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사평역 '발암 지하수', 어디로 흘러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기후의 시간] 용산·후쿠시마·고덕 통해 본 한·일 정부가 오염을 다루는 방식
/최경숙

▲지난 8월 9일 용산공원 일대 전경. ⓒ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2026년 10월 한 달 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다른 듯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서울 용산공원 담장 밖 지하수에서 1급 발암물질 벤젠이 생활용수 기준치의 251배 검출된 사실이
지난 19일 국정감사를 통해 알려졌다.
공원 안에 수만 가구의 집을 짓겠다는 정부는 공원 내부의 오염 자료를 국회에 내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생긴 고농도 방사능 오염토양(아래 제염토)을 센다이와 사
이타마의 정부 청사 화단에 묻었다. 주민 설명회는 없었고, 총리는 전 각료에게 재활용 확대를 지시했다.
평택 고덕산업단지 종단 방류구에서는 과불화화합물(PFAS) 17종이 나왔다.
과불화화합물(Per- and polyfluoroalkyl substances)은 수천 종에 이르는
인공 합성 유기화학물질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탄소(C)와 불소(F)가 매우 강하게 결합한 구조여서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분해되지 않고
환경과 인체에 영구적으로 쌓인다.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 물질을 배출한 기업은 국제적으로 규제되는 3종을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검출량의 88%는 그 3종이 아닌 다른 물질이었다.
세 사건은 발생 장소도, 원인도, 오염물질도 달랐지만 오염을 다루는 방식은 똑같았다.
정보를 쥔 쪽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측정하고 싶은 것만 측정하고,
나머지는 흙으로 덮거나 영업비밀로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집을 짓고, 길을 내고, 공장을 돌린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용산공원 문제에서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자료의 공백이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이 올해 국정감사를 준비하며
국토부·국방부·기후에너지환경부에 공원 내부 오염 자료를 요구했지만 세 부처 모두 내지 않았다.
유일하게 제출된 것은 국토부의 어린이정원 측정 결과서였고, 내용은 '측정 대상 물질 모두 기준치 이내'였다.
전체 300만㎡ 가운데 30만㎡, 10분의 1이다. 가장 먼저 개방돼 가장 먼저 정비된 구역의 결과로
나머지 90%를 대신 말하게 한 것이다.
담장 밖 수치는 서울시가 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용산미군기지 주변
유해물질(유류오염 지하수)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녹사평역 일대 8개 지점에서 검출된
벤젠이 기준치를 넘었고, 최고 농도 3.77㎎/L는 기준치(0.015㎎/L)의 251배였다.
2020년에는 1423배까지 올라갔다. 서울시가 2001년부터 25년 동안
약 117억 원을 들여 정화해 온 결과가 이렇다.
담장 안쪽은 더 심할 것이라는 의원실 추정에 정부는 반박 자료조차 내지 않았다.
지난 15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한강유역환경청장은 상시측정 권한이
자신에게 있는지조차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답했다.
권한 있는 기관은 측정하지 않고, 자료 가진 부처는 제출하지 않는다.
그 사이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신속한 공급'을 말했다.
일본 정부의 방식은 더 교묘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흙과 폐기물을 긁어모은 것이 제염토다. 태울 수 있는 것은 태우고
남은 제염토를 후쿠시마현 임시 저장소에 쌓았는데,그 양이 도쿄돔 11개 분량이다.
일본 정부는 이 양을 줄이기 위해 8000Bq/kg 이하는 도로·항만 같은 공공 건설에 쓰고,
5000Bq/kg 이하는 농지에 섞어 재활용하기로 했다. 그러고도 남는
8000Bq/kg 초과 고농도 제염토가 약 230만㎥로 추산된다(일본 국립환경연구소, 2025년 2월).
일본 환경성은 제염토 재활용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워킹그룹을 비공개로 운영했다. <마이니치신문>이 입수한 회의 자료에는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 담당자가 5000Bq/kg 토양이 100Bq/kg으로 떨어지는 데 170년이 걸리는데 도로 지반의 내구연한은 70년이라고 설명한 대목이 있다. 이 발언은 공개 보고서에서 빠졌고, 170년은 토론 없이 지나갔다.
올해 8월 센다이와 사이타마 청사 화단 반입도 주민 설명회 없이 진행됐다.
복토 20cm, 면적 7m×7m인 총리관저 화단의 '공사 전후 선량 거의 동일'이라는 결과가
500m×500m, 높이 4.5m 성토의 안전 근거로 쓰인다.
작은 실험을 큰 사업의 증거로 바꿔 치는 것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방식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는 다르지 않다.
경기환경운동연합·서평택환경위원회·평택환경행동·환경운동연합이
지난 19일 발표한 고덕산단 과불화화합물 검출은 제도의 공백을 파고든 기업과
그 공백을 메우지 않은 정부의 합작품이다.
국내 먹는물 수질감시항목은 PFOA·PFOS·PFHxS 3종이고, 산업폐수에는
PFAS 배출허용기준 자체가 없다. 그래서 기업은 '그 3종을 원·부자재로 쓰지 않는다'고 답할 수 있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시료에서 PFOS는 불검출, PFHxS는 1.13ng/L였다.
그러나 PFBA 4240, PFPeA 1830, PFHxA 1200, PFHpA 695ng/L,
이 네 물질이 전체의 88.4%였다.
GenX(HFPO-DA) 같은 대체물질도 함께 나왔다. 측정 항목을 3종으로 좁혀 놓으면
나머지는 측정되지 않았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공식 통계에 없는 오염은 행정적으로 없는 오염이다.
덮는 명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세 사건에는 각각 덮는 명분이 있다. 용산은 주택 공급, 후쿠시마는 부흥,
고덕은 반도체다. 모두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오염을 확인하고 정화한 뒤가 아니라
확인하지 않은 채 덮고 추진하는 순간, 명분은 핑계가 된다.
용산의 '신속'은 정부 자료가 스스로 부정한다.
평택 미군기지 주변 정화는 2018년 기초조사부터 2024년 1월 완료까지 6년이 걸렸다.
2020년 반환된 캠프킴은 부지의 97%가 주거용지 기준을 초과했고,
도중에 문화재가 나와 1년을 멈췄으며, 306억 원이 들어갔다.
2008년 이후 반환 미군기지 42곳 정화에 국방부가 쓴 돈은 5762억 원, 전부 한국 재정이다.
SOFA 4조는 미군에 원상회복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그러니 '신속 공급'은 '정화를 줄이겠다'는 말과 같다.
오염된 땅 위에 청년 주택을 짓는 계획에서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위험을 떠안는지는 분명하다.
후쿠시마의 논리는 복토다. 8000Bq/kg 이하 흙 위에 흙을 50cm 덮으면
피폭이 연 0.002mSv로 떨어진다는 계산이다. 복토가 영원히 온전하다는 전제 위의 숫자인데,
신주쿠교엔은 2024년 8월 폭우로 침수됐다.
더구나 8000Bq/kg은 건강 영향에서 나온 숫자가 아니다. 환경성 스스로 설명했듯
폐기물 '처리' 기준이며, 원자로등규제법상 '재이용' 기준 100Bq/kg의 80배다.
처리 기준을 재이용 기준으로 바꿔 부른 것이다.
세슘-137의 반감기는 약 30년, 덮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몇 세대에 걸쳐 가려질 뿐이다.
환경성이 서두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1400만㎥를 2045년까지 후쿠시마 밖에서 처분하려면
양을 줄여야 하고, 양을 줄이려면 재활용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흩뿌려야 한다.
피폭을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처분장을 줄이는 정책이다.
고덕의 변명은 영업비밀이다. 삼성전자가 어떤 물질로 반도체를 만드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기업은 저감 기술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고 했다. 저감할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무엇을 얼마나 쓰고 내보내는지는 말하지 않고, 정부도 배출기준을 만들지 않았다.
기준이 없으니 위반이 없고, 위반이 없으니 문제도 없다. 기준의 부재가 산업의 방패가 되는 구조다.
세 논리의 뿌리는 같다. 오염을 확인하는 비용은 지금 눈에 보이고 특정 주체가 낸다.
덮는 비용과 피해의 책임은 나중에 흩어져 불특정 다수가 감당한다.
정부와 기업이 후자를 택하는 것은 돈의 문제다. 그 계산에서 빠진 항목이 사람의 몸이다.
피해는 늦게 온다

▲지난 2022년 6월 10일 미군에게 반환 받은 용산공원이 열흘 동안 시범 개방되자
찾아온 아이들이 공원을 걷고 있다. ⓒ 유성호관련사진보기
"지금까지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호소노 일본 부흥상이 지난 2일 제염토 재활용을 두고
한 말이다. 환경오염의 역사에서 가장 자주 반복됐고 가장 자주 틀린 문장이다.
오염물질이 몸에 들어가는 시점과 병이 드러나는 시점 사이에는 긴 시간이 있다.
그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은 참이지만 아무 뜻도 없다.
미나마타가 그랬다. 짓소(Chisso, 窒素) 공장이 메틸수은을 흘려보낸 것은 1930년대,
환자 공식 확인은 1956년, 정부 인정은 1968년이다. 3
0년 넘게 회사와 정부는 '인과관계 미입증'으로 시간을 벌었고, 그 시간은 피해자의 시간이었다.
석면이 그랬다. 중피종 잠복기는 20~40년이라, 공장이 닫히고 기록이 사라진 뒤에야 피해가 드러난다.
가습기살균제가 그랬다. 1994년 첫 판매, 2011년 확인. 17년 동안 제품은
'안전'했다. 아무도 측정하지 않았고, 측정하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없었다.
과불화화합물(PFAS)는 위 패턴의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파커스버그의 듀폰 공장은 1950년대부터 과불화옥탄산(PFOA)을 썼다.
주민 약 7만 명의 자료를 분석한 C8 과학패널이 신장암·고환암·갑상선질환과의
개연적 연관을 결론 내린 것은 2012년 전후, 국제암연구소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한 것은 2023년이다.
70년 전 강으로 흘러간 물질이 지금에야 이름을 얻었다.
고덕에서 나온 단쇄 PFAS와 대체물질은 그 이름조차 아직 없다.
독성 자료가 없는 것은 안전해서가 아니라 연구가 따라가지 못해서다.
벤젠도 방사선도 다르지 않다. 벤젠 백혈병은 노출 후 수년에서 십수 년 뒤에, 체르노빌 소아 갑상선암은 사고 4~5년 뒤부터 나타났다. 후쿠시마 소아갑상선암은 현재형이다. 녹사평역 지하수가 어디로 흘러 누구의 몸에 닿았는지는 아무도 추적하지 않았다. 추적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는 없다.
그래서 '지금 괜찮다'는 말은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말이다.
그 시간의 비용은 언제나 가장 약한 쪽이 치른다.
공장 노동자, 오염된 땅에 들어가는 청년 세입자, 하천 하류의 농민, 화단 옆을 지나는 아이들.
지금 측정하고, 지금 공개하고, 지금 정화해야

▲녹색연합과 온전한 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회원들이 지난 2022년 6월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 앞에서 윤석열 정부의 오염 정화 과정 없는 용산공원 개방을 규탄하고 있다. ⓒ
피해가 늦게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선순위는 저절로 정해진다.
지금 측정하고, 지금 공개하고, 지금 정화하는 것이다.
집을 짓고 흙을 덮고 공장을 돌리는 일은 그다음이다. 순서를 바꾼다고 정화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병원비와 소송비와 보상금으로 이름만 바꿔 수십 년 뒤에 돌아온다.
측정이 개발보다 앞선다. 용산공원은 전체 부지의 토양·지하수 전수조사 결과가
공개되기 전까지 주택 공급 논의를 멈춰야 한다.
고덕산단은 유입수와 방류수를 반복 측정하고 방류구 상·하류 수계까지 조사해야 한다.
한 번의 시료로 위반을 단정할 수 없다면, 한 번의 '3종 미사용' 해명으로 안전을 단정할 수도 없다.
공개가 명분보다 앞선다. 부처가 가진 오염 자료는 국회가 요구하면 내야 한다.
기업이 공정에서 쓰는 물질은 영업비밀이기 전에 공공의 알 권리다.
정보를 통제해서 얻는 '사회적 수용성'은 수용이 아니라 침묵이다.
정화가 재활용보다 앞선다. 덮는 것은 정화가 아니다.
복토 50cm 아래의 세슘은 100년 뒤에도 거기 있고,
용산의 벤젠은 25년을 걷어내도 거기 있다.
정화에 6~7년이 걸린다면 그 시간을 쓰는 것이 순서이지,
시간을 줄이려 정화를 줄이는 것은 순서가 아니다.
입증 책임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미나마타에서 파커스버그까지,
피해자의 입증에는 언제나 수십 년이 걸렸다. 오염된 땅을 개발하려는 쪽이 안전을 입증해야 한다.
자료가 없으면 '안전'이 아니라 '미확인'이고, 미확인은 추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기준이 없는 물질을 없는 물질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캐나다는 먹는물에서 PFAS 25종 합산 30ng/L를, EU는 합계 0.10μg/L를 적용한다.
하나씩 따지는 동안 나머지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반도체 메가 산단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공장을 짓기 전에 어떤 PFAS를 쓰고 처리시설이 얼마나 걸러내는지 먼저 검증해야 한다.
용산공원 담장 안의 흙, 후쿠시마 화단 아래의 흙, 서정천으로 흘러가는 물.
셋 다 지금 당장은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동안 결정은 내려지고,
공사는 시작되고, 책임자는 자리를 옮긴다.
피해가 드러날 때쯤이면 '그때는 몰랐다'는 말이 준비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안다. 측정하지 않은 것,
공개하지 않은 것, 정화 대신 덮은 것은 모두 선택이다.
그 값을 치를 사람은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몸이 먼저고, 땅과 물이 그 다음이고,
집과 공장은 그 위에 선다. 이 순서를 어겨서 번 시간에 이자가 붙지 않은 적이 있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