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규제 해제라는 대담한 퇴행
배려 필요하면 영세업자에 한정할 일
최소한 양면코팅컵 사용은 단속해야
/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장
지난 7일 환경부는 종이컵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플라스틱 빨대 및 비닐봉투는
단속을 무기한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2019년 11월 22일 일회용품 규제 로드맵에서 발표된 주요 정책이 4년 만에 모두 좌초 위기에 몰렸다.
이번 발표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종이컵 규제 제외다.
일정 부분 후퇴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의 대담한 퇴행은 상상도 못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음식점 내 종이컵 사용이 폭증하고 있는데
누르지는 못할망정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환경부는 종이컵 규제 국가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관계가 틀렸다.
독일, 프랑스는 올해부터 매장 내 종이컵 사용을 금지하고 있고 네덜란드에서도 내년부터 금지된다.
지자체 차원의 규제까지 포함하면 사례는 더 많다.
반나절만 조사하거나 전문가들에게 몇 번 전화만 돌려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정부 발표가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가? 이번 발표가 얼마나 졸속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설령 다른 나라에서 규제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음식점 테이블마다 종이컵을 쌓아놓고
손님이 마음껏 사용하도록 하는 소비가 확산되는 추세라면
이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한 종이컵에 뜨거운 음료를 담으면 내부 비닐 코팅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떨어져 나온다는 연구도 많아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종이컵 규제도 필요한 시점이다. 도대체 환경부는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가?
규제를 풀어주더라도 종이컵 사용이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안이한 생각이다.
매장 내 플라스틱 컵 사용만 금지하고 종이컵 사용을 허용하면 종이컵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플라스틱 컵 규제가 강해질수록 종이컵으로의 전환 속도가 빨라질 것이고,
이것을 막으려면 플라스틱 컵 규제를 느슨하게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시행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매장 내 종이컵 사용을 허용해 준 상태에서 테이크아웃 종이컵을 규제할 명분이 없지 않은가?
매장 내 사용 종이컵도 보증금을 부과하면 된다는 논리도 있는데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막말이다.
자그마한 분식집이나 푸드 트럭에서 어묵 국물을 마실 때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지적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영세한 음식점까지 당장 규제해야 한다는 무자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회용 비닐봉투의 경우 33제곱미터(㎡) 미만 사업장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음식점 일회용품 규제도 필요하다면 영세 사업장을 배려하는 보완을 하면 된다.
종이컵을 규제 대상에서 빼겠다는 발표는 철회하는 게 맞다.
규제를 합리화하겠다면 음식점 면적을 고려해서 규모 미만인 곳에 한정해서 완화해야 한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양면 코팅 종이컵은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
자원재활용법의 일회용 봉투·쇼핑백 규제에서 종이봉투와 단면 코팅된 종이봉투는
규제에서 제외하고 양면 비닐 코팅된 종이봉투는 규제 대상이다.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단면 코팅된 종이컵만 규제에서 빼는 것이 맞다.
매장 내 플라스틱 컵 사용은 확실하게 단속하겠다고 명확하게 발표해야 한다.
그래야만 보증금 제도를 비롯해 일회용품 규제가 완전히 붕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일회용품 규제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환경부의 발표를 아직까지는 신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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