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토박이도 "이 가게 뭐야"…

분노 부른 '중국어 간판' 실체

/중앙일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50년 넘게 산 김모(71)씨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번역기 애플리케이션(앱) 2개가 깔려 있다.

동네에 점점 중국어 간판이 늘어나 이를 읽기 위해선 번역기가 반드시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인생 대부분을 산 동네인데, 이젠 매일 다니는 길에 있는 간판들도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됐다.

무슨 가게인지 알려면 번역기로 찍어 하나하나 검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구로구 등 서남권 도심을 중심으로

외국어 간판이 빠르게 늘어나며 거리를 장악하고 있다.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난 영향이지만,

법적으로 한글 없이 외국어만 적는 것은 불법인데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많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개선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앙일보가 서울 지하철 대림역 7번 출구에서 9번 출구까지

약 200m 구간의 1층 점포 간판을 살펴본 결과 29곳 중 14곳(약 48%)이

중국어·영어 등이 주로 사용된 외국어 간판이었다.

 

한국어가 한켠에 작게 적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예 외국어만 있는 간판도 있어

해당 언어를 모르는 이들은 무슨 점포인지 아예 식별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배달 노동자들이 모인 커뮤티니엔 “대림동에서 배달하려면 한자까지 꼭 알아야 한다”거나

“간판이 다 외국어라 가게 찾기가 어렵고 배달 시간이

오래 걸려서 화가 난다” 등의 불만 글이 다수 올라 와 있다.

 

또한 한글문화연대의 ‘2025년 서울시 옥외광고물 한글 표기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시내 간판 중 순 한글 간판의 비중은 절반(50.2%)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7129개 간판 중 외국어만 적힌 간판은 2086개(29.3%),

외국어와 한글을 병기한 간판은 1457개(20.4%)였다.

 

특히 서남권 지역의 병기 간판 비율은 서울시 평균보다 4%포인트 높고,

순 한글 간판 비율은 0.4%포인트 낮은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난립하는 외국어 간판이 주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외국어 간판 때문에 가게에 대한 정보 접근이 어려우면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제한 되는 것”이라며 “주민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옥외광고물법 시행령 제12조는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로 표시해야 하며,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별한 사유란 특허청에 등록된 상표를 사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 간판에 한글 없이 외국어만 표기하는 것은 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고 및 허가 간판의 범위가 제한적이라 현행법에 맞춰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관리 당국인 구청에 허가 및 신고해야 하는 간판의 기준은 간판 면적이 5㎡ 이상이거나

간판이 건물 4층 이상에 설치되는 경우다.

 

저층에 걸리는 작은 간판들의 경우 허가 및 신고 의무가 없어 구청이 표기법을

제대로 따랐는지 사전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불법 간판을 신고하는 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관리 당국이 현장을 단속하는

방식으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민원 발생 시 현장을 방문해

즉각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도 “규제 대상이 아닌 간판 현황을 일일이 파악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구로구청 관계자도 “신고 및 허가 대상이 아닌 간판들은 규제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거리에 붙은 외국어 간판. 연합뉴스

 

불법 외국어 간판을 내걸었다 단속 당한 업주들은 대부분

“한글을 병기해야 한다는 규정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중국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오모(57)씨는

지난해 봄 단속을 나온 구청의 계도에 따라 외국어만 쓰여 있던 간판에

한글을 추가로 써넣었다. 이 과정에서 추가금을 지불해야 했다.

 

오 씨는 “애초에 주요 손님들이 중국인이라 상호를 중국어로 써 간판을 만든 것 뿐”이라면서

“간판 제작 업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불법인지 전혀 몰랐다.

한글을 병기해야 하는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당연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무조건적으로 제재하기보단 사회적 논의를 통해 지역 상황과

점포 사정에 맞는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인이 주요 고객인 가게의 경우

외국어 간판을 쓰는 것이 업주 입장에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며

“이주민 수도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나고 이들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도 있는 만큼

관련 규정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단독]

어느 지방의원의 '1% 꼼수', 그리고 수의계약 80억 싹쓸이

지방의회 비즈니스

/중앙일보

 

지방 폐기물 처리 업체인 C환경산업은 수의계약 ‘싹쓸이’ 기업으로 불린다.

2015년부터 10년간 경남 의령군에서만 폐기물 처리 용역 등 516건을 따냈다.

수의계약은 발주처가 경쟁입찰 대신 특정 업체를 골라 계약할 수 있다.

주로 2000만원 이하 소규모 공사·용역이 대상이다.

 

C환경산업과 의령군 간 계약액은 10년간 80여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 대표는 A씨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는

K의령군의원(국민의힘) 남편인 L씨를 실소유주로 지목한다.

다선인 K군의원 임기 동안 수의계약이 집중됐다.

 

9일 중앙일보가 공직윤리시스템(PETI)과 법인등기부등본 등을 확인한 결과,

C환경산업 출자 지분 중 L씨 몫의 변화가 눈에 띈다.

2022년 49%에서 2024년 29%로 줄었는데 고위 공직자의 사적 이익 추구를 막기 위한

이해충돌방지법 시행(2022년 5월) 이후 지분을 둘러싼 논란이 생기면서다.

 

해당 법상 지방의회 감사 등을 받는 지자체는 해당 지방의원이나 가족이 대표로 있거나

지분율 ‘30% 이상’을 보유한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L씨가 법망을 피하려고 본인 지분을 30%보다 ‘1%’ 적은

29%로 맞춘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이해충돌방지법 시행 전에는 지방계약법으로 수의계약을 ‘지분율 50% 이상’으로 제한했었는데

그때도 L씨 지분은 ‘49%’였다.

 

K군의원 가족은 또 다른 토건 업체도 실소유 중인데 가족 지분은 0.5% 부족한 29.5%다.

지분 조정에 대해 K군의원은 “회사와 관련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L씨는 “답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의령군 관계자는 “법상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지방자치 31년, 지방의회에서 이해충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돈벌이에 혈안인 ‘비즈니스’ 의원과 업자에게 지방의회가 ‘포획’됐다”고 지적한다.

수의계약은 주 ‘먹잇감’이 됐다. 또 특정 사업을 챙기는 대가로 뒷돈이 오가고

본인이나 가족의 영리 추구를 위한 조례도 발의된다.

 

강원도 지역 T건설사는 양양군과 2023년 3월부터 그해 11월까지

하천 석축공사 등 4건의 수의계약을 맺고 5600만원을 벌었다.

 

이 건설사 대표는 C양양군의원(국민의힘) 여동생으로 파악됐다.

C군의원은 2022년 당선 후 여동생에게 회사를 넘겼다.

C군의원 부부의 지분은 과거 95%에서 2022년 지방선거 당선 이후 ‘0%’로 줄더니

다시 27.9%로 올랐다. 지역사회에서는 수의계약을 노린 변화로 의심한다.

이명순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 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국 243개 지방의회를 비롯한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지방의원 ‘패밀리 비즈니스’…공천헌금 본전 뽑으려는 것” 이에 대해 C군의원 배우자는

“이해충돌방지법에 대해 알고 난 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제3자에게 지분을 매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재권 국립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원이 자기 비즈니스를 하면

‘원 스트라이크 아웃’ 시킬 수 있도록 강력한 제재 조항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천헌금 의혹과 관련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경(무소속) 전 서울시의원은

의회 비즈니스 전형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김 전 시의원은 상임위원회를 옮길 때마다

가족 회사 또는 가족 관련 회사 7곳이 해당 상임위 소관 산하기관으로부터

수천만~수백억원짜리 일감을 수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전 시의원 가족회사인 신생 A시행사가 강동구에 오피스텔 2개 동을 지은 뒤

2022~2023년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에 282억원에 매각했다.

시의회 안팎에서는 “적지 않은 시세차익을 남겼을 것”이란 뒷말이 나온다.

 

김 전 시의원은 2020년부터 2년간 SH의 예산 심의권 등을 가진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소속 위원이었다.

서울시는 관련 의혹에 대해 감사를 진행 중이다.

 

곡성군의회는 재적의원 7명 중 절반인 3명(더불어민주당)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관급공사 수주 개입 등 비위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또 L 전 경기도의원(무소속) 등 도의원 3명과 K 전 화성시의회 의장 등은

지능형교통체계(ITS)사업 비리에 연루돼 최근 각각 징역 3~15년을 구형받았다.

 

지인 업체 이름을 빌린 뒤 실제로는 아들 업체가 1200만원짜리 소독 용역을

딸 수 있도록 개입한 S평택시의원(국민의힘)도 상고심을 앞두고 있다.

지방의회 이해충돌 위반 의혹 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사회민주당 한창민 당대표]

 
"광역의원 1억, 기초의원 5천" 공천헌금 정찰가 돈다
 /중앙일보

“공천받으려면 얼마 정도 내면 되나요.”

수도권 광역의회 소속 A의원은 지난 연말 모임에서 한 참석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은밀히 받았다고 한다

. 기초의원에 출마하고 싶다는 그는 “물어본 사람마다

(공천헌금) 금액이 다 다르더라”며 답답해했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전현직 지방의원 20명(광역 12·기초 8)에게 ‘공천헌금’을 제안받은 적이 있는지,

주변에서 들은 적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이들은 대부분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보좌진, 정치 브로커 등으로부터)

공천헌금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주변에서

공천헌금 요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6·3 지방선거 경선 시즌을 앞두고 암암리에

공천헌금 요구가 이어지고 있는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호남권의 한 도의원은 “공천헌금 고발 시 정치 인생은 끝이라고 봐야 한다”며

“양심 선언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천=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암암리에 공천헌금 정찰가가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민선 7기(2018~2022년)에 경북권 기초의원을 지낸 B씨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당시 기초의원은 1000만~5000만원, 광역의원은 5000만~1억원 정도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민선 7기 경기권 기초의원을 지낸 C씨는 “당선 이후 동료 의원으로부터

당신은 얼마나 줬냐는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공천헌금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공천헌금 관련 지방의원 말말말 그래픽 이미지.

 

“공천헌금 폭로 땐 정치인생 끝나 양심선언 쉽지 않아”

김경 전 서울시의원은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1억원을 무소속(전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에게 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대전시의원을 지냈던 김소연(45) 변호사는 김경 전 의원 사태와 관련해

“8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2018년 6·13 지방선거 때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시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같은 해 9월 “선거 관련 여러차례 불법 자금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선거를 도와준 국회의원 측근들이 1억원을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이후 그는 당의 명예 실추 등을 이유로 제명됐다.

김 변호사는 “사실상 공천헌금을 폭로한 게 제명의 결정적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변호사(전 대전시의원)가 지난달 21일 대전시의회 기자실에서
민주당 공천헌금 특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선거를 앞두고는 통상 여야 각 당의 공천관리위원회가 지방의원 후보 선정 절차를 맡는다.

당 기여도, 지역 발전 기여도, 청렴·도덕성 등이 심사 기준이다.

 

하지만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민주당)·당협위원장(국민의힘)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이런 영향력이 은밀한 ‘돈 공천’의 바탕이 된다.

 

공천이 잘못되면 지방의회에는 자질 없는 인물이 들어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22년 지방선거 당선자 4102명을 조사한 결과,

33%인 1341명이 음주운전과 뺑소니, 폭력, 사기 등 범죄 경력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선거에 많은 돈을 쓴 이들이 당선 후 본인이나 가족 기업을 위한 ‘업자’ 의원이 되기도 하는데
그 뒤에는 제 역할을 못 하는 이해충돌방지법이 있다.
 
김형수 예산감시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여전히 이해충돌 문제가 불거진다는 것 자체가
제도의 실효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사문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2022년 시행됐다. 지자체는 해당 지방의회 소속 의원이나
그 가족이 대표로 있는 회사와 수의계약할 수 없다.
지방의원 가족이 회사 지분율 ‘30% 이상’을 보유해도 역시 수의계약이 안 된다.
그러자 명의를 슬쩍 빌린 ‘바지사장’으로 수의계약을 따내거나
지분을 29%로 1% 낮추는 식의 꼼수가 수두룩하다.
 
당선 이후 민간 부문 활동 내역을 제대로 내지 않거나 ‘해당사항 없음’으로 거짓 기재하기도 한다.
수도권의 전직 시의원은 “학원장이 교육위원회, 공인중개사가 도시계획위원회,
어린이집 원장이 문화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공천 관련 문제가 발생한 지역은
아예 공천권을 박탈하는 등의 책임공천제를 실행하고 외부 인사 과반 참여 등을 의무화해
공천 사유화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직선거법을 실효성 있게 개정하고
공천 비리가 발견될 경우 피선거권 제한 조치를 해야 한다”며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정당의 공천 관련 행위를 포함해 내부고발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50만원 줘도 싫어

죽음의 운전대 못 놓는 어르신 현실

내가 운전대를 놓으면 아내를 돌볼 방법이 없으니까….

 

/중앙일보

 

” 지난 4일 서울 서초구의 한 종합병원 주차장. 주차를 마친 백발의 장용원(69)씨가

휠체어를 꺼내더니 차량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내 김모(66)씨를 조심스레 휠체어에 앉혔다.

 

장씨는 “하루가 다르게 눈도 침침해지고 근력도 예전 같지 않다 보니 대형 교통사고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해진다”면서도 “병원비 부담도 만만찮은데 매번 택시비까지 감당할 여력이 없으니

결국 내가 직접 조심조심 운전하는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동구의 한 식당. 식사를 마친 개인택시 기사 정모(71)씨가 운전석으로 향하더니

좌석을 눕히고 잠시 눈을 감았다. 지난해부터는 체력이 달려 야간 운행을 하지 않는 정씨는

올해는 낮에도 6시간만 운행하기로 원칙을 정했다.

 

정씨는 “집에만 있으면 늙은이 취급받기 일쑤지만 나오면 손님들이랑 얘기도 나누고

하루 밥벌이도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일흔이 넘은 내겐 이렇게라도 운전대를 잡는 게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라고 털어놨다.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은 65세를 넘어선 초고령사회.

저마다의 이유로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고령층이 증가하면서 고령 운전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2020년 368만 명에서

2024년엔 517만 명으로 40%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운전자 중 65세 이상 운전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11%에서 15%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엔 운전자 네 명 중 한 명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는 더욱 가파르게 늘고 있다.

국내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15년 23만2000건을 기록한 뒤

2024년 19만6000건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는 2015년 2만3000건에서

2024년 4만2369건으로 10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교통사고 다섯 건 중 한 건(21.6%)은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인 셈이다.

"50만원 줘도 싫어" 죽음의 운전대 못놓는 어르신 현실 문제는 고령자 운전사고의 경우

젊은 층에 비해 ‘고위험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24년 발생한 교통사고의 건당 사망자 비율은 1.3%인 데 비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이를 웃도는 1.8%를 기록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인천시 부천제일시장에서 고령 운전자가

1t 트럭을 몰고 돌진한 사고로 네 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달 70대 운전자의 서울시 종각역 택시 돌진 사고로 한 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는 등 고령 운전자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체적 노화로 인한 인지 능력 저하와 긴급 상황에서의

반응 속도 지연을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꼽는다.

 

한국소비자원이 고령 운전자와 비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도로 주행 시뮬레이션 시험에서도

보행자 돌발 횡단 상황에서 고령자(2.28초)가 비고령자(1.20초)보다 1.08초 늦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달 오조작 등 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령 운전자의 각종 실수도 교통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19~2024년 발생한 페달 오조작 사고의 25.7%가

65세 이상 운전자에 의해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지자체도 고령 운전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는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고령자에게

10만원에서 최대 50만원 상당의 교통카드나 지역 화폐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운전면허 반납률은 2%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의 경우 병원에 다니기 위해서라도 일회성 보상만으로는

운전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운전이 생업에 필수인 고령층에게도 운전면허 반납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서울 성북구에서 청과물 가게를 운영하는 이용수(67)씨는 “경매시장은 품목에 따라

한밤에서 새벽까지 열리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직접 운전하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가 없다”며

“작은 가게 하나 운영하면서 기사를 고용할 수도 없고,

어떻게든 내가 직접 운전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일괄적인 면허 반납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사회적 인프라의 확충과

개선이란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같은 나이라고 해도 신체 능력이 천차만별인 만큼 상황에 맞는 제도적 지원으로

이동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미국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미국 내 대다수 주에서는 고령자의 신체 능력에 따라

‘야간 운전 금지’나 ‘고속도로 주행 금지’ ‘자택 반경 특정 거리 내에서만

운전 가능’ 등의 조건을 면허증에 명시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맞게 제한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한국보다 빠르게 고령화를 맞이한 일본의 경우 2022년 비상 제동 장치와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이 장착된 차량인 ‘서포트카’만

운전할 수 있는 전용 면허제도를 도입해 효과를 보고 있다.

 

신체적 능력이 저하된 고령층에게도 첨단 운전 보조 장치의 도움을 받아

계속 운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실제로 일본 경시청에 따르면 고령자 전용 면허제도 도입 후 페달 오조작 사고가 40%가량 급감했다.

정영제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사례처럼 획일적인 면허 반납 제도에서 벗어나

유연한 면허 체계와 기술 기반 안전 지원 시스템 도입을 병행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부 인증을 받은 오조작 방지 장치를 장착할 경우 보조금과

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제도 개선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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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통행불가? 법으로 막자"

어느 건축가의 이색 제안

아파트 단지 공공보행권 회복 정책 제안

홍윤주 웹진 '진짜공간' 대표가 1월 30일 오후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용산구 보광동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홍 대표는 이곳에서 아파트 단지 공공보행권 회복을 위한 정책 제안의 필요성을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 유지영관련사진보기

 

동일한 면적의 위성 사진 세 장(아래 사진)에서 녹색 선으로 표시된 곳은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첫 번째 사진은 2월 현재 한창 재개발이 진행 중인 서울 용산구 보광동 일대다.

 

다른 사진 두 장은 서울 강남구 아파트 단지다. 강남구처럼

보광동에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웹진 <진짜공간>의 홍윤주 대표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기존 도시가 제공했던

다양한 경로 선택권이 사라지고, 보행자가 아파트 단지 외곽의 도로로 우회할 수밖에 없는 점을 지적한다.

마치 동맥경화처럼 기존에는 구석구석 순환되던 활발한 공간이 더는 흐르지 않고 고인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오랜 시간 도시의 공간 문화를 고민해오며 2011년부터 건축 웹진 <진짜 공간>을 만들고,

같은 이름의 책(프로파간다 출판사)을 내기도 한 건축가다. 그는 지난해 12월 정부의 온라인 국민 소통 창구인

소통24에 '담장 없는 도시 : 아파트 단지 공공보행권 회복 및 소셜 스트리트(보행자 중심의 거리)

조성 방안'이라는 제목의 정책 제안을 올렸다.

아파트 단지 완전 개방을 법적 의무로 만들고, 보행자 중심의 도시로 다시 설계하자는 제안이다.

지난 1월 30일, 이 정책 제안의 계기가 된 보광동 일대에서 홍 대표를 만났다.

재개발 후 아파트 들어서면 벌어질 일

"같은 면적의 보광동 일대와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항공사진을 겹쳐보았다.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

기존 도시 조직이 제공했던 다양한 경로 선택권이 사라지고, 보행자는 단지 외곽의 간선도로로만

우회해야 하는 강제를 당한다." (홍윤주 대표가 올린 정책 제안 중 일부 발췌)

ⓒ 진짜공간 홈페이지(jinzaspace.com)관련사진보기


홍 대표는 과거 보광동 일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원래 살던 곳은 보광동 인근 경리단이었고,

작업실은 해방촌에 있었다. 친구들의 작업실도 근처에 있었다.

그런 그에게 보광동 골목을 활보하는 일은 일상이었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다니며 이상하고

어딘가 찌그러진 동선을 발견하는 일은 그에게 큰 재미였다.

그러나 재개발이 한창인 지금 홍 대표는 "온기로 가득 찼던 동네가

마치 폭탄 맞은 것처럼 쓸려가 허허벌판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보광동의 모습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재개발로 인해 이태원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했다.

"지금 이태원에는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다양함을 품은 마을이 없어지면 우리가 아는 이태원이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이곳이 좋았다. 어떤 이상한 사람도 여기 와서 옷을 이상하게 입어도 아무도 눈총을 주지 않았다."

이곳에서 재개발을 마주한 그는 흐르지 않는 도시의 문제를 몸소 느꼈다.

여기에다가 서울 지하철 2호선 지하철역 반경 500미터를 표시해두고,

동네가 가진 문화를 살펴보는 프로젝트를 통해 아파트 단지의 문화적 공백을 들여다 보았다.

"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심각성을 말하며 지역 문화의 변질을 비판하는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문화의 변질을 넘어 문화가 아예 사라져 버린다."

이는 홍 대표가 '공공보행권 회복'에 대한 정책을 제안한 이유다.

건축가인 그가 정책을 제안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여러 회의나 간담회를 주재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정책을 제안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까지는 개인이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부가 바뀌고 시민들이 대통령 앞에서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언론에 많이 보이더라.

 

대통령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시민들의 말을 메모하고 옆사람에게 확인해보라고 하는

모습에서 그래도 문턱이 낮아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통24에는 누구나 정책 제안을 올릴 수 있다.

누군가 올린 정책 제안에 30일 내에 30명 이상이 공감하면 '제안 숙성' 단계로 넘어가

논의를 거쳐 행정안전부 등 각 부처가 검토를 해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

현재(2월 5일) 그의 제안은 '제안 숙성' 단계에 가있다.

홍 대표가 제안한 것과 비슷한 내용의 시민 정책 제안은 2025년에도 존재했다.

강남·서초·송파 등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공공보행로에 울타리를 세우자,

한 시민이 서울시 시민 제안 창구(상상대로 서울)에 '아파트 내 공공보행로

지정 부분 불법 보행 차단 근절을 위한 법안 개정'이라는 글을 올린 것이다.

홍 대표는 그 제안에서 더 나아가 아파트 단지를 전부 개방하자고 말한다.

그는 공공보행권을 시민들의 권리로 보았다.

"원래 우리 모두가 다닐 수 있는 공공 도로다.

나도 세금을 낸 시민으로서 그 도로에 대한 권리가 있다."

아파트 담장 허물면 벌어질 일

최근 강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선 입주민에게만 전용 반려견 목줄을 나눠주며

입주민이 아닌 이들을 노골적으로 배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홍 대표는 이를 두고 "울타리를 올려 동네를 단절시키면 소외만 일어날 뿐"이라며

"아파트 단지 내에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커뮤니티 센터를 만드는데 그러한 인위적인 프로그램은

길 위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소통의 역동성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홍 대표는 아파트 단지를 모두 사유지로 묶는 기존의 '빗장 커뮤니티'에서 탈피해

단지 내 도로는 공공이 관리하고 건물만 민간(입주자대표회의 등)이 관리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공공 도로가 재개발 아파트 단지에 포함될 경우 완전 개방을 법적으로 의무화해

입주민이 아닌 이들을 차별하지 않도록 '보행권 조례' 제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홍 대표는 이러한 조치가 입주민에게도 좋다고 말한다.

분양비나 관리비 부담을 덜 수 있고, 고립된 섬이 아닌 자연스런 동네 산책로이자

쉼터 같은 단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더해 "이것이 탄소 중립 시대에 걸맞은 보행 중심의 교통 체계 확립에도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에선 꿈처럼 들리는 이러한 제안을 두고 홍 대표는 "(정책 제안 내용을)

<진짜공간> SNS(@JinzaSpace)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제안 숙성' 단계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시민 30명도 금방 모이기도 했다.

그는 "같은 (건축) 업계가 아니어도 많이들 (이 사안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의 제안은 길을 중심으로 한 도시 공간의 가능성을 환기시킨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곳들은 모두 경리단길, 망리단길, 삼청동길처럼

길을 중심으로 이야기된다. 사람들은 길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이 길을 걸어다니면서

다채롭게 즐기는 걸 여전히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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