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도 파면됐다
군사독재 시절 전두환 부인 이순자보다 더한 권력 누려...
이제 죄상 심판받을 시간
/이충재의 인사이트

헌재의 윤석열 파면 선고로 '김건희 시대'도 종언을 고했습니다.
사실상 윤석열과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며 권력을 휘둘러온 위세가 한순간에 꺾였습니다.
정부 수립이래 김건희 만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온 영부인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군사독재 시절 치맛바람으로 이름을 날린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조차도 누리지 못한 권력을 누렸습니다.
이제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 배우자가 권력을 남용하고 범죄를 저질러온
그간의 죄상을 심판받아야 할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김건희가 이 정권을 '나의 정권'으로 여긴 뿌리는 지난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김건희는 윤석열 선거 운동을 막후에서 실질적으로 조종하고 관리했습니다.
캠프를 꾸리거나 영입할 인사들을 직접 고르고, 가족의 돈으로 선거자금을 대기도 했습니다.
김건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은 대선 본부기지나 다름 없었습니다.
윤석열도 "선거라는건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하지 않느냐"며 김건희 역할을 인정했습니다.
김건희가 그간 "내가 정권 잡으면" "제가 이 자리 있어 보니까"
등의 말을 했던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V1, 무속, 마리 앙투아네트... '나의 정권' 으로 여긴 김건희의 몰락
윤석열 취임 후 김건희가 실세라는 징후는 일찌감치 포착됐습니다.
윤석열 부부 첫 해외순방에 민간인이 동행해 비선 보좌와 특혜 파문이 일었는데,
김건희와 오랜 친분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국정 주요 현안에 대해 대통령 말고도 김건희에게 별도의 보고서가 올라가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대통령실 내에선 김건희가 직접 발탁한 '김건희 라인'이 실세로 군림했고,
국가 정책과 인사에 개입한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에 알려졌지만 '김건희 V1, 윤석열 V2'라는 말은 정권 초기부터 용산에서 공공연히 돌았다고 합니다.
김건희를 상징하는 것 가운데 '무속'은 빼놓을 수 없는 단서입니다.
검건희가 "내가 영적인 사람이라 도사들하고 같이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건진, 천공, 무정 등 수많은 도사들이 입길에 오르내렸습니다.
대선 TV토론 당시 손바닥 '왕(王)'자를 비롯해서 대통령실 이전을 앞두고
풍수지리 전문가가 용산 국방부를 드나든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청와대 뒤 북악산은 '대가리'가 꺾여있다"는 자신의 경고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배경이 됐다고 말한 명태균은 김건희를 '앉은뱅이 주술사'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김건희의 각종 비리와 의혹은 외신에서도 숱한 별명을 낳았습니다.
명품백 수수 사건이 터지자 전 세계 유력 매체들이 상세히 기사를 다뤘는데,
김건희를 사치와 방탕의 대명사인 '마리 앙투아네트' 또는 '단두대 황후'로 표현했습니다.
명품백에 더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알려지자
'사기꾼' '전과자'라고 지칭한 언론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유력언론은 김건희가 화려한 옷을 자주 갈아입는 것을 빗대어
'빨래건조대'라는 별명을 붙였고,
영국 언론은 비상계엄 선포 후 김건희를 강한 권력욕으로 몰락의 길을 간
희곡 '맥베스'의 여주인공 '레이디 맥베스'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내란 사태로 정권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공동정권 운영자인 김건희는 조바심을 드러냈습니다.
윤석열이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되자 "마음같아서는 이재명도 쏘고 나도 자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분노했고,
명태균 게이트를 통해 집권여당 공천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자
"난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다"고 말하는 육성녹음이 공개됐습니다.
일각에선 계엄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도 김건희 작품 아니냐는 얘기가 나옵니다.
'나의 정권'이라는 정치적 자의식을 가진 김건희가 장기간 이뤄진
비상계엄을 몰랐을 리 없다는 의구심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윤석열 임기 내내 나라는 '김건희 리스크'로 시끄러웠습니다.
김건희의 온갖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김건희 특검법'은 네차례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고
국가기관은 김건희를 보호하려다 참담하게 망가졌습니다.
결국 윤석열 정권 붕괴로 김건희 문제는 마침내 사법 절차의 영역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윤석열은 김건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여론이 제 처를 많이 악마화시켰다"고 변명했지만,
실은 윤석열과 김건희 모두 대한민국을 도탄에 빠지게 한 '악마'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법적 차원의 구마(驅魔) 또는 퇴마(退魔)의식이 필요해 보입니다.
윤석열 "내 아내는 내 말도 안 듣는 사람"
대선 캠페인 때부터 김건희를 둘러싼 논란이 거듭되자 정무팀을 붙이자는 참모가 있었지만
윤석열은 "내 말도 안 듣는 사람이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윤석열과 종종 폭탄주를 즐겼던 전직 장관 A는 "고비고비마다 윤 전 대통령이
자신과 함께 결정하고 판단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김건희의 말을 전했다.
윤석열도 "대통령이 된 일등 공신을 한 사람만 꼽으라면 내 아내일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실제로 '김건희 파워'는 임기 내내 용산 대통령실을 휘감았다.
윤석열이 한남동 관저만 다녀오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주말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대통령실 참모들이 있었다고 한다.
대선 공약으로 '제2부속실 폐지'를 내세운 것이 오히려 패착이 됐다.
윤석열이 2021년 12월 22일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그런 뜻을 밝혔고,
4일 뒤에는 김건희도 "남편이 대통령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거짓말이었다. 중앙일보는 "정권이 출범하자 김 여사의 지시가
윤 전 대통령의 지시와 섞여 제 1부속실을 통해 내려왔다.
거부하기는 더 어려워졌고, 김 여사를 보좌하는 직원들의 힘은 점점 더 세졌다"고 썼다.
지난해 총선 일주일 뒤 '박영선 국무총리, 양정철 비서실장'설이 나왔는데, 보도의 진원지는 이른바 '여사 라인' 참모였다.
대통령실의 한 수석이 '김건희 특검법'관련 내용을 보고했을 때
윤석열은 "차라리 나를 탄핵하라고 해라"고 맞섰다.
2024년 11월 7일 기자회견에서 부인 얘기가 나오자 윤석열은
"앞으로 부부싸움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부싸움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국민들이 본 것은 난데없는 비상계엄이었다.
계엄의 배경에 대해 윤석열은 부정선거 등등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여러가지 대지만
진짜 이유는 아내가 아니었겠냐는 말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관저에서 나오는 김건희, 곧 검찰 소환
서울지검 명태균사건 전담수사팀이 윤석열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을 요구했다고 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최소한 두 차례의 구두 요청이 윤석열이 대통령에서 파면되기 전인 4일 이전에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윤석열은 불소추 특권을 적용받는 현직 대통령이었고,
김건희도 보안시설인 대통령 관저 내에 있었기에 대면 수사의 어려움이 있었다.
두 사람이 곧 자연인 신분으로 관저에서 퇴거하면 수사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촛불행동,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로부터 지난해 11월 7일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2022년 6월 국회의원 재보선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명태균의 이른바 '황금폰' 포렌식 과정에서 김건희가 명씨에게 "당선인이 지금 전화했어요,
(김영선을) 그냥 밀으라고 했다", "잘될 거니까 지켜보자"고 말한 녹음 파일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건희 측은 경향신문에 "(검찰이) 상황을 공유하고 의사 타진만 한것"이라며
"구체적인 일정을 조율 중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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