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잼버리 이후 버려진 새만금...“그때도 지금도 방치됐다”
빗물에 잠긴 농지, 잡초만 무성한 들판...“지역 망신, 상처만 남았다”
[시사저널-경실련 공동기획]
 

시사저널과 경실련은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진행된 도시개발·공공사업들과

현재 추진 중인 사업들 중에서 최악의 사업을 선정했다.

 

1위는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차지했다.

이 밖에 서울-김포 통합, 4대강 사업, 레고랜드, 가덕도 신공항이 TOP5에 올랐다.

무안·청주·양양 공항, 도시재생 사업, 새만금 사업, 대구 신공항, 해운대 엘시티 사업이 뒤를 이었다.

 

잼버리가 최악의 사업으로 선정된 이유는 ‘관리 부재와 운영 미숙에 의한 인재(47표)’였다.

예상 가능한 변수에 그 누구도 정석대로 준비하지 않아 발생한 대참사였다.

시사저널은 잼버리 사태 1년여 후 현장을 찾았다.

 

오전 내내 비가 내린 4월3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의 잼버리 야영장은 물웅덩이로 뒤덮여 있었다.

‘잼버리 경관 쉼터’ 안내판 아래로 빗물에 잠긴 농지가 펼쳐졌다.

갈색과 초록색이 뒤섞인 잡초만이 제각각 길이로 듬성듬성 박혀있었다.

 

여의도 면적 3배(8.8㎢) 규모인 잼버리 부지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다.

굵은 빗줄기가 황량함을 더했다. 인적 없는 이곳은 지난해 8월 4만여 명의 손님을 맞이한 국제 행사장이다. 

 

4월3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지
 
 

“부끄러움은 저희 몫”…새만금 주민들 울분

행사가 끝난 지 8개월이 흘렀다. 잼버리 야영장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잼버리 부지는 새만금기본계획상 ‘관광·레저용지’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새만금개발청이 기본계획 재검토에 착수하면서

토지 용도가 변경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당장은 구체적 계획에 수립되지 않아

수개월째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날 잼버리 야영장에 가기 전에 들른 텅 빈 ‘새만금홍보관’의 한 안내원은

“거기 지금 아무것도 없는데 왜 가느냐”고 의아해했다. 

 

전북 부안군에서 9년째 숙박업을 하고 있는 박태홍씨(52)는 “수년간 준비한 지역 행사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걸 직접 보면서 너무 처참했다”며

“잼버리는 저희에게 망신만 안겼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수준이 이 정도인가 싶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행사 준비 기간부터 매일 출근길에 잼버리 야영장을 지나갔다고 했다.

 

그는 “제가 보기엔 야영장에 아무 변화가 없는데 정부는 계속 ‘준비가 완벽하다’고 홍보해 황당했다”며

“그때부터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잼버리 효과를 기대했던 소상공인들도 당시 실망감을 전했다.

익산역 인근에서 만난 부안군 주민 성아무개씨(53)는 “숙박이나 식당 운영하는 지인들 모두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늘어난다고 좋아했다”면서도

“행사가 급하게 끝나니까 장기간 투숙하겠다는 손님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서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사실 이런 손해는 버틸 만해도 지역 망신은 너무 큰 상처로 남았다”고 토로했다.

“악마는 디테일에”…변수 무시, 지도력 분산

이날 현장에는 이양재 원광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가 동행했다.

그는 새만금 사업 초창기부터 방조제 공사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잼버리와 관련해선 ‘전북도 새만금잼버리 추진준비단’ 일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잼버리 개최 과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조직위의 안일한 대처가 꼽혔다

. 행사 부지의 지반이 연약한 만큼 충분한 사전조사와 변수 예측이 필요한데,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새만금은 전북 군산과 김제, 부안 앞바다의 갯벌을 메워 만든 간척지다.

특히 잼버리 야영장은 행사를 위해 2020년 2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매립한 신생 토지다.

 

잼버리는 이곳에서 진행된 첫 대규모 행사다.

이양재 교수는 “일본도 성공리에 마친 제23회 잼버리를 간척지에서 개최했고

(여성가족부가) 답사까지 갔다 왔다”면서 “물웅덩이와 폭염, 해충 등은

전문가라면 다 예상할 수 있는 변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양재 교수는 “일본 간척지와 환경 조건이 유사한 우리나라도

충분히 행사를 성공시킬 역량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규모 행사는 주최자가 참가자의 심리와 행동을 사전에 파악하는 등

‘디테일을 얼마나 챙기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며

“잼버리 조직위는 예상 가능한 디테일조차 무시하고 FM(정석)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조직위가 사전조사에서 발견한 문제를 은폐했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조직위는 잼버리 개최 약 1년 전에 예행 차원의

‘2022년 프레 잼버리’를 진행하려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취소했다.

 

이 교수는 “알고 보니 당시 취소 이유는 코로나가 아닌 ‘폭우 시 배수시설 미흡’이었다.

사실상 야영이 불가능한 상태임을 이미 인지했음에도 이를 밝히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잼버리 야영장의 황폐한 모습은 지난해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2023년 8월, 158개국에서 온 4만3000명의 청소년과 지도자는

세계적인 야영대회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새만금에 도착했다.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연일 35도를 넘는 역대급 무더위 속에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제대로 된 배수로가 없어 텐트 바닥이 잠겼다.

폭염과 염분 탓에 모기떼가 몰려와 공포까지 더했다.

화장실이 부족해 오물이 넘쳤고 샤워장도 열악했다.

‘미지의 땅’ 새만금에 순식간에 ‘국제적 망신’이라는 곤혹스러운 수식어가 달렸다. 

 

잼버리는 2017년 8월 새만금이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6년의 준비기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은 점은 이번 시사저널·경실련 조사에서

잼버리가 최악의 공공사업으로 꼽힌 결정적 배경이 됐다.

 

이양재 교수는 “공동위원장을 구성한 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에 책임이 분산돼

모호하게 운영됐다”며 “중앙정부는 전북도에 너무 많은 역할을 맡기면서

컨트롤타워 기능을 못 했고 전북도는 기본 시설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질책했다.

 

현장과 가장 밀접한 지자체가 기본시설조차 허술하게 준비한 가운데

잼버리 유치를 빌미로 신항만과 공항 등

대형 국책사업 추진 가속화만 꾀한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도 나온다. 

 

파묘 주인공 고영근 지사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누가 호랑이 허리를 끊었나' 투어를 제안하며...

영화 속 지사들, 현충원에 잠들지 못해

 

/오마이뉴스

한반도 모양을 형상화 한 <파묘> 포스터


영화 <파묘>가 24일을 기해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지난 2018년 12월 이래 현충원에 안장된 국가공인 친일파의 '파묘'를 주장하고

행동해 온 1인으로서 참으로 고마운 마음입니다.
영화에서지만 단 한 번도 온전히 해내지 못했던 친일파에 대한 '파묘'를 실현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김상덕 지사의 이름을 차용한

배우 최민식씨가 말입니다. 감개무량했습니다.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이 잠든 현충원 곳곳엔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인한 국가공인 친일파가 안장돼 있습니다. 

백선엽을 비롯해 김백일, 신태영, 신응균,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홍준,

송석하, 신현준, 백홍석, 김석범 등 총 12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2005년 5월 31일

대통령 소속으로 발족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선정된 국가공인 친일파입니다.

 

해당 위원회는 노무현 정권 때 출범했지만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 11월 활동이 종료됐습니다.

이 말은 이들에 대한 친일 공인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했다는 뜻입니다.

위원회는 4년 6개월의 활동을 끝내면서 4부·25권, 총 2만1000여 쪽에 달하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했고, 해당 보고서에는 1기·2기·3기에 따라

국가공인 친일인사 총 1005명의 명단이 실렸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앞서 언급한 12인이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분산돼 안장돼 있습니다.

국가공인 친일파 신태영 "내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

▲신태영  


대표적인 인물이 일본군으로 30여 년을 복무한 대한민국 4대 국방부장관 신태영과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입니다.

일제강점기 히라야마 호에이라는 이름으로 산 신태영은 1943년 11월 17일 <경성일보>에

"조선인들은 한시바삐 제국의 신민이 되어 동아시아를 개척해야 한다.

내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안장이)"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긴 인물입니다.

 

당시 그는 청년·학생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임시특별지원병제도 종로익찬위원회'에 참여해

조선인 병력 동원을 선전하고 선동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태영 옆쪽에 안장된 이응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현충원 장군 2묘역 첫 번째 무덤에 잠든 이응준은 조신 출신임에도 이례적으로

일본군 육군 대좌(대령)까지 승진한 인물입니다.

과정에서 그는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이 무르익자 1941년 공개적으로 "조선의 청년들이

일본 군인이 돼 전쟁터로 나가 목숨을 바쳐 천황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라고 발언했습니다.

 

1943년에는 일제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생사를 초월하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대원수 하의 고굉(손과 발)으로 황군의 일원으로 한번 죽음으로써

그 책무를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명예를 완수하는 길이다"라는 말했습니다.

광복 후 그는 일본군 경력을 인정받아 미군정청 국방사령부 국방사령관 고문으로 위촉됐습니다.

그리고 김백일, 백선엽, 김홍준 등 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 군인들을

미군정 운영 군사영어학교에 보낸 뒤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이력으로 그는 '대한민국 국군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런 신태영과 이응준의 무덤 바로 아래쪽에는 일제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파묘 주인공들, 어디 잠들었나?
영화 <파묘>에는 여러 명의 독립투사 이름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4인의 이름에 차용된 김상덕, 고영근, 이화림, 윤봉길을 비롯해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 광복군이었던 오광심, 단재 신채호의 부인이자

국내 항일 공작을 지원했던 박자혜도 등장합니다.

다만 주인공 4인에 대해서만 언급하면 영화에서 지관 역을 맡았던

최민식씨의 극중 이름이 김상덕입니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 반민특위가 구성되자 위원장을 맡았으나

이승만 정권의 노골적인 방해로 실패하고 맙니다.

 

김상덕 지사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납북된 뒤 1956년 별세했고

이후 평양 재북인사릉에 안장됐습니다.

우리 정부는 1990년에야 김 지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그사이 김 선생의 아들은 납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연좌제에 시달리며 오랜 시간 고통을 겪었습니다.

배우 이도현씨가 연기한 윤봉길 의사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를 바꾼 인물입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일제의 군신이라 불리던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물통형 폭탄을 던져 격살했습니다. 일제는 윤 의사를 일본 가나자와에서 총살했고,

그의 유해는 14년간 방치됐다가 해방 후 백범과 재일 조선 청년들의 노력으로

1946년 고국에 돌아왔고 효창원에 안장됐습니다.

영화에서 배우 김고은씨가 맡은 배역의 이름은 이화림입니다.

이화림 지사는 한인애국단과 의열단에서 활동한 인물입니다.

 

윤 의사가 훙커오의거 전 사전 답사를 할 때 이화림 지사와 부부로 위장해 함께 다녔습니다.

중일전쟁 발발 후에는 조선의용대 여자의용단에서 부대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의사로서 중국공산당으로 가입해 활동한 이유 등으로

그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서훈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디에 잠들어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22년 12월 13일 동아일보에 실린 고영근 지사 관련 기사와 고영근 지사 사진.

영화에서 '의열' 장의사를 운영하는 유해진씨의 이름은 고영근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데 가담하고 앞장섰던 대한제국 군인 출신

우범선을 일본까지 찾아가 격살한 인물입니다. 1903년 11월 24일의 일입니다.

우범선을 살해한 고영근은 바로 자수합니다.

자신의 살인이 국모를 시해한 일에 대한 복수였음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일본에서 잡힌 고영근에 대해 고종은 하야시 곤스케와 이토 히로부미에게 직접 선처를 요청합니다.

결국 고종의 로비가 통해 최초 사형을 언도받았던 고영근은

5년 간의 복역만 하게 되고 1909년께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망국 뒤 고영근의 행적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1919년 1월 고종이 생을 마감한 뒤 고영근은 홍릉을 지키는 능참봉에 임명됩니다.

한마디로 고종과 민비의 유해를 지키는 묘지기라는 뜻.

조선 왕가를 향한 고영근의 충정은 여기서 그치질 않습니다.

닷새간 야밤에 인부들을 동원해 홍릉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황제 능비'에

'고종태황제' 등 글자를 새겨 넣은 뒤 비각 안에 세웠습니다.

 

일제는 고종의 묘비에 '대한'과 '황제'를 쓰지 못하게 했고,

이로 인해 고종 사후 4년이 넘도록 묘비를 세우지 못했던 겁니다.

 

1922년 12월, 고영근은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이 일을 결국 해냅니다.

일제는 발칵 뒤집혔고 고영근 역시 이 일로 인해 1923년 3월 파직되고 맙니다.

이 일이 일어나고 고영근은 자신의 일을 다 마쳤다는 듯 한 달 뒤 죽습니다.

그가 어디에 매장됐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고종과 민비의 묘 아래 묻혔다는 기록이 있지만 정확하진 않습니다.

 

다만 1937년 1월께 동아일보에는 '(고영근이) 최초 서울 불광동에 매장됐으나

일제시대 도시계획으로 인해 수원으로 이장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정확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아까시나무 가득한 고영근의 무덤 앞에 서서


   ▲  영화 파묘에서 배우 유해진씨의 극중 이름은 고영근이다 친일파 우범선을 처단한 애국지사다.

 

그의 묘를 2024년 3월 24일 찾았다. 그의 무덤에는 아카시아 가시나무가 가득했고, 이를 두손으로 뽑아냈다.


2014년 11월 25일 경인일보에는 '을미사변 도운 친일파 척살

관리추정 묘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옵니다.


무덤 한편에 작은 비석이 세워졌고, 그곳에 '고공영근지묘'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던 겁니다.

무덤은 경기도 수원시 계명고등학교 뒤쪽에 위치한 야산 중턱에 자리해 있었습니다.

 

야산을 헤매고 헤맨 끝에 24일 오전 그의 무덤을 어렵게 찾았습니다.

친일파 우범선을 처단했지만 고영근의 활동은 망국 이전에 이뤄졌다는

이유 등으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정부로부터 서훈받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그의 묘는 온전히 후손들에 의해서 관리 돼왔던 겁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무덤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가시가 촘촘히 박힌 아까시나무 수십 개가 무덤에 뿌리내린 상태였습니다.

 

가장 황망했던 것은 무덤 정수리 부분에 약 1.5m짜리 아까시나무가 박혀있었다는 점입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저렇게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영근 지사에게 술 한잔 가득 부어 올린 뒤 무덤에 올라가

쇠말뚝처럼 박힌 아까시나무를 잡고 뽑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장갑이나 삽, 가위 등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무덤에 박힌 아까시나무는 두 손으로 아무리 잡고 흔들고 용을 써도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손으로 뿌리 부분의 흙을 하나하나 걷어냈고, 드러난 뿌리를 온힘을 다해 잡아챘습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두 손 가득 피멍이 들었고, 가시로 인해 발생한 상처가 온몸 가득했습니다.

그래도 고영근 지사 무덤 정수리에 박힌 아까시나무를 뽑아냈습니다.

무덤 곳곳에 박혀 있던 다른 가시나무도 같은 방법으로 제거했습니다.

모든 과업을 마친 뒤 고영근 지사의 무덤에 소주 가득 부어 뿌리며 말했습니다.

"지사님 너무나 뒤늦게 찾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마음 다했습니다.

부디 해방된 조국에서 편히 잠드세요. 다음에는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오겠습니다."

실은 오는 5월 4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서울현충원에서

'누가 호랑이 허리를 끊었나'라는 제목으로

<파묘> 1000만 관객 특집 38차 현충원투어를 진행합니다.

 

독립투사 머리 위에 잠든 국가공인 친일파를 마주하고 이들과 싸운 독립투사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과정에서 북에 잠든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 무덤조차 알 수 없는 의열단원 이화림,

일제의 손에 14년 간 방치됐던 청년 영웅 윤봉길,

그리고 야산 자락 아까시나무 가득했던 고영근의 무덤을 설명할 예정입니다.

친일파 파묘와 독립투사 선양이라는 공익목적의 행사이기에 투어는 무료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 걸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5월 4일 현충원에서 만나요. 기다리겠습니다.

현충원투어 신청 : https://forms.gle/QHea3UhtypJ1NkMT6
 

  2024년 5월 4일에 진행하는 파묘 1000만 특집 현충원투어 포스터. '누가 호랑이의 허리를 끊었나'

"10년 전엔 상상도 못 했을 일"…되살아나는 '원전 신화'

美·유럽, 10여년 만에 '親원전 유턴'
"가장 저렴한 넷제로 달성법"
"원전 봉인 해제하자"…34개 국가 공식선언
유럽서 첫 원자력정상회의
신흥국 신규건설 지원 등 합의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진과 기사 내용은 무관./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원전 유턴’을 선언했다. 기후 위기 속에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는 대안으로 원전만 한 에너지원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21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EU 의장국인 벨기에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날 공동 개최한 ‘원자력 정상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미국 중국 프랑스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34개국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다. 원자력 에너지 분야에서 최고위급 다자회의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국가는 “기존 원자로의 수명 연장과 신규 원전 건설, 첨단 원자로 조기 배치 등을 위한 자금 조달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봉인돼 있던 원자력 에너지의 잠재력을 완전히 깨우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약속했다. 또 “모든 국가, 특히 신흥 원전 국가가 에너지 믹스(한 나라의 전력 발생원 구성)에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돕자”는 데 합의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사양길에 접어든 원전의 부활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은 ‘기후 중립’이라는 주요국의 지상 과제를 달성하는 데 필수 전력으로 여겨진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연설에서 “원전 가동 연장은 청정 에너지원을 대규모로 확보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세계 원전 발전 용량 5위 국가인 한국은 국제사회 움직임에 동참하기 위해 원자력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산업 발전과 탄소 중립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전 등 무탄소 에너지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첨단원자로 배치·핵연료 공급 등 美·유럽 등 에너지 안보 협력 합의
기후위기·에너지대란에 부활 요구…EU 내 신규 원자로 60곳 건설 중

21일(현지시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올해 상반기 EU 의장국인 벨기에의 알렉산더르 더크로 총리 등 각국 정상급 인사들이 브뤼셀의 아토미움 앞에 모였다. 이들은 브뤼셀 엑스포에서 하루 일정으로 열린 원자력 분야 최초의 다자 정상회의에 초대받은 인사다. 아토미움은 지름이 18m에 달하는 9개 구를 12개 선으로 연결해 만든 102m 높이의 초대형 건축물이다. 철 원자를 1650억 배 확대한 모습으로, 핵분열 순간을 형상화했다. 1958년 만국박람회 유치국이었던 벨기에가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홍보하기 위해 세웠다.

 

○“원전 없이 기후 대응 불가”

그로부터 약 70년이 흐른 현재 세계 각국에서 ‘원전 신화’가 되살아나고 있다. 벨기에와 이번 회의를 공동 주최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우리는 원자력 에너지의 발전 용량을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며 “원자력은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기점으로 선진국들의 정서를 지배했던 ‘원전 포비아’는 온데간데없어진 채 “잠들어 있던 원전을 깨우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AP통신은 “10여 년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라고 평가했다.

주요국이 앞장서 ‘원전 유턴’에 나선 배경에는 기후 위기가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원전 없이는 기후 목표를 제때 달성할 수 없다”며 “태양광·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기반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선 원자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년 12월 제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한국을 포함한 22개국이 2050년까지 세계 원자력 에너지 발전 용량을 2020년 대비 세 배로 늘리기 위해 협력하자고 합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은 ‘2050 넷제로(탄소중립)’라는 글로벌 기후 목표 달성에 필수적인 에너지로 평가되지만 그 비중은 전 세계 전력 발전량의 10%에도 못 미친다.

 

○‘반핵’ 獨 지고 ‘친핵’ 佛 뜨고

이 같은 변화는 유럽에서 두드러진다. EU 역내 생산 전력의 21.8%(2022년 기준)가 원전에서 나온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주도한 반핵 정서에도 불구하고 원전 의존도가 높게 유지되던 상황에서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 필요성까지 불거졌다. 현재 EU 내 12개국에서 100개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고, 약 60개가 건설 단계에 있다. 일부 국가는 러시아산 기술과 농축 우라늄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프랑스를 필두로 친(親)원전 국가의 영향력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2년 새 급속도로 커졌다. 프랑스는 EU 전체 원자력 발전량의 48.4%를 생산하고, 전체 투자액의 3분의 2를 책임지는 ‘원전 강국’이다.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핀란드 헝가리 네덜란드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10개국과 이른바 ‘원자력 동맹’ 구축에 나섰다.

이날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선언문에는 이들 국가 외에도 이탈리아 루마니아 스웨덴 등 독일·오스트리아를 제외한 유럽 국가 대부분이 서명했고, 미국도 가세했다. 존 포데스타 미 백악관 국제기후정책 선임고문은 “세계은행을 포함한 국제 개발은행의 원전 지원 제한 규정을 없애려는 프랑스의 계획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원전 모델 덕분에 프랑스는 몇 안 되는 전력 수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며 “기회이며, 석탄·가스에서 벗어나 원전·재생에너지로 나아가는 것이 최우선 순위”라고 말했다.

서명국들은 최고 수준의 안전성이 보장된 신규 원전 건설과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포함한 첨단 원자로의 조기 배치, 핵연료 공급 등의 자원 안보 분야 협력에도 합의했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15개 EU 회원국이 SMR 개발에 관심을 보였지만 실제 생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 남아 있고 중국과 러시아에선 이미 가동 중”이라며 유럽에서의 원자력 부흥 움직임이 시기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이종섭을 위한 거짓말... '뇌관' 건드린 윤석열 정부

[주장] 윤석열 정권의 '이채양명주'... 폭발이 코 앞이다

/오태규

 


마실 수 없습니다. '이채양명주'는 술이 아닙니다.

저도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중국에서 새로 출시한 명주의 이름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전혀 다른 '물건'이었습니다.

'이채양명주'는 윤석열 정권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다섯 건의 비리 사건들의 목록입니다.

각 사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 조합해 만든 신조어입니다.

 

아마 누군가가 이름을 지으면서 술 이름처럼 보이도록 한 것은

사람들이 외기 쉽고 전파하기 쉽게 하려고 한 듯합니다.

작명의 지혜라고나 할까요.

이태원 참사-채 상병 죽음-양평 고속도로-명품 가방-주가조작

이태원 참사에서 '이',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에서 '채',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사건에서 '양',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씨의 디올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서 '명',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여 의혹에서 '주' 자를 끌어와

'이채양명주'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이름을 보고 아쉬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오송 수해 참사도 빠지고, 고발 사주 사건도 빠지고,

'김건희 특검법'에 '여사'라는 호칭을 안 붙인 방송사에 행정지도를 하고

일기예보에 미세먼지 좋음을 뜻하는 '1'을 내보낸 방송사에 제재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언론 탄압 사건도 빠졌습니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한정된 다섯 글자 안에 윤 정권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비리를 다 쓸어 넣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비리를 일일이 다 집어넣어 표현하겠다는 욕심에

글자 수를 마구 늘리면 기억하기 어렵겠죠.

 

더 중요한 건 '이채양명주'라는 단어가 탄생하는 순간 그 뜻이 다섯 개의

구체적인 사건을 뛰어넘어 윤 정권의 총체적 비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넓어졌다는 겁니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이종섭 전 국방의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은,

'이채양명주'라는 조어의 유효성을 잘 드러내 주는 사례입니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정권이 법과 정의를 무시하고 더 나아가

국가 기구를 사유화하는 비리의 실상을 폭로해 주는 교과서입니다.

지금 이종섭 사건과 관련해 나오는 비판들은 공수처의 수사를 받는

주요 피의자를 출국금지까지 풀어주면서 내보냈다는 것,

피의자를 대사 임명이라는 편법을 사용해 나라 밖으로

도피시켰다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문제죠.

하지만 저는 그런 비판은 곁가지의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도피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 중요 피의자인 그를 대사로 임명한 것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대통령실을 비롯한 여권에서는 '도피성 출국'을 한 이 대사가

'조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귀국할 수 있다'라고 눙치고 있지만,

조사받으러 들어오느냐 아니냐가 핵심이 아닙니다.

이종섭 사건의 본질은 '대통령의 문제'
   
주재국에 파견돼 나라의 주권을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는

어떤 공직보다 철저하고 세밀한 검증 절차를 거칩니다.

최근에는 직업 외교관 중에서도 작은 흠결 때문에

대사 임용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누구는 사소한 잘못으로 공관장이 될 수 없고 누구는 잘못이 크고 명백한데도

공관장으로 나가는 것은 공정의 파괴입니다.

대사직을 임명자가 맘대로 꺼내쓸 수 있는 사유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종섭 대사는 그동안 직업 외교관에게 들이대 온 검증의 잣대로는

절대 대사직에 임명될 수 없는 신분입니다.

 

어떤 사건이든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는 외교관이 수사 진행 중에

대사나 총영사로 나간 적이 있는지만 살펴봐도 쉽게 답이 나올 겁니다.

이런 사정으로 볼 때 검증 업무를 하는 법무부도, 공관장 인사를 실무적으로 처리하는

외교부도 '보이지 않는 힘'에 눌려 찍소리도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지'로 밖에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이종섭의 선택도, 법무부의 검증 부실도,

외교부의 무사안일도 아닙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그를 주호주대사로 내보내려고 했는지가 핵심입니다. 바로 대통령이 문제입니다.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종섭 대사는 지난해 9월 채 상병 사건 개입 문제로

국회에서 탄핵당할 위기에 처하자, 사임했습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3월 4일 주호주대사로 임명했습니다.

대사는 상대국에 아그레망을 받아야 하고, 통상 이런 절차는 1~2개월 걸립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그를 주호주대사로 보내려고 결정한 시점은

대략 1월 중순께일 가능성이 큽니다.

 

공수처가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과 관련해, 수사 착수 넉 달 만에 국방부 관련자들에 대한

강제수사를 실시한 시점과도 일치합니다.

이 대사뿐 아니라 그에게 외압을 가하도록 지시한 사람이나 세력이 초조할 수밖에 없는 때입니다.

대통령실과 여권은 이 대사 임명과 관련해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습니다.

전임 대사가 정년으로 임기가 끝나 잠시도 대사 자리를

비워놓을 수가 없었다는 설명이 대표적입니다.

 

전임 대사가 지난해 12월로 정년이 된 건 맞지만, 외교공무원 임용령에는

정년을 초과해도 할 수 있는 수십 개의 자리가 적시돼 있습니다.

호주대사도 그런 자리 중 하나입니다. 전임 대사는 윤 정권 때인 2022년 12월에 부임했는데,

그 자리가 '정년 초과 가능 직위'가 아니었다면 그때 내보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모순과 거짓말... '총체적 비리' 부각하는 '뇌관'

대사를 바꿀 때 공백을 두지 않는다는 얘기도 헛소리입니다.

윤 정권 때의 사례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2021년 7월 부임한 김건(현 국민의힘 비례위성정당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 주영국 대사는

다음 해 5월 귀국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에 취임했습니다.

후임 대사는 무려 다섯 달 뒤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윤 대통령 부부가

그해 9월 숨진 엘리자베스 여왕을 조문하러 갔을 때는 영국에 한국 대사가 없었습니다.

2021년 8월 31일 윤 정권의 초대 러시아 주재 대사로 부임한 장호진(현 국가안보실장) 대사는,

지난해 3월 외교부 1차관으로 발탁돼 귀국했습니다.

윤 정권은 무려 100일 이상 후임 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공석으로 뒀습니다.

호주가 더 중요한 나라인지 영국과 러시아가 더 중요한 나라인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 그리고 국민의힘에서

이 대사 임명과 부임과 관련해 내놓는 말은 상호모순과 거짓투성이로 가득합니다.

있을 수 없는 짓을 저질러놓고 사후에 이유를 꿰어맞추려니까, 거짓이 거짓을 낳고 있습니다.

 

이런 거짓 해명이 횡행하는 데는 그들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쓰고 전하는 미디어의 책임도 큽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에 사임한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도청 사건을 저지른 사실 때문에 물러난 게 아닙니다.

그 사건을 덮으려고 거짓과 증거인멸 등으로 수사 방해를 하다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종섭 사건은 그런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습니다.

이 대사가 공수처의 허가를 받고 출국했다는 대통령실의 설명에,

공수처가 허가해 준 적이 없다고 즉각 반박한 것은 한 예에 불과합니다.


어떤 큰 사고가 터질 때, 여러 요인 중 가장 약한 고리가

폭발을 불러일으키는 뇌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윤석열 정권의 비리와 폭정이 거듭하면서 그것들을 파헤쳐

바로잡으려는 움직임과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윤 정권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김건희 특검법(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대통령 거부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며 그런 요구를 꾹꾹 눌러 왔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 순간에 불을 댕긴 것이 바로 이 대사의 무리한 임명입니다.

이 대사 임명은 채 상병 수사 개입 사건 없이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종섭 사건이 채 상병 수사 개입 사건이라는 뇌관을 때리고,

그것이 다시 '이채양명주'가 대변하는 윤 정권 비리와 폭정으로 향하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입니다.

정부·여당은 그를 공수처에 자진 출두시키는 것으로 불을 끄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종섭 사건으로 타오른 분노의 불길은 이미 채 상병 사건을 넘어

윤 정권의 총체적 비리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습니다.

 

꼼수로 위기를 일시적으로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위기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게 이번 이종섭 사건의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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