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치 : 강원 강릉시 강동면 ○ 코스 : 안인진삼거리~삼우봉~정상~등명낙가산 ○ 일자 : 2009. 1. 1(목)
12월31일 밤11시30분 떠날 시간이 점점 가까워 왔다. 이제 그만 나가봐야 할 시간이다. 태백가든 앞에서 버스가 기다린다. 집사람과 함께 오랜만에 나서는 일출산행이다반가운 얼굴들과 인사하기가 무섭게 잠을 청한다강릉까지 가려면 조금이라도 자두어야 한다대관령휴게소눈쌓인 주차장에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한파은근히 걱정이 되지만 원래 이런 거야 하며억지로 위안을 한다집사람에게 이것저것 장비를 챙겨주고스패츠를 미리 준비한다안인진 삼거리한밤중이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산행거리를 감안해 버스에서 잠시 눈을 붙인다
5시. 산행출발이다파도소리와 함께 불어대는 찬바람에 정신을 뺏긴다포기해? 말어? 갈등이 시작되지만산행을 준비하는 일행과 어울린다계단길얼음으로 미끄럽다. 아이젠을 꺼낸다어두운 산길산에 발을 들이자마자 이내 숨이 가빠왔다.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그냥 오른다. 뒤따르던 일행이 뒤쳐졌는지 앞선는지 알수도 없고집사람만 매달고 무작정 오른다힘들어, 천천히 갑시다집사람이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본다헉헉 거리며 산에 오르고 있다. 어두운 산길을 더듬어서 오르다 보니 후레쉬가 추위 때문에 불빛이 흐려지고헤드랜턴에 의지하며 계속 전진 능선을 올라서면 바람이 불고, 돌아가면 조용한 숲길일행들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분명 누군가 뒤로 처진 것 같은데 파악이 되지 않았다.
삼우봉먼저 올라온 다른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아직 일출시간이 멀었기에그냥 정상까지 밀어붙이기로 한다숨이 가빠질 때 한번 쉬면 자꾸 쉬어야 한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 부터는 별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동트기 전이라 사방이 캄캄했고 칼바람이 불어서 매우 추웠다. 멀리 수평선으로 고깃배 불빛이 반짝이고조금 일찍 도착했다.아무도 없는 정상은 우리 둘뿐이제 해맞이 장소를 찾아야한다
눈밭을 헤매며 왔다갔다 해보지만나무에 가려 전망장소가 없다겨우 렌즈가 빠끔이 내다보는 틈새를 찾아배낭을 내려놓고 커피한잔동쪽하늘이 밝아지는 수평선으로구름이 몰려오는 게 불안하다어느새주변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꽉 차있다. 해가 뜨는 동쪽 방향은 접근 할 수조차 없다.
사실새해 첫 날 뜨는 해에게 소원을 빌면 성취 된다는 따위의 말들을 난 믿지 않는다. 그저 이른 새벽 반가운 얼굴들과 산에 오르는 것이 좋아서 올라왔을 뿐이다. 장갑을 끼고도 손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씨에 산에 오르는 것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는 일이다.
7시40분일출시간이지만 구름에 가려 하늘만 발갛다동쪽을 바라보며 펭귄처럼 서 있던사람들이 숙연해진다주황색 하늘이 밝아지며희미한 원형의 불빛이 머리를 내민다아주 가끔씩 나무 틈 속에서 힘겹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추위에 손가락이 곱아서 셔터가 눌러 지지 않는다. 이상 한 것은 손가락이 곱을수록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욕구는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찰칵’ 드디어 촬영이 시작된다추위에 얼어 있는 손가락을 겨드랑이에 사이에 넣고 잽싸게 한 장 찍고 품속에 카메라를 품고, 다시 꺼내고사람들 머리를 비집고 나온 기축년 첫날 ‘해’ 를 드디어 카메라에 담았다.
새해 첫날 날이 밝았다문자메일이 날아들기 시작이다. 확인 할 때까지 계속 울려대는 벨소리신년에 걸쳐 서로 안부를 여쭙자는 조그만 성의표현이지만언손에 꺼냈다 넣었다 하며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문자를 감당해내지 못한다. 하산을 서두른다줄지어선 무리들이 길게 이어지고구름에 가린 해는 신통치 않았지만 어쩌랴나뭇가지에 가려서 삐죽삐죽 보이는 빨간 해에게도 무의식중에 이렇게 소원을 빌었을 듯하다 한 해 동안 소처럼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게 해 달라고.
얼어붙은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와 만나는 산사먼 서쪽에서 동쪽으로 찾아온 이방인이법당에 들어서 삼배를 한다자신의 이익과 즐거움 보다희생하고 봉사하라는 '발심수행장'의 명구를 되새기며'난행능행'하며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가족을 위하여 일배건강을 위하여 이배사업을 위하여 삼배
주차장찬바람이 불어대는 벌판에서만두국을 끓이느라 분주하다부지런한 팀은 이미 둘러앉아 식사가 한창이다집으로 돌아오는 길늘어선 차량은 가다서다속세에 첫발을 내닫는 순간부터 고행이 시작되는가 보다.
2009년 기축년 새해 첫날입니다.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지만 여느 해 만큼 들뜨거나 기대에 부풀어있지 못합니다. 대신 곳곳에서 울분을 토하는 곡소리가 벽두부터 끊이질 않습니다. 보신각 타종행사 생방송을 KBS가 조작했다는 소식을 비롯해, 국민을 기만·우롱하는 이들에게 '정권퇴진' 'MB아웃'을 외치고 소망하는 시민들을 임의연행하고 위협·모욕하고 노란풍선까지 잡아채가는 경찰들의 모습들이 비춰지고, 국회에서는 각종 악법들을 날치기 하려 해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짬을 내어 숲 속의 철학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윌든>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 <시민의 불복종>을 일독해 보세요. 넉넉한 깨우침이 있을 겁니다암튼 모두 새해 첫날 떡국들 드시고 힘내시길! 그 힘으로 어렵고 답답한 세상 지혜롭고 슬기롭고 당차게 헤쳐 나가시길!! 새해에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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