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진악산(732m)
0 위치 : 충남 금산군 금산읍, 남이면
0 코스 : 원효암~~관앙불봉~737봉~도구통바위~영천암~보석사
0 일자 : 2010. 3. 28(일)
0 시간 : 3시간 30분 /맑음
<산행시간)
06:00 태백가든
09:50 원효암입구 /정상2.5km
09:55 원효암 주차장
10:05 원효폭포
10:10 계단 /정상710m, 원효암84m, 폭포150m
10:15 원효암
10:35 전망바위
10:40 밧줄
10:48 삼거리 /원효암2.1km, 광장2.8km, 정상0.2km
10:49 관음굴 삼거리 /관음굴170m,정상150m,광장2.85km
10:50 전망바위
10:55 관앙불봉(732.3m) /광장3.0km,보석사4.4km, 개삼터3.4km
11:10 암릉 전망바위
11:25 안부삼거리
11:35 737봉 /정상1.8km,보석사2.6km /11:55중식 12:15출발
12:15 밧줄
12:25 묘
12:30 도구통바위 /정상2.3km,보석사2.1km
12:35 묘지
12:45 산책로입구 /도구통바위0.65km,보석사1.18km
13:55 영천암 /정상4.0km,보석사0.4km, 영천암 /진악산산림욕장
13:00 육각정자 /영천암360m,보석사700m
13:05 육각정자 /영천암840m,보석사360m
13:07 목교
13:10 은행나무
13:15 보석사
13:20 의선각
13:24 일주문
13:15 주차장 /14:00출발
<들어가기>
진악산은 금산을 수호해주는 진산으로 금산의 살아있는 역사이며 삶의 터전이다.
진악산 이름은 ‘깊고 큰 풍류가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금남정맥은 육백고지(654m)를 지나 북으로 이어지다가 590m봉에서 북동으로 갈라지는
능선이 식장지맥이다. 이 식장지맥이 약 3km 거리 490m봉에 이르면 남동으로
분가시키는 능선이 있다. 이 능선이 약 4.5km 거리에다 들어 올린 산이 진악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진악산은 원래 큰 배였다고 전해진다.
태초에 천지개벽이 되어 큰 물난리가 났을 때 금산을 지나다가
물에 잠기지 않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그만 눌러앉아 산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부터 나라의 안위를 봉화로 알리는 봉화대가 있었으며,
조선시대 임진년 8월(1592)의 금산벌 싸움에서 봉조헌 선생과 함께 싸우다 순국하신
기허당 영규대사는 진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석사에서 수도를 했고
그 인연으로 보석사 내의 의선각에 영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보석사 들머리에 영규대사의 충혼을 기리는 위병승장비가 세워져 있다.
충남에서 서대산(904m), 대둔산(878.9m), 계룡산(845m)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충남의 산들 치고는 높지만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비교적 때 묻지 않은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다.
금산 특산품인 인삼 경작을 시작한 개삼터가 바로 이곳 진악산이다.
<산행기>
태백가든
오랜만에 만나는 산우들이 반갑다
한식을 앞둔 영하의 날씨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진악광장(370m)
금산읍에서 남이면으로 넘어가는 수리넘어재의 진악광장.
진악산 산행은 이곳 수리넘어재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다.
고개를 넘기 직전 주차장 입구에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원효암 입구
수리넘어재 굽이를 돌아 원효암 입구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 입구에 운호당종사비, 안쪽으로 5층석탑, 그 위로는 부도군이 있다
/정상2.5km
원효폭포
가파른 시멘트 길
계곡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서며 급하게 경사를 올린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가는 물줄기가 절벽을 타고 흐르는
원효폭포가 있고 그 위에 원효암이 있다
계단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나무계단
원효암으로 오르는 급경사에 계단이 놓였다
/정상710m, 원효암84m, 폭포150m
원효암
원효사로 불렀으나 보석사의 부속암자로 바뀌면서 원효암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신라 조구대사가 창건했으며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남아있다
산이 깊고 조용하며 개울물은 20여미터의 폭포를 이루어 계곡으로 흘러내린다
전망바위
본격적인 능선산행을 시작한다.
산길은 부드럽게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까지 닿았다.
급경사 암릉에서 마음만 급할뿐 걸음은 더디다
눈앞에 멋들어진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에 서 있는 곳
발아래로 금산 일대의 광활한 평야가 펼쳐지고,
운장산에서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도 멀리 솟았다.
밧줄
암릉으로 이어지던 바위에 약 50m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밧줄이 드리워진 바위를 오르면 능선 삼거리에 이르고
어느새 정상이 눈앞에 다가온다.
삼거리
수리넘어재에서 암릉을 타고 오른 길과
계진리 선골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능선 삼거리에 선다
/원효암2.1km, 광장2.8km, 정상0.2km
관음봉
관음굴(빈대굴) 삼거리를 지나 유독 솟아오른 바위봉우리인 관음봉
가파른 진악산 북사면이 잘 보이는 전망대에 닿는다.
금산 일대가 한눈에 조망되는데, 절벽 중턱에 패인 관음굴이 있다.
/관음굴170m,정상150m,광장2.85km
관앙불봉(732.3m)
30여 평 넓이 헬기장인 진락산 정상이다.
헬기장 오른쪽에는 정상석과 산불감시초소가, 왼쪽에는 삼각점(군산 28)이 있다
옛날 봉수대였다는 정상에는 당시의 석축들이 남아 있고,
남동으로는 금산의 인삼 전설이 전해지는 개삼터가 있다.
정상에서 능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동으로 갈라진 능선은 약 7km 거리에 금산읍을 내려다보는 남산으로,
남으로 갈라진 능선은 약 5km 거리에 마이산을 빚은 다음
여맥들을 모두 금강 지류인 봉황천에 가라앉힌다.
북으로는 금산면 추부면과 군북면 들판지대 너머로 육중한 서대산이 보이고,
그 오른쪽 아래로는 금산읍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남으로는 운장산과 구봉산이 서쪽 너머로는 대둔산 정상이 뚜렷하다.
금산읍 뒤 멀리로는 천태산도 희미하게 시야에 와닿는다.
/광장3.0km,보석사4.4km, 개삼터3.4km
암릉 전망바위
진악산은 겉으로 보기에는 육산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서릉 상의 관음봉 일원과 남릉 일원에는
단애를 이룬 바위 마다 그림 같은 절경이 발목을 잡는다.
원효암 방향으로는 마치 용이 꿈틀대는 듯한 암릉은 한 폭 그림이다.
북동쪽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음지리와 계진리의 널찍한 분지도 일품이다.
안부삼거리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안골을 거쳐 석동리로 가는 길
남동쪽으로 뻗은 주능선을 타고 바위들이 도열한 너덜길을 오른다
상봉(737m)
초라한 돌탑이 기다리는 좁은 공터에 도착.
주봉 보다 5m나 높지만 정상부가 좁아 크게 주목받지 못한 곳이다
북동벽에는 관음굴보다 규모가 큰 자연동굴이 숨어있다,
1/50,000 지형도에는 진악산은 732.3m로 표기되어 정상석이 있다.
그러나 같은 지형도상에 남동쪽 주능선으로 1.3km 거리에 737m봉이 있다.
그래서 정상석이 있는 곳을 '진락산 주봉' 으로 쓰고,
737m봉에는 별도로 상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와같이 실제의 정상표기가 잘못된 이유 중 하나는
금산읍에서 737m봉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락산의 특이한 산세 때문에 737m봉은
남쪽 석동리나 동쪽 성곡리 등 어디에서 보아도 정상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려서서 안부에서 점심을 채린다 /12:15출발
/정상1.8km,보석사2.6km
밧줄
급경사 내리막에 안전을 위해 밧줄이 걸려있고
산허리를 질러 좁은 등로가 이어진 길이다
여름이면 진흙길이라 다소 위험한 구간
묘지
상봉을 뒤로하고 사방이 터진 작은 언덕에 묘지가 있다
단체산악회가 묘지 전체를 눌러 앉아 점심을 먹는 바람에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바로 뒤 737m봉이 가깝게 보인다
도구통바위
능선이 잠시 몸을 낮추는 곳에 기묘한 모양의 도구통바위가 솟았다.
도구통은 충청도 말로 절구를 일컫는다.
남릉 최고의 기암인 높이 6m, 폭 2m 가량의 바위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것 같은 독특한 모양이다.
/정상2.3km,보석사2.1km
묘지
도구통바위를 뒤로하고 남쪽 급사면을 내려서면
100여평 공터에 무덤이 있는 곳을 만난다.
지나면서 참나무가 가득한 숲길
지그재그로 내려서며 계곡길로 들어선다
/도구통바위 0.65km, 보석사1.18km
영천암
묘지를 지나 숲터널 아래 계곡길로 10분 거리에 이르면
산중 암자인 영천암이 나타난다.
영천암은 신라 정강왕 원년(886년) 조구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건물 구조가 거의 옛모습 그대로인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정상4.0km,보석사0.4km,
샘물바위
이제 산길은 능선을 빠져나와 숲으로 숨는다.
여름이면 하늘을 가리는 커다란 참나무숲이 이어지는 길이다
도중에 길옆으로 물이 말라버린 샘물바위가 있다
/영천암360m,보석사700m
육각정자
시멘트길을 따라 봄꽃을 찾아 헤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산을 빠져나왔다.
최근에 만들어진 육각정자 2개소를 지나면
계곡 건너로 숲길이 이어지고, 넓은길은 자동차길이며,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목교가 있다
/영천암840m,보석사360m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65호)
보석사 초입에 높이 40m, 둘레가 10.4m나 되는
1,100년 수령을 자랑하는 노거수가 있다
신라 때 이 절을 지었다는 조구대사가 제자 5명과 함께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서로 붙어 저렇게 큰 하나의 나무로 자랐다 한다.
8 15 해방 때와 6 25 사변 때 이 나무는 크게 울어서 경사와 재난을 알렸다 하여
이곳 사람들이 마을의 수호수로 삼고 사는 나무다.
보석사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다. 신라 헌강왕 11년(885년)에 조구가 창건했는데,
당시 절 앞산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절이름을 보석사라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원당으로 삼았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북 일원 33개 말사를 통괄했던 큰 절이다.
임란 때 금산싸움에서 전사한 승장 영규대사가 수행하며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절 안에는 대웅전, 기허당, 산신각 등의 건물과 부속암자가 있으며,
인근에는 절경의 12폭포가 있다.
대웅전 현판글씨는 병중에도 하루에 천 자씩 썼다는
호남의 명필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기허당
조선시대 임진년 8월(1592)의 금산벌 싸움에서 중봉 조헌 선생과 함께 싸우다 순국한
기허당 영규대사는 진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석사에서 수도를 했고
그 인연으로 보석사 내의 의선각에 영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의선각
대웅전 오른쪽에 의병승장 영규대사가 머물러 수도하던 곳이다.
영규대사가 보석사에 계실때 우거하던 곳으로
창녕위 김병주의 글씨로 된 의선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나무길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절 입구에 쭉 뻗은 전나무 길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오대산 월정사나 내소사 입구에 펼쳐진 전나무 숲보다 길은 좁지만 그런대로 정겹다
향긋한 솔잎 냄새까지 풍기는 길에 산수유가 봄을 알린다
의병승장비
비의 앞면에는 큰 글자로 ‘의병승장(義兵僧將)’이 새겨져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장이 되어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영규대사의 충혼을 기리고자
숙종 5년(1839) 5월 금산군수 조취영이 세운 비로 영규대사의 생애와 활동상이 적혀 있다.
1940년, 일제가 비각을 부수고 비를 땅에 묻어버린 것을,
해방 후에 찾아서 다시 세워놓은 것이라 한다
일주문
새로 입힌 단청이 산뜻한 지붕을 세우고
날렵하게 소나무 숲속에 숨었다
주차장
넓은 주차장 한켠으로 마을주민들이
당귀, 냉이, 고들빼기등 봄나물을 파는 시장을 만들었다
짧지만 암릉을 오르내리며 보낸 하루
함께하신 님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