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재선충으로 나무 무덤으로 변한 산
잘못된 처방으로 사태 악화...
지금이라도 전문가 도움 받아 제대로 대책 세워야
/정수근
산에 단풍이 든 것일까? 알록달록 초록과 황금빛이 번갈아 나타나 아름다운 문양을 만든다.
산 전체가 황금색 단풍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세히 보면 단풍과는 달라 보인다.
그렇다. 마치 단풍이 물들어가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소나무가 재선충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이다.
거대한 나무 무덤이 생기는 광경이다.
거대한 나무 무덤 ... 소나무재선충으로 죽어 나가는 우리 상록수 소나무
이곳은 대구 달성군 하빈면의 한 야산이다. 이 야트막한 야산 전체가 소나무 군락지이고 이곳 소나무 군락지의 절반 이상이 소나무재선충이란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소나무 숲 전체가 죽어가는 비극의 현장이다.
비단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서 유입돼 부산에서 시작한 소나무재선충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에 의해 지금 경북 울진과 강원 정선까지 확산하고 있다.
▲초록으로 푸르러야 할 소나무 대부분이 죽어 고동색으로 보인다. ⓒ 정수근관련사진보기
이곳 대구 달성군 일대 거의 대부분의 소나무가 재선충으로 죽어 나가고 있다.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 소나무가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며 죽어 나가고 있다. 어떤 나무는 죽은 지 오래되어 잎이 하얀색으로 변색되었다. 죽은 지 수년이 지난 소나무들도 부지기수다. 재선충 방제에 실패했고 거의 포기 상태란 말이 들린다. 우리 국토 전역의 소나무가 죽어 나갈 일대 위기다.
소나무재선충을 '소나무 에이즈'라 부르며 방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산림청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산림청이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재선충 방제에 실패해 우리나라 소나무가 초토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현장에서 만난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 김종원 전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는 말했다.
"일본이 나름 성과를 내는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왜 이 나라는 못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일본의 소나무재선충은 통제 가능한 상태로 관리가 되고 있는데, 이 나라의 소나무들은 당국의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통제 불능의 상황이다. 이러다가는 우리 국토 전역의 소나무들이 몽땅 죽어 나갈 것 같아 정말 걱정이다."
실제 한창 재선충 방제 작업을 할 지금 방제 작업을 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자포자기한 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충분히 방제가 가능하다. 일본에서 통제가 가능한 이 소나무 병이 이 나라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은 수술을 돌팔이에게 맡겨 놨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유능한 의사가 세심한 처치로 환자를 살려내듯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소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 전적으로 산림 당국의 무능 탓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의사가 필요하다.
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가 우화해서 이동하는 시기인 봄 전에 훈증과 같은 방제 작업을 충실히 하고 이후 투명한 방수포로 덮어서 안에서 제대로 방제가 되고 있는지 확인하며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김 전 교수의 분석이다. 그 증거로 그는 일본에서 소나무재선충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통계 그래프를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산림청에 해당하는 일본 임야청이 소나무재선충을 막아내 그 비율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통계로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의 재선충 방제 매뉴얼을 보면 지금이 재선충 방제작업을 해야 할 적기인데 지금 달성군에서는 방제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 이미 방제 작업을 해둔 곳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이 많다. 철저하게 관리하면 재선충을 막을 수 있는데 막대한 예산을 들여놓고도 재선충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정말 걱정이다."
이미 소나무재선충 문제로 논문을 쓴 바 있는 식물학자인 그에게조차 전혀 자문을 구하고 있지 않은 산림 당국의 무지함도 질타한다. 충분히 재선충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학자조차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엉터리 방제 작업에 엉터리 수종 갱신 산림청
문제는 더 있다. 재선충에 걸려 죽은 소나무를 모두베기로 몽땅 베어낸 곳도 엉망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현장도 찾았다.
대구 지하철 2호선 종점인 문양역 바로 뒤편에 있는 문제의 현장인 야트막한 야산엔 모두베기로 재선충에 걸린 나무들이 몽땅 베어졌고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은 일본산 편백나무였다.
"편백나무는 해양성 기후 화산 지대의 습윤한 곳에 자라는 나무로 대륙성기후 지대인 우리나라, 그 중에서도 가장 건조하고 가장 척박한 셰일퇴적암층인 이곳에 편백나무를 심은 것은 정말 무지의 소치로 이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나무를 심었다. 이 나무들 중 상당수는 벌써 죽어 나가고 있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는가."
김 전 교수는 "이렇게 나무를 새로 심을 때도 '잠재 자연 식생'이라고 그곳 풍토와 기후 조건에 맞는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왜 이곳 풍토에 전혀 맞지 않는 일본이란 해양성 기후 화산 지대에 사는 일본 특산종 나무를 가져와 심는지 도무지 이해 못할 일이다. 한마디로 직무유기"라고 맹비난했다.
이 일대는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 같은 나무들이 곳곳에 자리 잡아 살고 있어 이런 나무들을 심어도 되는데 '피톤치드 생산'이라는 유행을 쫓아 이 땅에 맞지도 않는 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그는 "편백나무는 이곳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자랐다 쳐도 쉽게 잘 쓰러지고 봄철 꽃가루가 극심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근본 처방과 처치 모두 잘못된 총체적 난맥상.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제대로 된 방제 작업으로 수술을 잘하고 잘 처치해 나간다면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 일본이 이미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모든 질병을 근절할 수는 없다. 우리가 팬데믹 상황을 적절히 통제했듯 재선충도 통제 가능한 상황으로 관리하면 된다.
살아남은 나머지 소나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잠재 자연 식생 개념만 이해한다면 제대로 새 나무를 심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 제대로 된 처방을 받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김종원 전 교수의 조언이다. 산림 당국과 해당 지자체인 대구 달성군이 소나무재선충 대책을 재점검하기를 기대한다.
벌겋게 죽는 소나무 확산,
전문가 "그냥 둬라, 다른 수종 바뀌는 기회"
소나무 재선충 '선택 방제' 필요성 제기...
"산림, 옮기어 바뀌는 현상에 맡겨둬야"
/윤성효
남부 지방에 재선충으로 죽어가는 소나무가 늘어나는 가운데,
모든 산에 억지로 방제를 할 게 아니라 참나무 등 활엽수로 자연스럽게 갱신하도록 하고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보호 가치가 높은 소나무숲을
선택적으로 지키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경남 밀양, 창녕, 합천뿐만 아니라 창원, 김해, 함안 등 곳곳에 소나무가 고사하고 있다.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에 있는 천주교 명례성지에서 늘 푸름을 자랑하던 소나무가
벌겋게 말라 죽었고, 명례강변공원 광장에 있는 소나무 15그루 가운데 2그루만 살아 있다.
남부 지방 야산에는 말라 죽은 소나무를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일부 지역은 무더기로 붉게 변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재선충 때문이다.
산림청과 광역‧기초지자체가 소나무 재선충 방제에 나서고 있다.
임상섭 산립청장과 박명균 경남도 행정부지사, 안병구 밀양시장은 관계자들과 함께
19일 밀양시 무안면 마흘리 일원에서 재선충별 피해지 방제 현장을 점검했다.
경남도는 재선충병 확산 방지를 위해 '2025년 방제사업비 증액 지원'
'소나무재선충병 드론 예찰단 운영지원' '소나무재선충병 연구 남부센터 설립'을 중앙부처에 건의했다.
밀양시는 2001년 초동면 반월리 일원에서 재선충병이 최초 발생한 이후
피해증감을 반복하다가 2022년부터 피해가 확산하는 추세로,
올해 1월에는 산림청에서 소나무재선충병 집단발생지로부터
주변 산림으로의 피해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밀양시 10개 읍면동 8685ha가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고시됐다.
경남도는 올해 10월부터 산림재해대책비 63억 원을 포함한 하반기 방제사업비 111억 원을 투입해
피해목 제거와 중요지역 예방 나무주사를 병행하고,
집단 피해지는 수종 전환을 확대하는 등 피해확산 방지에 총력 대응하고 있다.
박명균 경남도 행정부지사는 "소나무재선충병 급증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부처와 유기적인 업무협의와 개선방안 논의를 통해 예찰과 방제에 총력을 다하겠다"라며
"재선충병은 감염목의 무단 이동을 막아 인위적인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방제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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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환 "소나무가 죽는다고 강조할 게 아니라"
이런 가운데 소나무 고사를 자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는 2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소나무 적지가 없다"라며 "그렇다면 재선충이든 아니든 소나무 고사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수종갱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소나무가 죽는다고 강조할 게 아니라 참나무를 비롯한
다른 경제 수종으로 바뀌어 번성하는 기회가 된다는 게 중요하다"라며
"우리 정부가 자연스러운 현상에 역행해 소나무숲을 조성해 왔다.
생태계 교란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지적했다.
일본 사례를 든 홍 교수는 "일본은 1970년대 재선충 방제를 하다가 1987년에 그만 뒀다.
그런데 우리나라 산림청은 '일본은 포기했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라며 "그냥 둬야 한다. 방제보다 그대로 두면 덜 죽는다.
방제하는 순간 교란이 되는 것이다. 긁어 부스럼 만든 꼴"이라고 설명했다.
보호 가치가 높은 소나무와 관련해, 홍 교수는 "정이품송이라든지
특별히 보호를 해야 할 가치가 있는 소나무는 예방을 해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약품을 주사한 소나무는 목재로서 가치가 사라진다.
농약을 주입했기에 목재로 쓸 수 없는 것이다.
10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이고, 땔감으로 쓸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일부 지역에서 소나무를 베어내고 편백을 심는 것에 대해,
홍 교수는 "수종 갱신을 한다면서 주로 편백을 심는다.
그런데 편백은 외래종이다. 자연적으로 두면 참나무 등 활엽수가 자라게 된다"라며
"산림청은 세금 쓰기만 하고 있다. 민족의 나무이기에 소나무를 살려야 한다고 하면서도
잘라내는 지역이 있는데, 앞 뒤가 맞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박정기 "방제에 지금은 '우선 순위'가 필요한 시점"
박정기 조경전문가는 "소나무 재선충 방제는 '선택과 집중' 대응이 필요하다.
통도사, 운문사, 해인사 같은 사찰림이나 하동 송림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숲,
울진 소광리 금강송군락지, 서울 남산과 경주 남산, 안면도 소나무숲와 같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은 철저히 방제하고 그밖의 산림은
자연 천이(遷移, 옮기어 바뀜)에 맡겨두는 것이 맞다"라고 제시했다.
그는 "재선충 방제에 있어 지금은 '우선 순위'가 필요한 시점이다.
산림 소나무보다 생활권 소나무 방제가 먼저"라며 "시민들이 일상으로 만나는 소나무를 제쳐 두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도 실효성에 의문이 남는 산림 재선충 방제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명례성지‧명례강변공원을 사례로 든 박정기 조경전문가는
"사계절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에 있는 소나무가 재선충 피해로 죽어가고 있는데
행정은 손을 놓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넘어 분통이 터진다"라고도 했다.
그는 "산림 내 재선충 피해목 1그루 처리하는 데 15만 원가량 든다는데
생활권 소나무 1그루 예방주사 놓는 데 1만5000원이면 족하다.
재선충 후처리에 예산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생활권 소나무 예방을 먼저 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전국적으로 소나무재선충 피해가 급증하는 가운데 울산, 경남은 더욱 심각하다.
밀양과 창녕이 유독 심하다. 재선충 대발생으로 산림 내 소나무는 간헐 피해가 아니라
전멸 피해 추세에 있다"라며 "이제 재선충은 산림에 그치지 않고
가로수와 공원녹지 등 생활권 소나무까지 피해를 입히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창녕 우포늪 주변 방제 ... 환경단체, 사업 백지화 요구
한편, 경남 창녕군이 습지보호구역인 우포늪 주변에 소나무 재선충 방제를 위해
벌목과 수종 갱신을 추진하자 환경단체가 우려하고 나섰다.
경남환경운동연합은 오는 26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기로 했다.
창녕군은 국내 최대 규모의 자연내륙습지인 우포늪 주변 산림에
소나무류 고사목이 집단적으로 발생해 습지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물들의 보금자리 보전과
소나무재선충병 확산방지를 위한 긴급방제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창녕군은 2025년 1월부터 2029년 12월 말까지 소나무류 고사목 발생시
우포늪 일대 확산 저지를 위해 지속적인 긴급 방제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우포늪 습지보호구역 854ha에 있는 소나무류 고사목 4000~4500여 본을 제거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경남환경운동연합은 "우포늪은 습지보호구역으로 방제를 위해 약품을 사용할 경우
생태계에 영향일 미칠 수 있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라며
"활엽수로 자연 갱신이 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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