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대둔산(878m) 0 위치 : 전북 완주군 운주면, 충남 금산군 진산면, 논산시 벌곡면, 0 코스 : 수락리주차장-승전기념탑-수락폭포-220철계단-마천대-입석대-대둔산호텔 0 일자 : 2008. 11. 16(일) 0 시간 : 4시간 /흐린후 개임대둔산의 옛이름은 한듬산이다.그래서 논산지역의 일부에서는 아직도 한듬산이라 부른다대둔산 이름의 유래에 대한 의견도 여러 가지다. 계룡산의 지세와 겨루다 패해 한이 맺힌 것이라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한은 대(大)로 시골 더미, 큰 바위등을 뜻하는 듬은 마땅한 한자가 없어 듬에 가까운 음의 진칠둔(屯) 또는 둥구미둔,싹날둔(芚)을 써서 한자화 하다 보니 대둔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 산은 금남정맥(노령산맥)의 일부로, 최고봉인 마천대를 중심으로 여러 노암이 기암괴석을 이루며 솟아 있다. 남동사면은 장선천이 여러 지류를 모아 논산저수지로 유입하고 북동 사면은 독곡천이 흐르는데, 두 하천 모두 금강으로 유입된다. 오대산,월성봉, 비랑산, 태고사 계곡의 갓바위, 고깔바위, 선녀폭포 등 신선경을 이루고 있고 하나의 산을 두고 전북과 충남에서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전라북도 쪽에는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연결하는 금강구름다리가 유명하며, 충청남도 쪽에는 낙조대의 일몰이 장관이며, 진산의 태고사등 고찰이 있었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북쪽의 충남지역은 숲이 무성하고 장중한 맛이 있으며, 수락리 군자골의 화랑폭포, 금강폭포, 비선폭포, 화랑석문, 220계단을 오르는 철 계단이 볼거리다. 수많은 기암봉과 풍경은 마치 금강산에 오른것 같다는 착각이 들정도다제1소금강 작은설악산등의 별칭이 있다
수락리주차장
'보약삼첩(補藥三貼)이 불여(不如) 추일등산(秋日登山)이라.' 보약 세 첩 먹는 것보다 청명한 가을날에 등산하는 것이 낫다는 고사성어 생각이 난다 후미와 함께하며 출발대둔산도립공원 안내도를 지나 지압보도 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관리초소
승전교를 건너기전우측으로 월성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대둔산 승전탑
6.25 당시 무장공비를 저지하기 위하여 경찰관 및 애국청년들이 장장 6년 동안이나 치열한 토벌작전을 전개하였던 곳으로 위령제를 모시고 있다.
선녀폭포
바닥이 말라버린 폭포는겨우흔적만 남긴다
석천암 갈림길
대둔산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야산 이달(也山 李達)이다.한국적 명리학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는 이달은 대둔산 석천암에 살며 평생을 주역 연구에 힘썼다.한때 108명의 제자가 그 문하에서 주역을 배웠다고 하지만 이달은 은둔생활을 하며 글만 아는 문약한 사람이 아니었다.일제하 암흑기가 주 활동 무대였던 그는 자신의 특기인 점괘를 이용해 쌀과 콩을 거래해 큰 돈을 벌었지만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쓰지 않았다고 한다.제자들과 소금에 밥을 찍어 먹는 청빈한 생활을 하며 뒤로는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강골의 기질은 후대에도 이어져 이달의 제자인 주역의 대가 대산 김석진이나 그의 넷째아들로 ‘재야 역사학자’라 불리는 이이화 같은 인물을 키워냈다좁은 계곡으로 들어서며계류를 따라 철다리를 건넌다. / 석천암0.5km,수락폭포0.42km,주차장1.48km
고깔바위
우측 하늘끝으로 거대한 삼각형 암봉위세에 놀라계곡을 다시 건너고
수락폭포(일명 화랑 폭포)
이끼덮인 바위를 타고연속으로 흘러내리던 자태가실가닥 같은 물줄기로 변했다/군지계곡0.32km,주차장1.94km, 석천암0.3km,
군지계곡
백제의 척후병들이 현 구자옥 계곡에 와서 잠복하였다가 신라군을 발견하여 물리쳤으며, 임진왜란 때에도 왜병을 물리쳤다. 한국전쟁 이후 1955년까지 국군과 빨치산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군인들의 지옥’이라는 뜻의 군지옥골이라 하였고 군지옥골을 군지계곡으로 부르고 있다
초입의 이정표 및 낙석주의판을 지나긴 협곡이 좌우로 깎아지른듯하다 협곡을 따라 가면
220철계단
하늘을 향해 올라선다. 미끄러지는 날이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굽이지는 계단을 따라가면처음엔 27단, 이어서10단마다 숫자를 붙여 놓았다
그사이 계단이 늘었다. 303철계단이다
720암봉
소나무가 그림처럼 놓여있는아름다운 암릉을 만난다암릉 사이로 계단은 이어지고 /마천대1.7km,마천대1.6km,주차장2.1km,
전망바위
구름사이로 햇살이 내 밀것 같은데온산이 안개로 시계가 흐리다건너로 석천암그 위로 낙조대 능선이 하늘에 닿았다우리가 오른 수락마을을 잇는 골이 한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850봉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이어서 계단을 올라서자 정상이 보인다
일직선으로 놓여진 115철계단을 올라서면전망좋은 암봉잠시 쉬고
갈림길에서 만나는 이정표를 따라 가면 다른 길로 이탈할 염려 없이 정상까지 무난하게 오를 수 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안부를 지나 너덜지대를 올라서면
능선삼거리
가을하늘과 어우러진 우리강산. 하늘과 맞닿은 기암과 절벽의 비경이 닥아선다갈림길여기서 정상이 눈앞에 가깝게 다가오는 산죽길이 이어진다. /220계단1.4km, 220계단1.5km, 마천대
이정표
정상이 가까워지면서오르내리는 인파들로 붐빈다/안심사3.4km,옥계천5.5km,케이블카0.65km,용문골삼거리0.6km 낙조대1.05km,220계단1.7km
마천대(876.9)
정상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콩나물시루다.겨우 마천대 개척탑을 한바퀴 돌고 내려섰다.
마천대(摩天臺)란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곳' 혹은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곳'이라는 뜻으로 원효대사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나라에서 선인이 말을 타고 내려와 많은 중생을 구제하고 다시 말을 타고 승천하는 곳이라 하여 마천대라고 부른다. 사방으로 기암으로 둘러쳐져 있는 대둔산의 모습이 파노라마로 연결되어 시야에 들어온다.
하늘만 개인다면 마천대 근처에 큰산이 없어 시야를 가리지 않아서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는데 아쉽다 북쪽으로는 계룡산 서대산이 가깝게 있다. 동쪽으로 금산 시가지가 보이고 천태산이 서쪽으로는 코앞에 천둥산이 있으며, 그 아래쪽에는 백제의 계백 장군이 5천 결사대를 거느리고일전을 벌였다던 논산 황산벌이 펼쳐진다 이 아름다운 산 정상을 차지한 개척탑, 무엇을 개척했다는 것인지...뭇 사람들은 저 탑을 배경삼아 기념사진들을 찍고 야단법석이다
사거리
낙조암과 태고사, 삼선암, 정상으로 갈라지는 사거리오르고 내리는 인파들로 사거리는 만원이다빈자리마다 들어찬 인파로산모퉁이에 겨우 점심자리를 차지했다 /마천대0.15km, 용문골삼거리0.5km, 금강구름다리0.5km,케이블카0.5km, 낙조대0.9km
* 태고사
신라때 원효대사가 이 절터를 찾아내고 사흘을 춤추었다는 전설이 있고, 근세에 만해 한용운도 '태고사의 터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승지를 말하지 말라'는 전설이 있다. 안심사에는 우의정을 지낸 김석주가 글을 짓고, 이조판서를 지낸 홍계희가 썼으며,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가 전서로 '대둔산 안심사비가 넓은 석축위에 서있다.
너덜길
짧은 구간이지만 위험한 구간이라 지체된다올라오는 사람들로 계단은 돌아설 틈조차 없다
삼선대(760m)
안부에서 오른쪽 삼선줄다리 쪽에 들어서는데 원래 이곳은 오르는 쪽의 일방통행 길이다.많은 사람으로 계단 앞으로 길게 줄을 서있다.금강구름다리를 연결하여 내려다보는 산하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겨우 사진한장만 건지고되돌아 나와 다시 계단길
“고려시대 한 재상의 딸 삼명(三名)을데리고 이곳에 돌아와 망해가는 나라를 한탄하며 평생을 보냈는데 제상의 딸이 선인으로 돌변 바위가 되었는데 그 바위 형태가 삼선인(三仙人)이 능선 아래를 지켜보는모습과 같아 삼선바위라 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마천대0.35km, 통행금지
금강구름다리
경사 50도는 족히 되는 구름다리를 올려다 다 올려다면 삼선바위에 걸린 줄다리가 제법 위압적이다.금강협곡을 가로질러 옛것을 허물고 튼튼하게 지어 한번에 200명 정도까지는 견딘다 한다.
삼선계단 오르기 위해 순서 기다리는 사람들금강구름다리를 보려고 줄을 서보지만다시 돌아 나오기가 싫어포기를 한다/약수정휴게소0.15km,주차장1.35km,동심정휴게소0.3km,금강구름다리0.1km
금강문
임진란때 왜병들이 금산을 점령하였을 때 영규대사가 왜병과 싸우기 위해 영곤평으로 진격할 때 이 금강문을 통과 했다한다
약수정(670m)
의자마다 정자에도사람들로 가득하다된 비알의 돌계단내내 너덜과 돌계단의 연장선이다.
입석대(690m)
용문골에서 용이 승천하기 직전에 일곱 개의 별이 떨어졌다는 칠성봉 암봉 7개가 병풍처럼 둘러치고 아름다움을 뽐내며 가을의 한복판에 우뚝하다 좌측이 서각봉, 우측이 마천대입석대를 향해 내려가는 길목은 시장통 /약수정휴게소0.25km, 마천대0.65m,케이블카0.5km,일방통행
케이블카(620m) 휴게소
구름다리와 삼선계단, 집단시설지구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개미처럼 꼬물거리는 사람들로 구름다리가 꽉 차 있다.케이블카를 타보려고 들어서니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포기./칠성봉전망대0.4km,동심정휴게소0.25km,
삼거리(610m)
미로같은 휴게소를 빠져나와우측으로 돌아가계곡 가파른 너덜지대를 내려선다./구름다리0.4km,케이블카0.1km,동심정휴게소0.15km,
동심바위
된비알 너덜을 내려가면 오른쪽에 동심바위가 슬쩍 보인다.나무가 우거져 잘 보이지는 않는데 옛날 원효대사가 이 바위를 보고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 사흘을 머물렀다는데
휴게소
원효스님과는 달리 너무나 쉽게 떨어지는 발걸음너덜지대를 조심서래 내려서자 정자를 지나 휴게소가 있다이어지는 계단길오르내리는 사람들로 하산길은 지체되고일행과 헤어진 채 홀로 하산을 한다방심하면 넘어진다좌우를 살필 여유도 없이 너덜길을 내려가는데조금씩 길이 넓어지며체육시설도 있고간간이 단풍길도 보인다
동학농민혁명 항쟁전적비
전적비를 지나게 되면서 사실상 산길은 끝이다. 조선 말기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도 대둔산을 찾아 일본군에 대항한 마지막 항전을 벌였다. 험한 바위지형 탓에 접근이 어려웠을 당시로서는 천혜의 요새였을 테지만 동학군은 결국 바위벼랑에 모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만다. 대둔산 마루 삼선계단 가기 직전에 ‘대둔산 동학군 최후항전지’ 표지가 있어 이런 역사를 후세에 알리고 있다.
주차장
마지막 휴게소를 빠져나와포장길을 따라 내려가 케이블카 탑승장을 지나면대둔산관광호텔그리고 주차장이다
배티재
임진란에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적이 이 배티재를 넘어 호남평야로 진출하려 적장 고바야가와가 2만 병력을 이끌고 이 재를 넘으려 했다. 권율장군은 1,5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결사전을 벌려서 적을 섬멸하여 대승하니 왜적이 다시는 호남에 진출할 엄두도 못내게 되었다. ‘이치대첩’으로 기록되는 이 전투 이후 퇴각하던 왜군은 ‘조선의 충신과 의사를 조문한다.’는 비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대둔산에서 뻗어 내린 배티재 정상에 이치대첩비가 있다.
고속도로에서 가다서다산행보다도 더 지겨운 버스에서 시달리면서수고들 하셨습니다함께 나눈 즐거운 추억들이 내일을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완주 대둔산
2010. 2. 6.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