은 권위를, 권위는 신뢰를 낳으며, 신뢰는 발전의 길을 열어간다.
갈수록 사회적 신뢰를 잃어가는 한국 서단의 중흥을 위해
이제 2세대 서예가들이 초정 선생을 떠나보내며 한국 서단의 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새로운 발전을 굳게 다짐해야 한다. ‘대가’ 초정 선생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