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다시 간 봉은사, '판전' 앞에서 떠올린 것
귀양살이 역경 속에서도 지성의 꽃 피워낸 두 사람...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의 공통점
15일 아내를 따라 서울 강남구 봉은사를 갔다.
부처님 오신 날에 매단 봉축 연등이 아직도 길손을 반기고 있었다.
아내는 이곳에 여러 번 왔기에 익숙했지만,
나는 1973년 대학시절 동아리 일행들과 잠시 공양하러 간 이후 처음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봉은사 풍경은 상전벽해처럼 변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예불과 공양미를 바치고 나는 절을 한 바퀴 순례하기로 했다.
마침 봉은사는 '연꽃축제'가 진행되고 있어 이를 보려는 가족단위 탐방객도 많았다.
봉은사 연꽃축제는 다른 연꽃축제 분위기와 조금 다르다.
'연꽃 공양'을 통해 연꽃 화분을 사찰 곳곳에 배치해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공양하는 연꽃에는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소원첩'이 각기 달려 있다.
말로만 듣던 연꽃 공양을 처음 보았다.
연꽃 공양은 '세계연화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는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화생(蓮華化生)'으로 연결된다.
심청전의 심청이 연꽃 속에 다시 태어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봉은사 판전의 현판, 추사가 쓴 글씨로 별세 사흘전에 썼다. ⓒ 이혁진관련사진보기

▲봉은사 판전,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보인다. ⓒ 이혁진관련사진보기
경내를 돌고 나서 '판전' 앞에 멈췄다. 오랜만에 보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쓴
판전이라는 현판(서울시유형문화재 제84호)이 처마 밑에 선명하다.
판전은 말 그대로 불교 경판을 보존하는 전각이다. 판전에서 심오한 고요함이 풍기고 있었다.
나는 판전이라는 현판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과천에서 말년을 보낸 추사는 봉은사를 자주 왕래했다고 한다.
판전과 현판 덕분에 봉은사는 문화재적 가치가 더욱 빛나고 있다.
현판 글씨는 추사가 별세하기 사흘 전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추사 김정희를 생각하면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떠오른다.
두 사람 모두 귀양 간 유배지에서 생애 역작을 탄생 시켰다.
다산은 전남 강진에서 18년간 머물면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다양한 책을 발간했다.
추사 또한 8년간 귀양 살이한 제주에서 선비의 지조를 강조한 '세한도'를 그렸다.
역경 속에서도 지성의 꽃을 피워낸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은 '남다른' 제자를 두었다.
다산이 강진 대흥사의 초의 선사(1786~1866)와 스승과 제자의 연을 평생 맺었다면,
추사는 북경에서 책을 어렵게 구해 보내준 제자 이상적(1804~1865)과의 우정을 그림 세한도로 칭송했다.

▲봉은사 미륵광장의 미륵대불 ⓒ 이혁진관련사진보기
봉은사는 불교신자만 찾는 곳이 아니었다. 절에는 우리 세대보다 젊은이들이 더 많았다.
일주문 앞 상점에서는 외국인들이 불교 용품을 고르느라 바쁘고, 동
남아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미륵대불 앞에 줄서 절을 올리고 있었다.
봉은사에 오는 사람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마음을 수련하고 있었다.
나 또한 마음의 평화를 누렸다. 일주문을 나서며 "모든 것은 마음이 앞서고,
마음이 주인이며, 마음이 지어낸다"는 법구경의 가르침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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