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1,240m)~운문산(1,188m)

0위치 : 경남 밀양, 울산 울주, 경북 청도

0코스 : 석남터널→1168봉→가지산→아랫재→운문산→상운암→석골사→석골교

0일시 : 2009. 5. 9(일)

0시간 : 8시간 /맑음


<산행시간>

06:00 석남터널(울산)

06:10 산행시작

06:35 능선 /석남터널1.3km, 가지산2.2km

06:45 석남재 대피소

06:50 나무계단-안내도

07:05 석남사주차장 갈림길

07:30 1168봉

07:45 안부 갈림길 /↓석남고개 2.6km, ←제일농원 3.4km, ↑가지산 0.35km

08:00 가지산(1,240m) /운문산5.3km,아랫재3.8km,쌀바위1.3km,석남터널3.1km,중봉0.75km

08:10 대피소

08:15 헬기장

08:35 자살바위

09:00 전망바위 /↑운문산 2.6km

09:05 백운산 갈림길 /↓가지산 2.6km, ↑아랫재 1.3km, ↑운문산 2.2km, ←제일농원 2.61km,

←백운산 1.78km

09:15 얼음굴

09:45 아랫재 /휴식15분 /가운산방 대피소

/↑운문산 1.2km, ←남명초등 3.91km, ↓가지산 3.87km

10:50 전망바위

11:05 운문산(1,188m) /←삼양5.5km, →석골사 4.5km, →억산 4.1km /5분휴식

11:10 헬기장 /중식

12:00 갈림길 /↑석골사4.0km, ↑상운암0.5km, 억산3.5km, 딱밭재1.6km,↓운문산0.5km

12:15 상운암

12:35 돌탑 /↓운문산 1.5km, ↓상운암 0.8km, ↑석골사 2.8km

13:05 정구지바위 /↓운문산 2.5km, ↓상운암 1.8km, ↑석골사 1.8km

13:15 딱발재 갈림길 /석골사1.4km

13:20 범봉갈림길/석골사1.2km,범봉1.36km

13:30 치마바위

13:35 억산 갈림길 /↘억산 2.6km, ↘팔풍재 2.1km, ↓운문산 3.8km

13:45 석골사

13:50 석골폭포

14:10 창의유적기념비

14:20 석골교

운문지맥은 영남알프스 최고봉인 낙동정맥 가지산에서 분기하여

운문산, 억산, 구만산, 용암봉, 중산, 낙화산, 보담산, 비학산을 거쳐

밀양강변에 이르는 도상거리 약 33.7km의 산줄기로서,

밀양강의 제1 지류인 단장천의 북쪽 울타리임과 동시에

운문호가 있는 동창천의 남쪽 울타리가 되어 밀양강까지 이어진다.

가지산 입구에는 비구니의 수련도량으로 유명한 석남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운문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에는 기암괴석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가지산의 또 다른 묘미는 다양한 전설을 간직한 바위 봉우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베틀 같은 베틀바위, 딴청을 부리고 있는 딴바위,

탐욕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는 전설의 쌀바위 등이 그것들이다.

쌀바위는 전국의 암벽 등반가들이 한번쯤 들리는 암벽 코스로도 유명하다.

운문산은 영남 7산 가운데 하나로, 가지산·천황산등과 함께 이른바 영남알프스를 이룬다.

운문현을 중심으로 동운문과 서운문으로 나뉜다.

동운문은 남쪽 비탈면의 절벽 밑에 구연동, 얼음골로 불리는 동학, 해바위 등

천태만상의 기암이 계곡과 더불어 절경을 이룬다.

또 북쪽 기슭에는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창건된 운문사가 있고,

남쪽에는 석골사등 크고 작은 절과 암자가 산재한다.

거대한 봉분 같은 단순한 모양새이지만 억산과 가지산의 좌우 준봉에서

북으로 뻗어간 긴 능선들 덕분에 운문사가 들어앉은 깊은 골을 갖추었다.

그러나 남쪽으로는 여지없는 홑산이어서 커다란 바위산덩이 한바우산으로 불린다.

.

운문산, 가지산, 신불산, 재약산으로 이어지는 산군의 아름다움이

유럽의 알프스와 일본의 알프스에 견줄만하다고 하여 영남알프스라 하며,

다시 가지산을 중심으로 한 북알프스와 신불산을 중심으로 한 남알프스로 구분한다.

이 영남알프스는 하나의 산줄기 개념이 아니라 흩어진 산들의 집합체다.

배내고개를 기점으로 남으로는 단장천이 발원하여 배내골로 흐르다가 밀양호에 담기고,

배내고개 북으로는 덕현천이 굽이쳐 고헌산 아래에서 태화강을 발원한다.

<산행기>

태백가든

오랜만에 떠나는 무박산행

영남의 최고봉을 가기위해 잠을 설치며 버스에 오른다

청도휴게소

여명이 시작되는 새벽

선잠을 깨우며 아침식사를 하는데 먹는둥 마는둥

그리고 가지산으로 떠난다

석남터널

석남주차장 터널 직전에 버스를 세운다

들머리에 세워진 조감도를 살펴보며 능선을 정리해 둔다.

계곡을 따라가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석남주차장에서 올라오는 능선길과 만난다

석남고개 갈림길

진달래가 간간히 피어있는 자갈 깔린 능선에 서면

산허리춤을 휘감아 돌아가는 석남재가 내려다보인다.

그 왼편으로 울주군 언양 일대가 흐릿하다.

/ ←석남터널(울산) 1.3km, →가지산2.2km

석남재 대피소

입구는 낙서판이다

시원한 검은콩 막걸리가 있다는 매점겸 휴게소

우측 능선 중간으로 거북이 모습의 쌀바위가 뚜렸하다

안내도

2개의 계단길이 있는 초입에 세워진 안내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한다.

바로 위 봉우리는 가지산의 전위봉인 1168봉이다.

석남사주차장 갈림길

왼쪽 길은 석남터널의 밀양방향 출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

계단이 상256, 하338 계 594단이라고 낙서를 해 놓았다

기나 긴 나무계단을 넘어서니..

다시 너덜길이 목책을 옆에 두고 이어진다.

1168봉

남쪽으로 재약산 수미봉과 사자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우측편에 다소 자세를 낮추고 있는 봉우리는 백운산이다.

가지산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북동능선이 상운산으로 뻗어간다.

바로 건너 능선으로 쌀바위가 지척이다

쌀바위의 유래

옛날 이 바위 밑에 초막을 짓고 수도 정진하던 한 스님이 있었다.

양식이 떨어지면 아랫마을로 내려가 탁발(동냥)을 얻어야 하는

스님의 고행이 가여웠는지 부처님이 기적 같은 자비를 내렸다.

그 바위에서 날마다 한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이 물방울 흐르듯 또닥또닥 나왔던 것이다.

스님은 수없이 부처님께 감사의 염불을 올린 다음 이 쌀을 소중히 거두었다.

그러나 욕심이 생긴 스님에게 바위 구멍은 작아 보였다.

구멍을 크게 하면 쌀이 더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위 구멍을 크게 뚫기 시작했다.

쌀을 팔아 돈이 모이면 큰 절을 지어 주지로 출세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스님은 그날로 수도 정진은 뒷전이었다.

그러나 쌀이 나와야 할 바위 구멍에서는 쉴 새 없이 맑은 물만 흘러나왔다.

스님은 그때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뉘우치며 통곡했으나 허사였다.

그 후로 쌀은 영영 나오지 않았으며 이름만이 쌀바위, 미암(米岩)으로 전해온다.

지금도 그 스님이 쌀을 받았다는 곳에 가 보면 바위틈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다.

능선에서 목을 축이는 유일한 장소 쌀바위에는

인간의 탐욕을 거부하는 자연의 섭리가 함께 흐른다.

- 출처: 미상 -

안부

안부에서 한층 더 가까이 관측되는 남서릉이 멋지다.

안장처럼 굽은 매끈한 곡선 끝이 날카로운 기암절벽으로 이어진다.

바위를 타고 올라서니 나즈막한 절벽 위로 돌탑이 보인다.

그곳이 정상인가보다 하며 왼편 모퉁이로 돌아서니 정상은 조금 더 가야 한다.

/↓석남고개 2.6km, ←제일농원 3.4km, ↑가지산 0.35km

가지산(1,240m)

사각 검은 대리석으로 된 정상석을 만나지만

왼쪽 끝으로 자연석으로 된 정상석이 또 있다

가지산(加智山)...'지혜를 더 하는 산'이라..

그런데 석남사에서는 한문 표기를 달리하여 가지산(迦智山)이라 부른다고 한다.

여기서 가지(迦智)는 '부처님의 지혜'라는 뜻이라 한다.

부처님의 지혜가 가득한 산, 지혜가 더해지는 산..

가지산의 옛 이름 새산(鳥山) 혹은 까치산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의 가지산은 까치에서 나왔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가(加)는 까의 음차(音借)이며 지(智)는 치로 읽어야 하니 역시 치의 음차(音借)인 것이다.

이와 같이 가지산은 옛 '가치메'의 이두식 이름이다. 까치의 옛말은 '가치'였다고 한다.

울주군 상북면 주민들은 가지산을 가리켜 '구름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자주 구름에 뒤엎이는데서 유래했다.

또 천화산이라고 하는 연유는 이 산이 화산의 분화구 지대임을 말해주는 듯 싶다.

그리고 밀양 쪽에서는 실혜산이라고 하는데

산 속에 실혜촌 또는 부요마을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실혜촌은 일제 시대 이후 없어졌다고 한다.

- 출처: 「해동고승전 」 및 「삼국유사 」및 주민 구전설화 -

헬기장

정상 바로 아래 대피소를 지나 이어지는 능선길.

편안하고 운치있다.

키작은 멋진 소나무가 군데군데 놓여있고

그 사이로 곱게 핀 진달래가 어우루러진 아름다운 풍경이다

/운문산 2시간20분, 아랫재 1시간20분, 제일농원 1시간30분

전망바위 (일명: 자살바위)

능선은 절벽을 왼편에 두고 계속 이어진다.

절벽 아래에 남명리 마을이 보이고 그 가운데로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내리막길

이정표가 없는 공터 갈림길에서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한다

왼쪽 능선을 따라 활처럼 휘어지는 능선 끝으로

아랫재 그리고 운문산이 기다린다

좌측으로 펼쳐지는 기암절벽에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산허리를 돌아가는 도중에 전망바위를 만난다

지나온 가지산이 북서쪽으로 보인다.

왼편의 암봉이 가지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뻗어가는 능선 중간에 위치한 '가지북능'이다.

전망대

다시 능선을 따라 전진하는 길.

왼편 사자봉 너머로 뾰족한 봉우리를 내밀고 있는 수미봉이 희미하게 솟아있고

사면에 가득한 억새밭 사이로 키작은 노송들이 서있는 아름다운 능선이다

/↑운문산 2.6km

백운산 갈림길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갈림길에서

운문산 정상이 한층 가까이 다가와 있는데

그 아래로 떨어지는 아랫재가 무척 깊게 느껴진다.

저곳에 오르려면 바닥까지 내려가야 할 모양이다.

내리막 도중에 바위틈으로 찬바람을 토해내며

아직도 얼음이 남아있는 석굴을 만난다

/↓가지산 2.6km, ↑아랫재 1.3km, ↑운문산 2.2km, ←제일농원 2.61km, ←백운산 1.78km

아랫재

길게 이어지는 급경사 내리막

오른 만큼 다시 내려가는 험한 산길이 끝나면

이정표가 지키는 삼거리에 가운산방(加雲山房)이라 쓰여진 대피소가 있다.

비록 허름하지만 산객들에게는 편안한 안식처가 될수있는

가지산과 운문산 사이의 산방이란 뜻이 담겨있다. 잠시 휴식

/↑운문산 1.2km, ←남명초등 3.91km, ↓가지산 3.87km

암릉길

운문산을 향하여 오른다

다소 가파른 길이지만 아침식사를 대충때우는 바람에

허기진 채로 오르려니 가다쉬고 가다쉬고...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은 험악한 칼능선 암릉길, 그리고 우회길이다

힘든 경사길을 오르느라 지친 터라 포기하고 우측으로 돌아간다

암릉을 지나면 산죽길이 이어진다.

산죽길을 벗어나니 거대한 암봉이 다가오는데

정상은 그 너머에 있는 듯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왼쪽으로 돌아가 절벽위에 선다

전망대

온 산이 발아래.. 기막힌 조망처다

지나온 능선이 가지산까지 이어지고

암릉 뒤로 운문산이 다가선다

암벽사이에서 뿌리를 내린 소나무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자라는 생명이란 자연에서도 참 고귀하다.

좁은 암릉에 들어서니 등산로 정비공사가 한창이다

강비탈을 기다시피 겨우 올라서 우측으로 휘어지는 암릉을 따라가면

도중에 대산련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다. 직진

운문산(1,188m)

구름의 문, 운문산. 이름대로 구름이 많은 산이다.

청도쪽에서는 운문산의 산세가 험준하다고 하여 호거산이라 불러

지금도 운문사 입구에는 호거산 운문사라는 화강암 표석이 있다.

한편 청도 운문면 쪽에서는 그 모습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이 산은

밀양 산내면에서는 가리는 것 하나없이 지척에 보인다.

이 곳 사람들은 산의 모양이 마치 한덩이의 큰 바위처럼 생겼다고 하여

‘한바위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산기슭에 석골사가 있고 멀리서 보면 ‘만산의 기암이 개골’이라 하여 석골산으로도 부른다.

또「미리벌의 얼」에는 '산이 높아 맺혔던 꽃봉오리가

피기전에 시들고 만다해서 화망산이라고 한다.

혹은 석골사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흡사 꽃을 감싸고 있는 꽃잎 같은 형국이라 함화산이라 한다

또 다른 이름인 일출봉,석동산으로도 불린다

운문산은 전체적으로 듬직하고 중후한 모습이다.

산세는 정상 남쪽(밀양쪽)으로 급하고 능선이 짧은 반면

북쪽(청도쪽)으로는 능선이 길고 완만하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청도의 운문산은 연해진 봉우리와 겹쳐진 묏뿌리에 골이 깊숙하다.

승가에서는 천 명의 성인이 세상에 나올 곳이다.

또 병란을 피할 수 있는 복지라 한다’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이 넓고 험한 산세는 임진왜란 당시 이곳이 의병들의 본거지가 되었는가하면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는 빨치산들의 은거지로도 이용되었다.

이곳에도 두 개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동쪽으로 지나온 가지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오른편으로 신불산군과 재약산군이 아득히 펼쳐져 있다.

서쪽으로 돌아서면 억산 능선이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억산 뒷편으로 대구 팔공산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확인하지 못했다

/←남명리5.5km, →석골사4.5km, →억산4.1km

헬기장

공터에는 공사용 자재가 널려있고

능선 한켠에서 늦은 점심을 한다

잠시 쉬고 석골교를 향하여 하산한다.

갈림길

돌탑이 있는 삼거리.

직진은 억산으로 가는 길이고, 석골사는 왼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석골사 4.0km, ↑상운암 0.5km, 억산 3.5km, 딱밭재 1.6km, ↓운문산 0.5km

0 億山(944m)

가파른 오르막길과 치솟은 바위봉우리, 군데군데 암반과 절벽이 절경

천년에서 1년이 모자라 용이 못 된 이무기가 밀양 쪽으로 도망가면서

꼬리로 봉우리를 치고 도망가 산봉우리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주변에 이 전설과 관련된 기암괴석들이 있다.

상운암

석골사 부속 암자로서 함화암이라고도 불렸다

예로부터 천진보탑으로 그 터가 명당이라 기도의 효험이 높은 곳이다.

입구에 있는 약수터는 물이 차고 물맛 또한 일품이다.

스레트 지붕으로 된 자그마한 건물에 상운암 관음전 현판이 걸려있다.

625전쟁 직후 빨치산 소탕작전의 일환으로 모든 당우가 소실되어

1960년에 지금의 요사채를 지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다.

/↓운문산 1.5km, ↓상운암 0.8km, ↑석골사 2.8km

너덜지대

온통 바위길의 연속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넘어진다.

도중에 계곡을 따라 있는 돌탑군을 지난다

천상폭포

보통의 폭포는 한 곳으로 흘러내리는데

여긴 사방으로 퍼져 흘러내린다.

바위길로 이어지는 내리막에서 발바닥까지 통증이 오는

험하고 힘든 길...말그대로 석골, 돌 골짜기다

정구지바위

지루한 내리막 길을 내려가니 이정표가 나오고.

그 옆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바위 밑에 누군가가 '정구지바위'라고 써놓은 것이 눈에 띈다.

정구지란 경상도 사투리로 부추라는 뜻이다

마고 할머니가 정구지를 이고 가다가 조금 흘려 두고 가서

아직도 정구지가 있다고 하뎐가 .....

여기서 얼음굴을 거쳐 운문산 남능으로 오를 수 있고,

상운암을 거쳐 운문지맥을 따라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운문산 2.5km, ↓상운암 1.8km, ↑석골사 1.8km

이후 계속이어지는 너덜길..

석골사가 1.4km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지난 후부터

등로가 다소 편안해진다.

범봉갈림길

팔풍재는 범봉과 억산 사이의 안부 고개이며

청도군 금천면 대비사로 넘어간다.

/석골사 1.2km, 범봉 1.36km

치마바위

다소 위험한 좁은 절벽길을 지나며

왼편 계곡 건너로 범상치 않은 암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하니 치마바위인 듯 싶다.

억산갈림길

억산을 능선길로 오르는 갈림길이며 안내판도 있다

나무게시판을 지나니..막바로 석골사 후문이 나온다.

/↘억산 2.6km, ↘팔풍재 2.1km, ↓운문산 3.8km

석골사

후문 안에 들어서니 자그마한 마당을 앞에 두고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극락전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뒷편으로 칠성각이 보인다.

한때 석굴사 또는 노전사라고도 불렀다.

옛이름 석굴사(石堀寺)가 언제부턴가 석골사로 와전되어 불리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560년 비허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773년에 법조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어,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1753년(영조 11) 함화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석골사에는 주지와 상좌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주지와 상좌가 이 절에 머물렀는데, 상좌의 인품과 학덕이 주지보다 높았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주지는 지팡이로 마법을 걸어서 상좌를 강철이로 변하게 하였다.

강철이란 독룡(毒龍)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초목이 말라죽는다는 괴물이다.

강철이로 변한 상좌는 억울함을 참으면서 열심히 불도를 닦았다.

1년 뒤 강철이는 옥황상제에게 하늘로 오르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화를 내고 몸부림을 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박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인근의 농작물이 죽었고, 이후 매년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강철이가 몸부림을 쳐서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석골폭포

경내를 빠져나와 내려가다 계곡쪽에 제법 힘찬 물소리가 들린다.

절 바로 아래에는 정상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폭포를 이루어,

절 이름을 따서 석골폭포라 부른다.

10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고 장쾌한데,

칼로 벤 듯 깎아지른 벼랑이 아니라 층층대처럼 턱이 진 암벽이어서

통통거리며 돌아내리는 폭포수가 맵시 있다.

석골사가 자리한 일출봉은 함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찬 기류 때문에 꽃을 품기만 하고 피우지 못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우측 축대 위로 부도가 보인다.

창의유적기념비

길가에서 커다란 기념비를 만난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몇몇 의사들이 모여 창의를 하였다고 한다.

창의(倡義)란 '국란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킴'이란 뜻이다.

석골교

석골마을을 벗어나 동천교 그리고 석골교를 건너니

버스가 그곳에 주차해 있다.

밤새도록 달려 선잠속에 아침을 먹고 힘들게 종주한 가지산, 운문산

능선과 계곡이 깊고 넓게 어우러져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험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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