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사평역 '발암 지하수', 어디로 흘러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기후의 시간] 용산·후쿠시마·고덕 통해 본 한·일 정부가 오염을 다루는 방식

 

/최경숙

▲지난 8월 9일 용산공원 일대 전경. ⓒ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2026년 10월 한 달 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다른 듯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서울 용산공원 담장 밖 지하수에서 1급 발암물질 벤젠이 생활용수 기준치의 251배 검출된 사실이

지난 19일 국정감사를 통해 알려졌다.

공원 안에 수만 가구의 집을 짓겠다는 정부는 공원 내부의 오염 자료를 국회에 내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생긴 고농도 방사능 오염토양(아래 제염토)을 센다이와 사

이타마의 정부 청사 화단에 묻었다. 주민 설명회는 없었고, 총리는 전 각료에게 재활용 확대를 지시했다.

평택 고덕산업단지 종단 방류구에서는 과불화화합물(PFAS) 17종이 나왔다.

과불화화합물(Per- and polyfluoroalkyl substances)은 수천 종에 이르는

인공 합성 유기화학물질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탄소(C)와 불소(F)가 매우 강하게 결합한 구조여서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분해되지 않고

환경과 인체에 영구적으로 쌓인다.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 물질을 배출한 기업은 국제적으로 규제되는 3종을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검출량의 88%는 그 3종이 아닌 다른 물질이었다.

세 사건은 발생 장소도, 원인도, 오염물질도 달랐지만 오염을 다루는 방식은 똑같았다.

정보를 쥔 쪽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측정하고 싶은 것만 측정하고,

나머지는 흙으로 덮거나 영업비밀로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집을 짓고, 길을 내고, 공장을 돌린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용산공원 문제에서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자료의 공백이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이 올해 국정감사를 준비하며

국토부·국방부·기후에너지환경부에 공원 내부 오염 자료를 요구했지만 세 부처 모두 내지 않았다.

유일하게 제출된 것은 국토부의 어린이정원 측정 결과서였고, 내용은 '측정 대상 물질 모두 기준치 이내'였다.

전체 300만㎡ 가운데 30만㎡, 10분의 1이다. 가장 먼저 개방돼 가장 먼저 정비된 구역의 결과로

나머지 90%를 대신 말하게 한 것이다.

담장 밖 수치는 서울시가 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용산미군기지 주변

유해물질(유류오염 지하수)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녹사평역 일대 8개 지점에서 검출된

벤젠이 기준치를 넘었고, 최고 농도 3.77㎎/L는 기준치(0.015㎎/L)의 251배였다.

2020년에는 1423배까지 올라갔다. 서울시가 2001년부터 25년 동안

약 117억 원을 들여 정화해 온 결과가 이렇다.

담장 안쪽은 더 심할 것이라는 의원실 추정에 정부는 반박 자료조차 내지 않았다.

지난 15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한강유역환경청장은 상시측정 권한이

자신에게 있는지조차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답했다.

권한 있는 기관은 측정하지 않고, 자료 가진 부처는 제출하지 않는다.

그 사이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신속한 공급'을 말했다.

일본 정부의 방식은 더 교묘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흙과 폐기물을 긁어모은 것이 제염토다. 태울 수 있는 것은 태우고

남은 제염토를 후쿠시마현 임시 저장소에 쌓았는데,그 양이 도쿄돔 11개 분량이다.

 

일본 정부는 이 양을 줄이기 위해 8000Bq/kg 이하는 도로·항만 같은 공공 건설에 쓰고,

5000Bq/kg 이하는 농지에 섞어 재활용하기로 했다. 그러고도 남는

8000Bq/kg 초과 고농도 제염토가 약 230만㎥로 추산된다(일본 국립환경연구소, 2025년 2월).


일본 환경성은 제염토 재활용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워킹그룹을 비공개로 운영했다. <마이니치신문>이 입수한 회의 자료에는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 담당자가 5000Bq/kg 토양이 100Bq/kg으로 떨어지는 데 170년이 걸리는데 도로 지반의 내구연한은 70년이라고 설명한 대목이 있다. 이 발언은 공개 보고서에서 빠졌고, 170년은 토론 없이 지나갔다.

올해 8월 센다이와 사이타마 청사 화단 반입도 주민 설명회 없이 진행됐다.

복토 20cm, 면적 7m×7m인 총리관저 화단의 '공사 전후 선량 거의 동일'이라는 결과가

500m×500m, 높이 4.5m 성토의 안전 근거로 쓰인다.

 

작은 실험을 큰 사업의 증거로 바꿔 치는 것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방식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는 다르지 않다.

경기환경운동연합·서평택환경위원회·평택환경행동·환경운동연합이

지난 19일 발표한 고덕산단 과불화화합물 검출은 제도의 공백을 파고든 기업과

그 공백을 메우지 않은 정부의 합작품이다.

 

국내 먹는물 수질감시항목은 PFOA·PFOS·PFHxS 3종이고, 산업폐수에는

PFAS 배출허용기준 자체가 없다. 그래서 기업은 '그 3종을 원·부자재로 쓰지 않는다'고 답할 수 있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시료에서 PFOS는 불검출, PFHxS는 1.13ng/L였다.

그러나 PFBA 4240, PFPeA 1830, PFHxA 1200, PFHpA 695ng/L,

이 네 물질이 전체의 88.4%였다.

 

GenX(HFPO-DA) 같은 대체물질도 함께 나왔다. 측정 항목을 3종으로 좁혀 놓으면

나머지는 측정되지 않았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공식 통계에 없는 오염은 행정적으로 없는 오염이다.

덮는 명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세 사건에는 각각 덮는 명분이 있다. 용산은 주택 공급, 후쿠시마는 부흥,

고덕은 반도체다. 모두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오염을 확인하고 정화한 뒤가 아니라

확인하지 않은 채 덮고 추진하는 순간, 명분은 핑계가 된다.

용산의 '신속'은 정부 자료가 스스로 부정한다.

평택 미군기지 주변 정화는 2018년 기초조사부터 2024년 1월 완료까지 6년이 걸렸다.

2020년 반환된 캠프킴은 부지의 97%가 주거용지 기준을 초과했고,

도중에 문화재가 나와 1년을 멈췄으며, 306억 원이 들어갔다.

 

2008년 이후 반환 미군기지 42곳 정화에 국방부가 쓴 돈은 5762억 원, 전부 한국 재정이다.

SOFA 4조는 미군에 원상회복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그러니 '신속 공급'은 '정화를 줄이겠다'는 말과 같다.

오염된 땅 위에 청년 주택을 짓는 계획에서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위험을 떠안는지는 분명하다.

후쿠시마의 논리는 복토다. 8000Bq/kg 이하 흙 위에 흙을 50cm 덮으면

피폭이 연 0.002mSv로 떨어진다는 계산이다. 복토가 영원히 온전하다는 전제 위의 숫자인데,

신주쿠교엔은 2024년 8월 폭우로 침수됐다.

더구나 8000Bq/kg은 건강 영향에서 나온 숫자가 아니다. 환경성 스스로 설명했듯

폐기물 '처리' 기준이며, 원자로등규제법상 '재이용' 기준 100Bq/kg의 80배다.

처리 기준을 재이용 기준으로 바꿔 부른 것이다.

세슘-137의 반감기는 약 30년, 덮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몇 세대에 걸쳐 가려질 뿐이다.

환경성이 서두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1400만㎥를 2045년까지 후쿠시마 밖에서 처분하려면

양을 줄여야 하고, 양을 줄이려면 재활용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흩뿌려야 한다.

피폭을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처분장을 줄이는 정책이다.

고덕의 변명은 영업비밀이다. 삼성전자가 어떤 물질로 반도체를 만드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기업은 저감 기술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고 했다. 저감할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무엇을 얼마나 쓰고 내보내는지는 말하지 않고, 정부도 배출기준을 만들지 않았다.

기준이 없으니 위반이 없고, 위반이 없으니 문제도 없다. 기준의 부재가 산업의 방패가 되는 구조다.

세 논리의 뿌리는 같다. 오염을 확인하는 비용은 지금 눈에 보이고 특정 주체가 낸다.

덮는 비용과 피해의 책임은 나중에 흩어져 불특정 다수가 감당한다.

정부와 기업이 후자를 택하는 것은 돈의 문제다. 그 계산에서 빠진 항목이 사람의 몸이다.

피해는 늦게 온다

▲지난 2022년 6월 10일 미군에게 반환 받은 용산공원이 열흘 동안 시범 개방되자

찾아온 아이들이 공원을 걷고 있다. ⓒ 유성호관련사진보기


"지금까지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호소노 일본 부흥상이 지난 2일 제염토 재활용을 두고

한 말이다. 환경오염의 역사에서 가장 자주 반복됐고 가장 자주 틀린 문장이다.

 

오염물질이 몸에 들어가는 시점과 병이 드러나는 시점 사이에는 긴 시간이 있다.

그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은 참이지만 아무 뜻도 없다.

미나마타가 그랬다. 짓소(Chisso, 窒素) 공장이 메틸수은을 흘려보낸 것은 1930년대,

환자 공식 확인은 1956년, 정부 인정은 1968년이다. 3

0년 넘게 회사와 정부는 '인과관계 미입증'으로 시간을 벌었고, 그 시간은 피해자의 시간이었다.

석면이 그랬다. 중피종 잠복기는 20~40년이라, 공장이 닫히고 기록이 사라진 뒤에야 피해가 드러난다.

가습기살균제가 그랬다. 1994년 첫 판매, 2011년 확인. 17년 동안 제품은

'안전'했다. 아무도 측정하지 않았고, 측정하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없었다.

과불화화합물(PFAS)는 위 패턴의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파커스버그의 듀폰 공장은 1950년대부터 과불화옥탄산(PFOA)을 썼다.

주민 약 7만 명의 자료를 분석한 C8 과학패널이 신장암·고환암·갑상선질환과의

개연적 연관을 결론 내린 것은 2012년 전후, 국제암연구소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한 것은 2023년이다.

 

70년 전 강으로 흘러간 물질이 지금에야 이름을 얻었다.

고덕에서 나온 단쇄 PFAS와 대체물질은 그 이름조차 아직 없다.

독성 자료가 없는 것은 안전해서가 아니라 연구가 따라가지 못해서다.

벤젠도 방사선도 다르지 않다. 벤젠 백혈병은 노출 후 수년에서 십수 년 뒤에, 체르노빌 소아 갑상선암은 사고 4~5년 뒤부터 나타났다. 후쿠시마 소아갑상선암은 현재형이다. 녹사평역 지하수가 어디로 흘러 누구의 몸에 닿았는지는 아무도 추적하지 않았다. 추적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는 없다.

그래서 '지금 괜찮다'는 말은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말이다.

그 시간의 비용은 언제나 가장 약한 쪽이 치른다.

공장 노동자, 오염된 땅에 들어가는 청년 세입자, 하천 하류의 농민, 화단 옆을 지나는 아이들.

지금 측정하고, 지금 공개하고, 지금 정화해야

▲녹색연합과 온전한 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회원들이 지난 2022년 6월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 앞에서 윤석열 정부의 오염 정화 과정 없는 용산공원 개방을 규탄하고 있다. ⓒ


피해가 늦게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선순위는 저절로 정해진다.

지금 측정하고, 지금 공개하고, 지금 정화하는 것이다.

 

집을 짓고 흙을 덮고 공장을 돌리는 일은 그다음이다. 순서를 바꾼다고 정화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병원비와 소송비와 보상금으로 이름만 바꿔 수십 년 뒤에 돌아온다.

측정이 개발보다 앞선다. 용산공원은 전체 부지의 토양·지하수 전수조사 결과가

공개되기 전까지 주택 공급 논의를 멈춰야 한다.

 

고덕산단은 유입수와 방류수를 반복 측정하고 방류구 상·하류 수계까지 조사해야 한다.

한 번의 시료로 위반을 단정할 수 없다면, 한 번의 '3종 미사용' 해명으로 안전을 단정할 수도 없다.

공개가 명분보다 앞선다. 부처가 가진 오염 자료는 국회가 요구하면 내야 한다.

기업이 공정에서 쓰는 물질은 영업비밀이기 전에 공공의 알 권리다.

정보를 통제해서 얻는 '사회적 수용성'은 수용이 아니라 침묵이다.

정화가 재활용보다 앞선다. 덮는 것은 정화가 아니다.

복토 50cm 아래의 세슘은 100년 뒤에도 거기 있고,

용산의 벤젠은 25년을 걷어내도 거기 있다.

정화에 6~7년이 걸린다면 그 시간을 쓰는 것이 순서이지,

시간을 줄이려 정화를 줄이는 것은 순서가 아니다.

입증 책임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미나마타에서 파커스버그까지,

피해자의 입증에는 언제나 수십 년이 걸렸다. 오염된 땅을 개발하려는 쪽이 안전을 입증해야 한다.

자료가 없으면 '안전'이 아니라 '미확인'이고, 미확인은 추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기준이 없는 물질을 없는 물질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캐나다는 먹는물에서 PFAS 25종 합산 30ng/L를, EU는 합계 0.10μg/L를 적용한다.

 

하나씩 따지는 동안 나머지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반도체 메가 산단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공장을 짓기 전에 어떤 PFAS를 쓰고 처리시설이 얼마나 걸러내는지 먼저 검증해야 한다.

용산공원 담장 안의 흙, 후쿠시마 화단 아래의 흙, 서정천으로 흘러가는 물.

셋 다 지금 당장은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동안 결정은 내려지고,

공사는 시작되고, 책임자는 자리를 옮긴다.

피해가 드러날 때쯤이면 '그때는 몰랐다'는 말이 준비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안다. 측정하지 않은 것,

공개하지 않은 것, 정화 대신 덮은 것은 모두 선택이다.

 

그 값을 치를 사람은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몸이 먼저고, 땅과 물이 그 다음이고,

집과 공장은 그 위에 선다. 이 순서를 어겨서 번 시간에 이자가 붙지 않은 적이 있었는가.

경주는 이미 불바다”…

전국 소나무 불치병, 북한산도 뚫렸다

 

/중앙일보

 

경주는 이미 불바다에요. 불바다. 지난 7일 경북 경주시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

정규원 산림기술사가 죽어가는 소나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남산은 아직 단풍철이 시작도 안했는데도 정상부까지 빛바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소나무를 말라죽이는 ‘소나무재선충병(이하 재선충병)’이 창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감염 속도가 늦춰져야 문화유적의 소나무라도 살릴 수가 있는데

태풍처럼 덮치니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이라며

“이대로가면 보전가치가 높은 경주 소나무가 멸종할 수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재선충병이 영남 지역을 넘어 전국의 국립공원까지 집어삼켰다.

1㎜에 불과한 소나무재선충에 수백년 된 소나무까지 힘없이 말라죽고 있다.

 

13일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전국 23개 국립공원 중 11개 국립공원에서

재선충병 감염 및 감염 의심 고사목이 발생했다.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 충청권의 속리산·월악산은 물론

서울 북한산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고 퍼지는 추세다.

붉게 물든 경주…1㎜ 재선충에 400년 소나무 고사 이중 경주국립공원의 재선충병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

 

올 상반기에만 재선충병 감염으로 1만5000그루 이상을 베어냈지만 확산세를 잡지 못했다.

경주국립공원 삼릉숲에 소나무재선충 감염에 의한 고사 현상이 의심되는 소나무가 서있다.

천권필 기자 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주 남산도 ‘

소나무 팬데믹(대유행)’을 피해가지 못했다.

 

배병우 사진작가의 소나무 사진작품으로 유명한 삼릉숲에도 여기저기 고사한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재선충병 방제 전문가인 정 기술사는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는 눈이 없어서

소나무가 죽어가는 냄새를 맡고 날아간다”며

 

“남산은 암반 지역이라 밀봉해서 훈증하기가 어렵다 보니 그물망 방제 과정에서 나오는

죽음의 냄새들이 남산으로 더 많은 솔수염하늘소를 불러들이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국립공원 중흥사 주지인 예진스님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돼 고사한

소나무들을 가리키고 있다. 천권필 기자

 

남산 초입에 세워진 중흥사의 400년 된 소나무들 역시 고사된 채로 베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흥사 주지인 예진스님은 “소나무를 살려달라고 아우성도 치고 찾아가기도 했지만

결국 살리지 못했다”며 “소나무를 보고 이 절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는데 어떻게 베어내야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불국사와 왕릉 등 주요 문화유적 주변의 소나무숲으로도 피해가 번지고 있다.

김유신장군묘를 둘러싼 소나무숲은 지난 8월만 해도 온통 푸르렀지만,

불과 두달 만에 산불이 휩쓸고 간 것처럼 붉게 타있었다.

소나무재선충병이 경주국립공원 구역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

8월 12일(위)과 지난 7일 김유신장군묘 주변 소나무숲을 비교해보니 두 달도 안 된 사이 재선충병에 걸려

숲이 붉게 물들었다. 경주시청·경주국립공원사무소

 

기후변화에 방제 딜레마…수도권까지 북상 

소나무재선충이 소나무를 죽이는 과정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산림청]

 

재선충병은 ‘소나무 불치병’으로도 불린다. 한번 감염되면 치사율이 100%다.

크기 약 1㎜의 재선충은 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을 통해 소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는데, 수

분·영양이 지나는 관을 막아 나무를 말라죽인다.

 

방역당국은 가뭄과 고온 현상으로 매개충의 활동 시기·범위가 넓어진 데다가

방제 수단의 한계가 겹치면서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정규 경주시 산림방재팀장은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재선충병이 계속 번지고 있다”며

“경주는 국립공원뿐 아니라 문화재보호구역도 많다 보니 방제하는 데 제약이 많아

막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여기에 산림청이 꿀벌 피해 등 생태계 영향을 고려해

2023년부터 항공방제를 전면 중단하면서 확산 저지선이 약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28일 경북 경주시 남산에 소나무재선충병이 퍼지면서 소나무가 붉게 변했다. 연합뉴스

 

그사이 재선충병은 수도권 등 전국으로 퍼졌다. 2022년만 해도 재선충병 감염이 확인된

국립공원은 4곳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두 배인 8곳으로 늘었다.

 

올해는 지리산과 북한산, 속리산 등 3곳이 더 뚫렸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재선충병 감염이 확인된 건 2008년 이후 18년 만이다.

 

수도권에서 유일한 국립공원인 북한산 역시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재선충병에 걸린 고사목이 발견됐다.

올해 경기도 내 재선충 감염목이 12만 본으로 지난해보다 70% 가까이 급증하는 등

재선충병이 북상한 탓이다. 재선충병 박멸 불가능…선택과 집중 필요”

지난달 28일 경북 경주시 외동읍 영지 인근 숲.

지난해 감염된 소나무는 잎이 떨어져 잿빛이 됐으며, 올해 감염된 소나무는 솔잎이 붉게 변했다.

녹색은 활엽수다. 연합뉴스

 

재선충병 확산세가 이어질 경우 국내 산림 생태계 지형 자체가 빠르게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산불은 지나가면 끝이지만 재선충병은

소나무가 남아있을 때까지 계속 번져가기 때문에 솔숲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며

 

“재선충병으로 국립공원내 숲이 어떻게 바뀔 지에 대한 기후에너지환경부 차원의

모니터링이나 연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에 재선충병까지 맞물리면서 소나무 멸종이 가속화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오충현 동국대 융합환경과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산림의 20%를 차지하는 소나무림이

10% 수준까지 감소할 수 있다“며

 

“재선충을 박멸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기 때문에

소나무를 보전해야 할 지역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기술로 소나무 살린 중국... 실패의 길로 가는 산림청

 

[최병성 리포트]

중국에서 효과 입증한 성창근 교수의 '천적 곰팡이'... 산림청은 뭐하고 있나

▲소나무 숲이 시뻘겋게 전멸 중이다. 국가 재난 상태다.최병성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소나무가 전멸 중이다.

그동안 재선충병이 심각했던 경주, 포항, 밀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강원도 춘천과 원주, 경기도 가평과 양평, 충남 태안과 서천 그리고 전남 순천 등

재선충병으로 전국의 소나무가 고사 중이다.

덕분에 벌목업자들과 조림업자 등 산림사업자들의 돈벌이 사업이 가득이다.

▲재선충으로 숲이 죽어갈수록 벌목과 조림 등 산림 사업자들의 수익은 증가한다.최병성


재선충병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중국

중국도 한국처럼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그러나 중국은 최근 친환경 방제 약품 개발에 성공했다.

 

중국 정부 산하 산림·임업 최고 행정기관인 중국 국가임업초원국이 운영하는

정부 포털(forestry.gov.cn) 2026년 1월 14일 자에

<중국, 소나무재선충병의 효과적인 예방 및 방제 성과 달성>이란 제목의 기사가 올라와 있다.

▲재선충 방제 친환경 약제 개발에 성공했다는 중국 임업국의 발표 내용.

중국 임업국은 수년 동안 관련 내용을 계속 공개해왔다.중국 임업국


중국은 그동안 화학 농약에서 친환경적인 방제로의 전환을 통해

총 감염 면적과 고사목 수 등 괄목할 만한 감소를 이뤄내며 소나무재선충병의 예방 및 방제 성과를 거두었다.

원을 퍼붓고도 재선충이 날로 더 증가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특히 재선충이 넓게 확산된 지역에서는 소나무 하나하나 주입하는 수간주사를 쓰는 것을 넘어서서,

드론 살포용 연방(联邦)121 라는 친환경 약제를 개발해서 사용한다.

 

중국 당국은 연방(联邦)121이 무공해와 긴 약효 지속 시간을 특징으로 하는 친환경 예방 약제라고 강조한다.

이 기술은 후난성과 산둥성 국립 자연보호구역 약 5만 무(3333ha) 규모의 실험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중국 저장성(浙江省) 쑹양현 공영 방송·미디어 포털은 연방 121의 드론 방제와 효과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중국 쑹양현 공영방송


중국 임학회 홈페이지 2026년 3월 19일 자에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용 연방(联邦)121 제제의

품질 관리 및 현장 적용 기술 규정' 제정 공고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게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 친환경 약제 고시문 전체를 누구나 다운받아 볼 수 있게 첨부파일로 공개했다.

▲중국임학회가 공개한 재선충 친환경방제 약품 고시문중국임학회


국가 '단체표준 관리 규정' 및 '중국임학회 단체표준 관리 조치(시행)'에 의거하여,

과제 착수, 의견 수렴, 전문가 심의 및 공고 절차를 거쳐 중국임업과학연구원 산림생태환경보호연구소가

주도하여 작성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용 "联邦121" 제제의 품질 관리 및 현장 적용 기술 규정'이

중국임학회 단체표준으로 승인되었습니다. 본 표준은 공고일로부터 시행됩니다. 이에 공고합니다.


대한민국 산림청은 지금도 소나무재선충병은 치사율 100%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중국은 어떻게 예방뿐만 아니라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까지 치료되는

친환경 예방제를 개발할 수 있었을까?

중국 광동성 임업국이 낸 <살(杀) 소나무 재선충 생물제제 G810 수간주사로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라는 보고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보고서는 2019년 1월 9일, 중국 광동성 하원시 임업국과

한국 충남대학교 & ㈜대덕바이오와 중국 화난농업대학 임목 건강진단 및

보호기술연구소가 재선충 친환경 예방제인 G810으로 실험한 결과다.



▲기후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천적곰팡이 실험 결과 이미 감염된

소나무도 회복되는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국립공원공단


2025년 말 나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을 만나서, 현재 심각한 전국의 재선충 현황을 설명하고,

기후부가 주도적으로 재선충 실험에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김성환 장관이 국립공원공단과 산림청의 공동실험을 지시했다.

그리고 기후부와 산림청 간의 수차례 회의 끝에 지난 5월 경남 진주와 전남 곡성 두 곳에서

친환경 예방제의 검증 사업이 진행되었다.

3만 마리라더니 8만 마리 주입? 산림청은 해명하라

▲곡성과 진주에서 소나무에 재선충을 주입해서 실험하고 있다.최병성
박은식 산림청장을 만나 대한민국 소나무를 살릴 길을 찾기 위해 기후부와의

공동 실험을 제대로 하자고 당부했다.

박 청장은 내게 산림청은 기후부가 하는 대로 따라가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산림청이 실험을 주도했고, 산림청의 실험 장소 선정과 소

나무에 주입한 재선충 '마릿수'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다. 산림청은 다음의 의혹들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먼저 산림청은 소나무 한 그루마다 재선충을 3만 마리 투입하겠다고 했다.

기후부 관계자는 재선충 예방제 효능 확인 실험에 3만 마리는 과하다고 지적했다.

 

재선충 한 쌍이 20일 만에 무려 20만 마리로 증식할 만큼 번식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림청은 3만 마리를 고집했다.

지난 5월 15일 전남 곡성과 경남 진주 두 곳 60그루(각 지역당 30그루)의 소나무에

재선충을 예방하는 천적 곰팡이 에스테야균을 주입했다

 

. 20여 일 뒤인 지난 6월 7~8일에 걸쳐 곡성과 진주에

천적 곰팡이를 주입한 소나무 60그루에 재선충을 주입했다.

천적 곰팡이를 넣지 않은 대조군 60그루에도 재선충을 3만 마리씩 주입했다.

▲곡성과 진주에서 친환경 천적 곰팡이 검증 실험이 진행되는 모습이다.최병성


재선충 주입을 마친 후, 국립산림과학원 담당 과장에게 어떻게 3만 마리를 확인했냐고 물었다.

그는 알이 있어 3만 마리가 좀 넘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실험 후 남은 샘플을 받아왔다. 3일 뒤 재선충 마릿수를 조사했다. 결과가 충격이었다.

산림청이 약속했던 수용액 0.6ml에 3만 마리가 아니었다.

 

수차례 실험에도 불구하고 무려 2.67배인 약 8만 마리가 검출되었다.

기후부 국립공원공단 연구원도 4℃ 이하의 냉장 보관 후 조사 결과

7만 9천마리로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담당 과장에게 재선충이 담겨 있는 수용액이

무엇인지 물었다. 수돗물이라는 답을 받았다.

▲산림청이 배양해 소나무에 주입한 소나무재선충이다. 소나무에 주입한 0.6ml당 3만 마리라고 했으나

조사 결과 약 8만 마리가 검출되었다.최병성


산림청은 실험 후 3~4일이 경과된 후 재선충 수를 헤아렸기에

증식 속도가 빠른 재선충이 알을 낳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전무하고, 염소 성분이 잔류하는 수돗물에서는 재선충이 증식하지 못한다.

애초에 있던 알이 깨어날 수는 있지만, 수돗물에서 계속 알을 낳는 증식이 안됨은 기본 상식이다.

 

또 4℃ 이하의 저온에서도 재선충은 증식이 불가능하다.

산림청이 처음부터 재선충 마릿수를 부풀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지난 8월 14일, 박은식 청장에게 3만 마리가 아니고, 왜 8만 마리의 재선충인지

의혹을 조사해 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답도 없다.

왜 이런 장소에서 실험을 하는 것일까?

두 번째는 실험 장소에 대한 의혹이다. 먼저 경남 진주 실험 현장을 보자.

소나무의 일종인 곰솔이 자라던 숲에 벌목 후 편백, 리기테다소나무,

일본잎갈나무를 조림한 지역이다. 반복적인 조림이 이뤄져 엉망이 됐다.

▲편백나무 사이에 겨우 생존 중인 소나무다. 재선충 주입 당일 이미 얼마 없는

잎사귀마저 재선충으로 누렇게 죽어가고 있다. 빨간 줄이 실험목 표시다.최병성


실험 대상인 곰솔은 편백사무 사이에 겨우 살아남은 쇠약한 소나무들이다.

기다란 가지 끝에 잎을 조금 달고 있을 뿐, 정상적인 나무가 아니다.

 

심지어 실험 대상인 소나무 바로 옆에 이미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들이 있다.

재선충에 감염된 지역에서 재선충 예방 약제 검증 실험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재선충을 주입 중인 소나무 바로 옆에 이미 재선충에 감염되어 고사한 소나무가 서 있다.

결코 실험지가 될 수 없는 곳이다.최병성


전남 곡성 실험 현장은 더 많은 의혹들이 있었다. 2024년 새롭게 만든 임도 급경사면

바로 위의 소나무를 실험지로 선택했다. 물이 빠져나가고 햇볕이 뜨겁게 달구는

임도 경사면 탓에 수분 스트레스를 받는 곳의 비정상적인 소나무들이다.

심지어 활엽수를 잘라내는 숲가꾸기까지 진행했다.

▲임도를 만든 경사면 위에 수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소나무에 재선충 예방제 실험을 했다.

산림청은 왜 이런 장소를 선택한 것일까?최병성


활엽수들을 잘라냈으니 햇빛이 숲에 잘 들어왔다. 열화상 카메라로 측정해 봤다.

활엽수를 잘라내지 않은 좌측 원래의 숲은 약 23.5도였고, 소나무만 남겨둔 실험 대상지는 37.9도였다.

활엽수를 잘라낸 숲가꾸기 하나만으로 숲의 온도가 무려 14도의 온도 차이가 났다.

▲재선충 실험지의 활엽수를 베어냈다. 그 결과 원래의 숲과 약 14도의 온도 차이가 발생했다.최병성


산림청은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재선충 확산이 극심해졌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은 겨우 1.5도에 불과한데,

산림청의 숲가꾸기는 숲의 온도를 무려 14도 이상 상승시킨다.

재선충은 따뜻한 숲에서 더 많은 번식을 하고, 천적 곰팡이는 이렇게 뜨거워진 숲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산림청은 이곳에 숲가꾸기 사업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실험 대상지 바닥에 잘린 활엽수 나무 그루터기들이 사방에 보이는데도 말이다.

▲기후부-산림청 공동 천적곰팡이 실험지에 잘려 있는 활엽수들.최병성


심지어 잘린 나무들은 아직 잎사귀도 다 마르지 않았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보았다.

실험 대상지 위와 아래는 키 큰 나무 아래 활엽수들이 그대로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실험구역만 활엽수들이 잘려 있었던 것이다.

▲아직 잎사귀에 초록이 남아 있다. 잘라낸 지 며칠 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최병성


중국은 한국에서 찾아낸 에스테야균으로 재선충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에 개발된 친환경 재선충 예방제가 있음에도

치사율 100%를 주장하며 오늘도 전국의 소나무를 죽이고 있다.

 

만약 중국처럼 친환경 천적 곰팡이 치료제를 활용했다면,

오늘 대한민국 산림은 이렇게 참혹한 상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책임을 누가져야 할까?

어디 사는 걸 왜 허락받아야 하나

 

/최민우 정치외교국제 부국장

 

이재명 대통령은 “똘똘한 한 채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7월 23일 부동산 대토론회)라고 했다.

이상하지 않나. 과거 민주당 정부에서 다주택자를 악마화한 탓에 다른 집 다 팔고,

기껏 한 채 남겼더니 이제 와서 그 한 채가 문제라니.

 

그래서 부동산 세제 개편안이 나온다고 할 때부터 ‘똘똘한 한 채(고가주택) 엄청 때려잡겠네’ 싶었다.

한술 더 떴다. 1주택을 실거주와 비거주로 나누는 신공(神功)을 발휘해 비거주 1주택의 경우

종부세 공제액을 낮추고(12억원→9억원), 양도세의 보유 공제를 삭제하기로 했다.

 

자기 집이 있는데 그 집에 살지 않고 딴 집에 전월세로 사는 건

투기의 의도가 다분하니 세금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거다.

“집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구윤철 부총리)이라는 식상한 멘트를 남기면서.

비거주 1주택자도 투기꾼 취급
예외 받으려 시시콜콜 읍소해야
내 삶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니

 

 

 그래도 정부가 야박하기만 하랴. 비록 비거주 1주택자는 투기꾼이 농후하지만,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예외를 두어 양해해 주겠단다.

 

이를테면 전근, 취학, 치료, 봉양, 해외 체류 같은 경우다. 다만 같은 지역 이동은 예외가 안 된다.

서울 노원구 자가에 살다가 직장을 옮기게 돼 바로 옆 경기도 구리에 전세 사는 건 봐주지만,

직장 때문에 노원에서 한참 떨어진 서울 금천구나 구로구에 전세 사는 건 안 된다.

 

자녀 교육도 고교ㆍ대학 때문에 옮겨가는 것만 허용된다.

초ㆍ중은 불가다. 서울 은평구에 집이 있는데 좋은 학군(혹은 학원) 때문에

강남구 대치동에 세를 얻는 건 당연히 투기다.

 

무엇보다 예외를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자기 집에 무조건 1년 이상을 살아야 한다.

1년도 살지 않고 세 주고 곧바로 세 얻어 나가는 건 누가 봐도 ‘갭투자’ 아닌가.

 

 너무 빡빡하다고? 노노. 8·3 세제 개편안 이후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 온갖 청원이 쏟아졌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자녀 돌봄’도 예외로 인정해 달라는 거다.

 

예전엔 연로한 아버지·어머니 모셔야 한다며 자식이 부모님 댁에서 거주했지만,

최근엔 오히려 어르신들이 맞벌이하는 자식 근방에 살며 손자·손녀를 키우는 게 트렌드 아니던가.

이 같은 시대 변화를 모르지 않기에 ‘자녀 돌봄’은 정부도 전향적으로 수용할 예정이다.

이 얼마나 유연한 정부인가.

 

 또 다른 사연이 있다고? “아이가 자폐 증상을 보여 특수학교에 가야 해요.

장애? 이건 따로 분류가 없는데… “중1 아들과 함께 서울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농어촌 유학을 강원도로 왔는데, 가족 체류형으로 주소를 이전했어요.

다시 전학을 가기 어려우니 예외로 해주세요.

 

“ 가족 체류형? 농어촌 유학? 아 몰라 몰라, 왜 이리 복잡해.

여튼 투기성 비거주인지 아닌지는 정부가 잘 솎아낼 테니 예외를 인정받고 싶으면

근무명령서·재학증명서·진단서·가족관계증명서 등 증빙 자료 싹 제출하고 기다리세요!

 

 근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집 한 번 옮기겠다고

이런 시시콜콜한 속내를 들춰내면서 읍소하는 게 맞을까.

 

당연하다. 그럼 절세가 쉬울 것이라 예상했나. 정 까다롭고 비위 상하면 그냥 자기 집에 살아라.

그게 개편안의 취지다. 그게 싫으면 세금 올린 대로 내면 되고.

 

무엇보다 이사 불편해졌다고 발끈하는 건 난센스다.

이미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서울·수도권으로 넓힌 지난해(10·15 대책)부터 정

부의 허가를 득해야 이전이 가능했다.

 

자금 출처를 밝혀야 하고, 2년 실거주해야 하고, 대출 꽉 막고 있었는데

왜 지금에서야 거주 이전의 자유가 사라진 것처럼 호들갑을 떠나.

 

 다주택에 이어 비거주 1주택까지 희생양 삼았으니 앞으로는 어떨까.

설마 더한 규제는 없겠지? 글쎄다. 이 대통령이 자주 본다는

유투버 이광수씨의 언급에서 힌트가 있어 보인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어요. 1주택자가 계속 갈아타면서 돈 벌려고 하고,

세금도 안 내고 또 갈아타고”(4월 29일 MBC 100분 토론).

한번 살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움직일 수 없는 영구 거주의 시대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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