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489m)
0 위치 : 전남 해남군 현송면 월송리
0 코스 : 미황사~문바위~사자봉~작은 금샘~미황사
0 일시 : 2010년 3월 14일(일) /무박
0 시간 : 2시간 /흐림
<산행시간>
24:00 태백가든
07:40 송촌마을
07:50 미황사 주차장
08:00 미황사
08:20 산행시작 /작은금샘, 부도전,대밭삼거리
08:40 갈림길 /작은금샘0.35km, 미황사0.65km
08:50 전망바위
08:55 작은금샘 /문바위0.3km,불선봉0.6km, 미황사1.6km, 도솔암4.6km,대밭삼거리1.2km
09:10 문(門)바위 /작은금샘0.15km, 달마봉0.45km,
09:15 문바위재
09:30 정상 /송촌4.1km, 미황사1.4km, 문바위재0.3km, 도솔봉5.2km
10:05 헬기장
10:20 미황사 주차장
13:00 땅끝
예부터 우리나라 육지 최남단에 봉긋 솟은 달마산과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마을은 우리나라 지리의 기준이 돼왔고,
일본과 중국을 잇는 해상의 요충지였다.
호남정맥 국사봉과 삼계봉 사이에서 서쪽으로 가지 친 땅끝기맥이
선왕산, 월출산, 도갑산, 두륜산을 거쳐 달마산을 일구고,
사자봉 땅끝에서 여맥을 다한다.
혹자들은 일제가 왜곡시킨 지리를 참고로 삼아 소백산맥에서 뻗어온 산줄기로
남해를 거쳐 일본까지 이어진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분명 잘못임을 밝혀둔다.
고려 고승 무애대사는 이 산을 일컬어 북쪽으로 두륜산, 삼면은 바다,
송호리에는 송림과 참나무가 울창하고 기암괴석들이 우뚝 솟은 깃발과 같다.
그리고 사자가 찡그리고 하품하는 형상이요,
용호가 발톱과 이빨을 세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멀리서 바라보면 하얗게 쌓인 눈이 공중에 한 발짝 다가서 있는 듯하다고 했다.
육당 최남선은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 리,
서울에서 함북 온성까지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국경위도 편에는 우리나라 남쪽 기점을 해남현으로 잡고,
북쪽을 함북 온성현에 이른다는 기록이 보인다.
정상에는 함평군청에서 세운 불썬봉과, 송지 달마산악회에서 세운 달마봉 이름이
산꾼들을 헛갈리게 하더니만 지금은 모두 없애고 돌탑만 남아있다
미황사 주지 스님은 산 전체를 부를 때는 달마산, 정상은 달마봉, 북쪽 암봉은 관음봉,
남쪽은 도솔봉이 옳다고 했다. 반면 해남군청에서는 옛적에 정상에 있는 봉수대에서
통신수단으로 불을 쓴 봉우리라는 전라도 방언에 따라 불썬봉이라 했다.
아무튼 해남군청, 미황사 주지, 송지 달마산악회를 비롯한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서 이정표를 새로 세워줄 것을 기대한다.
<산행기>
태백가든
무박산행을 될 수 있는 한 가지 않겠다는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남도의 봄소식을 전한다는 매화꽃소식에 반해 무박으로 떠나는 달마산을 예약하고
모처럼만에 참석해서인지 낮설은 얼굴들이 많다.
송촌마을
들머리 마을입구 표석과 키가 큰 노송 두 그루가 길잡이 역할을 한다
잔뜩 흐린 날씨에 빗줄기가 살짝 내리는 새벽
능선을 종주하려는 팀들을 먼저 내려주고 미황사로 떠난다
미황사 주차장
오랜만에 만나는 산사의 아침.
불사를 일으키려는 선심으로 경내 곳곳을 파헤치는 공사가 한창이다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있는 오늘만이라도 무소유를 화두로 하며 좀 쉬었으면..
갈림길
경내를 돌아보며 동백나무숲과 낙엽이 쌓인 길을 올라가면 임도가 나오고
도중에 왼족으로 등산로 입구 안내판이 보인다
동백나무가 가득한 길이지만 꽃은 없고
푸르름으로 가득한 상록수들이 이어진 조용한 숲길이다
부지런한 산꾼들은 벌써 하산길을 줄지어 내려온다
전망바위
거대한 암벽을 왼쪽으로 돌아가며 너덜길
아래로 미황사가 보이는 급경사에서 줄타기를 하며 오르면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바위에 멋진 전망장소가 있다
작은금샘
동쪽 바다 건너로 완도의 상황봉이 구름을 잔뜩 얹고 다소곳이 솟아 있다.
우측이 도솔봉. 좌측이 정상가는 길
날아갈 것 같은 거센 돌풍을 피해 머리를 잔뜩 숙이고
급한 내리막에 걸린 밧줄하나가 오가는 산꾼들을 불러 세운다
능선을 따라 간헐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등산객들의 모습을 따라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걸으며
부지런히 기암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문(門)바위
문바위 지대로 향하는 암릉은 오금을 저리게 한다.
밧줄에 의지하여 거미처럼 암벽을 오르내리며 오랜만에 유격훈련을 한다.
등산객 때문에 정체현상이 극심해서 이곳에도 신호등을 설치해야 할 모양이다.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문(門)바위재
길에 뻗어 있는 바위능선은 공룡의 등뼈 같지만
도저히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바위틈새로 용케도 계단길을 낸 선인들의 노력덕분에
가볍게 준마의 등을 타고 달마산의 정기를 받으며 산행을 한다.
문바위의 개구멍바위를 지나고 싶지만
돌풍이 불적마다 움츠려드는 몸짓으로 아쉽지만 우회를 한다
긴 계단을 올라서면 능선끝으로 봉화대가 보인다
바람이 얼마나 드셌으면 풀들이
서쪽으로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도솔봉 7km, 금샘 1.1km
정상
봉수대 뒤 북쪽 관음봉 암릉은 송촌으로 가는 길이고,
지나온 남쪽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도솔봉 코스다.
동쪽으로 완도 백운봉과 상황봉이 구름으로 머리를 감추고 있고
북쪽 주작산과 병풍산, 천관산은 흐린 날씨로 보이지도 않고
남쪽으로 도솔봉과 사자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한눈에 잡힌다.
옛날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완도의 숙승봉과 북일 좌일산을 연결하던 곳으로
잔허가 남아 극심한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이 높은 봉에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했다 한다.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거센바람을 피해 잽싸게 담고는
손과 귀가 얼어오는 찬바람으로 후퇴
능선안부에는 맞은편에서 오던 등산객들이 무리를 지어
식사를 하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도 보인다.
바위로 엉켜있는 내리막을 내려서면
잡목, 바위, 산죽이 어우러진 숲길에선 발걸음이 가볍다.
헬기장
발아래 예쁜 소가 점지해 주었다는 미황사를 에워싸고 있는
달마산을 마주하면 좌선하는 달마대사의 인자한 모습이 뇌리에 스쳐가는 뜻은
아마도 달마대사가 인도와 중국을 거쳐 배를 타고 우리나라 해남으로 와
세계에서 이름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달마산에서 상주했다는 미황사 때문이 아닐까
넓은 공터를 지나 왼쪽 산허리를 돌아가면 주차장이다
미황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이다.
749년(경덕왕 8)에 의조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사적기에 따르면 금인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이렀다고 한다.
이에 의조는 금인의 말대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황(黃)’자를 쓴 것이라 한다.
그뒤 수백년 동안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절이 소실되자 1598년에 만선이 중건하였고,
1660년 성간이 중창하였으며 1754년(영조 30)에는 덕수가 중창하였다.
한국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사찰로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947호), 응진당(보물 1183호)과
명부전, 달마전, 칠성각, 만하당, 세심당 등이 있다
주차장
좁은 입구까지 버스가 줄지어서고
늦은 시각임에도 꾸역꾸역 올라온다
우리나라에서 자장 먼저 봄이 온다는 남해
봄마중 가던길에 꽃은 고사하고 바람만 맞고 떠난다
땅끝
오랜 시간 달려온 버스속에서, 같이 함께 걸으며 나누는 진솔한 이야기들..
삶에서 겪어야했던 아픈 이야기들을 털어내는 시간들이 늘 고마운 산행길 입니다.
산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맨 정신으로 가슴속의 사연을 풀어 놓겠습니까?
달마산을 같이 걸었던 모든 분들과 추억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