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산명 : 춘천 구봉산~명봉0 코스 : 구봉산막국수식당~구봉~명봉~갑둔이고개~샘터~유씨묘0 일자 : 2008.12.21(일)0 시간 : 3시간30분 /눈,흐림

춘천을 대표하는 산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강촌 삼악산과 용화산을 친다. 그러나 실제로 이 산들은 춘천시내와는 떨어져 있다. 삼악산은 의암호 건너이고, 용화산은 소양강 건너편이다. 그런데 춘천시내 동쪽을 성곽처럼 에워싸고 있는 대룡산은 삼악산과 용화산과 달리 상세히 소개되어 있지 않다.

대룡산의 모태가 되는 산줄기는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한강기맥이다. 오대산 두로봉에서 계방산 지나는 한강기맥이 1212m봉에 이르면 남으로 흥정산줄기를 내보내면서 청량봉에서 다시 남서쪽 삼계봉으로 이어진다.청량봉에서 북으로 가지 치는 산줄기가 춘천지맥(박성태 저〈신산경표〉참조)이다. 이 산줄기는 율전리 하뱃재에 이르러 북서쪽으로 틀어 응봉산~백암산~가마봉~소뿔산~매봉~가리산을 이어진 다음, 약 15km 더 나아간 899m봉에 이르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남쪽으로 꺾인 춘천지맥 본줄기는 대룡산을 솟구친 다음, 계속 남진해 녹두봉~연엽산~꼬깔봉~봉화산~한치고개~새덕산을 지나 춘천시 남산면 서천리에 이르러 여맥을 북한강에 가라앉힌다.

구봉산막국수식당구봉산휴게소를 지나 고개마루 북쪽은 감정리, 남쪽은 만천리다. 고갯마루에는 구봉산쉼터 전망대가 있고전망대 못미쳐 구봉산칼국수식당이 있다. 식당 앞에서 산쪽으로 도로를 건너면 구봉산 들머리/구봉산 0.6km, 명봉 4.4km, 대룡산 8.2km

갈림길 산길로 2~3분 오르면 묘 1기가 나오고, 휘돌아 이어지는 능선길을 오르면 통나무계단으로 들어선다. 계단을 올라 밧줄 구간을 지나면 급경사 지그재그 산길로 이어지고, 다시 계단으로 오르면 구봉산 남릉 /구봉산휴게소0.8km,구봉산전망대0.4km,구봉산0.2km

산불감시탑 안내판에는 정상으로 표시되어 있지만좁은 암릉을 따라 왼쪽(북쪽)으로 더 진행해야 구봉 정상이다/구봉산전망대0.6km,감정리1.5km,명봉3.8km

구봉(441.3m)춘천 시내가 막힘없는 조망되는 시원함 때문에 매우 인기 있는 곳이다삼각점(내평 313)은 눈속에 묻혀있고 짙은 안개 때문에 발아래는 온통 흰빛...

아쉬움을 뒤로하고다시 산불감시탑으로 되돌아 나온다

구봉산휴게소 갈림길 공무원교육원을 지나 위치한구봉산휴게소에서 오르면 만나는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오르는 길목이기도 하다.능선은 휴식장소로 제격이지만눈이 덮여 그냥 통과/구봉산0.2km,명봉3.2km,구봉산휴게소0.9km,

공무원교육원 갈림길 우측 오솔길을 따라가면공무원교육원이 있고 남릉으로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노송이 군락을 이룬 421m봉다시 넘어 가면 /구봉산0.8km,대룡산6.8km,명봉3.0km,공무원교육원1.1km,

428봉(구일봉) 급경사를 피하느라 절묘하게 이어진 오솔길로 오르면 휴식장소인 428m봉(일명 구일봉)이다.

눈 때문에 방향감각이 흐려졌다어림으로 우측 내리막으로도중에 고사된 소나무가분재같은 모습으로 서있고 /구봉산1.1km, 대룡산6.5km,명봉2.7km,

골프장 안부사거리 거북쉼터(노송지대)를 지나 내려서 굼벵이 마을과 만나는 사거리 안부로 들어선다U자형으로 깊게 패어 있는 안부감정리 주민들이 만천리로 넘어와 춘천장을 보러 다니던 옛길이지만 골프장 공사로 인하여 일부 파손되어 있다. /구봉산2.3km,대룡산5.3km,명봉1.5km,만천리1.2km,감정리1.0km,

만천리 굼벵이 마을 입구는 마치 호리병목 같은 지형이다. 그 안쪽으로는 명봉 북서릉으로 에워싸인 널찍한 분지를 이루고 있고, 분지 안쪽으로는 무려 20여 가닥에 달하는 지계곡들이 부챗살처럼 퍼져 있다. 그 연약한 물줄기들이 마을 입구에서 모두 합수되어 만천천을 이룬다. 만천천은 후평동을 관통해 소양강으로 흘러간다. 만천리는 이름 그대로 ‘솟아나는 샘(우물)이 매우 많은 곳’이라는 뜻이다.

송전탑왼쪽 북서릉을 타고 오르면 가시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는 능선 왼쪽은 강원도 임업시험림(입산통제 푯말)으로 출입금지구역이다. 철조망 안쪽으로는 옻나무가 빽빽하게 식재되어 있고 능선길을 오르면 송전탑이다. 눈덮인 능선골프장으로 헤쳐진 굼벵이마을내려다보며 고도를 올리며 능선을 따른다

작은명봉(506m)송전탑을 지나며조금 급한 오름이 이어진다미끄러운 경사길에 밧줄이 걸려있고산불이 났던 자리엔 가시덩쿨만 가득하다아래로 춘천시내가 조망되는 사방이 확트인최고의 전망대지만 안개로 가득하고...

더 가면 삼거리오른쪽 능선은 만천리와 거두리 경계를 이루는 능선으로 잼버리도로를 건너 후평동을 지나 춘천시내 봉의산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능선은 후평동 주택단지에서 맥이 끊긴다.

명봉(643m) 이어지는 경사길밧줄을 따라 올라서면 암릉이어서 삼각점(내평 312)이 있는 명봉이다

숲으로 에워싸인 정상 북서쪽으로 봉의산과 의암호, 그리고 소양강이 눈에 들어오는 곳이지만온통 흰색뿐... /구봉산3.8km,대룡산3.8km,거두리1.8km,

갈림길 명봉에서 남쪽으로 2~3분 내려서면 635m봉 직전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은 느랏재 방면이다.오른쪽 사면으로 약 50m 내려서면 또 삼거리가 나온다. /명봉0.1km,대룡산3.7km,거두리2.4km,느랏재3.3km

삼거리 오른쪽 지능선 길눈이 덮여 포인트를 잃었다낙엽송이 가득한 숲길을 따라비탈길을 한참이나 내려서면거두리 방아골 방면 샘터 아래 묵밭으로 이어진다. /명봉0.4km,대룡산3.4km,거두리2.1km,구봉산4.2km,느랏재3.4km

갑둔이고개 아름다운 눈길숲에서 만나는 눈세상으로 빠져든다저마다 흰눈을 뒤집어 쓰고 그리고 나무마다 눈이불을 덮었다왼쪽 사면 길 남쪽 능선으로 내려가면 방아골 방면과 만나는 갑둔이고개 이곳에서 대룡산 북릉을 타고 샘터 갈림길~임도~헬기장을 경유해 깃대봉으로 향한다우측으로... /명봉0.7km,대룡산3.1km,거두리1.8km,느랏재3.5km,구봉산4.5km

샘터 삼거리 샘터 왼쪽 사면길이 북릉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낙엽송 숲으로 들어서면 갑둔이고개와 만나는 북릉 안부에 닿는다.

흰눈을 만나러 가는 등산객들이간간이 올라오고사면을 따라 지그재그길로 내려가면묵밭을 만난다 /명봉0.7km,대룡산3.1km,거두리1.8km,

강릉유씨묘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묘지기념탑보다 더 위세가 등등한묘비가 들어섰다

방아골그냥 직진하면 거두리 마을도로눈녹은 길위에서 아쉬운 산행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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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치악산(1,288m)

        ○ 위치 : 강원도 원주군 소초면, 횡성군 강림면        ○ 코스 : 주차장~구룡사~사다리병창~비로봉~헬기장~입석대~황골       ○ 일자 : 2008.12.14(일)        ○ 시간 : 6시간 /맑음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서남으로 가지를 뻗은 차령산맥이 원주 분지에서 크게 솟구쳐서 매화산, 비로봉, 향로봉, 남대봉을 이루며 부채살처럼 C형으로 감싸 뻗으면서 서쪽으로 원주시, 동으로 횡성과 영월군을 나누어 주고 있는 산이다. "치악산에 왔다 치를 떨고 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산세가 웅장하고 험하다.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소백산 국망봉을 오르기 전에 백두대간을 벗어나 형제봉을 거쳐 마대산에 이르러 강원도 영월과 남한강 건너의 태화산을 마주보고, 태화산에서 삼태산. 가창산. 용두산. 치악산. 매화산. 태기산을 거쳐 한강기맥에 이르고, 한강기맥 1052봉에서 뱃재로 내려선 후 응봉산. 백암산. 소뿔산. 가리산. 대룡산. 연엽산. 봉화산을 거쳐 춘성대교 앞으로 내려가 북한강 건너의 월두봉을 마주본다.

    치악산은 동악명산, 가을단풍이 너무 곱고 아름다워 본래 적악산이란 이름으로 불렸으나, 상원사의 꿩(또는 까치)의 보은전설에 연유하여 꿩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치악산 곳곳에는 산성과 수많은 사찰 사적지들이 있다. 남대봉을 중심으로 꿩의 보은지라는 상원사를 비롯해서 서쪽으로 세존대, 만경대, 문바위, 아들바위 등 유래가 깃든 경관이 있다. 그 외 영원산성, 해미산성, 금두산성, 천연동굴과 북원적 양길이 궁예를 맞아들여 병마를 정돈했다는 성남사가 있다. 국립공원중에서 눈꽃과 상고대로 이름난 산은 소백산, 덕유산, 치악산이지만, 비로봉 북릉은 눈꽃 터널을 만나지 않으면 운이 없다고 할 만큼 온통 만발한 설화와 상고대가 장관이다.

06:00 태백가든

    겨울이 깊어가는 새벽찬바람을 맞으며 새벽길을 나선다버스는 어둠을 달려 휴식도 없이구룡사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07:25 구룡사주차장

    차량이 돌아 나가게끔 돼 있는 회차장 하늘위로 보름달이 걸린채미명의 새벽은 밝아온다

07:35 매표소

    왼쪽의 컴컴한 숲길로 들어서면 국립공원 입장권 매표소 이른 새벽임에도 입장료는 살아있다왼쪽은 청소년수련원으로 가는 길우측 구룡3교를 건너서 소나무 숲을 들어서면

구룡계곡

    치악산의 계곡에는 구룡계곡을 위시해서 부곡계곡, 영원사계곡, 관음사계곡, 황골, 상원골, 황지암계곡, 변암계곡 등 7개가 있는데, 부곡계곡은 곧은치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8km를 흘러가는 계곡으로 치악산에서 가장 긴 계곡이다. 계곡입구에는 무단취사, 흡연.샛길출입 등집중단속제를 한다는 무서운 경고가 지킨다

07:40 원통문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적갈색의 줄기를 드러내고 도열한 산사의 새벽 숲길에 일주문을 만난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 불가와 속세의 경계선 같은 원통문원통이란 이르지 않은데 없이 두루 통한다는 뜻. 관세음보살의 육근원통(六根圓通)을 상징하여 붙여진 이름이 원통이라던데, 그런데 다른 절의 '일주문'을 치악산에서는 왜 '원통문'으로 명명하였을까?

07:45 구룡사(龜龍寺) /부도탑, 황장금표석

    희미한 새벽 숲속을 지나 100m 남짓 오르면 구룡사다. 대찰이라 할 수는 없으나 당우들이 앉은 품새가 당당하고 입구에 있는 멋진 2층 지붕의 사천왕문을 들어서층계를 올라서면 대웅전이다주변에 거목들이 어울려 선 분위기가 잠시나마 둘러볼만 하지만 하산길에 보기로 하고 그냥 지나친다.

    구룡사의 전설은 사천왕문 앞의 설명이 더 자세하다. 강원도지방유형문화재 제 24호인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6년(666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대웅전 터에 큰 연못이 있어 그곳에 청룡 아홉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의상대사가 불도의 힘으로 용을 쫓아내고 연못을 메워 절을 지었으며,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 하여 구룡사(九龍寺)라 이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찰이 퇴락하게 되었는데 한 노인이 타나나 절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의 혈을 끊으면 번창할 것이라 하여 혈을 끊었으나 오히려 신도가 더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도승이 거북의 혈맥을 다시 이으라고 하여 그때부터 거북바위를 살리자는 뜻에서 거북을 뜻하는 구(龜) 자를 써서 구룡사(龜龍寺)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07:55 구룡폭포 /구룡소

    구룡사 바로 위 계곡으로 들어서며 검푸른 소와그 끝으로 계곡을 타고 흐르는 폭포를 만난다한여름 비온 직후라면 세찬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폭포가 이어지는 흰색의 물줄기가 아름답다. 1,300여년 전 늙은 스님 한 분(무착대사 또는 의상대사 )이 구룡사를 짓기 위해 연못에 살던 아홉마리의 용을 몰아 낼 때뜨거운 연못의 물에 견디지 못하던 여덟마리의 용은 구룡사 앞산에 여덟 개의 골을 치며 동해바다로 도망 갔고, 그들 중 한마리의 용은 뜨거운 물에 눈이 멀어 미쳐 달아나지 못하고 조그만 연못에 숨었고 이곳이 바로 용소였다고 한다. 숨어든 용은 지난 왜정때까지 용소에서 살다가 그 해 여름 장마때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08:10 탐방안내센타(야영장)

    대곡교를 건너면 약초원이 있고자연관찰로와 등산로로 갈라진다조용한 계곡의 호젖함이 참으로 좋다대곡야영장을 지난 이후로도 널찍한 길이 세렴폭포까지 이어진다. /큰골 비로봉3.6km,세렴폭포0.9km,구룡사1.2km

08:20 철다리 /세렴폭포, 입산통제소

    사다리병창 코스 시작지점의 큰골이 세렴폭포 입구.쇠다리에서 상류로 한 50m쯤 조금 올라간 좌측에 2단으로 꺾여 흐르는 폭포다. 경치는 그리 신통치 못한 야트막한 와폭이다.'세렴(細簾)'은 가늘 '細(세)', 발 '簾(렴)'으로 '가는 대(竹)로 총촘하게 엮은 발'을 말한다. 폭포의 물줄기를 형상화한 말 같다.세렴폭포 바로 건너에 칠선폭포가 있다하산길에 만날 수 있다

08:25 계단길

    쇠다리를 건너면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하산로로 주로 쓰이는 계곡길이며, 왼쪽의 계단길이 사다리병창길이다. 평지길 소요시간보다 3배는 걸린다는데 직선으로 뻗은 계단길은 하늘로 오르는 길 /비로봉2.7km,사다리병창길,비로봉 2.8km, 계곡길고도를 높이는 산길은오를수록 힘을 더 하는데쉴만하면 계단길이 이어지고..겨울바람이 자연에 드는 인간을 거부하는듯 드세기만 한데길옆으로 훼손된 등산로 구간마다 생태복원 중

08:50 쉼터

    우선 200m나 되는 긴 급경사 나무계단길이 기를 꺾는다. 잠시 완경사 길로 숨길을 좀 터주는가 싶더니좁은 암릉을 만난다/비로봉2.2km, 세렴폭포0.5km,구룡사2.6km

09:00 사다리병창(해발 700m)

    치가 떨리고 악에 받친다는 치악이란 우스갯소리는 바로 이 사다리병창길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병창은 "벼랑', "절벽"이란 뜻의 강원도 방언이다. 이 병창처럼 가파른 사다리길 중 어떤 곳은 허공에 매달린 듯 스릴 만점이며, 한 걸음 오를 때마다 뒤로 펼쳐지는 조망이 점차 좋아진다거대한 암벽군이 마치 사다리꼴 모양으로 되어있고 우측은 천길 절벽 암벽이라 내려다보기 조차 힘든 병풍 같은 절벽이다. 그 사이 사이에 자라난 나무들과 어우러져 나무마다 바위마다 독특한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지나면 정비가 잘 된 외길 층계커다란 바위틈으로 좁은 돌길이 계속되는데 우측은 절벽이라서 '추락주의' 라는 표지판이 있는 자연석으로 된 큰 바위의 돌길이다.

09:30 892 안부

    가쁘게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급경사 길빙판이 되어버린 등산로에서버티다 못해 아이젠을 꺼낸다

    바위와 빙판길의 반복숨이 턱까지 허덕인 후에야 겨우정상으로 오르는 긴 계단을 만난다 /비로봉1.1km, 세렴폭포1.6km,구룡사3.7km,

10:10 1170 험한길

    건너 산봉우리 위로 겨우 아침 해가 비치지만응달진 비탈은 계곡에서 찬바람이 올라오는 빙판길바위와 솨파이프에 매달려 겨우 올라서면어찌 보면 떡이나 쌀 같은 것을 찧는 시루 같다고 해서시루봉이라고도 하는 비로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로봉0.3km, 세렴폭포2.4km

    계단 간격이 높다겨우 한쪽다리를 끌어들여야 하는 긴 오르막길

10:25 전망대

    도중에 계단길에 만나는 전망지점건너로 삼봉능선을 바라보는 시원한 등정의 쾌감...한참동안 시선을 빼앗긴다

10:30 비로봉(1,288m)

    돌탑은 북쪽에서부터 칠성탑, 신선탑, 용왕탑 3기가 서 있다. 중앙의 신선탑에서 내려다보는 용왕탑 근처의 풍경이특히 시원스럽고 멋지다.

    겹겹이 쌓인 산들 그 넘어 또 그 넘어에도 산또 그렇게 끝없이 펼쳐진 산들가슴에 담고 느끼기에 너무도 아름다운 산이다/구룡사4.8km, 세렴폭포2.7km, 상원사10.5km, 입석사2.5km

    치악산 주봉은 '毘盧峰(비로봉)'이 아니라 '飛蘆峰'으로 쓴다. 금강산, 오대산, 묘향산 등의 주봉을 '毘盧峰(비로봉)'이라 하는 것은 불교적인 용어로 비로자나('毘盧자那')의 준말이다. 비로자나는 화엄종에서는 '석가모니불', 천태종에서는 '법신불', 진언종에서는 '대일여래'와 같이 각 종파에 따라 달리불리는 부처다. 그러나 모두 부처 중에 으뜸 되는 부처인 석가모니불을 부르는 말이다. 그래서 산에서 가장 높은 봉의 이름을 비로봉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왜 치악산만은 날飛(비), 갈대'蘆'(노)의 비로봉(飛蘆峰)으로 쓰는 것일까?

    탑을 세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원주시내에 사는 조그마한 과자방을 운영하던 용진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현몽을 하였다. '나는 치악산 산신령이다. 너는 지금부터 내가 있는 치악산 시루봉 (비로봉)에 3개의 돌탑을 쌓되 "너 혼자힘으로 직접쌓으라." 하며 탑의 모양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후부터 3년 동안 3일 중 2일은 탑을 쌓고 1일은 장사를 하면서 탑을 완성하기를 몇 번이나 하며 고초를 겪고 세웠다는 탑이다.

10:45 산불감시초소

    소문난 칼바람도 없이 시계가 확트인 하늘참으로 좋아하는 풍광이다계단이 있지만 미끄러운 경사길산불감시초소 앞을 지나 직진/비로봉0.3km,구룡사4.6km,세렴폭포2.5km,상원사10.2km, 입석사2.2km

10:50 헬기장

    헬기장은 눈밭이다지금까지 시야를 가려 주던 나무들이 사라지며 찬란한 치악의 정상이 얼굴을 내민다. 뒤돌아 보면 동화 이야기 속에 나오는 머리에 뿔이 셋 달린 도깨비 머리 같은 모습이다

11:00 토끼봉 갈림길

    급경사 길을 내려와산허리를 돌아가면 사거리/상원사9.6km, 입석사1.6km, 비로봉0.9km

11:10 상원사 갈림길

    빙판길이 끝나면 아늑한 안부긴 시간 버텨온 추위를 벗어낸다휴식도 없이 내달리느라 힘든 산행조금 이른 시각이지만 즐겁게 식사를 한다 원통재를 지나서 곧은치를 넘어 남대봉에 가면 그 기슭에 꿩의 보은 설화로도 유명한 상원사가 있다.

    상원사는 해발 1,100m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사찰로도 유명한 절이다. 국립공원에서 말하는 치악산 전설을 들어보자. -치악산은 예로부터 단풍이 아름다워서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리다가 꿩이 보은을 한 산이라 하여 치악산(雉岳山)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이 설화가 얽힌 절은 남대봉 아래에 위치한 상원사입니다. -한 나그네가 과거길에 올라 적악산 오솔길을 지나고 있는데 구렁이에 휘감긴 꿩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를 측은히 여긴 나그네는 구렁이를 죽이고 꿩을 구해 주었습니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 나그네는 한 여인의 대접을 잘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밤중에 여인은 구렁이로 변해 나그네를 휘감고, 죽은 수구렁이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면서 만약에 동이 틀 때까지 상원사의 종이 세 번 울리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꿩의 보은으로 종을 울려 나그네를 살렸다는 꿩의 보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상원사9.2km, 입석사1.2km, 비로봉1.3km /중식후 11:35 출발

11:55 계곡 갈림길

    경사는 급하지만 도중에 계단길이 있다별 특징이 없는 능선을 따라가다안부에서 우측으로

    계곡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서면상수도보호구역 울타리바위 너덜길을 따라가면축대위로 반가운 산사의 지붕이 보인다

12:15 입석사(720m)

    치악산에는 구룡사, 상원사, 영원사, 입석사, 보문사 5개의 절이 있는데 치악 8경중 기암괴석 입석대가 있는 입석사초라한 암자 같은 크기의 당우정도이며 유난히 큰소리로 흐르는 황골의 계곡뿐이다. 의상대사가 신라 시절 이곳에 와서 수도하였다는 전설도 있는 이 절은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것은 미상인 절이다. 현재의 절은 여기서 약 1km 정도 떨어진 원주 근교에 있던 암자를 옮겨온 절이라는 말도 있는데, 단청을 하지 않은 삼성각 뒤에 쌓아 놓은 이 절의 석가래와 기둥들을 보면 근래에 와서 새로 지은 절 같다. /입석대0.1km,마애불좌상0.2km,비로봉2.5km*. 치악산 8경 1경 비로봉의 미륵불탑, 제2경 보은 전설이 깃든 상원사, 제3경 구룡사와 구룡계곡, 제4경 식물의 보고 성황림, 제5경 사다리 병창, 제6경 호국의 성지 영원산성, 제7경 태종대와 부곡계곡, 제8경 기암괴석 입석대

12:20 입석대 /마애불좌상
    대웅전 뒤에 있는 철계단으로 오르니 네모꼴의 커다란 입석이 있다. 바위군의 절벽 위에 우뚝 서 있고, 이를 가로 질러 쇠다리가 연결되어 있으며그 입석대 뒤에 허름한 입석탑이 있다.

    이 탑은 조선 태종이 즉위한 후 스승이었던 운곡 원천석을 찾았으나 응하지 않자 태종이 스승을 생각하여 세운 탑이라고 전하여 온다. 원래 입석사 석탑은 청석탑이라 하며 입석사 주변에 흩어졌 있던 석탑 조각을 모아 놓은 것이다. 되돌아 나와 왼쪽 오솔길입석대에서 앞 산길을 우측으로 조금만 돌아가면 마애불좌상과 안내판이 있다

    암벽에 양각으로 부조된 마애불좌상은 앉은 자리 밑 대좌 오른쪽에 연호 원우(고려 선종 때)가 새겨져 있어 더욱 유명하고 귀중한 석불이다. 풍만한 얼굴에 눈, 코, 입의 비례가 잘 맞는 불상이다. 오른 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왼손은 배 앞부분에 놓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다.옷주름, 머리의 상투구슬, 둥글넓적한 얼굴 모습 등으로 보아도 고려 전기의 일반적인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 운곡 원천석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붙였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 워 하노라. 고교 국어교과서에 있던 시조 '회고가(懷古歌)'의 지은이 원천석은 고려 말 충신으로 이방원의 어렸을 때 스승이었다. 장원급제를 하고도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사양하고 치악산에서 은거하다가 죽어 치악산에 묻혔다. 그의 묘는 원주시 행구동 석경사 남쪽 개울 건너편에 있다. 태종 이방원은 스승을 찾아와 지금의 태종대(강원도 문화자료 제 16호)에서 스승을 기다리면서 스승을 찾아 헤멨다. 그곳에서 30m 아래에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던 노파에게 스승이 간 곳을 물으니, 노파는 원천석이 시키는 대로 거짓으로 임금에게 고하였다. 그리고는 그 뒤에 나라님을 속였다는 그 죄책감에 스스로 몸을 강에 던졌다는 전설 어린 노고소 부근이 제7경이라는 부곡계곡 하류에 있다

12:50 탐방안내소

    황골 매표소를 통하여 오르는 길이치악산의 대표적인 단 거리로 인기 있는 코스급경사 내리막 이지만포장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다

    출입통제시설이 있고 탐방안내소, 화장실 그리고 작은 주차장이 있다승용차는 여기까지 올수가 있다/입석사 1.2km, 비로봉 3.7km

13:05 이연다원

    길은 황골까지 시원하게 뚫린 꼬불꼬불 가파른 길이지만,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가면아담한 토담집의 찻집이 있다

13:15 황골(입석가든)

    황골은 비로봉에서 시작하여 원주시 흥양리로 흐르는 시내 골짜기 이름이다. 구룡사를 들머리로 하는 코스는 옛날과 달리 층계가 많은데다가 너무 가팔라서, 이를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황골을 들머리로 하는 코스가 치악산 구간 종주로는 제격이다. 계단에서 지친 다리가 안스러운지철없는 개나리꽃이 반기고계곡으로는아름다운 억새밭을 만난다

    *. 치악산에 대한 선인들의 글 -신소설 '치악산' 모두에서 국초 이인직은 다음과 같이 치악산을 묘사하고 있다.강원도 원주 경내에 제일 이름난 산은 치악산이라. 명랑한 빛도 없고 기이한 봉우리도 없고 시커먼 산이 너무 우중충하게 되었더라. 중중첩첩하고 외외암암하야 웅장하기는 대단히 웅장한 산이라. 그 산이 금강산 줄기로 내린 산이나 용두사미라. 금강산은 문명한 산이요, 치악산은 야만의 산이라고 이름지을 만 터이러라. 위와 같이 치악산을 '야만의 산'이라고 말한 것은 산이 험하다는 말인 것 같다. 당시 이인직이 치악산 정상 비로봉를 올라보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숙종 때 실학자 이중환이 30년 동안이나 전국을 방랑하면서 62세에 지었다는 택리지에서는 치악산은 산신의 영험이 많아서 사냥꾼도 감히 짐승을 잡지 않는다 하여 치악산이 영험한 산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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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산명 : 보은 속리산(1,057.7m) 0 위치 :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경북 상주시 화북면0 코스 : 시어동~화북분소~문장대~문수봉~신선대~입석대~비로봉~석문갈림길          ~천왕봉~석문~상고암~상환암~세심정~법주사0일자 : 2008. 12. 14(일)0시간 : 7시간 /맑음

백두대간이 남서진하며 태백산과 소백산, 그리고 죽령과 이화령 사이에 월악산군을 품어내고 이내 방향을 남으로 돌리는 한반도 남쪽 한가운데에 위치한 속리산 천왕봉은 한강,금강,낙동강 즉 3대 강 발원지라 이를 삼파수라 부르며, 안성 칠장산으로 이어가는 한남금북정맥 줄기가 나누어지는 분지점이기도 하다. 한남금북정맥이 대간에서 솔가하는 기점도 천왕봉이다. 세조가 말을 타고 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 말티고개를 지나 선도산과 보현산을 거쳐 안성의 칠현산에 이르는 한남금북정맥은, 그곳에서 다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을 갈래친다. 종착지인 칠장산에서는 다시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까지의 한남정맥으로 이어지고, 남서쪽으로는 태안반도에서 안흥까지의 금북정맥으로 이어진다속리산은 일반인들에게 산 자체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 대사찰 가운데 하나로 잘 알려진 법주사와 조선조 임금 태종에게 벼슬을 하사받았다는 정이품송이 산자락 내에 자리 잡고 있어 더 잘 알려진 산이다

그러나 구병산에서 형제봉을 거쳐 속리산에 이르는 산군은 산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충북 알프스’로 통할 만큼 빼어난 경관을 지니고 있어 많은 산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봄철 산벚꽃, 여름에는 청송, 가을의 단풍, 겨울철 설경으로 바꿔가며 사시사철 장관을 이루는 속리산은 우리에게 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속리산의 진수는 역시 설악산, 월출산, 북한산, 도봉산 등과 더불어 산 전체가 바위로 넘쳐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속리산은 우리나라 8경의 하나로, 예로부터 소금강, 또는 제2금강이라고도 불러왔다. 또, 구봉산, 지명산, 미지산, 형제산, 자하산, 광명산, 이지메 등의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법주사가 창건된 지 233년만인 784년(신라 선덕왕 5년)에 진표율사)가 김제 고을의 금산사로부터 이곳에 이르자, 들판에서 밭갈이하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았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회심이 저리 존엄한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하며 머리를 깎고 진표율사를 따라 이 산으로 입산수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때부터 사람들이 ‘속세를 떠난다’는 뜻에서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문헌이나 구전을 통해 전해오는 속리산의 이름 유래다. 속리산은 그 산이름 자체에서 뿐만 아니라 이 산의 여러 봉우리 이름에서도 신앙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이 그러하고, 비로봉, 관음봉등이 그러하다.

속리산에는 8개의 이름(속리산,구봉산,소금강산,광명산,지명산,미지산,형제산,자하산)과 8개의 봉우리(천황봉.비로봉.길상봉.문수봉.보현봉.관음봉.묘봉.수정봉) 그리고 8대(문장대.입석대.경업대.배석대.학소대.신선대.봉황대.산호대)가 있으며 8석문(내석문.외석문.상고내석문.상고외석문.비로석문.금강석문.상황석문.추래석문)이 있고 물줄기는 속리산 아홉 구비 돌고 돌아 흐르는데 여기에 놓여진 다리가 8개라고 한다. 유난히 8자가 많은 산, 불교에서 열반에 들기 위한 여덟 가지 바른길 즉 8정도를 일컫는데 불교색채가 짙은 그 8자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신랑 헌강왕 때 고운 최치원이 속리산에 와서 남긴 시가 유명하다."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사람은 도를 멀리 하고/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우암 송시열은 속리산 은폭동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양양하게 흐르는 것이 물인데/어찌하여 돌 속에서 울기만 하나/ 세상 사람들이 때 묻은 발 씻을까 두려워/자취 감추고 소리만 내네"

태백가든거리는 어둠으로 가득하고추위는 밀려온다

시어동숲이 자신의 속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겨울, 가을을 보낸 숲에 찬바람이 분다. 겨울 숲에서 나무는 그렇게 맨몸으로 겨울을 맞이하는가보다.그 고운 빛깔 자랑도 못해본 안타까운 단풍잎들이누런 낙엽이 되어 딱딱한 등로를 수놓았다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화북분소손이 곱아오고 장갑이 그리워진다멀리 산그리메가 사방으로 좋지만 연무에 흐리게 보인다계단을 따라 오르는길

그냥 하늘을 향한다도중에 만나는 암릉에서잠시 쉬고

사거리주능선에 오른다계곡을 울리는 헬기소리여름내 버려진 쓰레기 하산작업 중

문장대(1028m)문장대는 속리산의 얼굴이다.철 계단을 따라 오르면 문장대. 항상 구름과 안개에 가려 있어 운장대로도 불린다.훨씬 운치 있는 이름이다.

세조가 몹쓸 병을 고치고 올라 신하들과 삼강오륜을 강론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남쪽으로는 천황봉까지의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묘봉과 관음봉, 도명산과 낙영산이 옅은 구름을 두른 채, 바라보는 신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저 아래 법주사까지 눈에 들어오고멀리 첩첩이 산그리메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렇게 산정을 점점이 수놓은 모습들하염없이 바라보고 가슴에 담는다

문수봉파란하늘아래 앙상한 나뭇가지무엇을 닮긴 닮은것 같은데..암봉이 아름다운 속리산 주능선오르락 내리락 산행의 맛 또한 제맛이다싸늘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면손끝은 시렵기까지 하는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이미 산정은 겨울이다

신선대문장대에서부터 신선대는 걸음걸음마다 확연한 원근감을 보여주며 마중이라도 나오듯 가깝게 다가선다

입석대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이 독보대사를 스승 삼아 7년 동안 무술을 연마하고 일으켜 세웠다는 입석대제대로 보려면 좁은 바위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무등산, 치악산, 대둔산… 이름난 바위산마다 하늘로 몸을 곧추 세운 거대한 바위기둥들은 모두 입석대란 이름으로 사랑을 받는다.속리산 입석대도 마찬가지.

비로봉(1,025m)다가가 쓰다듬고 싶은 기암을 두고 휑하니 지날 수는 없는 일이다. 가던 길 멈추고 돌아보고 능선을 따라 이름모를 기암이 도처에 늘려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하나 글이 모자라고멋진 풍광 보여주고자 하나솜씨가 미천함이 안타깝기만...

석문갈림길아무리 눈앞의 풍경이 마음을 어지럽히더라도 정신없이 앞사람만 쫓아가다 보면 우거진 조릿대 사이로 휭 하니 뚫린 길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헬기장산정의 나목들은 이미 겨울을 준비하는가 보다앙상히 뼈대만 드러내놓고 거세바람과 맞서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간간히 걸려있는 잎새들 조차도 위태 위태그렇게 속리산정은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천왕봉멀리 떨어져 바라보면 천왕봉 역시 우거진 수풀 사이에 핀 바위 꽃이다.하늘의 왕이란 이름의 바위 꽃송이에서 백두대간 굵은 줄기는 한남금북정맥이란 푸른 가지를 뻗어 내린다.‘상황봉~묘봉~문장대~천황봉~형제봉~장고개~구병산’ 구간은 통상 ‘충북알프스’로 불린다.

속리산은 제1봉의 지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산이다. 천왕봉에서 문장대에 이르는 약 3,8km의 등성마루 전체가, 그 기기묘묘한 암릉 전체가 하나의 봉우리다.

옛사람들도 제1봉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아예 천왕봉을 언급하지 않고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이라 한다'고 적고 있다. 안타깝게도 정상 표지석은 천황봉(天皇峯)이란 이름을 쓰고 있다.왕(王)을 황(皇)으로 둔갑시킨 일제의 잔재 그대로다.

언제부터 천황봉으로 불렸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1861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에는 분명히 ‘천왕봉(天王峯)’이라 적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천왕봉이라는 언급은 없으나 ‘속리산 마루에 대자재천천왕사(大自在天王祠)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천황봉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자신들의 천황을 염두에 두고 왜곡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도 천황봉으로 표기돼 있다.

석문지나온 천왕봉도 바라보고 주능선이 암릉과 어울어져 그림같이 펼쳐진다암봉에 피어오른 소나무 한그루한폭의 동양화다

상고암세심정으로 내려가는 하산로에서 갈라지는 상고암 가는 길조릿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오솔길을 따라가면길이 끝나는 곳에서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너른 터가 열린다.

상고암은 법주사보다 먼저 속리산에 둥지를 튼 절이다.상고암 대웅전 뒤로 걸어 올라가면 문장대부터 천왕봉까지 병풍처럼 펼쳐진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는데.

상환암세종이 7일간 머물며 법회를 열고는 ‘크게 기쁜’ 나머지 그 이름에 자신의 심회를 담았다는 상환암,계곡도 가뭄에 물이 마르고 나무들은 앙상하지만겨울을 느끼게 하는 바람으로계곡을 벗어난다

세심정세속을 떠난 산에서 마음을 씻는 정자(터)란 뜻으로 세속을 떠나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속세의 복잡하고 힘든 문제들은 저산 밖에 내려놓고 이곳에서는 내 앞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을 즐기라는 뜻일게다. 지금은 개인이 이곳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목욕소 조선조 7대왕 세조가 국운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인근 법주사에서 대법회를 연후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약사여래의 명을 받고 온 월광태자라는 미소년이 나타나 세조의 피부병이 곧 완쾌 될 것이라 하고 사라졌다. 세조가 목욕을 마치고 보니 신기하게도 몸의 종기가 깨끗이 없어 졌다 하여 목욕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법주사8세기 초엽 신라 성덕왕 때 중창하였다. 지행록에 의하면, 이때 왕이 법주사라는 절이름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법주사의 중창 시기에 있어서 흔히들 신라 혜공왕 12년(776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이는 진표율사 사적기를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은 결과에서 초래한 잘못이다. 766년~770년 시기에 진표율사가 속리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갈 때 속리산에서 길상초가 난 곳을 보고 길상사 창립지지로서 표시해 둔 곳에 제자인 영심이 776년에 길상사를 창건한 것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법주사라는 이름은 의신대사가 서역에서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 또는 그 나귀들이 이곳에 이르자 발길을 멈추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의신대사가 새로 세울 절터를 찾기 위해 보은 땅으로 들어서서 오늘의 말티고개를 넘어 속리산으로 들어섰는데, 그때 대사는 눈앞에 펼쳐진 기막힌 전경에 감탄하여 자신도 모르게 합장 배례했다고 한다. 법주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인조 때 벽암스님이 중창한 이후 여러 차례의 재건·중수·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법주사의 상징과 같은 거대한 청동미륵대불은 본래 진표의 제자 영심이 중창할 당시 용화보전 자리에 세웠던 150m 높이의 거대한 입상이었으나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당백전 주조를 위해 파괴했다고 한다.1989년에 조성한 현재의 미륵불은 높이 25m, 둘레 17m의 거대한 규모로 표면에 입힌 순금만 해도 80kg이나 들었다고 한다.

주차장짧은 겨울해가 어느새 찬바람을 부른다. 부채 살 같은 햇살이 앙상한 가지사이를 비추고조용히 이곳을 빠져나갈 때가 된 것 같다. 세조의 가마가 지나가자 가지를 들어 올렸다는 정이품송을 뒤돌아보며속리산과 안녕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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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508m)~수락산(638m)
        ○ 위치 : 서울 도봉구, 노원구, 경기 의정부, 남양주 별내면       ○ 코스 : 학도암-헬기장-불암산-덕능고개-수락산-기차바위-도정봉-동막굴다리        ○ 일자 : 2008. 11. 30(일)        ○ 시간 :  7시간 30분 /맑음

수락지맥에 대하여
    수락지맥이라는 지맥 이름이 기록 된 곳은 “월간山 신 산경표(박성태)”라고 하는 책자이다, 이 책자에 보면 수락지맥은 한북정맥의 죽엽산과 덕고개 사이에 있는 축석령에서 시작이 된다, 이후 능선은 용암산, 도정산(깃대봉), 수락산, 불암산, 구능산, 망우리고개, 아차산 용마봉에서 마지막 산봉우리를 일구고 나서 중랑천으로 능선의 긴여정을 마치는 지맥이다

1. 남양주 불암산(508m)

    주봉인 국기봉의 모양이 마치 송낙(소나무 겨우살이)으로 만든 모자를 쓴 부처의 모습과 같다 해서 산 이름을 '불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산에는 몇 개의 다른 이름이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별칭은 일명 필암산. 풍수지리학에서 먹골(묵동), 벼루말(연촌)등의 지명과 함께 이름 안에 필, 묵, 연을 붙이는 것은 지나친 땅의 기를 꺾기위한 방편이었다고 전해진다. 또 이전에는 하늘에서 내린 보배로운 산이라는 뜻으로 천보산이라 불리웠다고 한다.불암산은 서울시 경계에 위치한 5개 산 가운데 가장 낮은 산이지만 정상부분이 온통 바위산을 이루고 있어 규모를 뛰어넘는 기품을 자랑한다.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수목이 울창하지는 않지만 가파른 능선길 아래로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이어지는 암릉산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옛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로, 북한산이 살아계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라면 불암산은 돌아가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라 한다. 이 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산의 남쪽 아래에는 태릉과 강릉이, 그리고 주변에는 동구릉과 광릉이 있다.

2. 의정부 수락산(638m)

    한북 정맥의 운악산과 죽엽산에서 갈라져 축석고개를 넘어 도봉산과 마주 보고 서 있어 능선에서의 사방 조망이 좋고, 바위가 둥글고 모가 나지 않은 게 특징이다. 백두대간 종주에 이어 '불수도북 종주'란 말이 유행인데, 이는 불암산에서 출발,수락산을 거쳐 도봉산과 북한산을 종주하는 4개의 산을 종주하는 코스를 말한다.

        수락산이라는 명칭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수락산이라는 이름은 바위산의 물이 바로 떨어진다는 데에서 중국 북송 소식의 "적벽부"에 나오는 "수락석출"이라는 글귀에서 따왔다는 설과.산봉우리 형상이 마치 목이 떨어져 나간 모습(首落)과 같다하여 이름하였다 하고그밖에 옛날 사냥꾼이 호랑이에게 아들을 잃고 찾아 헤매다 수락산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후 여름에 장마가 지면 "수락아!"수락아!" 소리가 들린다고 전해 내려온다. 구전에 의하면 태조가 서울을 등지고 있다 하여 '반역산'이라는 설과 서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한 형상이라 하여 서울의 '수호산'이란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

      06:00 춘천 태백가든

        어둠속에서도 버스는 만원이다오랜만에 만나는 산우들이 반갑다

      08:05 노원동 현대아파트

        현대아파트 정문에서 학도암 입구를 찾아좁은 골목을 따라 우회하고학도암 오름길에 서울노원교회가 있다

      08:30 학도암

        주위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학이 이곳에 날아와 노닐었다는 학도암작은 암자 뒤로 아담한 불당과 약사암이 있다. 고종7년 명성황후 민비의 불심으로 조성된 마애관음보살좌상은 10개의 이중 연꽃으로 만든 대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 관음보살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바위 옆면에 50자로 된 조성명문이 남아 있는 걸작품이다.

      08:50 420봉

        들머리는 참나무가 많은 평범한 길이다다듬어진 돌로 계단도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는낙엽이 깔린 오솔길을 따라 쉬엄쉬엄 오른다

      09:00 약수터 갈림길

        차츰 돌산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가끔씩 넓적하게 드러누운 바위지대가 이어지며 경사는 급해진다. 도중에 산으로 오르는 여러 갈래의 길과 합쳐지며시야를 가리던 나무들은 사라지고 시원하게 조망이 트이며 멀리 불암산의 훤칠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최근에 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학도암1.25km,천병약수0.93km,헬기장0.3km,정상1.24km

      09:10 헬기장(420m)

        불암산 제2봉인 봉화대이며 너른 공터의 헬기장 불암산 산성지로 대동여지도(1864년 제작)에도 표시되어 있다옛날 봉화대 자리이고, 성터 자리라고 했지만그런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매점이 있을 뿐.. 아직 햇살이 약해 사방의 조망이 제로다. /학도암1.55km,정상0.94km

      09:15 정암사 갈림길

        우측으로 꺽이는 등산로를 따라깔딱고개를 만나며 다시 오르막 길이다.안부에서부터 정상까지 거대한 바위가 솟아 있고정상으로 오르는 암벽 중간 중간에 기이한 형상으로 움푹 파인것도 있고 두부 잘라놓은 것처럼 각지고 평면인 것도 있다.국기봉으로 향하며 무수히 많은 이름의 바위들을 지나쳤지만 금세 닿을 것 같던 정상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헬기장0.48km,정상0.32km,정암사0.88km, 남양주불암동

      09:25 거북바위

        불암산 정상의 진면목인 암반이다. 어느 것이 거북바위인지 알 수가 없다수많은 절벽, 바위틈에 난 소나무와 괴목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암릉을 올라거북바위 아래 좁은 바위틈`불암산을 사랑하는 육군 제 6915부대 장병들이 만들다. 1989, 7.1’라고조그만 동판을 붙여 놓았는데 홍보 만점이다. 발판 3개짜리 미니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읽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넓은 바위 슬래브를 걷고 오르는 재미가 좋다. 특히 사람이 발 디디는 곳마다 약간씩 홈이 파져 있어 한결 쉽다. 위험스럽다 싶으면 쇠를 박아 밧줄을 매 놓았다네발로 오르내리는 암릉길, 커다란 바위 위에 또 하나의 바위가 얹혀있는 모양의 암릉을 넘어갈 땐 저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 같은 두려움에 손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정상으로 향한 슬랩 구간을 천천히 걸어 오른다. 우회로를 택하지 않더라도 슬랩 구간을 직등할 수 있을 정도의 경사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다소 경사가 있는 구간에는 로프가 걸려 있다한 줄로 늘어서 서로 밀고 당기며 마지막 구간을 차례로 넘어간다.

      09:40 불암산 국기봉(507m)

        산의 형상이 마치 송낙(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여승이 쓰는 모자)을 쓴 부처의 모습과 같다 하여 불암산이라 불린다고 하는데, 남면은 거대한 암반이 봉우리에 치마를 두른 듯하다 하여 치마바위라고 하고, 주봉을 삿갓봉이라도 한다고 한다.

        경사진 슬랩은 크랙이 있어 오르기 편하다. 태극기가 걸린 곳을 오르려면, 암봉을 하나 더 올라야 한다. 암봉 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올라 조망을 즐기고 있는데하나 둘 모여들자 비좁은 정상은 금세 만원

        삼각점이 있는 정상은 비교적 넓은 편이다.1980년 12월 구맥회에서 붙여놓은 방향표지 동판이 눈에 뜨인다.

        사방이 막히는 것이 없이 확 트였다. 북으로 코앞의 석장봉과 수락산이 능선이 이어지고.서쪽으로 도봉산과 북한산. 발아래로는 거대한 아파트 군이 바닥을 메웠다.

        서울의 동북편에 위치한 불암산은 원래는 금강산에 속해있던 산이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하나 있다.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한양에 도읍을 정하려고 하는데 당시에 한양에는 남산이 없어서 도읍으로 정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 소문이 금강산에까지 전해지자 그에 속해있던 불암산은 한양에 가서 남산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고 그 즉시 길을 떠나 현재의 자리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접한다. 그 자리엔 이미 다른 산이 들어와 앉아있었던 것. 불암산은 한탄하며 뒤돌아섰지만 산은 한 번 떠난 자리에는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이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자리에 머물고 말았는데 그런 이유로 불암산의 모습은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불암산은 야간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산길은 비교적 수월하지 않지만 야경이 빼어나고 별이 가깝게 보이는 탓이다. 야간산행은 주중에서 주말까지 쉬지 않고 계속 된다.

      09:55 석장봉 /다람쥐 광장

        정상을 내려서서 기암을 바라보며 우측으로 돌아내리면평퍼짐한 모습을 보이는 석장봉과 그 한 옆에 간이매점이 있다넓은 바위에서 휴식

      10:15 절고개

        뚜렷하게 나 있는 등산로는 대간 길과 매우 흡사하다. 간간이 산행리본이 걸려있는 좌우로 샛길이 눈에 뜨이지만, 북쪽으로 이어진 뚜렷한 등산로를 걸으면 된다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정면의 조그만 봉우리를 우회한 길은 다시 북으로 향하며 오른 쪽으로 커다란 봉우리가 보인다. /정상372m, 폭포약수609m

      10:25 406 연화사 삼거리

        능선을 이어주는 샛길이 희미하게 나 있다.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암릉이 길을 막는다.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는 경사라 암릉을 타고 올라 봉우리 위에 선다. 너른 바위가 펼쳐있고, 왼쪽으로 불암산과 석장봉에서 떨어지는 암벽이 날카롭고. 북으로 달려 내린 능선이 힘차다. 시원한 전망이다.

      10:40 덕릉고개 /야생동물 이동 통로

        덕릉고개에는 터널과 예비군훈련장이 있다. 동물이동통로를 건너 잠시 휴식후 출발

      <덕릉 이야기>

        조선 중종의 막내이자 제9자인 덕흥대원군은 생전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그의 아들인 선조가 즉위하였다. 선조는 아버지 덕흥대원군을 위하여 묘소만이라도 능으로 추존하고 싶어서 신하들에게 의견을 묻고 설득하여도 신하들이 이에 따르려 하지 않았다. 이에 선조는 하교하기를 「아버님되시는 중종께서도 등극하시었고 또 인군인 아들을 두셨는데 덕흥대원군이 설혹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능으로 시행하는 것이 그렇게 어긋나는 일이 아니다.」하며 신하들의 의견을 다시 물어도 역시 불가하다는 대답뿐이었다. 이에 선조는 능으로 승격시키는 것을 단념하고 한가지 방법을 꾀하였다. 즉 동문 밖에서 시탄상(柴炭商)을 하는 한 사람을 불러서 명하기를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무수레와 숯수레를 불러들여 어디를 지나서 이곳으로 왔느냐고 물어 덕흥대원군 묘소를 지나왔다고 하면 그대로 보내고 만일에 덕흥대원군의 능(덕릉)을 지나왔다고 하면 안으로 불러들여 술과 밥을 후하게 대접하고 그 장사꾼의 나무와 숯을 고가로 사들이라」고 하였다. 이 소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탄상들이 너무 밀려오는 바람에 이 제도는 중단되었으나 이후부터 덕능은 정식 반포된 묘소보다더욱 우세를 점하게 되어 저절로 덕릉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양주군지》

        11:00 군부대 울타리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숲 속으로 또렷한 주능선길이 보이는데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한참 동안 계속되더니 드디어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수락산으로 들어서는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오른다.

        첫번째 철탑을 지나군부대 후문 철조망을 빠져나가면다시 시작되는 오르막

      11:20 305봉

        불타버린 능선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바로 앞으로 도솔봉이 보인다

        두번째 철탑을 지나 밧줄이 걸린 암릉을 오른다. 암릉을 지나자 왼쪽으로 전망좋은 너른 바위가 펼쳐 있고, 등산객들이 한 무리 쉬고 있다. 바위 끝에 서니 지나온 석장봉과 불암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11:30 전망바위

        송림의 오솔길로 이어지지만 차츰 암릉길이 많아진다.멀리 도솔봉이 보이고, 꼭대기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중식 12:15출발

      12:20 540고개삼거리

        중식후에 만나는 오름길서두른 탓인지 발걸음이 거부를 한다도솔봉을 포기하고우측 지름길로/수락산정상1.3km,수락산역4.2km(수락골).수락산역(노원골)

      12:30 치마바위

        수락산이 가까워질수록등산로가 혼잡해진다오르내리는 사람들을 피해 바위벽으로 붙는다너른 바위벽올라서니 차마바위 끝이다바위틈마다 서있을 자리조차 없다

        왼쪽으로 돌아가는 암릉 도중에 동서로 뚫린 통천문이 있다

      12:35 하강바위/철모바위

        바위 아래에는 대형 남근바위가 멋지게 서 있다. 철모바위 좁은 암반위에도 사람이 가득하고올라선 사람은 내려올 줄 모르니포기하고 뒤돌아선다

        좁은 바위틈내려서기가 힘들어우측 협곡으로 돌아간다

      12:45 코끼리바위

        왼쪽 옆의 봉우리에 올라서 보지만여기도 암릉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코끼리는 꼼짝도 안하고 집채보다 더 큰 바위상단에 완전히 엎드려 있다. 자연의 힘은 참으로 신비스럽다.

      통천문

        코끼리 바위 좌측 좁은 바위틈으로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줄지어서 지체된다

      13:05 고개 매점

        다시 이어지는 암릉고갯길은 사람들로 가득하고급한 마음에 좌측 암벽을 타고 지른다

        바로 앞봉이 철모바위우회하는 후미를 기다리며형제바위봉으로 올라서지만 역시 만원이다되돌아와 삼거리에서 휴식/수락산역4.7km(수락골).수락산역(노원골)5.2km,수락산정상0.3km

      13:15 내원암 갈림길

        좁은 암릉서로 비켜주는 일도 없이 부딪치고상계역에 올라오는 사람들로 시장을 이룬다/수락산정상51m, 청학리4.13km, 상계역방향

        로프가 매어진 바위옆을 지나늘어선 행렬을 따라 좁은 홈통길을 타고 오르면..

      13:20 수락산(638m)

        정상표지석이 있고 그 표지석에 바로 붙어서 더 올라 갈수 있는 바위길이 있다, 다시 한 단을 더 올라가면 삼각점이 있고 태극기가 힘차게 날린다,

        서쪽 아파트 숲 뒤로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을 포함한 스카이라인이 선명하며, 그 오른쪽으로 사패산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뒤로는 도봉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의 바위 군이 빛나고 있다.그리고 남쪽으로 코끼리바위 뒤로 불암산이 솟아있고, 북쪽 능선 너머 의정부 천보산과 불곡산의 두 봉우리가 우뚝하다. 큰 바위 밑에 자리한 정상석은 너무 작고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속에 사진조차 남기기 어렵다

        정상은 사람들로 오르내리기가 어려워뒤쪽으로 돌아가본다바위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정상의 모습도 이색적인 볼거리다. 수락산은 은둔의 산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숨어든 곳이 석림사 계곡이다서울에서 좀 떨어져 있어 조용히 숨어 지내기 좋은 곳이지만 이젠 옛말이 되고 말았다

      13:35 이정표

        청학동 마당바위 부근 계곡이 수락산의 절경중 백미라 할 수 있다. 산이 하얀 화강암 바위로 덮이고, 석벽과 암반으로 둘러싸인 수락폭포 계곡 은류, 금류폭포가 나온다. 도솔봉 5거리부터 홈통바위(기차바위) 근처까지는 수락산을 산행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거치는 코스로 휴일에는 아주 많이 붐비는 암릉길이다

        이 길을 지나면서 보면 앞으로 서울의 북부가 거의 다 조망이되고, 덕소를 지나 팔당대교, 남산, 관악산이 아스라이 보이고, 가까이로는 불암산, 의정부, 남양주시,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불국산 등이 조망되는 경치 좋은 능선길이다,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는 갈림길에서우측으로 돌아나가면수락산장, 석림사, 산지정화감시초소로 내려가는 안내판이 있다 /기차바위0.3km,산지정화감시초소1.5km,정상0.15km

      13:45 기차바위

        홈통바위 위험구간 우회로... 직진하여 홈통바위를 타고 내려선다막상 기차바위 위에 서니 가파르기는 해도 홈통으로 된 바위 양쪽으로 두 개의 로프가 걸려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뒤로 돌아서서 로프를 다리 사이에 끼고 뒷걸음질로 내려가기 시작하지만이건 경치를 제대로 볼수가 없다 그냥 바위벽을 딛는다 밑에서는 오르려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그리고 사진촬영...

        아직 끝난게 아니다홈통바위를 쉽게 내려서면 다시 이어지는 로프길올라오는 단체등산객이 수시로 지나가 발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통과시켜주느라 지체된다.

      13:55 장암역 갈림길

        석림사는 신라의 절터로 박세당이 중창, 6.25동란에 소실되어 다시 지은 것이다. 이 아래에 숙종 때 학자인 박세당의 묘소와 영정각,궤산정, 매월당 숭모비가 있다. 궤산정자 바위 밑에 새겨진 글씨, 서계유거(서계(박세당가 한가히 산다),취승대, 석천동이 암각되어 있고 박세당의 둘째아들인 박태보의 위패를 모신 노강서원도 근처에 있다. /동막골2.9km, 신설로

      14:05 이정표

        가파른 내리막 등산로선행하는 등산객들을 앞지르며 진행한다. 이곳부터는 오르며 내리는 등산객을 볼 수가 없는 한적함이 시작되고... /동막골2.7km,정상1.3km

      14:30 도정봉(524봉)

        뒤돌아보면 큰 암벽인 지나온 기차바위가 매우 가팔라 보인다바위 아래위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과두줄기 로프에는 개미처럼 매달렸다천막이 있는 매점 사방의 조망이 매우 좋다. 하산 길은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14:35 십자로

        급한 내리막길에 매여진 밧줄을 따라. 미끄러운 바닥을 조심스레 한참을 내려서며 갈림길 안내이정목을 지난다. 안부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만가대라는 곳으로 가게 된다./기차바위2.3km, 만가대1.1km, 도정봉,

        올라서는 길에 만나는 암릉에서 잠시 휴식건너로 도정봉의 모습과수락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렸하다

      14:40 509삼거리

        매점이 있고 동막골로 내려가는 암릉길이 바로 밑에 펼쳐진다삼거리에서 용현동으로 내려가는 우측길을 버리고 동막골로 내려가는 좌측길로 내려선다.

      15:00 425암릉

        다시 내리막... 참호를 지나고 짧은 밧줄구간을 지나 장암주공아파트 방향으로 내려선다. 다시 밧줄이 길게 걸린 바위s작은 봉우리를 내려서서 한적한 넓은 등산로를 따르면멀리 차량들이 질주하며 울리는 굉음이 들려온다.후미를 기다리며 휴식

      15:40 동막골 굴다리

        날머리에서 굴다리를 통과한 후에 회룡역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우측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서 보도를 따라 걸어가니 장암주공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암릉을 오르내리는 힘든 산행길을 따라하루를 넘긴다

      * 수락산(638m)

        산행하기에 알맞은 높이로 인근 주민들이 쉽게 찾고 있는 산이다. 화강암의 암벽이 노출되어 있으나 산세는 험하지 않고, 남쪽에 있는 불암산으로 능선이 이어진다. 동쪽에 금류계곡이 있다. 서쪽 비탈면에 쌍암사,석림사, 남쪽 비탈면에 계림암,흥국사, 동쪽 비탈면에 내원암이 있고, 내원암의 법당 뒤에는 고려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2m의 석조미륵입상이 있다. 1996년 시민 휴식공간 확충을 위해 삼림욕장이 조성되었다. 불암산과 잇닿은 쪽의 능선에는 봄이면 철쭉이 만발해 산행이 더욱 즐겁다. 수락계곡과 노원골 일대 11km 산책로는 삼림욕하기에 좋은 곳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과 모래로 이루어져 있고 기암 괴석과 샘, 폭포가 많은 반면 나무는 매우 적다. 산의 분위기가 다소 삭막하기는 하나 바위의 경치가 뛰어나고 곳곳에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수락 8경이라 불리는 금류폭, 은류폭, 옥류폭포와 신라 때의 흥국사, 조선 때의 내원암이 있다. 산길이 험하지 않고 비교적 교통이 편리해서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또한 산세가 웅장할 뿐만 아니라 산 전체가 석벽과 암반으로 되어 있어 도처에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서울 근교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수락산에 오르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은데 주저하는 이유는 산의 아름다운 경치 대부분이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이름난 유원지는 서울의 반대편에 있고, 부근에 있는 벽운동 유원지는 주변의 도봉산과 북한산에 눌리는 형편인 것이다.
      * 수락산의 전설
        수락산이라는 명칭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위가 벽을 둘러치고 있어 물이 떨어지므로(水落) 이름하였다는 설과, 산봉우리 형상이 마치 목이 떨어져 나간 모습(首落)과 같다하여 이름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아들 `수락이를 찾는 사냥꾼의 애틋한 부정이 서려있기에 이름 지어졌다고 합니다. 수락산 갈울마을에 사냥꾼 부부가 살았습니다. 이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마음은 항상 넉넉하여 서로를 아끼며 사랑했습니다. 남편이 뒷산으로 사냥을 가면 아내는 칡덩굴 우거진 언덕배기를 열심히 일구어 감자,고구마,콩을 심으며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녁이면 호롱불 아래서 그날 있었던 일을 정답게 주고받으며 하루의 피곤함을 잊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게는 근심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결혼한 지 십여 년이 되어가지만 아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다 놓고 신령님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사냥꾼 부부의 지극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던지 드디어 아내의 몸에 태기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고, 아내를 위한 남편의 보살핌은 대단했습니다. 사냥을 나가지 않는 날이면 집 주변을 말끔히 치워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물항아리에 물을 가득 길어다 주며 아내를 도왔습니다. 또한 밤이면 새로 태어날 아이 이야기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날이 갈수록 배가 불러오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은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습니다. 드디어 온 산에 진달래가 사태를 이루던 어느 날, 사냥꾼의 아내는 심한 산기를 느꼈습니다. 사냥꾼은 처음 당하는 일이라 몹시 당황했지만 부리나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물을 끓이며, 아기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아내의 진통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며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습니다. 사냥꾼은 더욱 초조해졌습니다. 으……으, 아이고……차츰 아내는 기진맥진 하고 남편의 말소리조차 알아듣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감았던 눈을 한번씩 힘겹게 뜨곤 할 뿐이었습니다. 아…… 아……아내의 비명소리와 함께, 우렁찬 사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냥꾼은 기쁨에 들떠서 아기와 아내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심한 출혈 끝에 아기를 낳은 사냥꾼의 아내는 남편의 극진한 간호도 허사로, 삼일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냥꾼은 세상을 다 잃은 듯 했지만, 그의 품에서 쌔근쌔근 잠든 아들의 모습을 보며 시름을 달랬습니다. 사냥꾼은 아들 이름을 수락이라고 지었습니다. 엄마는 없지만 수락산의 깊고 넓은 계곡이 엄마 품과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락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품에서 젖을 얻어 먹고 자랐지만, 배가 고파서 우는 소리가 사립문 밖을 나오지 않았고, 사냥꾼 아버지를 닮아 체질적으로 건강했습니다. 수락이는 얼굴조차 모르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기 보다는 아버지를 한없이 따랐습니다. 사냥꾼의 아들답게 여섯 살 때는 집 근처를 뛰어다니는 토끼도 잡았고, 장에 간 아버지가 늦게 오는 날이면 동구 밖으로 마중도 나가곤 했습니다. 사냥꾼은 늠름하고 자상한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도 차츰 잊을 수 있었습니다. 수락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갈울마을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은 불안하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호랑이를 잡을 궁리를 했지만 대책은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근심은 깊어만 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호환을 막지?누가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면…… 이제는 나다니는 것조차 겁이 나……동냥젖을 먹이며 어미 없는 수락이를 키운 사냥꾼으로서는 이 기회에 마을 사람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냥꾼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수락이를 맡아줄 집을 물색하며 호랑이 사냥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린 수락이는 아버지와 함께 사냥 길에 나서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수락아, 호랑이 사냥은 아주 위험한 일이란다.그러면 아버지는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혼자서 하시려고 해요? 나는 이 마을 최고의 사냥꾼이 아니냐?저는 그 사냥꾼의 하나 뿐인 아들입니다.그래도 아직은 어린 나이다.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아버지가 그렇게 위험한 사냥을 나서는데, 하나 뿐인 아들이 어찌 편안하게 남의 집에서 지내겠습니까? 사냥꾼은 끈기있게 수락이를 설득했으나 그럴수록 그는 더욱 집요하게 아버지를 졸랐습니다. 결국 사냥꾼은 아들과 함께 호랑이 사냥을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냥을 나서던 날은 날씨마저 쾌청했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사냥꾼 부자가 꼭 호랑이를 잡아오기를 바라며 그들을 떠나보냈습니다. 특히 갓난아이 적부터 수락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여주었던 버들이네는 수락이를 위해 미숫가루와 찰떡도 싸주었습니다. 며칠을 수락이와 함께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찾아다녔건만 호랑이의 흔적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호랑이 사냥에 대한 긴장감은 풀어지고 마치 소풍을 나온 사람들처럼 즐거웠습니다. 아버지, 저기……저 오리바위 아래가 어머니 산소지요?어디 보자. 으…… 음 그렇구나.벽운계곡을 내려다보는 사냥꾼의 얼굴에는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아침부터 상투봉 부근에서 호랑이의 발자국을 찾아낸 아버지와 아들은 바짝 긴장함과 동시에 몸은 분주해졌습니다. 바람결에 부스럭거리는 갈참나무잎 소리에도 머리끝이 쭈뼛쭈뼛했고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솔부엉이를 항해 활시위를 당기기도 했습니다. 점심 때가 지나자 삿갓봉,감투봉,고식봉에 길게 걸려 있던 구름이 모여들면서 사방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나기가 올 기미가 분명했습니다. 숲 속의 산새들도 부산을 떨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떡갈나무 잎사귀에는 이미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냥꾼과 수락이는 재빨리 물개바위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 근방에는 비를 피하기 적합한 바위들이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차츰 빗방울은 굵어졌고 수시로 으르렁대는 천둥소리에 그들은 걸음을 더욱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개바위를 눈앞에 두고 더 이상 비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허겁지겁 비를 피해 들어간 바위 굴은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넓고 아늑했습니다. 사냥꾼과 수락이는 비에 젖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사냥꾼도 수락이가 아들이라기 보다는 사냥의 든든한 동반자로 느껴졌습니다. 아침도 변변히 먹지 못하고 한나절을 쫓아다닌 탓에 그들은 그제야 시장기를 느꼈습니다. 사냥을 떠날 때 버들이네가 싸준 미숫가루와 몇 덩이 남아 있는 찰떡으로 허기를 면하자 수락이는 눈꺼풀이 자꾸 무거워졌습니다. 바깥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사냥꾼은 이미 요란하게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주변이 조용해서 보니 굴 속으로 한줄기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덩달아 향긋한 풀꽃향도 따라 들어왔습니다. 사냥꾼은 모처럼 즐긴 단잠에서 깨어나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습니다. 수……락아. 내 아들…………어이 장군, 그만 일어납시다.……수락아… 수락아…사냥꾼은 몇 번씩이나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놀라 바깥으로 뛰쳐나가 목청껏 아들을 불렀습니다. 온 산에 수락아 수락아 메아리만 쳤을 뿐 대답은 없었습니다. 비가 멎기를 기다리며 잠이 든 사이 호랑이가 수락이를 물고 가버린 뒤였습니다. 사냥꾼은 미친 듯이 산 속을 헤매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바위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비만 오면 산에서 `수락아` 수락아 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산 이름을 수락산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노원구청 문화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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