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원 줘도 싫어

죽음의 운전대 못 놓는 어르신 현실

내가 운전대를 놓으면 아내를 돌볼 방법이 없으니까….

 

/중앙일보

 

” 지난 4일 서울 서초구의 한 종합병원 주차장. 주차를 마친 백발의 장용원(69)씨가

휠체어를 꺼내더니 차량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내 김모(66)씨를 조심스레 휠체어에 앉혔다.

 

장씨는 “하루가 다르게 눈도 침침해지고 근력도 예전 같지 않다 보니 대형 교통사고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해진다”면서도 “병원비 부담도 만만찮은데 매번 택시비까지 감당할 여력이 없으니

결국 내가 직접 조심조심 운전하는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동구의 한 식당. 식사를 마친 개인택시 기사 정모(71)씨가 운전석으로 향하더니

좌석을 눕히고 잠시 눈을 감았다. 지난해부터는 체력이 달려 야간 운행을 하지 않는 정씨는

올해는 낮에도 6시간만 운행하기로 원칙을 정했다.

 

정씨는 “집에만 있으면 늙은이 취급받기 일쑤지만 나오면 손님들이랑 얘기도 나누고

하루 밥벌이도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일흔이 넘은 내겐 이렇게라도 운전대를 잡는 게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라고 털어놨다.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은 65세를 넘어선 초고령사회.

저마다의 이유로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고령층이 증가하면서 고령 운전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2020년 368만 명에서

2024년엔 517만 명으로 40%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운전자 중 65세 이상 운전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11%에서 15%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엔 운전자 네 명 중 한 명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는 더욱 가파르게 늘고 있다.

국내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15년 23만2000건을 기록한 뒤

2024년 19만6000건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는 2015년 2만3000건에서

2024년 4만2369건으로 10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교통사고 다섯 건 중 한 건(21.6%)은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인 셈이다.

"50만원 줘도 싫어" 죽음의 운전대 못놓는 어르신 현실 문제는 고령자 운전사고의 경우

젊은 층에 비해 ‘고위험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24년 발생한 교통사고의 건당 사망자 비율은 1.3%인 데 비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이를 웃도는 1.8%를 기록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인천시 부천제일시장에서 고령 운전자가

1t 트럭을 몰고 돌진한 사고로 네 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달 70대 운전자의 서울시 종각역 택시 돌진 사고로 한 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는 등 고령 운전자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체적 노화로 인한 인지 능력 저하와 긴급 상황에서의

반응 속도 지연을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꼽는다.

 

한국소비자원이 고령 운전자와 비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도로 주행 시뮬레이션 시험에서도

보행자 돌발 횡단 상황에서 고령자(2.28초)가 비고령자(1.20초)보다 1.08초 늦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달 오조작 등 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령 운전자의 각종 실수도 교통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19~2024년 발생한 페달 오조작 사고의 25.7%가

65세 이상 운전자에 의해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지자체도 고령 운전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는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고령자에게

10만원에서 최대 50만원 상당의 교통카드나 지역 화폐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운전면허 반납률은 2%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의 경우 병원에 다니기 위해서라도 일회성 보상만으로는

운전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운전이 생업에 필수인 고령층에게도 운전면허 반납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서울 성북구에서 청과물 가게를 운영하는 이용수(67)씨는 “경매시장은 품목에 따라

한밤에서 새벽까지 열리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직접 운전하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가 없다”며

“작은 가게 하나 운영하면서 기사를 고용할 수도 없고,

어떻게든 내가 직접 운전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일괄적인 면허 반납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사회적 인프라의 확충과

개선이란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같은 나이라고 해도 신체 능력이 천차만별인 만큼 상황에 맞는 제도적 지원으로

이동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미국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미국 내 대다수 주에서는 고령자의 신체 능력에 따라

‘야간 운전 금지’나 ‘고속도로 주행 금지’ ‘자택 반경 특정 거리 내에서만

운전 가능’ 등의 조건을 면허증에 명시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맞게 제한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한국보다 빠르게 고령화를 맞이한 일본의 경우 2022년 비상 제동 장치와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이 장착된 차량인 ‘서포트카’만

운전할 수 있는 전용 면허제도를 도입해 효과를 보고 있다.

 

신체적 능력이 저하된 고령층에게도 첨단 운전 보조 장치의 도움을 받아

계속 운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실제로 일본 경시청에 따르면 고령자 전용 면허제도 도입 후 페달 오조작 사고가 40%가량 급감했다.

정영제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사례처럼 획일적인 면허 반납 제도에서 벗어나

유연한 면허 체계와 기술 기반 안전 지원 시스템 도입을 병행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부 인증을 받은 오조작 방지 장치를 장착할 경우 보조금과

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제도 개선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제언했다.

 

"아파트 단지 통행불가? 법으로 막자"

어느 건축가의 이색 제안

아파트 단지 공공보행권 회복 정책 제안

홍윤주 웹진 '진짜공간' 대표가 1월 30일 오후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용산구 보광동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홍 대표는 이곳에서 아파트 단지 공공보행권 회복을 위한 정책 제안의 필요성을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 유지영관련사진보기

 

동일한 면적의 위성 사진 세 장(아래 사진)에서 녹색 선으로 표시된 곳은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첫 번째 사진은 2월 현재 한창 재개발이 진행 중인 서울 용산구 보광동 일대다.

 

다른 사진 두 장은 서울 강남구 아파트 단지다. 강남구처럼

보광동에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웹진 <진짜공간>의 홍윤주 대표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기존 도시가 제공했던

다양한 경로 선택권이 사라지고, 보행자가 아파트 단지 외곽의 도로로 우회할 수밖에 없는 점을 지적한다.

마치 동맥경화처럼 기존에는 구석구석 순환되던 활발한 공간이 더는 흐르지 않고 고인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오랜 시간 도시의 공간 문화를 고민해오며 2011년부터 건축 웹진 <진짜 공간>을 만들고,

같은 이름의 책(프로파간다 출판사)을 내기도 한 건축가다. 그는 지난해 12월 정부의 온라인 국민 소통 창구인

소통24에 '담장 없는 도시 : 아파트 단지 공공보행권 회복 및 소셜 스트리트(보행자 중심의 거리)

조성 방안'이라는 제목의 정책 제안을 올렸다.

아파트 단지 완전 개방을 법적 의무로 만들고, 보행자 중심의 도시로 다시 설계하자는 제안이다.

지난 1월 30일, 이 정책 제안의 계기가 된 보광동 일대에서 홍 대표를 만났다.

재개발 후 아파트 들어서면 벌어질 일

"같은 면적의 보광동 일대와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항공사진을 겹쳐보았다.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

기존 도시 조직이 제공했던 다양한 경로 선택권이 사라지고, 보행자는 단지 외곽의 간선도로로만

우회해야 하는 강제를 당한다." (홍윤주 대표가 올린 정책 제안 중 일부 발췌)

ⓒ 진짜공간 홈페이지(jinzaspace.com)관련사진보기


홍 대표는 과거 보광동 일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원래 살던 곳은 보광동 인근 경리단이었고,

작업실은 해방촌에 있었다. 친구들의 작업실도 근처에 있었다.

그런 그에게 보광동 골목을 활보하는 일은 일상이었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다니며 이상하고

어딘가 찌그러진 동선을 발견하는 일은 그에게 큰 재미였다.

그러나 재개발이 한창인 지금 홍 대표는 "온기로 가득 찼던 동네가

마치 폭탄 맞은 것처럼 쓸려가 허허벌판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보광동의 모습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재개발로 인해 이태원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했다.

"지금 이태원에는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다양함을 품은 마을이 없어지면 우리가 아는 이태원이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이곳이 좋았다. 어떤 이상한 사람도 여기 와서 옷을 이상하게 입어도 아무도 눈총을 주지 않았다."

이곳에서 재개발을 마주한 그는 흐르지 않는 도시의 문제를 몸소 느꼈다.

여기에다가 서울 지하철 2호선 지하철역 반경 500미터를 표시해두고,

동네가 가진 문화를 살펴보는 프로젝트를 통해 아파트 단지의 문화적 공백을 들여다 보았다.

"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심각성을 말하며 지역 문화의 변질을 비판하는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문화의 변질을 넘어 문화가 아예 사라져 버린다."

이는 홍 대표가 '공공보행권 회복'에 대한 정책을 제안한 이유다.

건축가인 그가 정책을 제안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여러 회의나 간담회를 주재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정책을 제안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까지는 개인이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부가 바뀌고 시민들이 대통령 앞에서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언론에 많이 보이더라.

 

대통령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시민들의 말을 메모하고 옆사람에게 확인해보라고 하는

모습에서 그래도 문턱이 낮아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통24에는 누구나 정책 제안을 올릴 수 있다.

누군가 올린 정책 제안에 30일 내에 30명 이상이 공감하면 '제안 숙성' 단계로 넘어가

논의를 거쳐 행정안전부 등 각 부처가 검토를 해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

현재(2월 5일) 그의 제안은 '제안 숙성' 단계에 가있다.

홍 대표가 제안한 것과 비슷한 내용의 시민 정책 제안은 2025년에도 존재했다.

강남·서초·송파 등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공공보행로에 울타리를 세우자,

한 시민이 서울시 시민 제안 창구(상상대로 서울)에 '아파트 내 공공보행로

지정 부분 불법 보행 차단 근절을 위한 법안 개정'이라는 글을 올린 것이다.

홍 대표는 그 제안에서 더 나아가 아파트 단지를 전부 개방하자고 말한다.

그는 공공보행권을 시민들의 권리로 보았다.

"원래 우리 모두가 다닐 수 있는 공공 도로다.

나도 세금을 낸 시민으로서 그 도로에 대한 권리가 있다."

아파트 담장 허물면 벌어질 일

최근 강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선 입주민에게만 전용 반려견 목줄을 나눠주며

입주민이 아닌 이들을 노골적으로 배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홍 대표는 이를 두고 "울타리를 올려 동네를 단절시키면 소외만 일어날 뿐"이라며

"아파트 단지 내에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커뮤니티 센터를 만드는데 그러한 인위적인 프로그램은

길 위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소통의 역동성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홍 대표는 아파트 단지를 모두 사유지로 묶는 기존의 '빗장 커뮤니티'에서 탈피해

단지 내 도로는 공공이 관리하고 건물만 민간(입주자대표회의 등)이 관리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공공 도로가 재개발 아파트 단지에 포함될 경우 완전 개방을 법적으로 의무화해

입주민이 아닌 이들을 차별하지 않도록 '보행권 조례' 제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홍 대표는 이러한 조치가 입주민에게도 좋다고 말한다.

분양비나 관리비 부담을 덜 수 있고, 고립된 섬이 아닌 자연스런 동네 산책로이자

쉼터 같은 단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더해 "이것이 탄소 중립 시대에 걸맞은 보행 중심의 교통 체계 확립에도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에선 꿈처럼 들리는 이러한 제안을 두고 홍 대표는 "(정책 제안 내용을)

<진짜공간> SNS(@JinzaSpace)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제안 숙성' 단계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시민 30명도 금방 모이기도 했다.

그는 "같은 (건축) 업계가 아니어도 많이들 (이 사안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의 제안은 길을 중심으로 한 도시 공간의 가능성을 환기시킨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곳들은 모두 경리단길, 망리단길, 삼청동길처럼

길을 중심으로 이야기된다. 사람들은 길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이 길을 걸어다니면서

다채롭게 즐기는 걸 여전히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고성산불 30년] 1. 화마가 지나간 자리 /강원도민일보

산불 대응 시스템·관리체계 방향 모색나선다


대형산불 앞 무력 터전 상실
외적 복원 끝마친 30년 세월
일상적 트라우마 고통 여전

봄바람이 거세지는 날이면 마른 낙엽 냄새와 연기 같은 기척만으로도 당시의 공포가 되살아난다고 했다. 1996년 고성 산불은 한국 사회에 대형 산불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불이 지나간 자리는 숲이 됐고 마을도 다시 일어섰지만 그날이 남긴 상처와 교훈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강원도민일보는 1996년 고성 산불 이후 동해안을 중심으로 반복돼 온 대형산불과 최근 경북 산불까지 이어진 흐름을 바탕으로 산불 대응 시스템과 산불 관리 체계의 문제점을 짚는다. 특히 현장에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는 예방 체계의 한계를 점검하고, 대형 산불로 비화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숲의 구조적 취약성과 복구 과정까지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 아울러 해외사례를 통해 보다 실효성 있는 산림화재 관리체계의 방향을 모색한다. 바람만 불어도 공포” 삶 옥죄는 그날의 흉터

▲ 30년전 대형 산불로 폐허가 됐던 함종 어씨 집성촌이 20일 평화롭고 고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오른쪽 사진). 1996년 4월 고성 산불로 폐허가 된 함종 어씨 집성촌 모습. 방도겸 기자 1996년 봄, 고성을 삼킨 불길은 마을의 지도를 바꿔놓았다. 목숨은 건졌지만 집이 타고 숲이 무너졌다.

축구장 5269개 면적에 해당하는 산림 3762㏊가 불에 탔고, 3개 읍면 14개리 건물 227동, 가축·농기계 등 5만 3423점이 잿더미가 됐다. 숫자는 차갑지만 그 내면에는 뜨거운 연기와 재의 기억, 그 후 삶을 일으켜야 했던 주민들의 눈물이 담겨있다.

20일 찾은 고성군 죽왕면 삼포1리.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마을은 이제 화마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복구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기억하는 그날은 가슴 속 아픔으로 남았다. 그들은 지나간 이야기라면서도 ‘억울하게 보낸 세월을 누가 알겠느냐’며 당시를 회상했다.

군부대에서 시작된 불은 강풍을 타고 산을 내려와 순식간에 마을을 덮쳤다. 평화롭던 일상은 단숨에 공포로 바뀌었고, 마을 전체가 ‘탈출과 대피’의 기억으로 묶였다.

삼포1리 주민 김숙자(83)씨는 그날 집을 잃었다. 김 씨는 “살아야 하니 몸만 겨우 피했는데 돌아와 보니 부지깽이 하나 없이 다 타서 남은 게 없더라. 너무 속상하고 억울해서 땅을 치고 매일 울었다”고 말했다.

복구는 단지 집을 다시 짓는 일이 아니었다. 무너진 삶을 일으켜야 했다. 김 씨는 “장사해서 2000~3000원이라도 벌어보려고 매일 속초시장을 왔다갔다 했었다”며 “민박을 하려 했지만 잘 안 됐고, 소도 모두 죽어버리는 바람에 콩이든 팥이든 밭에 심어서 나는 건 다 갖다 팔았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양 무릎이 다 고장났다”며 울먹였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49세대 140명으로, 이들은 주택이 복구될 때까지 마을회관과 구판장, 군용막사, 컨테이너, 이웃집 등을 전전하며 불편한 난민 생활을 해야 했다. 빚을 내어 집을 다시 지어야 했고, 임산물이 불에 타 생계가 끊기는 어려움도 겼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폐허가 됐던 산은 다시 숲의 모습을 되찾았다. 큰 나무들 사이로 덜 자란 나무들만이 그날의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산불을 ‘과거의 사건’으로만 묻어두지 못한다.  [고성산불 30년]  2. 이재민들의 삶

송이·벼농사 등 생계소득 단절…정부 이재민 지원 미흡
산불 뒤 수년간 2차 재난 이어져
국가배상 주민 신청액 절반 안돼
항의 시위에도 요구사항 미반영


“이게 우리집 소 새끼여. 12마리가 불 타 죽었어.”
20일 고성군 삼포1리 노인회관에서 만난 주민 김숙자(83)씨가 불에 타 죽은 소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김 씨는 1996년 고성 산불로 집과 창고, 농기계와 기르던 가축까지 모두 잃었다.

1996년 고성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은 49세대 140명. 이들은 주택이 복구될 때까지 마을회관과 구판장, 군용막사, 컨테이너, 이웃집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당시 삼포1리 이장이었던 어명헌(65)씨와 고성군청 공무원들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주민들을 깨운 덕에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들은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말았다.

같은 해 5월 11일 중앙사고대책본부의 지원대책안이 발표됐다. 국방부의 귀책 사유가 공식 인정돼 제1군사 배상심의위원회가 피해신청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기록된 ‘동산 및 건축물 피해 국가배상내역’을 보면, 주민 신청액은 80억 2100여만원인데 반해 실제 배상이 이뤄진 인용액은 28억 836만원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화자(61)씨는 “보상금 2700만원이 나왔지만 집을 짓는데는 한참 모자랐다”며 “급한대로 남의 돈 3000만원을 빌려다 집을 지었다”고 말했다.

어기봉(90)씨도 “나는 금반지 하나 겨우 건지고, 땅문서도 등기도 다 타버려서 지금까지도 등기 없이 살고 있다”며 “누구는 새로 집을 지어주기도 했다는데 나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집을 못 지어준다고 해서 내 돈 들여 지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당장 생계 소득원이 끊어진 것도 문제였다. 당시 주민 약 500세대가 산에서 나는 송이와 산채를 주요 소득원으로 삼고 있었던 만큼, 대형 산불은 치명적인 악재였다. 송이산이 전부 불에 타면서 향후 20~30년간 재생산도 불가능해졌다. 주민들은 배상을 요구했지만 중앙사고대책본부의 배상결정액은 주민 신청액 대비 송이 10% 미만, 임목 5~26%으로 결정됐다.

결국 피해 주민 350여명은 그해 죽왕면 오호리 어린이집 부지 인근에서 산불피해 현실보상을 위한 재심의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고, 군부대와 정부 관계부처에 항의 방문했다. 그럼에도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민들은 임목 289건, 송이 154건 등 총 443건의 민사소송을 접수했다.

정상적인 삶도 무너졌다. 전기는 물론 간이상수도가 폐쇄돼 상수도 공급이 끊겼고, 밭을 갈 소와 농기계가 전부 타버려 영농 준비가 한창이던 봄철 농민들은 벼농사를 짓지 못했다.

또 해수욕장 주변 해송 피해로 관광수입에 의존하던 군민들의 생계가 흔들리면서 지역 경기 전반으로 타격이 번졌다.

이수성 국무총리가 고성군을 찾은 날 도 행정부지사가 특별재해지역 선포를 건의했고, 이영구 고성군수와 고성군의회도 서신을 통해 건의했으나 ‘산불은 발생빈도가 높고,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삼포1리 이장이었던 어명헌(65)씨는 “국무총리를 비롯해 유력 정치인들이 마을을 찾아왔지만 주민들이 요구한 사항이 실제로 이뤄진 것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1996년 고성 산불은 건축물 227동 45억 2800만원, 동산 5만 3000여점 92억 2100만원이라는 공식 피해 기록을 남겼다. 불은 꺼졌지만 이후의 시간은 주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또 다른 재난이었다. 

 

[고성산불 30년] 3.‘재앙’을 막는 법

고성산불 1000명 투입 역부족
인재 발생 화재 75% 실형 드물어


“기후위기 환경 대비 교육 중요” 불 붙은 뒤 이미 늦어…산불 예방·관리로 악순환 끊어내야” 대형 산불은 한번 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1996년 고성 산불도 그랬다. 강풍을 탄 불길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산림·소방·진화대원 등 1000여명이 투입됐지만 불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진화 헬기와 살수차 등 대응 장비는 대폭 강화됐지만 기후위기 속 산불은 더 대형화하며 반복되고 있다. 불이 ‘재앙’으로 번지지 않도록 예방과 초기 대응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 1996년 대형 산불로 황폐해졌던 고성군 죽왕면의 한 야산(왼쪽)이 30년이

지난 2026년 1월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며 화마의 상처를 회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산림·소방·진화대원·공무원 총동원에도 속수무책

1996년 4월 23일 오후 4시 20분쯤. 산불 현장에 초속 20m의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 사격장 일대에 머물던 불길이 순식간에 숲으로 번졌다. 오후 5시 10분쯤 산림청 헬기 1대가 현장에 도착했고, 이어 군 헬기 1대도 투입됐지만 거센 바람과 기상 여건 탓에 군 헬기는 철수했다. 산림청 헬기가 약 두 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지만 일몰로 더 이상의 진화는 불가능했다. 오후 7시 10분쯤 헬기는 속초비행장으로 철수했다.

불길은 이후에도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심우석 당시 고성부군수가 군청에 총동원령을 내려 읍면동 주민들에게 안전지대로 대피할 것을 지시했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민가 주변에 배치됐고, 군 동력펌프와 소방차가 불길을 막기 위해 연신 물을 뿌리며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밤 11시 40분쯤. 강풍을 탄 불길이 순식간에 마을을 덮쳤고, 목숨의 위협을 느낀 소방대원과 군청 직원들은 불길에 쫓겨 안전지대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죽왕면의 가옥들은 차례로 불길에 휩싸였다.

당시 산불 현장에서 총괄 지휘를 맡았던 권순호 제7대 산림국장은 “민가를 지키기 위해 소방차를 배치해 밤새 물을 뿌렸지만 속수무책이었다”며 “그렇게 많은 인력이 동원됐는데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 열기에 민가 3채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 대형 산불 10건 중 7건 실화… 사후 처벌은 한계

1996년 고성 산불은 사람의 부주의로 시작된 인재(人災)였다. 군부대 소속의 군인이 불량 판정된 TNT(강력폭약) 525발을 폐기 처리하는 과정에서 규정을 무시하고 안일하게 처리하다 발화했다. 실화로 인한 산불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2일 강원산불방지센터에 따르면, 1996년 고성산불 이후 2022년 동해안과 양구 산불까지 강원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건수는 총 32건이다. 이 중 입산자 실화, 쓰레기소각, 담뱃불 실화 등 사람에 의한 실화가 24건으로 75%를 차지했다.

문제는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이유로 실형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지난해 사망자 27명, 부상자 40명, 피해면적 9만 9289㏊, 3500여명의 이재민이라는 역대급 대형 산불을 낸 경북 산불 피고인들 역시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사후 처벌’만으로는 산불의 악순환을 끊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재판부는 “사망과 부상 등 인명 피해를 피고인들의 행위와 연관을 지으려면, 상당한 인과관계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어야 하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명확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 대형 산불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대형 산불 관리 체계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후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예방과 초기 대응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채희문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고성 산불 이후 2000년대만해도 예방·대응·대비·복구 중 40~50%를 예방에 투자했다면, 지금은 예방 비중이 10%대로 낮아졌다”며 “대형 산불이 발생한 뒤에는 이미 늦다. 기후위기로 산불이 대형화되기 쉬운 환경이 된 만큼 교육을 포함한 예방 시스템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성산불 30년] 4. 재난의 반복 산불규모 따라 지휘기관 제각각 ‘컨트롤타워가 없다’


고성산불, 국가 산불대응체계 시작점
30년 간 진화차·장비 대폭 강화에도
2022년 울진·삼척, 지난해 경북 등
대형산불 초동대응 실패 지적 잇따라
시군구·산림청·소방당국 지휘권 분산
중앙정부 재난관리 시스템 부재
복잡한 대응 매뉴얼 현장 혼선 가중
분산된 명령권 일원화 구조변화 시급


국가 단위 통합 지휘센터 도입 제언 고성산불은 산불이 재난이 될 수 있음을 알린 사고다. 1996년 산불에 이어 2000년 고성산불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정부는 대형산불의 위험성을 인지해 산불 대응 예산을 크게 늘렸다. 고성산불은 정부가 산불 대응 체계를 갖추게 된 ‘시작점’인 셈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진화 장비와 인력 등이 대폭 강화됐지만, 지난해 경북에서 ‘괴물 산불’로 불린 초대형 산불이 발생하면서 현 대응 체계의 한계점이 드러나게 됐다. 산불 대응 체계를 일원화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지난해 3월 25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뉴스 ■ 대형 산불 대응 체계 미흡의 결과

1996년 고성 산불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산불 진화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지자체 임차 헬기가 없어 산림청과 군 헬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산불 진화차도 없었다. 진화대원들도 등짐 펌프 등 필수 장비가 한정됐다. 대형 산불 매뉴얼은 없었다.

이 같은 인프라의 부족은 대형 재난의 씨앗이 됐다. 1996년 4월 23일 오후 12시 55분쯤. 산림청 헬기가 양양에서 산불 진화를 마치고 고성 산불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통신이 전달됐다. 고성 산불감시초소로부터 산불 발생 신고가 들어온지 약 30분 만이었다. 당시만 해도 강한 바람이 불지 않아 불길은 처음 산불이 시작된 군부대 안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20분이 지나도 헬기가 도착하지 않자 당시 심우석 고성부군수는 산림청과 군에 헬기 지원을 재차 요청했다. 약 1시간이 지난 오후 2시 30분쯤 도 상황실은 ‘평창 대형산불 진화지원으로 산림헬기 지원 불가’를 통보했다.

이날 강원지역에는 고성뿐 아니라 평창, 양구, 인제 등에서도 산불이 동시다발로 발생해 한정된 헬기를 어디에 먼저 투입해야 할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 안중걸 전 강원도청 산림국장 당시 도청 상황실에서 산불 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안중걸 전 강원도청 산림국장은 “고성 산불은 초반만 해도 현장에 바람이 거세지 않았고, 군부대 화재는 비교적 자주 발생해 긴급성이 낮게 판단됐다”며 “반면 인제 진동 계곡 등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보호 가치가 높아 헬기를 그쪽으로 돌리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고성군은 전 직원이 현장에 투입돼 군부대 주변에 소방차와 함께 방화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야간이 되며 거세진 강풍으로 인해 연기가 자욱해졌고, 불이 붙은 솔방울이 사방으로 튀면서 방어선은 금세 무너졌다. 이날 오후 5시 10분쯤 산림청 헬기가 뒤늦게 투입됐지만 강한 바람과 일몰로 2시간 뒤 철수하면서 불은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김영석 고성군 산림조합장

당시 고성군 산불 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김영석 고성군 산림조합장은 “초기 진화가 안돼서 좀 지연됐는데, 야간이 되면서 갑자기 초속 18m의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며 “불과 몇 시간 만에 바다까지 내려왔으니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전선이 불에 타 통신망이 끊기는 고립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지만, 김 조합장이 통신 가능한 지역으로 초소를 옮기는 기지를 발휘해 도와 다시 연락이 이어지게 됐다.

■계속되는 참사

문제는 현재다. 이후 헬기와 산불진화차 등 진화 장비가 대폭 강화됐지만, 대형 산불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대형 산불의 대응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다.

산불은 강풍과 건조한 날씨 속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인력과 장비를 전략적으로 배분하고 집중 투입하는 대응 체계와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발생한 경북산불 현장에서도 시·군·구, 산림·소방당국 간 혼선이 발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산불 이재민들 사이에서도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대피 경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대피 명령이 지연되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중앙 부처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제31대 산림청장을 역임한 김재현 건국대 교수는 월간 시사잡지 ‘사상계’를 통해 “경북 산불의 경우 중앙정부의 시스템이 충분히 작동했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객관적으로 나타난 것을 보더라도 산불 헬기의 주력 기종인 러시아산 카모프의 부품 조달이 어려워 8대가 격납고에서 나오지 못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 정지되어 중앙 컨트롤타워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못했을 것이라 예상된다”고 했다.

2022년 울진·삼척 산불 때도 초동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 감사원이 2024년 발표한 ‘재난 및 안전관리체계 점검’ 감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산불에 ‘초동 대응 부실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재난관리체계를 손질하고 인프라를 확충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대응 혼선이 반복됐다는 설명이다.

당시 산불 발화 지점이 CCTV에 찍히고 있었지만, 감시 인력이 없어 초기에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불길이 강원도로 번지며 무선기지국이 파손돼 통신망이 마비됐다.

지자체의 대응도 미흡했다. 24시간 상황실 운영 등 제도적 틀은 갖춰졌지만 인력 부족과 형식적인 교육·훈련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행안부는 2024년 4월 모든 지자체 상황실에 전담 인력을 배치하겠다고 했지만, 감사 결과 지자체 절반은 여전히 당직자가 겸임 근무 중이었다. 당직자 중 재난 교육을 받은 사람도 20%에 채 미치지 못했다.

재난 대응 매뉴얼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감사원은 “현재 지자체별로 평균 26.9개의 매뉴얼을 관리하고 있지만, 한권당 600쪽에 이르고 재난유형별로 매뉴얼이 따로 존재해 복합·신종 재난 발생 시 어느 매뉴얼을 적용할 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각 부서의 행동 요령을 한 권으로 통합하고 실전형 불시 훈련을 강화해 훈련 결과가 현장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1996년 고성 산불 발생 직후 고성군 죽왕면 운봉산 일대. 산 곳곳의 불탄 자국이 그날의 상흔을 보여주고 있다. 고성군청 제공 ■ 산불 대응 체계 일원화 필요성 대두

‘초동 대응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산불 대응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해당법 시행령에 따라 산불 대응 주관기관은 산림청이 맡고 있다.

문제는 산불 규모에 따라 지휘 기관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산림보호법’ 제37조 및 제38조에 따르면 중·소형 산불의 경우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국유림관리소장이 맡고, 대형산불의 경우 시·도지사가 각각 산불현장 통합지휘본부장을 맡는다. 산림청은 중·소형 및 대형산불 진화 시 지휘가 아닌 지원 업무만 수행하고 있다. 1000㏊ 이상의 초대형산불이 발생한 경우에만 산림청장이 통합지휘하게 되지만, 이마저도 시·도 단위로 위임할 수 있는 구조다.

결국 산불 진화의 책임과 지휘권은 대부분 지자체에 맡겨져 있지만, 자원은 산림청에 있어 대응 체계가 일원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 산불 대응 지휘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현행대로라면 일선 현장의 지휘체계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채희문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미국의 NIFC(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처럼 산불 대응 지휘 체계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며 “NIFC는 전국단위로 필요한 항공기나 인력을 모두 센터에서 조정해 배분하고, 주로 국토부와 산림청 소속 직원들로 구성돼 관계 부처 간 대응과 협력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정한 기준에 따라 누구나 대형산불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매뉴얼도 객관화하고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현정 기자

소나무 일색 조림이 산불 더 키웠다

 

/이동수기자

 

[강원 산불 30년…잿더미에서 숲을 찾다]
침엽수 산불 취약…반면 활엽수 확산 억제
동해안 소나무림 집중돼 산불 피해 대형화

◇강릉시 옥계면 산불 복구 현장. 곳곳에 푸른 빛을 띄고 있지만 나무는 많이 자라지 않아 여전히 산불의 여파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강원일보 DB.

 

동해안 산림의 소나무 중심 조림 방식이 대형 산불 확산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최근 발표한 산불 확산 위험 요인 파악을 위한

산림연료 특성 분석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침엽수는 활엽수보다

발화 온도가 낮고 연료 수분 함량 감소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과학원은 연구를 통해 솔잎과 송진, 마른 가지 등 가연성 물질이

지표면에 쉽게 축적돼 불이 붙으면 화염 길이와 확산 속도가 급격히 커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 같은 확산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참나무류 등 활엽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참나무류 등 활엽수는 수분 보유력이 높아 불길 확산을 늦추는 ‘완충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차이는 또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2025년 발표된 의성 산불 피해지 위성영상 분석 결과 침엽수림 피해 강도가

활엽수림·혼효림보다 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0년 기준 산림의 공익적 기능 가치를 연간 259조원 규모로 추산됐다.

산불 예방과 수원 보호, 탄소 흡수 등 생태·재난 대응 기능이

목재 생산 가치를 크게 웃돈다는 분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산불 이후 복구 과정에서 소나무 중심 식재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앞으로 개선해야 할 과제로 지적했다.

 

과거에는 생육 속도가 빠르고 목재 활용성이 높다는 이유로 침엽수 조림이 확대됐지만,

기후변화로 산불이 상시화된 현재와는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엄정헌 강릉원주대 조경학과 교수는 “소나무는 송진 성분 때문에 기본적으로 불이 잘 붙고,

한 번 타기 시작하면 빠르게 번지며 쉽게 꺼지지 않는다”며

“실제 산불 피해 조사에서도 소나무만 조림된 지역이 혼효림보다 피해가 훨씬 컸다”고 말했다.

 

이어 “인공조림이 필요한 곳과 자연 복원을 맡길 곳을 구분하고,

단순 수종 대신 혼효림 구조로 전환하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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