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 구주산

0 일정 : 11월 11일(목)~11월 14일(일) /3박4일

0 장소 : 구주산~아소산

0 코스 : 부관훼리(1)~시모노세키항~꿈의다리~구주산(2)~아소산(3)~부산

0 교통 : 부관훼리 /맑음

11.11(목)

17:35 부산 국제여객 터미날

19:00 출국수속 및 면세점 구경 후 훼리승선

19:35 선내식사

22:30 부산항 출발

11.12(금)

08:30 시모노세키항 도착 후 입국수속

11:40 유메노오오츠리하시다리(九重 "夢" 大吊橋)

12:40 중식(도시락)

13:00 마키노토(牧の戶峙) 주차장(1,330m)

13:10 마키노토(牧の戶峙) 구주산 들머리

13:35 쿠츠가케야마(沓掛山) /마키노토1.0km

14:00 구츠가케야마(1,762m)삼거리

14:30 구주와카레(대피소)

14:35 나카다케(中岳)갈림길

15:00 구쥬산(久住山 1,787m)

15:20 나카다케(中岳)갈림길

15:50 기타센리하마(北千里兵)/홋케인(法華原) 삼거리

16:00 스가모리고에(誰鵝守爐 分岐里)

17:10 쵸자바루(長者原 1,035m)등산구 날머리

20:00 혼진(本陳) 호텔 /저녁식사

11.13(토)

07:00 혼진(本陳)호텔 /아침식사

07:40 버스이동

09:00 쿠사센리(草千里) 휴게소

09:30 아소산(阿蘇西驛)로프웨이역

09:45 가고니시(火口西驛)

11:00 점심 도시락

11:30 로프웨이 주차장 /버스이동

16:00 다이소 관광

17:00 출국수속 부관훼리 승선

18:00 국제터미널 출발

11.14(일)

06:10 선내조식 후 하선

08:00 입국수속

09:00 부산 관광

12:30 춘천으로 출발

<여행기>

11.11(목)

11:00 춘천 태백가든

배를 타고 일본을 간다면, 10명 중 8명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비행기로 1~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배를 타고 13시간 동안 간다면,

오가는 길이 너무 고생스럽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크루즈를 타고 일본을 다녀오라고 권하고 싶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간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긴 하지만,

항공기 여행은 공간을 이동한다는 것 외에는 큰 의미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13시간이 걸리는 크루즈는 배를 타는 순간부터 이미 여행이 시작된다.

'느림의 미학'을 통해 비행기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여유와 자유'라는 여행의 본질을 깨닫게 해준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의 규슈 지방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 높은 여행지 중 한 곳이다.

특히 봄과 가을, 철쭉과 갈대숲이 장관을 이루는 구주산과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자랑하는 아소산,

그리고 벳푸의 천연 온천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부산 국제여객 터미날

저녁 7시, 부관훼리에 탑승해 부산항을 출발

저녁식사 후 휴게실에 모여 멀어지는 부산항을 보며 담소를 나눈다.

새로운 산행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 때문에 시간은 의외로 빨리 지나간다.

페리호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레스토랑, 노래방, 편의점, 사우나,

면세점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으나 심한 풍랑으로 즐길 여유가 없다

2010. 11. 12(금)

시모노세키항

아침 눈을 뜨니 일본 남단의 이름 모를 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13시간의 긴 항해 끝에 드디어 일본에 도착한 것이다.

일일이 사진을 찍고 검지손가락 지문을 채취하느라 입국심사는 오래 걸렸다.

드디어 입국 심사장을 빠져 나왔다.

입국 수속을 밟고,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의자 간격이 매우 좁았다.

버스 크기는 한국의 버스와 비슷한데 50인승이라 했다.

검소한 일본인들의 성격을 버스에서도 알 수 있는 듯 했다.

구주산으로 가는 동안 이동 시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현지 가이드의 맛깔스러운 일본 문화 이야기를 들으며 낯선문화를 익힌다

당초 유후인은 등산시간에 쫒겨 생략하고 다음 목적지에 다다른다

유메노오오츠리하시다리(九重 "夢" 大吊橋)

일본 규슈주 오이타현 고고노에 위치한 일본 최대 규모의 고공 현수교인 꿈의 현수교

보행자 전용 다리로는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 현수교는

개장 1년 만에 관광객 250만 명, 연간 수익 250억 원을 올렸다고 한다.

해발 777m, 높이 173m, 길이 390m, 폭 1.5m. 2006년 10월 30일준공 되었다.

대인500엔, 소학생200엔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 문화에 쫒겨 버스에 다시 오르고

마키노토(牧の戶峙) 주차장(1,330m)에 도착한다

중식(도시락)후 구주 산행

구주산(久住山·1,791m) 산행

0 코스: 마키노토주차장(1330m)-구츠가케야마(1503m)-훗쇼오야마삼거리-무인대피소

-나카다케삼거리-구주산(1786.5m)-마키노토주차장

0 거리: 왕복9.2km /4시간

구중산과 아소산은 함께 아소-구주 국립공원지역을 이룬다.

구마모토현과 오이타현에 걸쳐있는 9개의 봉우리를 구중산이라 부르는데

구주산은 구중산의 한 봉우리로서 규슈의 가장 높은 중악(1791m)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이며

아소 구주국립공원에 속하는 휴화산 지대이며 아직도 곳곳에는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주변의 산들은 모두 둥그스럼한 육산이고 1500m 이상에는 큰나무들이 없으며

봄에는 철쭉이 아름다우며 일본의 100대명산에 드는 명산이다.

마키노토(牧の戶峙) 주차장

산행기점은 해발 1,330m 고지에 있는 마키노토(牧の戶峙).

국립공원 허리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만나는 고갯마루 휴게소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10여분 시멘트 길을 따라 능선에 오르면

장쾌한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쪽을 돌아보면 제주도와 지형이 닮았다.

쿠츠가케야마(沓掛山) /마키노토1.0km

본격적인 능선산행은 이곳에서부터다.

전형적인 화산지형이다.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무렵인 오후 1시,

이미 일본 현지인들은 오전 산행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약간의 내림 길이 바위와 계단을 내려가고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며

1700m 급 여러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 온다.

우리나라와 같은 가을 풍경이 철을 조금지난 풍경이다.

훗쇼오야마 삼거리를 지나고 평지지대를 지나

좌측의 기암봉우리 아래 바위지대를 넘으면

구츠가케야마(1,762m)삼거리

일본 산의 가장 큰 특징은 나무가 없는 돌산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자연적으로 형성된 울창한 숲이 없기 때문에

구주산 가을은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일본 등산객들이 간간이 보인다

대부분의 일본 등산객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형형색색 등산복을 갖추어 입지 않으며

면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간소한 차림으로 등산을 한다.

일본 등산객들은 한국 관광객이 올라오면 옆으로 길을 비켜주면서

활기찬 목소리로 "곤니치와(안녕하세요)"를 외친다.

등산로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게 산행 중 매너라고 하지만,

한국 관광객 일행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옆길로 비켜서서 기다리는 모습에

친절함이 몸에 뱄다는 그들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구주와카레(대피소)

내리막을 내려서면 대피소와 화장실이 있다.

구주산이 우측에 우뚝하게 솟아 있으며 정상오름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등로는 잔돌 길이고 보기보다는 힘이 덜드며

분지 끝 왼쪽으론 나카다케(中岳)가 우람하다.

나카다케(中岳)갈림길

또 다른 풍경이 반긴다.

정면으로 날카로운 능선이 이어지는 오른쪽으론 구주산이 우뚝 솟아있다.

묘한 풍경이다. 화산지역이 아니고선 볼 수 없는 모습.

화산폭발 당시 형성된 산이어서일까 밑에서 보기에도 능선이 날카롭다.

그 아래 분지로 형성된 니시센리하마는 널따란 평원이다.

해발 1,600m가 넘는 곳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중악(나카다케)삼거리를 지나 두 번째 나카다케로 이어지는 삼거리 능선에서

우측으로 너덜 길이 이어진다. 유황냄새도 강해진다.

구쥬산(久住山 1,787m)

구주산 정상은 조망의 명소였다.

옅은 안개가 낀 상태에서도 구주산 일원의 산봉뿐 아니라

서쪽 멀리 아소산 동단까지 바라보인다.

정상은 바위 너덜지대이고 사방조망은 막힘이 없으며

사방으로 비슷한 높이의 8개의 봉우리를 헤아려 본다.

화산 연기가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능선의 정상이 훗쇼오야마이고

우측으로 가까이 삼각봉우리 다음에 나카다케가 보인다.

다이센산(大船山·1,787m)~히지다케(平治岳·1,643m) 능선이 기운차게 솟구친다.

나카다케(中岳)갈림길

왔던 코스로 되내려오면 나카다케 삼거리를 지난다

나카다케(中岳) 분화구 호수에는 물이 꽉 차 있다는데

미이케(御池)라는 산중호수 왼쪽은 덴쿠가죠(天狗か城) 암봉이 우뚝 솟구치고,

뒤편에는 규슈 최고봉인 나카다케가 솟아 있다.

덴쿠(天狗)는 일본인들에게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깊은 산속에 사는 코가 길쭉한 도깨비.

결국 덴쿠가죠는 도깨비들의 성이란 말이고 보면,

산중호수는 도깨비들의 샘이자 놀이터인 셈이다.

기타센리하마(北千里兵)

홋케인(法華原) 삼거리

대피소쪽으로 내려선 다음 급경사 내리막을 거쳐 내려선 곳은

기타센리하마. 니시센리하마처럼 널찍한 평원이다.

스가모리고에(誰鵝守爐 分岐里)

구주산의 볼거리는 두가지다.

미야마키리시마라는 철쭉종류의고산식물과

끝없는 수평선을 이룬 산능선이다.

쵸자바루(長者原 1,035m)등산구에서

늦게 출발한 산행을 서둘러 마감하고

다시 어둠속을 따라 오랜시간을 달려

혼진(本陳)호텔에 도착한다

저녁식사 후 호텔내에 있는 온천탕을 찾았다

비록 60~70년대 작은 탕 규모지만

온천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여유를 갖는다

11.13(토) 아소산(1,592m) 산행

쿠사센리(草千里) 휴계소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일본의 시골풍경이 들어왔다.

꽉차인 산림은 사람의 손길이 안 닿은 듯 나무와 풀로 가득 했다.

가는 도중 잠시 휴게소에 들렸다. 휴게소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쿠사센리(草千里)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보는 것은 고메즈카(米塚)다.

쿠사센리란 가네지마다케 부터 아소화산박물관 까지 펼쳐진 대초원을 말한다.

왕릉 같은 동산은 아소의 신이 쌀을 수확하여 쌓아둔 것이

지금의 언덕이 되었다 하는 전설 이고,

가까히 다가서면 봉분 위가 조금 파였는데

그것은 흉년이 들었을때 아소산의 신이

가난한 사람에게 쌀을 조금 퍼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아소산(阿蘇西驛) 로프웨이역

활화산으로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가진 아소산을 찾았다.

아소산은 1,323미터의 높이의 세계최대급 칼데라화산으로

현재 유일하게 분화구를 들여다 볼수 있는 곳이다.

아소산의 폭발은 3,000만년전 부터 계속 되어 왔으며

현재의 모습은 약10만년전의 대폭발의 기인한 것이다.

그 규모는 표고차 900m, 동서18km, 남북 24km, 둘례가 120km의 외륜산에 둘러쌓인

세계최대의 복식화산 이란다.

칼데라 안은 네코다케 ,다카다케,나카다케,에보시다케,가네지마다케 등

5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이것을 아소5악이라 하며,

지금까지 활동하는 것은 나카다케 뿐이다.

아소산은 현재 살아 숨쉬는 화산으로,

언제 갑자기 화산 활동을 다시 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소산 관리사무소에서는 화산의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심상치 않으면,

입산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황가스가 입산하는 쪽으로 흐를 경우에도 입산이 통제된다.

다행히 이날은 날씨가 맑아 분화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우리는 버스로 "아소산로프웨이역" 주차장 까지 올라와서 케이불카를 타나

작은 승용차는 분화구 앞 주차장까지 올라 갈수 있다.

가고니시(火口西驛)

일본 제일의 국립공원 아소산 케이불카는 1958년 4월에 개업한

작은 바퀴까지 달린 오래된 전차 같았는데 91인용이었다.

올라가는 길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화산재로 덮인 다소 황량해 보이는 화산 지형도 감상할 수 있다.

화구서역이라는 케이불카 정거장에서 중악화구(나카다케)의 분화구를 보러 좌측으로 간다.

나카다케의 분화구로 가는 도중에 화산 폭발시를 대비해

콘크리트로 만든 대피소가 여러 군데 자리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볼 수 있다는 아소산.

둘레 4km, 깊이 100m의 거대한 분화구에서는 계속 유황가스가 솟아오르고 있으며,

코를 찌르는 듯 고약한 유황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러나 지독한 유황 냄새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은 에메랄드빛 칼데라를 보기 위해

코와 입을 막고 분화구 주위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분출되는 유황가스 때문에 에메랄드빛 칼데라는 쉽게 볼 수 없다.

간혹 바람이 불어 유황가스가 걷히면,

겨우 5~10초가량 아름다운 옥색 칼데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정말 재수좋게 보는 분화구의 초록색 물빛은 신비감을 주는데

용암은 아닌거 같고 유황가스가 계속 올라온다

지구의 원시 자체인 나카다케의 봉우리의 용암,

나카다케 아래 우측으로 용암이 흘러넘친 흔적이다.

분화구 관광을 마친 후 쿠사센리를 내려다보면서 포장도로를 걸어 내려간다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고

로프웨이 입구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이동이다

아소5악에서 흘러내리는 물따라 이루어진 협곡은 드넓은 초원으로

고산 농경지와 여기저기 촌락이 형성 되어 있고 억새초원 이다.

면세점을 거쳐 출구구속을 하는동안

시모노세키 2층 출구에서 정면으로 파란 길을 쭈욱 따라 걸어간다.

200미터 정도 가다보면 분홍색길이 교차되는데

오른쪽은 다이소와 전자매장이 있다

국제터미널

시모노세키항으로 이동해 출국수속을 마치고

부산으로 향하는 성희호훼리에 오른다.

출항은 오후 7시.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음날 아침 8시에 부산항에 도착한다.

11.14(일) 부산항

부산의 명물인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아쿠아리움, 용궁사, 건어물시장

그리고 춘천으로 떠나며 3박 4일간 여행의 아쉬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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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백암산 산행기

0 산명 : 백암산(상왕봉 741.2m)

0 위치 : 전남 장성, 전북 정읍 입암면, 순창 복흥면

0 코스 : 백양사~약사암~상왕봉~능선사거리~백양사

0 일자 : 2010. 6. 27(일)

0 시간 : 4시간 /비

(산행시간)

03:00 태백가든

08:00 매표소

08:20 쌍계루

08:25 백양사

08:35 약사암 갈림길(운문암2.1k, 백양사0.5k, 상왕봉3.7k, 약사암 0.4k. 백학봉1.3k 영천굴0.5k)

08:50 약사암(백양사 0.5k, 백학봉 1.2k)

08:55 영천굴(상왕봉 3.1k. 백학봉 0.8k 백양사 0.9k)

09:20 안내판(상왕봉 2.8k. 백학봉 0.4k 백양사 1.4k)

09:40 학바위(상왕봉 2.5k. 백학봉 0.1k 백양사 1.7k)

10:05 구암사 갈림길(상왕봉 1.9k. 구암사 0.9k. 백양사 2.3k)

10:10 헬기장(721m)

10:15 안내판(상왕봉 1.3k. 백학봉1.1k 백양사 2.9k)

10:35 안내판(상왕봉 0.3k. 백학봉 2.0k)

10:50 백암산 상왕봉(741.2m)

11:00 능선사거리(백양사3.3k,운문암0.5k,몽계폭포2.3k,상왕봉0.5k)

11:15 청류암갈림길(백양사2.6k,능선사거리0.5k,청류암2.7k)

11:20 운문암갈림길(운문암0.2K)

11:30 이정표(운문암0.2K 사자봉1.3K, 백양사1.6K,백학봉1.9K

11:40 약사암갈림길

11:50 백양사

12:05 매표소

12:15 백양사박물관

13:40 고바우풍천장어

15:20 새만금

매표소

어둠을 달려 도착한 백암산

잔뜩 흐린 날씨속에 출발을 한다

쌍계루

개울가에 작은 연못 끝으로

그림 같은 쌍계루가 보인다

절의 성보문화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식이며

백양사의 본 가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1377년에 복구되었으며 이 과정에 정도전, 이색 등이 기문을 남겼다.

비자나무 숲

극락교를 돌아서면

하늘을 가리는 무성한 비자나무. 천연기념물 153호.

북방 한계점에 자생하는 수백 년 된 거목들 5,000여 그루

구충제로 효험이 있다지만 바둑판이 제일이다

약사암

갈림길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된비알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비가 내리는 숲길은 완전 어둠

짙은 안개로 사방이 갇혀있다

잔돌이 깔려있는 약사암 오름길

직각으로 올려보는 기암절벽에

갈지자로 이어지는 산길 따라 거친 숨을 몰아쉰다.

올라서면 정갈한 절집이 안개에 가려져있다

영천굴

앞마당을 가로질러 오르면

수백 척 기암절벽이 하나의 바위덩이다

길은 여전히 가파르다.

100여 m나 올랐을까. 천연석굴인 영천굴이 나온다.

석굴 안은 20평 남짓한 넓이다.

텅 빈 석굴 안을 석조관세음보살상이 홀로 지키고 있다.

옛날에 바위 구멍에서 항상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는데

스님은 쌀이 더 많이 나올까 하여 작대기로 구멍을 쑤셨는데

그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곳곳에 전해내려오는 미혈(米穴) 전설이다.

영천굴에서 나와 다시 백학봉을 향한다.

가파른 고갯길엔 끝이 보이지 않는 목재 계단이 설치돼 있다.

이제 계단이 다 끝났나 싶으면 또 다른 계단이 시작된다.

계단 옆으론 천애절벽이 우뚝하다.

얼마나 수많은 계단을 딛고 올라서야 백학이 노니는 곳에 갈 수 있단 말인가.

학바위

끝없는 나무계단은 하늘로 이어지고

안개에 가려진 안부에 올라서면

용아장성 버금가는 암릉길이 이어진다

백학봉

수 백길 절벽의 전망바위

천년고찰 백양사가 계곡에 가득하겠지만 지금은 하얀 안개만

바위틈에 자리 잡은 휘 늘어진 낙락장송

만고풍상 고통 속에 수 백 년을 지켜는 고고한 자태에

산과의 만남을 만끽한다

헬기장

호남정맥 갈림길.

평탄한 길을 가다 내리막 우측으로 산허리를 돌아가면 급경사

기암절벽 화려함도 이곳에서 끝이 나고

완만한 능선 길에 포근한 육산이다

호남정맥이 갈리고 주능선이 합류하는 이곳

722봉

암릉 길을 지나다 멋들어진 풍모를 지닌 소나무를 만난다.

혹 백암산 산신령이 심심할 때 벗하는 소나무가 아닐까.

이인문이 그린 <송계한담도> 속 소나무를 닮았다.

세속의 번거로움을 벗어나 조용히 은일의 삶을 즐기는 탈속한 선비처럼 보인다.

다시 한번 더 올라가면 722.6봉 도집봉인데

상왕봉만 흘깃 보일뿐이므로 지나친다.

상왕봉(741.2m)

기린봉을 사면길로 휘돌아 잡목 숲을 헤치가면

정상엔 안내도와 삼각점이 있고 사방으로 전망이 시원하다.

산죽이 우거진 길을 지나서 마침내 백암산의 고스락인 상왕봉에 이른다.

어찌나 밋밋한지 여기가 과연 최고봉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직진은 남창고개에서 사자봉. 남창골. 백양사등으로 길이 갈라지고

내장산의 까치봉, 신선봉, 장군봉이 일열로 서 있지만 안개만 가득하다

능선사거리

상왕봉,사자봉,백양사,몽계폭포로 갈라서는 사거리

몽계폭포는 남창계곡의 크고 작은 폭포 중 가장 유명하고 경치가 뛰어난 폭포이다

조선 선조 때 하곡 정운용이라는 이가 수도한 곳이라 하여 하곡폭포라고도 하는데

폭포 아래 바위에 ‘하곡석문’이라 새겨진 글씨도 정운용의 것이라고 전해진다.

청류암갈림길

1890년(고종27)에 작성된 '관음전중건기'가 현존하고 있어 그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하는데,

현존 당우로는 관음전과 요사가 있다.

청류암에 얽힌 근세의 설화가 전해지는데

하루는 주지스님이 잠을 이루는데 수성리(지금은 백양댐 수몰지역)에 가면

부처님이 계시니 그 부처님을 관음전에 모시라는 현몽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 가니 과연 부처님이 계시어 그 불상이 있게 된 연유를 물으니

그곳에 가난한 부모와 사는 젊은 처녀가 보리밭에서 김을 매다가

땅속에서 캐어낸 불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처녀는 불상을 잘 모시고 공경해야 하기에 집 뒤 바위 밑에 모시고

조석으로 정안수를 떠올리며 부모님이 건강하고 부자되기를 빌었다고 얘기하였다.

그 때 청류암 스님이 와서 백미 3말을 주고 부처님을 모시고 가겠다하니 쾌히 허락을 했다.

그 부처님이 영험이 신통하여 공양을 올리고 축원을 드리면

소원을 한가지씩을 꼭 이루게 되어 많은 신자들이 구름같이 모여

청류암이 부찰이 되고 그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을 따로 짓게 되니

그 전각이 바로 청류암 관음전이다.

그 후, 그 처녀는 백미 3말이 없는 셈치고 이자쌀을 계속 불렸는데

그 쌀을 가져가는 사람은 재수가 있고 사업이 성취되어

이자에 원금 이상을 보태어 십년이 채 되지 않아 그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어

항상 청류암 부처님께 공양예배 드렸다 한다.

현재 그 불상은 6.25때 국묵 스님이 담양으로 난을 피해 옮겨 놓았는데,

분실되어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동학농민운동 전봉준 장군이 청류암에서 은거하다가 하산하던 중 체포된 곳이기도 하다.

운문암갈림길

백양사의 말사이다.

백암산 꼭대기인 상왕봉 아래에 자리한 운문암은 서옹스님 등

많은 큰 스님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선방스님들이 앞다퉈 찾아드는 곳이다.

이 암자에 금을 입지 못한 부처가 있었다.

선조 초기에 진묵대사란 분이 이 암자에 있으면서

불상을 만들다가 완성되기 전에 어디로 가면서

다시 자기가 와서 완성하기 전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부탁해서 그 말대로 하였는데

그 뒤 진묵대사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흙만 바른 부처로 전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이 불상과 관련 깊은 진묵대사의 본명은 일옥이라 했는데 이상한 행적이 많았다.

백양사 운문암은 옛부터 많은 선지식이 정진하신 곳이다.

6.25로 모두 불타고 현재는 1980년대의 불사라고 한다.

6.25때 국군이 올라와서 불질렀는데 불질르러 올라온 군인 하나가 반대했다고 한다

운문암을 불지르고 내려가다가 인민군을 만나 몰살당했는데

불지르는 것을 반대한 한사람만 살았다고 한다

그 생존자가 80년대 까지 일년에 서너번 올라와서 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

약사암 갈림길

처음 산행을 시작한 갈림길

어둡고 무더운 날씨로땀인지 빗물인지

겨우 하늘이 개이고

백양사

처음에는 백암사라고 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다.

631년(무왕 32) 승려 여환이 창건하고, 고려에 들어 1034년(덕종 3) 중연이 중창한 후

정토사라 개칭하였으며 1574년(선조 7) 환양이 백양사라 이름하였다.

건물로는 환양이 세웠다는 극락전이 가장 오래되었고,

대웅전은 1917년 백양사 중건 때 지은 것으로, 석가모니불 ·보살입상 ·16나한상이 봉안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건립한 사천왕문과 1896년경에 세운 명부전이 있다.

이 밖에 백양사 재건에 힘쓴 소요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소요대사 부도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9층탑이 있다.

쌍계루

이 누각은 1370년에 붕괴된 이후 1377년에 복구되었으며

이 과정에 정도전, 이색 등이 기문을 남겼다.

특히 1381년에 작성된 이색의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에 따르면

이 곳에서 두 계곡의 물이 합쳐지므로 '쌍계루'라 이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매표소

안개와 함께한 산행

젖은 옷을 갈아입으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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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1,240m)~운문산(1,188m)

0위치 : 경남 밀양, 울산 울주, 경북 청도

0코스 : 석남터널→1168봉→가지산→아랫재→운문산→상운암→석골사→석골교

0일시 : 2009. 5. 9(일)

0시간 : 8시간 /맑음


<산행시간>

06:00 석남터널(울산)

06:10 산행시작

06:35 능선 /석남터널1.3km, 가지산2.2km

06:45 석남재 대피소

06:50 나무계단-안내도

07:05 석남사주차장 갈림길

07:30 1168봉

07:45 안부 갈림길 /↓석남고개 2.6km, ←제일농원 3.4km, ↑가지산 0.35km

08:00 가지산(1,240m) /운문산5.3km,아랫재3.8km,쌀바위1.3km,석남터널3.1km,중봉0.75km

08:10 대피소

08:15 헬기장

08:35 자살바위

09:00 전망바위 /↑운문산 2.6km

09:05 백운산 갈림길 /↓가지산 2.6km, ↑아랫재 1.3km, ↑운문산 2.2km, ←제일농원 2.61km,

←백운산 1.78km

09:15 얼음굴

09:45 아랫재 /휴식15분 /가운산방 대피소

/↑운문산 1.2km, ←남명초등 3.91km, ↓가지산 3.87km

10:50 전망바위

11:05 운문산(1,188m) /←삼양5.5km, →석골사 4.5km, →억산 4.1km /5분휴식

11:10 헬기장 /중식

12:00 갈림길 /↑석골사4.0km, ↑상운암0.5km, 억산3.5km, 딱밭재1.6km,↓운문산0.5km

12:15 상운암

12:35 돌탑 /↓운문산 1.5km, ↓상운암 0.8km, ↑석골사 2.8km

13:05 정구지바위 /↓운문산 2.5km, ↓상운암 1.8km, ↑석골사 1.8km

13:15 딱발재 갈림길 /석골사1.4km

13:20 범봉갈림길/석골사1.2km,범봉1.36km

13:30 치마바위

13:35 억산 갈림길 /↘억산 2.6km, ↘팔풍재 2.1km, ↓운문산 3.8km

13:45 석골사

13:50 석골폭포

14:10 창의유적기념비

14:20 석골교

운문지맥은 영남알프스 최고봉인 낙동정맥 가지산에서 분기하여

운문산, 억산, 구만산, 용암봉, 중산, 낙화산, 보담산, 비학산을 거쳐

밀양강변에 이르는 도상거리 약 33.7km의 산줄기로서,

밀양강의 제1 지류인 단장천의 북쪽 울타리임과 동시에

운문호가 있는 동창천의 남쪽 울타리가 되어 밀양강까지 이어진다.

가지산 입구에는 비구니의 수련도량으로 유명한 석남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운문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에는 기암괴석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가지산의 또 다른 묘미는 다양한 전설을 간직한 바위 봉우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베틀 같은 베틀바위, 딴청을 부리고 있는 딴바위,

탐욕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는 전설의 쌀바위 등이 그것들이다.

쌀바위는 전국의 암벽 등반가들이 한번쯤 들리는 암벽 코스로도 유명하다.

운문산은 영남 7산 가운데 하나로, 가지산·천황산등과 함께 이른바 영남알프스를 이룬다.

운문현을 중심으로 동운문과 서운문으로 나뉜다.

동운문은 남쪽 비탈면의 절벽 밑에 구연동, 얼음골로 불리는 동학, 해바위 등

천태만상의 기암이 계곡과 더불어 절경을 이룬다.

또 북쪽 기슭에는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창건된 운문사가 있고,

남쪽에는 석골사등 크고 작은 절과 암자가 산재한다.

거대한 봉분 같은 단순한 모양새이지만 억산과 가지산의 좌우 준봉에서

북으로 뻗어간 긴 능선들 덕분에 운문사가 들어앉은 깊은 골을 갖추었다.

그러나 남쪽으로는 여지없는 홑산이어서 커다란 바위산덩이 한바우산으로 불린다.

.

운문산, 가지산, 신불산, 재약산으로 이어지는 산군의 아름다움이

유럽의 알프스와 일본의 알프스에 견줄만하다고 하여 영남알프스라 하며,

다시 가지산을 중심으로 한 북알프스와 신불산을 중심으로 한 남알프스로 구분한다.

이 영남알프스는 하나의 산줄기 개념이 아니라 흩어진 산들의 집합체다.

배내고개를 기점으로 남으로는 단장천이 발원하여 배내골로 흐르다가 밀양호에 담기고,

배내고개 북으로는 덕현천이 굽이쳐 고헌산 아래에서 태화강을 발원한다.

<산행기>

태백가든

오랜만에 떠나는 무박산행

영남의 최고봉을 가기위해 잠을 설치며 버스에 오른다

청도휴게소

여명이 시작되는 새벽

선잠을 깨우며 아침식사를 하는데 먹는둥 마는둥

그리고 가지산으로 떠난다

석남터널

석남주차장 터널 직전에 버스를 세운다

들머리에 세워진 조감도를 살펴보며 능선을 정리해 둔다.

계곡을 따라가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석남주차장에서 올라오는 능선길과 만난다

석남고개 갈림길

진달래가 간간히 피어있는 자갈 깔린 능선에 서면

산허리춤을 휘감아 돌아가는 석남재가 내려다보인다.

그 왼편으로 울주군 언양 일대가 흐릿하다.

/ ←석남터널(울산) 1.3km, →가지산2.2km

석남재 대피소

입구는 낙서판이다

시원한 검은콩 막걸리가 있다는 매점겸 휴게소

우측 능선 중간으로 거북이 모습의 쌀바위가 뚜렸하다

안내도

2개의 계단길이 있는 초입에 세워진 안내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한다.

바로 위 봉우리는 가지산의 전위봉인 1168봉이다.

석남사주차장 갈림길

왼쪽 길은 석남터널의 밀양방향 출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

계단이 상256, 하338 계 594단이라고 낙서를 해 놓았다

기나 긴 나무계단을 넘어서니..

다시 너덜길이 목책을 옆에 두고 이어진다.

1168봉

남쪽으로 재약산 수미봉과 사자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우측편에 다소 자세를 낮추고 있는 봉우리는 백운산이다.

가지산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북동능선이 상운산으로 뻗어간다.

바로 건너 능선으로 쌀바위가 지척이다

쌀바위의 유래

옛날 이 바위 밑에 초막을 짓고 수도 정진하던 한 스님이 있었다.

양식이 떨어지면 아랫마을로 내려가 탁발(동냥)을 얻어야 하는

스님의 고행이 가여웠는지 부처님이 기적 같은 자비를 내렸다.

그 바위에서 날마다 한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이 물방울 흐르듯 또닥또닥 나왔던 것이다.

스님은 수없이 부처님께 감사의 염불을 올린 다음 이 쌀을 소중히 거두었다.

그러나 욕심이 생긴 스님에게 바위 구멍은 작아 보였다.

구멍을 크게 하면 쌀이 더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위 구멍을 크게 뚫기 시작했다.

쌀을 팔아 돈이 모이면 큰 절을 지어 주지로 출세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스님은 그날로 수도 정진은 뒷전이었다.

그러나 쌀이 나와야 할 바위 구멍에서는 쉴 새 없이 맑은 물만 흘러나왔다.

스님은 그때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뉘우치며 통곡했으나 허사였다.

그 후로 쌀은 영영 나오지 않았으며 이름만이 쌀바위, 미암(米岩)으로 전해온다.

지금도 그 스님이 쌀을 받았다는 곳에 가 보면 바위틈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다.

능선에서 목을 축이는 유일한 장소 쌀바위에는

인간의 탐욕을 거부하는 자연의 섭리가 함께 흐른다.

- 출처: 미상 -

안부

안부에서 한층 더 가까이 관측되는 남서릉이 멋지다.

안장처럼 굽은 매끈한 곡선 끝이 날카로운 기암절벽으로 이어진다.

바위를 타고 올라서니 나즈막한 절벽 위로 돌탑이 보인다.

그곳이 정상인가보다 하며 왼편 모퉁이로 돌아서니 정상은 조금 더 가야 한다.

/↓석남고개 2.6km, ←제일농원 3.4km, ↑가지산 0.35km

가지산(1,240m)

사각 검은 대리석으로 된 정상석을 만나지만

왼쪽 끝으로 자연석으로 된 정상석이 또 있다

가지산(加智山)...'지혜를 더 하는 산'이라..

그런데 석남사에서는 한문 표기를 달리하여 가지산(迦智山)이라 부른다고 한다.

여기서 가지(迦智)는 '부처님의 지혜'라는 뜻이라 한다.

부처님의 지혜가 가득한 산, 지혜가 더해지는 산..

가지산의 옛 이름 새산(鳥山) 혹은 까치산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의 가지산은 까치에서 나왔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가(加)는 까의 음차(音借)이며 지(智)는 치로 읽어야 하니 역시 치의 음차(音借)인 것이다.

이와 같이 가지산은 옛 '가치메'의 이두식 이름이다. 까치의 옛말은 '가치'였다고 한다.

울주군 상북면 주민들은 가지산을 가리켜 '구름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자주 구름에 뒤엎이는데서 유래했다.

또 천화산이라고 하는 연유는 이 산이 화산의 분화구 지대임을 말해주는 듯 싶다.

그리고 밀양 쪽에서는 실혜산이라고 하는데

산 속에 실혜촌 또는 부요마을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실혜촌은 일제 시대 이후 없어졌다고 한다.

- 출처: 「해동고승전 」 및 「삼국유사 」및 주민 구전설화 -

헬기장

정상 바로 아래 대피소를 지나 이어지는 능선길.

편안하고 운치있다.

키작은 멋진 소나무가 군데군데 놓여있고

그 사이로 곱게 핀 진달래가 어우루러진 아름다운 풍경이다

/운문산 2시간20분, 아랫재 1시간20분, 제일농원 1시간30분

전망바위 (일명: 자살바위)

능선은 절벽을 왼편에 두고 계속 이어진다.

절벽 아래에 남명리 마을이 보이고 그 가운데로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내리막길

이정표가 없는 공터 갈림길에서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한다

왼쪽 능선을 따라 활처럼 휘어지는 능선 끝으로

아랫재 그리고 운문산이 기다린다

좌측으로 펼쳐지는 기암절벽에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산허리를 돌아가는 도중에 전망바위를 만난다

지나온 가지산이 북서쪽으로 보인다.

왼편의 암봉이 가지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뻗어가는 능선 중간에 위치한 '가지북능'이다.

전망대

다시 능선을 따라 전진하는 길.

왼편 사자봉 너머로 뾰족한 봉우리를 내밀고 있는 수미봉이 희미하게 솟아있고

사면에 가득한 억새밭 사이로 키작은 노송들이 서있는 아름다운 능선이다

/↑운문산 2.6km

백운산 갈림길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갈림길에서

운문산 정상이 한층 가까이 다가와 있는데

그 아래로 떨어지는 아랫재가 무척 깊게 느껴진다.

저곳에 오르려면 바닥까지 내려가야 할 모양이다.

내리막 도중에 바위틈으로 찬바람을 토해내며

아직도 얼음이 남아있는 석굴을 만난다

/↓가지산 2.6km, ↑아랫재 1.3km, ↑운문산 2.2km, ←제일농원 2.61km, ←백운산 1.78km

아랫재

길게 이어지는 급경사 내리막

오른 만큼 다시 내려가는 험한 산길이 끝나면

이정표가 지키는 삼거리에 가운산방(加雲山房)이라 쓰여진 대피소가 있다.

비록 허름하지만 산객들에게는 편안한 안식처가 될수있는

가지산과 운문산 사이의 산방이란 뜻이 담겨있다. 잠시 휴식

/↑운문산 1.2km, ←남명초등 3.91km, ↓가지산 3.87km

암릉길

운문산을 향하여 오른다

다소 가파른 길이지만 아침식사를 대충때우는 바람에

허기진 채로 오르려니 가다쉬고 가다쉬고...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은 험악한 칼능선 암릉길, 그리고 우회길이다

힘든 경사길을 오르느라 지친 터라 포기하고 우측으로 돌아간다

암릉을 지나면 산죽길이 이어진다.

산죽길을 벗어나니 거대한 암봉이 다가오는데

정상은 그 너머에 있는 듯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왼쪽으로 돌아가 절벽위에 선다

전망대

온 산이 발아래.. 기막힌 조망처다

지나온 능선이 가지산까지 이어지고

암릉 뒤로 운문산이 다가선다

암벽사이에서 뿌리를 내린 소나무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자라는 생명이란 자연에서도 참 고귀하다.

좁은 암릉에 들어서니 등산로 정비공사가 한창이다

강비탈을 기다시피 겨우 올라서 우측으로 휘어지는 암릉을 따라가면

도중에 대산련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다. 직진

운문산(1,188m)

구름의 문, 운문산. 이름대로 구름이 많은 산이다.

청도쪽에서는 운문산의 산세가 험준하다고 하여 호거산이라 불러

지금도 운문사 입구에는 호거산 운문사라는 화강암 표석이 있다.

한편 청도 운문면 쪽에서는 그 모습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이 산은

밀양 산내면에서는 가리는 것 하나없이 지척에 보인다.

이 곳 사람들은 산의 모양이 마치 한덩이의 큰 바위처럼 생겼다고 하여

‘한바위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산기슭에 석골사가 있고 멀리서 보면 ‘만산의 기암이 개골’이라 하여 석골산으로도 부른다.

또「미리벌의 얼」에는 '산이 높아 맺혔던 꽃봉오리가

피기전에 시들고 만다해서 화망산이라고 한다.

혹은 석골사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흡사 꽃을 감싸고 있는 꽃잎 같은 형국이라 함화산이라 한다

또 다른 이름인 일출봉,석동산으로도 불린다

운문산은 전체적으로 듬직하고 중후한 모습이다.

산세는 정상 남쪽(밀양쪽)으로 급하고 능선이 짧은 반면

북쪽(청도쪽)으로는 능선이 길고 완만하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청도의 운문산은 연해진 봉우리와 겹쳐진 묏뿌리에 골이 깊숙하다.

승가에서는 천 명의 성인이 세상에 나올 곳이다.

또 병란을 피할 수 있는 복지라 한다’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이 넓고 험한 산세는 임진왜란 당시 이곳이 의병들의 본거지가 되었는가하면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는 빨치산들의 은거지로도 이용되었다.

이곳에도 두 개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동쪽으로 지나온 가지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오른편으로 신불산군과 재약산군이 아득히 펼쳐져 있다.

서쪽으로 돌아서면 억산 능선이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억산 뒷편으로 대구 팔공산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확인하지 못했다

/←남명리5.5km, →석골사4.5km, →억산4.1km

헬기장

공터에는 공사용 자재가 널려있고

능선 한켠에서 늦은 점심을 한다

잠시 쉬고 석골교를 향하여 하산한다.

갈림길

돌탑이 있는 삼거리.

직진은 억산으로 가는 길이고, 석골사는 왼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석골사 4.0km, ↑상운암 0.5km, 억산 3.5km, 딱밭재 1.6km, ↓운문산 0.5km

0 億山(944m)

가파른 오르막길과 치솟은 바위봉우리, 군데군데 암반과 절벽이 절경

천년에서 1년이 모자라 용이 못 된 이무기가 밀양 쪽으로 도망가면서

꼬리로 봉우리를 치고 도망가 산봉우리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주변에 이 전설과 관련된 기암괴석들이 있다.

상운암

석골사 부속 암자로서 함화암이라고도 불렸다

예로부터 천진보탑으로 그 터가 명당이라 기도의 효험이 높은 곳이다.

입구에 있는 약수터는 물이 차고 물맛 또한 일품이다.

스레트 지붕으로 된 자그마한 건물에 상운암 관음전 현판이 걸려있다.

625전쟁 직후 빨치산 소탕작전의 일환으로 모든 당우가 소실되어

1960년에 지금의 요사채를 지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다.

/↓운문산 1.5km, ↓상운암 0.8km, ↑석골사 2.8km

너덜지대

온통 바위길의 연속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넘어진다.

도중에 계곡을 따라 있는 돌탑군을 지난다

천상폭포

보통의 폭포는 한 곳으로 흘러내리는데

여긴 사방으로 퍼져 흘러내린다.

바위길로 이어지는 내리막에서 발바닥까지 통증이 오는

험하고 힘든 길...말그대로 석골, 돌 골짜기다

정구지바위

지루한 내리막 길을 내려가니 이정표가 나오고.

그 옆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바위 밑에 누군가가 '정구지바위'라고 써놓은 것이 눈에 띈다.

정구지란 경상도 사투리로 부추라는 뜻이다

마고 할머니가 정구지를 이고 가다가 조금 흘려 두고 가서

아직도 정구지가 있다고 하뎐가 .....

여기서 얼음굴을 거쳐 운문산 남능으로 오를 수 있고,

상운암을 거쳐 운문지맥을 따라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운문산 2.5km, ↓상운암 1.8km, ↑석골사 1.8km

이후 계속이어지는 너덜길..

석골사가 1.4km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지난 후부터

등로가 다소 편안해진다.

범봉갈림길

팔풍재는 범봉과 억산 사이의 안부 고개이며

청도군 금천면 대비사로 넘어간다.

/석골사 1.2km, 범봉 1.36km

치마바위

다소 위험한 좁은 절벽길을 지나며

왼편 계곡 건너로 범상치 않은 암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하니 치마바위인 듯 싶다.

억산갈림길

억산을 능선길로 오르는 갈림길이며 안내판도 있다

나무게시판을 지나니..막바로 석골사 후문이 나온다.

/↘억산 2.6km, ↘팔풍재 2.1km, ↓운문산 3.8km

석골사

후문 안에 들어서니 자그마한 마당을 앞에 두고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극락전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뒷편으로 칠성각이 보인다.

한때 석굴사 또는 노전사라고도 불렀다.

옛이름 석굴사(石堀寺)가 언제부턴가 석골사로 와전되어 불리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560년 비허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773년에 법조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어,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1753년(영조 11) 함화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석골사에는 주지와 상좌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주지와 상좌가 이 절에 머물렀는데, 상좌의 인품과 학덕이 주지보다 높았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주지는 지팡이로 마법을 걸어서 상좌를 강철이로 변하게 하였다.

강철이란 독룡(毒龍)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초목이 말라죽는다는 괴물이다.

강철이로 변한 상좌는 억울함을 참으면서 열심히 불도를 닦았다.

1년 뒤 강철이는 옥황상제에게 하늘로 오르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화를 내고 몸부림을 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박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인근의 농작물이 죽었고, 이후 매년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강철이가 몸부림을 쳐서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석골폭포

경내를 빠져나와 내려가다 계곡쪽에 제법 힘찬 물소리가 들린다.

절 바로 아래에는 정상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폭포를 이루어,

절 이름을 따서 석골폭포라 부른다.

10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고 장쾌한데,

칼로 벤 듯 깎아지른 벼랑이 아니라 층층대처럼 턱이 진 암벽이어서

통통거리며 돌아내리는 폭포수가 맵시 있다.

석골사가 자리한 일출봉은 함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찬 기류 때문에 꽃을 품기만 하고 피우지 못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우측 축대 위로 부도가 보인다.

창의유적기념비

길가에서 커다란 기념비를 만난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몇몇 의사들이 모여 창의를 하였다고 한다.

창의(倡義)란 '국란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킴'이란 뜻이다.

석골교

석골마을을 벗어나 동천교 그리고 석골교를 건너니

버스가 그곳에 주차해 있다.

밤새도록 달려 선잠속에 아침을 먹고 힘들게 종주한 가지산, 운문산

능선과 계곡이 깊고 넓게 어우러져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험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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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대둔산(878m)

0 위치 : 전북 완주군, 충남 금산군, 논산시

0 코스 : 케이블카~금강구름다리~마천대~낙조산장~허둔절터~수락폭포~승전탑~수락주차장

0 일자 : 2010. 4. 11(일)

0 시간 : 5시간 /맑음


<산행시간>

06:00 태백가든

09:40 주차장

09:50 매표소

10:15 케이블카

10:20 신선암

10:25 금강구름다리

10:40 약수정 /마천대400m,케이블카300m, 삼선계단30m

10:45 삼선계단

11:00 매점사거리 /용문골삼거리450m,금강구름다리,케이블카500m, 마천대150m,낙조대,태고사

11:15 마천대 /용문골삼거리600m,금강구름다리,케이블카650m, 옥계천5.5km,안심사3.4km

매표소1.7km,낙조대1.05km,수락주차장3.28km

11:50 중식, 12:25 출발

12:40 매점사거리

12:50 낙조산장 /마천대0.7km,수락주차장3.3km,낙조대0.24km,태고사0.91km

13:10 허둔장군절터 /낙조대0.36km,수락주차장3.34km

13:40 화랑폭포 /마천대1.2km,낙조대1.3km,수락주차장2.4km

13:50 수락폭포 /마천대1.47km, 수락주차장1.94km

14:00 석천암갈림길 /석천암0.5km,수락폭포0.42km,정류장1.48km

14:05 선녀폭포

14:10 경찰승전탑

14:30 승전교 /마천대3.1km,주차장0.3km,월성봉2.6km

14:35 수락주차장

금남정맥 줄기가 만경평야를 굽어보면서 솟구쳐 절경을 이룬 곳이다.

대둔산의 옛 이름은 한듬산이다.'한'은 큰대(大)이며 듬은 두메,

더미 덩이의 뜻을 일러 큰두메산, 큰덩이의 산이란 뜻이다.

소리(音) 둔(芚)은 싹날 둔, 진칠 둔이나 언제부터 이렇게 불렸는지는 모른다.

<신중동국여지승람>에 300년전 세워진 안심사적비가 "대둔산 안심사비(大芚山安心寺碑)란

기록과 대둔산 고산현 북 45리(大芚山 高山縣 45里) 등에서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그러나 별곡 가야곡 사람들은, 그쪽에서 보는 한듬산의 모습이 계룡산과 비슷한 신태극,

수태극의 대명당 자리를 먼저 계룡산에 빼앗긴 것이 '한'이 되어 '한이 든 산'이라 해,

그리 불려오면서 '한듬산'이 되었다고도 전해 오고 있다.

우뚝 솟은 봉우리마다 독특한 형상이 담긴 대둔산은

잘 다듬어진 조각품에 분재의 군락을 보는 것 같은 수석의 보고이다.

올려보든 내려보든 시선이 멈추는 곳은 모두가 아름답고

좌우로 보면 볼수록 신비하고 웅장해서 입을 벌린 채

산수화 병풍 속에 온 마음을 정좌하게 되는 곳이 대둔산이다.

흙보다는 돌멩이가 많은 산, 돌고 돌더라도 오르락내리락 하기보다는

가파른 비탈길이 심한 곳이다. 이래서 대둔산을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격찬한다.

대둔산은 역사의 고장이다.

땅이름에 얽힌 이야기와 전해오는 큰절의 전설을 읽으면 옛날을 추억하게 된다.

대둔산 전설 속에 고려말 나라를 잃은 고려 유신이 딸 셋을 데리고 산에 숨었다한다.

나라 잃은 슬픔, 딸들의 눈물이 어려 약수정의 샘물이 되었고

세 딸은 바위로 변하여 신선암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선인의 글 속에도 대둔산 높은 봉우리를 우러러 보는 글귀가 남아있다.

"나라를 평안케 하는 이름난 높은 봉우리 푸른하늘에

금부용을 깎아 새운 듯 하도다"(鎭國名出 萬丈峰靑天出 金芙容).

대둔산 자락 자락에는 피맺힌 한이 서려있다.

삼국시대부터 이곳은 크고 작은 전쟁터였다.

나당 연합군은 황산벌 전투에서 피를 흘렸다.

대둔산에는 영주사, 태고사, 안심사 등 큰 절이 3개 있다.

태고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절터를 발견하고 원효대사는 3일간 춤을 추었다.

낙조대로 유명한 거대한 바위봉 우리, 아래에 위치.

절 앞 바위들을 둘러싼 바위벽-천연의 거대한 석문을 형성하고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공부하던 절이고 석문(石門)이란 글자를 남겼다.

만해 한용운 대사는 "태고사 자리를 보지 않고서 천하의 승지를 말하지 말라"했다.

<산행기>

집단시설지역

새벽을 달려온 버스가 주차장에 내려 놓는다

허리병이 도지는 바람에 오늘 산행은 무리다

상가를 지나 매표소를 오르기 전

호텔 뒤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시멘트 길을 따라 3백m쯤 오르면 입장료를 받는 매표소가 있고

조금만 가물어도 물기가 말라버리는 금강계곡을 끼고

8백m 지점에 다다르면 금강문이 나온다.

케이블카휴게소

집단시설지역에서 오르는 케이블카 종점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시선이 멈추는 곳마다 산수화

어느 봉우리든 전후좌우의 모습이 밉거나 보기 싫은 곳이 없다.

임진왜란때 권율 장군의 전투지휘로 대승을 거두었다는 장군봉은

이름 그대로, 모습이 갑옷을 걸친 장군을 닮아 있다.

금강구름다리

계단길을 오르다 하늘을 바라보면 구름다리가 보인다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잇는 흔들거리는 구름다리에서

조심스레 발을 옮기지만 줄줄이 이어지는 행렬에 밀려서 건넌다

약수정휴게소

다리를 건너 조금 오르면 산비탈에 약수정휴게소가 나온다.

약차를 비롯해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간이매점이다.

삼선구름다리

휴게소 바로 위 팔각정에서 왼쪽으로 가면 삼선구름다리다.

급경사의 철다리로 아찔한 고도감을 느낄 수 있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아예 등산로를 이용하면 된다.

정각을 지나 해발670m의 삼선대

상하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갖가지 형상을 자랑하는 바위들이

저마다의 수려한 나무를 액세서리로 장식한 채 보는 이의 마음에 감탄을 안겨준다.

고려말 한 재상이 딸셋을 거느리고 나라가 망함을 한탄하여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던 중 재상의 딸들이 선인으로 돌변하여 바위가 되었는데

그 바위형태가 삼선인이 능선아래를 지켜보는 모습과 같아 삼선바위라 이름하였다

삼선대에서 바라본 금강문 중간지점의 동심바위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인간상을 표출하면서

큰바위 위에 또 큰바위가 곧 떨어질 듯 어우러 있다.

돌계단

바윗돌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1백m의 계단은

연간 평균 60만명이 오르내린 까닭으로

손 닿는 곳마다 번질번질 윤이 날 정도이다.

매점사거리

숨이 턱에 닿은 후에야 능선에 올라섰다

안내판이 선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정상 개척탑이 보인다.

마천대(878m)

대둔산의 정상, 마천대라 이름 붙인 바위다.

북쪽으로 서해에 빠지는 태양을 볼 수 있다는 낙조대와 태고사가 있으며

서쪽으로 기암괴석의 능선이 줄줄이 서있는 옥계동 계곡으로 이어진다.

남쪽의 석두골계곡은 대둔산에서는 유일하게 가뭄을 모르는 지역으로

형제바위 등 명승경관이 많은 곳이다.

동쪽으로 1Km쯤 가면 당나라때 선도대사가 도를 닦고 있을 때,

용이 문을 열고 등천 했다는 용문굴이 나온다.

용문굴 남쪽의 기묘한 모습을 한 일곱 봉우리를 칠성봉이라한다.

일곱 폭의 동양화 병풍을 자유롭게 펼쳐놓은 것 같은 칠성봉은

용문굴에서 용이 등천하기 직전 7개의 별이 떨어져 생겨난 산이라 한다.

/중식, 12:25 출발

낙조산장 /논산수락리 마애불

낙조대로 가는 도중에 산장이 있는데 산장뒤로 돌아가면

전체 높이 270㎝이며, 화강암으로 조성된 마애석불이 있다.

왼손을 오른쪽 가슴에 얹고 오른손은 아래로 내렸으며 법의는 우견편단의 형태이고

법의의 주름이 발목까지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하단은 마멸이 심하다.

토속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불상이다. 조성연대도 확인되지 않았다.

/마천대0.7km,수락주차장3.3km,낙조대0.24km,태고사0.91km

허둔장군절터

제법 넓은 터에 축대를 쌓아놓은 규모로 짐작해

산죽과 잡목이 무성하고 기와 조각들이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전쟁으로 불타버리기 전에는 큰 암자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이 절터 뒤편에는 바위굴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있다

/낙조대0.36km,수락주차장3.34km

너덜길

좁은 계곡 양쪽으로 수직 암벽이 솟아 있다.

군지폭포가 나타나고 계곡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연이어 금강폭포와 비선폭포가 있다.

화랑폭포

석천암계곡물이 군지골로 떨어지는 4미터쯤의 화랑폭포가 나온다.

철계단이 놓인 화랑폭포는 규모도 작고 볼품이 없다.

/마천대1.2km,낙조대1.3km,수락주차장2.4km

수락폭포

폭포 위 암릉으로 오르는 철계단이 보이는

일명 303계단길을 만난다.

군지골계곡이 6.25때 경찰과 군인들이 대둔산 빨치산들에 의해 많이 죽었다고 해서

원래는 '군지옥골계곡'이라고 불렀다. 낙석 위험으로 차단

/마천대1.47km, 수락주차장1.94km

고깔바위

암봉 꼭대기에 고깔모자 형태의 바위가 달랑 얹혀 있어서

고깔바위라고 붙여진 거대한 삼각바위가 있다

계곡을 내려올 때보다는 올라갈 때 고깔바위의 제모습을 볼 수 있다.

석천암 갈림길

6·25때 불타버렸으며 새로 지은지 십여년 남짓 된다.

암자 뒤쪽으로 높이 솟아 있는 절벽 틈에서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고 하여 석천암이다.

산신각과 요사채가 벼랑 중턱에 위치해 있어서 전망은 좋은 편이다.

/석천암0.5km,수락폭포0.42km,정류장1.48km

선녀폭포

길 왼쪽의 계곡에 높이 칠팔미터의 물매진 선녀폭포가 있다.

왼측으로 나무데크를 따르면 이내 아담한 선녀폭포 아래에 도착.

이 데크는 좌측으로 주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선녀폭포는 계곡 하류에 있어서 대둔산의 폭포들 가운데

가장 수량도 풍부하고 폭도 넓어서 시원스럽게 보인다.

대둔산 경찰 승전탑

공비토벌 작전에 산화한 경찰 승전탑은 수락계곡 초입에 있다.

자연생태 연구소까지 도로는 보도블록으로 단장되어 있으며

도로 왼측으로 맨발 지압보도를 만들어 놓았다

승전교

도립공원 자연생태 연구소

승전교 우측 등산안내도와 월성봉(흔들바위)등산로 이정표가 있다.

/마천대3.1km,주차장0.3km, 월성봉2.6km

수락주차장

입장료는 받지않고 있으며,

주차요금 승용차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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