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설한에 해발 1520미터에서 줄을 두 시간 섰다
국립공원케이블카, 엄격한 환경영향평가 통해 가치갈등 줄여야
/최수경
겨울철이면 덕유산국립공원 설천봉 케이블카 탑승은 하늘의 별 따기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부터 내리 5일간 강풍으로 운영하지 않았다.
온전히 걸어서 올라간 사람들이 만끽한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덕유산은 설경이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온 산이 상고대 혹은 눈꽃 핀 장관을 연출한다.
상고대는 기온이 내려가면서 대기 중 수증기가
미세한 물방울로 변한 뒤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것을 뜻한다.
밤새 내린 서리가 하얗게 얼어붙어 마치 눈꽃처럼 피었다는 의미에서 '나무서리'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상고대를 덕유산 1400미터 고지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데, 바로 덕유산 케이블카 덕분이다.
▲ 해발 1520m 무주덕유산 설천봉에서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사람들.
주중임에도 겨울 덕유산 케이블카 이용객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 최수경
나는 지인의 이야기에 새벽부터 배낭을 꾸렸다.
아이젠과 스틱, 스패츠를 챙겼고, 컵라면과 커피에 필요한 따뜻한 물을 챙겼다.
긴 산행이 자신 없어 일단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눈꽃을 보며 도보로 내려오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무주덕유산리조트에 도착하자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한 줄이 줄잡아 600여 미터였다.
케이블카 운영을 6일 만에 재개한 날이라 순백의 산행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이 모두 몰려든 것 같았다.
각오하고 왔으니 망설임 없이 세 시간을 기다렸다.
설천봉에 오르니 과연 듣던대로 눈꽃 세상이었다.
이미 눈이 다 녹은 아랫녘에서는 상상도 못 할 장관이었다.
설천봉에서 향적봉 구간은 줄지어 걸으며 사진 찍느라 지체하는 사람들로 인해 속도가 나지 않았다.
어떤 이는 흐름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 탐방로에서 벗어나 사진을 찍었다.
인간 간섭에 따른 자연경관 파괴와 외래생물 번성
▲ 상고대와 눈꽃이 어우러진 향적봉 주변 나무들 ⓒ 최수경
정상인 향적봉에 다다르자 안개와 구름이 교차하며 시야를 달리했다.
설악산 대청봉 표지석을 세 개는 세워야 한다는 농담처럼, 덕유산도 향적봉 표지석 한 개가 민망할 만큼,
인증 샷을 위한 대기 줄은 길었다. 가늠컨대 한 시간은 기다려야 표지석을 마주할 것 같았다.
오전에 케이블카를 기다리며 세 시간을 써버렸기 때문에
걸어서 백련사로 하산하는 계획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선택의 여지 없이 설천봉에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긴 줄에 합류했다.
한 시간 반을 눈 위에서 강풍과 싸우며 미동 없이 서 있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평일이 이 정도면, 주말 설천봉 케이블카 광장은 발 디딜 틈 없다고 했다.
이 광장이 과거 주목 군락지였음은 이미 역사 속 일이다.
덕유산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향적봉 1614m)으로 백두대간 중심부에 있다.
행정구역상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등 영호남을 아우르는 4개 군에 걸쳐 있다.
무주구천동으로 유명한 덕유산 북쪽의 계곡은 여름철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1975년에 10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설경을 쉽게 볼 수 있는 케이블카는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에 있다.
이 부근의 98ha에 이르는 면적이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있다.
향적봉 주변 지역은 주목군락, 사스래나무군락, 철쭉꽃군락 등이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특산수종인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잣나무 등도 분포하는 귀중한 고산지역 숲이다.
칠봉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능선은 이미 상급 코스의 스키장 도로가 되었다.
사람들이 탐방로에서 벗어나 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간 곳들이 모두 산림유전자원보호림 지대인 것이다.
▲ 덕유산 향적봉에서 바라본 설천봉 ⓒ 최수경
등산로의 환경훼손을 유발하는 주요인은 이용강도와 지형적 특성이다.
등산객들의 집중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 토양조건이 매우 불량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간섭에 따른 자연경관의 파괴와 외래생물의 번성으로 생물유전자원 도태압력은 현저하게 커진다.
케이블카의 양지와 음지가 교차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지팡이 짚은 노모를 모시고 올라온 3대가족이 설천봉 정상 카페 창가에서
면화 같은 눈꽃 송이를 내다보는 풍경은 따뜻했다.
아름다운 풍경에 즐거워하는 노모와 행복해하는 자식들 표정이 눈에 선하다.
설산을 경험하고파 세 시간도 아랑곳하지 않고 곤돌라를 기다린 나 같은 의욕쟁이들은 또 어떤가.
이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경관 서비스를 누릴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의사결정 방법 필요
▲ 덕유산의 깃대종인 구상나무 탐방로가 설치되기 전(2014년) 나무뿌리가 드러난
구상나무(왼쪽), 탐방로를 설치한 후의 구상나무(오른쪽) ⓒ 최수경
국립공원 생물자원 보존과 관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식물상은 어떤 지역의 인문사회환경의 영향은 물론 기후와 풍토환경을 반영한 생태적 지표이다.
덕유산국립공원은 남방계식물의 북방한계선 또는 북방한계식물의 남방한계선이 되는 특이지역에 해당한다.
향적봉과 중봉의 산정 부위에서는 가문비나무, 구상나무, 주목,
까치밥나무 등의 아고산 식생이 분포한다.
이러한 식물들은 아고산지역의 지형, 기후, 토양 등 조건이 열악하고
생태환경이 취약하여 외부 환경변화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즉, 백두대간 마루금과 같은 아고산대의 능선부는 생산력이 낮아
간섭과 파괴가 반복적으로 진행되면 원래의 상태로 회복이나 복원은 거의 불가능하다.
▲ 설천봉 스키 슬로프를 고르고 있는 장비 ⓒ 최수경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덕유산국립공원 내 무주리조트는
자연생태계와 경관을 대규모로 파괴함으로써 국립공원의 가치를 크게 손상시켰다.
1982년 16만7000평의 대규모 덕유대야영장이 개발된 이후,
1984년부터 덕유산국립공원에서 추진되어 온 무주리조트 개발(쌍방울)과
무주양수발전소 건설(한국전력)은 지난 26년간의 국립공원 관리행정사에 중대한 파괴 사례이다.
온 국민 누구나 이용하도록 국립공원구역에서는 특정인(회원)을 위한 콘도시설을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나 도, 군의 땅을 매각, 임대해주고, 국립공원의
자연보존지구를 변경해 주면서까지 국립공원제도의 근간을 훼손한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전히 시대를 관통하는 정치적 사회적 요인이 영향을 주었겠지만,
이러한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제도적으로 과학적 지식의 한계,
환경가치의 계량화 문제와 이로 인한 대안평가 문제,
운영상으로는 평가보고서의 부실과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 덕유산 설천봉 스키 슬로프 중 하나는 칠봉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능선에 도로를 내었다. ⓒ 최수경
국립공원은 국토의 대표적인 자연풍경지를 보호하면서 후손들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지정 및 관리하는 곳이다. 국립공원 지정이 오래된 곳일수록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규제에 의한 낙후로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켰다.
따라서 공원 탐방객의 편익을 도모하고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집단으로 개발 관리하고자 집단시설지구를 지정해 개발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원시설들이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롭게 계획되기 보다는 대규모로 계획되고,
탐방객의 유치를 위한 유흥적 목적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케이블카 등과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은 사유지를 중심으로
관광이용의 요구가 높아져 민원 발생의 요인을 야기한다.
전국 여기저기에서 케이블카 설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케이블카 사업은 환경보전과 지역개발 간의 가치 갈등이 극명하게 존재한다.
정치적 요인도 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한다.
이럴 때일수록 가치 충돌을 해소하고 합의 가능성을 제고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환경영향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보존과 개발, 이해관계자간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의사결정 방법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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