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교수·연구자 179명 "윤석열 해고"...

박근혜 때보다 2배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라" 요구...

" 분노와 퇴진에 대한 요구 숫자로 반영된 것"

 

/조정훈

경북대 교수들과 연구자 등 179명은 19일 낮 경북대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을 해고한다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 조정훈관련사진보기


경북대학교 교수와 연구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무능함과

무책임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해고한다'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경북대 교수와 연구자 179명은 19일 낮 12시 경북대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 정부 들어 발생한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중심"이라며 퇴진을 요구했다.

경북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지난달 31일 민교협 회원의 제안에 따라

운영위가 논의를 시작하고 공동으로 성명 초안을 작성해

14일부터 18일까지 교수·연구자 회람을 거쳐 연서명을 받았다.

이날까지 서명에 동참한 교수·연구자는 179명으로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시국선언 당시 동참했던 88명보다 두 배나 많은 인원이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하는 이유를 사람의 문제, 재정의 문제,

언어의 문제 등 3가지로 정리하고 "해도해도 너무한다"며 "윤석열은 해고다"라고 외쳤다.

사람의 문제로는 특정 집단에 편중되고 비선 실세 개입 의혹에 더해

구시대 인물을 재기용할 뿐만 아니라 이념적인 편향성과 노골적인 대결·적대 의식,

잘못된 판단을 굽히지 않으려는 옹고집 성향 등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정부는 사람의 측면에서 국민에게 어떤 희망도 주지 못했다.

이 모든 문제의 중심이자 근원에 있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라고 지적했다.

재정의 문제로는 IMF나 코로나 때보다도 더 힘들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자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으로 국가재정도 지방재정도 모두 수렁 속에 헤매고 있다며

연구개발이나 보건·복지·노동 등 기간 분야 예산은 축소되고

최고위급 관료는 공적 자금을 끌어다 쓸 궁리나 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은 비판자들의 입을 막아 국가 모든 영역에서 대화 장애를 일으키고

소통의 제도와 문화를 파괴해 왔다며 "이는 언어의 문제로 모든 국민이 입틀막을 당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대통령은 비판자를 반국가세력으로 몰고 독립영웅을 상대로 역사 전쟁을 선동하고

적대적 언어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등 내정과 외교를 불문하고

무의미한 긴장을 조성해 한국 사회를 말의 파탄 상태로 몰아갔다고 꾸짖었다.

교수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식, 다른 내용, 다른 강도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하려고 한다"며 "그가 마구잡이로 휘둘러 온 권력을 빼앗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해고한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경북대 교수와 연구자들이 19일 경북대 북문 앞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가운데 북문 기둥에 시국선언문을 붙여놓은 것을 지나가던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 조정훈관련사진보기


안승택 교수(경북대 민교협 의장)는 "한 분의 교수님이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글을 올려서 많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당시 시국선언에 88명이 참여했는데

이번에 두 배가 넘는 인원이 참여한 것은 분노와 퇴진에 대한 요구가 숫자로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인철 교수(전국국공립대학교교수노조 경북대지회장)는 "와이프는 무서워하면서

국민을 우습게 생각하는 대통령, 국민 말을 듣지 않으면서 사이비 말에 귀를 기울이는 대통령,

카르텔 범죄자로 취급하는 대통령을 누가 만들었나.

이 사회가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며 "그 속에서 숨쉬는 우리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강단에 선 우리부터 회초리를 내려쳐야 한다"면서

"우리는 좀 더 정의로운 사회, 좀 더 따뜻한 사회,

함께 나누는 사회를 위해서 함께 나서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이어 학생들의 시국선언도 이어질 예정이다.

경북대 학생들은 오는 26일쯤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대구시당 "민주주의 지키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의 시작"

한편 대구경북 대학가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지자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구경북에서 밝히는 횃불이

들불로 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밝혔다.

대구민주당은 "대구경북은 여당 세력의 집결지로 불려왔지만 이제 이곳에서 터져나오는

양심의 외침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새로운 횃불을 밝힌다"며

"경북대, 대구대, 안동대를 비롯한 대구경북 학자들의 시국선언은

이 시대를 향한 경고이자 미래를 향한 결단"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어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을 '민주주의 퇴행'으로 규정하며 외교실패,

민생 파탄, 권력 남용 등 수많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는 특정 지역만의 목소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의 시작"이라며 "대구경북 지역 교수들과 연구자들의

시국선언을 적극 환영하며 이들의 외침이 대한민국 전역에 닿을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래는 시국선언 전문.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고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경북대학교 교수‧연구자 시국선언―

문제의 차원이 달라졌다

한국 사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집권 아래 벌어진 일들을 걱정하고 비판해 온 경과는 짧지 않다.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말들이 돌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정부 비판을 되뇌다가, 이제 그런 말 하기가 입이 아프다고 생각한 지도 이미 오래다. 집권 기간이 길지 않았고, 강렬한 업적이 눈에 띄지도 않는데, 그 걱정과 비판이 이렇게 길고 강하게 이어진 사실이 놀랍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식, 다른 내용, 다른 강도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하려고 한다.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라. 쏟아지는 비판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잘못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잘못이 뭔지는 몰라도 사과는 벌써 다 했다고,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불법이 아니지만 특검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이제 우리는 해고한다. 그가 마구잡이로 휘둘러 온 권력을 빼앗을 것이다. 이제 문제의 차원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우려와 비판은 그가 집권하기 전부터도 있었다. 그의 경험, 세계관, 실력, 지식, 감성, 언변, 사고력, 판단력, 정치력, 심지어 유머 감각까지, 거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대통령 당선과 함께 우리는 일단 걱정과 의심을 접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이 많고, 그 일의 시급함과 위중함이 컸기 때문이다. 선거 전에 있었던 일은 후보로서 경쟁하느라 벌어진 일이라 여기며, 국민을 통합하고 위기를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가 대통령으로서 보여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아무 능력이 없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줄곧 능력 있는 인사를 적재적소에 쓰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오늘날 누가 이 말에 끄덕이며 납득하겠는가? 온갖 전문 영역에서 검찰 출신자들로 핵심 고위직을 채우고, 경찰 고위직에는 프락치 경력 의혹을 받는 자까지 발탁되었다. 서울대 출신 고령 남성으로 각료‧보좌진을 가득 채우는 등, 인사 다양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선 개입의 의혹이 줄곧 대통령의 행보를 따라다녔으며, 배우자나 역술인, 모사꾼 부류가 개입한다는 의혹까지 꼬리를 물었다. 그 의혹들의 일부는 지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적대하는 자가 노사정 대화를 책임지고, 자신이 뉴라이트가 아니라 우기며 뉴라이트의 망언을 일삼는 이들이 역사와 교육과 학문과 외교를 책임진다. 심지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명을 받은 인물조차 임명하지 않고 공직을 공석으로 두며, 그렇게 파행으로 운영하다가 정부 기구가 작동 불능의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대통령과 가까우면 수도 한가운데에서 사망자만 150명이 넘는 압사 사고가 일어나도 책임지지 않으며, 수사 대상에 올랐어도 주요국 대사직에 기용한다. 고위공무원이 국가의 감사 업무나 진실 화해 업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공사석 불문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다닌다. 무능하면서도 극단적인 대외 정책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거듭 위기로 몰기도 했다. 왜 여기저기서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는가? 모든 문제의 중심이자 근원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IMF와 코로나 때보다도 힘들다

국민은 IMF 금융위기 때보다,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지금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동시에 부자 감세가 한 원흉이라 지목되는 세수 부족으로 인해 국가 재정도 사경을 헤맨다. 국가 재정 교부에 많은 것을 의지하는 지방재정도 깊은 수렁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 문제의 진단과 해결을 담당할 고위 관료는 각종의 공적 자금을 끌어다가 때운다며, 뻔뻔스레 고개를 치켜들고 회전의자에 앉아 있다. 국가의 연구개발 예산을 통째 도려낸 일은 십자포화를 맞은 끝에 뭔가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아무것도 정상화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노동 재정은 폭탄을 맞고 그로기 상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 기조이고, 입 밖에 내는 말이 무엇이든 현실적으로 그것을 실현할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 일의 원점에 있었던 자신의 '연구비 카르텔' 발언에 대해 사과 비슷한 것조차 한 일이 없다. 그 모두가 대통령의 철학과 세계관의 소산이고, 열렬한 정책적 궁리의 귀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두가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일 아닌가?

모든 국민이 '입틀막' 당했다

카이스트 졸업식의 '입틀막' 사태는 대단히 상징적이며,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민주노총과 화물연대에 몰매를 놓으며 노동 기본권을 찍어 누를 때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듣기 능력 테스트와 상습화된 고소‧고발‧제재로 비판자들의 입을 막은 일은 어떤가.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폭거라는 점은 얼마 안 남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조차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나도 안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말했다가 보수의 마지막 보루조차 무너지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스스로 방파제가 되기를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수치스러운 묵인 아래 유지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권력과 지지 기반은 도대체 무엇인가? 방파제 위에서 벌어지는, 벌거벗은 임금의 퍼레이드가 아닌가? 왜 지지자들에게 자기 나신을 향한 환호를 강요하는가? 반대자들이 만만한가? 지지자들이 우스운가? 왜 그의 지지자들은 그런 곤경에 빠졌는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남의 말을 도무지 듣지 않고, 한국 사회를 말의 파탄 상태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특히 용서할 수 없다. 비판자를 반국가 세력으로 몰고, 독립 영웅을 상대로 역사 전쟁을 선동하며, 남북 간에는 물론 멀리 유럽까지 날아가 마구잡이의 말로 군사 긴장을 고조시켰다. 의료진과의 대화 단절, 말에 의한 악마화는 말할 것도 없다. 공석에서 반말이나 해대며 건들거리는 일까지, 그가 저지른 소통 파괴의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취임 후 인사가 폭탄 수준의 참사여도, 나라의 물적 토대가 거덜이 나도,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놓고서 맨날 전 정부 탓만 해도, 지금까지 우리는 개별 사안을 비판했을 뿐 대통령을 향해 물러나라고 하지 않았다. 배우자 일가의 소유지를 향해 고속도로가 휘어져 들어도, 사도 광산이나 독도 문제에서 묵과할 수 없는 일들을 기꺼이 묵과하고 심지어 앞장서는 듯한 자들이 국정을 좌우해도, 우리는 개별 사안과 개별 사람은 비판했어도, 대통령 자신이 그 자리를 내놓음으로써 책임지라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는 이태원에서 멀쩡한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도, '애국한 잘못'밖에 없는 젊은 해병이 안전 장비 하나 없이 수색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려서 죽임을 당해도, 장관과 사단장에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했지,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라고 하지 않았다. 대통령 배우자가 저지른 잘못들이 명백해 보여도, 경찰과 검찰이 시간만 끌다 갑자기 나서서 죄 없음을 강변해도, 배우자를 수사하라고, 기소하라고, 죄가 있다면 죗값을 물으라고 요구했지, 대통령이 직접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가 종국에는 국민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서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유사한 문제가 무한 반복되는 이 상황이, 그에게 미심쩍은 믿음을 보낸 우리의 잘못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여전히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라고만 말하고 있어도 되는가?

윤석열 대통령은 해고다

올해 핼러윈에는 이태원에 많은 사람이 몰렸지만 사고가 나지 않았다. 제대로 안전조치를 취하고 경관들이 안전 계도와 질서 유지에 힘썼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해 핼러윈의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던 것은 그 일을 해야 하는 자가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왜 대통령은 그의 책임이 없다고 하는가? 채수근 해병 사건은 어떤가. 책임을 져야만 하는 자들이, 부하들을 윽박질러 말단 사병을 죽음의 강바닥에 내몬 장성이, 대통령에게만 잘 보이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을 내린 것 아닌가? 애꿎은 젊은 해병의 죽음 앞에 고위 군인들이 부하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자기는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이 아닌가? 뉴라이트 망언을 일삼아 온 자들이 거듭 고위직에 올라 망언을 되풀이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대통령 배우자와 관련된 온갖 문제가 덮이는 일이 반복되고, 이에 국민이 모두 분개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도, 검찰도, 그 누구도 대통령 배우자의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가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모두는 당연히 국정 최고 최후의 책임자인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러나 끝내 대통령이 이 모든 국민의 말을 들으려고도, 뜻을 읽으려고도, 그 삶을 헤아리려고도 하지 않으면, 그래서 민주주의라고는 없이, 국민이 주권자로서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조차 없이, 국민의 공복들이 모두 대통령만 쳐다보며 지낸다면, 이는 누구의 책임인가? 오늘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통령이 책임을 지라고,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책임을 묻겠다고 했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은, 그 실천은커녕 요구조차 하지 않고 대통령 윤석열의 치세를 지나온, 우리의 책임이다.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말을 듣지도, 물러나지도 않는다면 우리가 끌어내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고다.

2024년 11월 19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경북대학교 교수·연구자 일동

돈 들여 해안가 소나무 심었건만, 제 역할 못하네

강원도 해송 식재 현장 둘러보니...

산불에 연악침식 악화까지

 

/진재중

 

해안가에 어린 해송 묘목을 식재한 삼척 맹방해변, 우측으로는 울창한 송림이 조성되어 있다(2024/11/15)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강원도 동해안 해안가에 연안 재해 방지용으로 심어진 해송이 해안 침식과 산불 위험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고성, 양양, 동해, 삼척 등 동해안 주요 지역에서는 해안 방재를 목적으로 해송이 곳곳에 식재되고 있다.

해송은 바닷바람과 염분에 강한 바닷가 소나무로, 짧고 억센 잎과 흑갈색 껍질이 특징이다. 동해안 해안가 논과 밭 앞에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해송이 식재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기자는 강원도 곳곳의 해송 실태를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현장 취재했다.

산에도 바닷가에도 '소나무'

한때 수려한 해변으로 유명했던 삼척시 맹방해변은 점점 과거의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해송과 염생식물들이 군락을 이루며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해변이었다. 그러나 최근 화력발전소 건설 이후 심각한 연안 침식 문제에 직면했다.

지난 15일 오후 찾아간 해안가. 어린 해송이 심어져 있고, 그 가운데엔 비스듬히 서 있는 수영 금지 팻말이 무기력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강원특별자치도가 2023년 맹방해변의 연안 침식을 막기 위해 약 1300그루의 해송을 심은 곳. 하지만 해안선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 심어진 어린 해송들은 큰 파도가 칠 때마다 바닷물에 잠길 위험에 놓였다. 방문객 김광문(72)씨의 말이다.

"길 건너에 해송보호 군락지가 있는데, 왜 굳이 모래 해변에 소나무를 심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심었으면 관리를 잘해야지 모래 위에 버려둔 것 같아요. 공사로 인한 해안침식도 문제지만 보여주기식으로 식재된 해송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해송이 식재된 곳에 소나무 보호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수영금지 팻말만이 서있다(2024/11/15)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고성 송지호 해변은 강원도가 연안 방재를 위해 해송을 심은 곳이다. 원래 이곳은 사구식물이 잘 자라 연안 침식과는 무관한 해변이었다. 지난 10월 25일 드론을 통해 하늘서 내려다 본 해안가 뒤편에는 건강하게 자라는 소나무와 해변 모래밭에서 뿌리내린 사구식물들이 보였다.

모래를 잡아주는 갯그령, 통보리사초, 좀보리사초 등 염생식물이 제거된 자리에 해송이 심어지면서 자연의 균형이 위협받고 있다. 해송 식재 지역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모래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해야 하지만, 되레 인위적으로 차단막이 설치되면서 모래 이동이 방해받고 있다.

최광희 가톨릭관동대 지리교육학과 교수는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연적인 모래 흐름은 해안 생태계의 중요한 요소로, 이를 방해하는 인위적 개입은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염생식물 복원을 포함한 생태 친화적 관리 방안 역시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송지호와 해안가 사이에 인위적으로 소나무를 이식한 현장이 보인다(2024/10/25)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사구식물 자생지를 파헤치고 소나무를 이식한 고성군 송지호 해변 현장(2024/10/25)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10월 28일 찾은 양양군 현남면 포매호 앞 해변에서도 해송을 식재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이곳도 사구식물이 자생하던 지역으로, 연안 침식이나 주변 농작물 피해가 없어 해송을 굳이 심을 이유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해송은 겉보기에는 수려하고 잘 자라지만, 해송이 연안 침식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광희 교수는 해안 침식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하며 "해송이 빽빽하게 심어지면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것을 차단해 모래가 해안으로 공급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해안선과 나란히 불게 된 바람은 모래 이동을 막아 침식은 지속되지만 회복이 되지 않아 결국 해안선이 후퇴하게 된다는 것.

 

왜 '탄소제로숲'이 해송인가

10월 28일 동해시 망상해변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넓고 고운 백사장과 오토캠핑장으로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다. 그러나 해변에서 10m가량 떨어진 곳에 해양레저 시설이 있고, 바로 옆에는 해송이 심어져 있어 큰 파도가 칠 경우 시설과 해송이 바다에 잠길 위험이 있다.

입간판에는 "서울에너지공사 임직원이 조성한 탄소상생리본 숲은 탄소 배출 저감을 목표로 한 숲"이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탄소를 흡수하고 해안방재 역할"을 한다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동해시민 김진갑씨는 "해안 방재 역할을 하겠다고 해송을 식재했지만, 오히려 방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역효과를 내고 있다"면서 "이곳은 보기 드물게 염생식물이 잘 자라던 해변이었다"라고 주장했다.

많은 기업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나무심기나 숲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활동이 실제로는 긍정적인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규송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는 "기업이 ESG 경영을 내세워 해안가에 해송을 심고 있지만 이것은 실제로 환경을 위한 것이 아니다. 겉으로만 친환경 이미지를 얻기 위한 활동"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동해시 망상해변 해안가 모래바위에 조성된 소나무(2024/10/28)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해송군락지해안가에 조성된 해송길은 시민들의 산책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산불에도, 해안침식에도 '취약'

그런데 동해안 산불과 연안 침식 피해의 주 원인 중 하나로 소나무가 지목되고 있다. 동해안 지역의 숲을 이루는 주요 수종인 침엽수 소나무는 불에 쉽게 타는 송진을 갖고 있어 산불 위험을 높인다. 특히 소나무 솔방울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지면서 불이 더욱 확산되기 쉽다.

해안가 해송 또한 문제로 꼽힌다. 해송의 뿌리 구조가 연안 침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해안식물들은 깊이 뻗은 뿌리로 지반을 단단히 고정해 침식을 방지한다. 반면 해송은 표면에 넓게 퍼지는 얕은 뿌리를 가지는데, 지반 깊숙이 뻗는 뿌리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해송이 식재된 해안가에선 강한 바람과 파도가 몰아칠 때 모래가 쉽게 유실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해송이 빽빽하게 자라면, 사구식물 같은 해안 침식 방지 식물들이 자라기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토양과 모래층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침식에 더욱 취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해안침식이 크게 발생했던 해변들은 해송군락지가 있었던 곳이다.

큰사진보기

 

군사도로 앞에 조성되었던 소나무는 바닷속으로 잠기고 더 큰 침식을 일으킨 강릉시 하시동. 안인해안사구 앞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뿌리채 뽑힌 소나무가 해안가에 넘어져있는 삼척시 원평해변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큰사진보기
침식이 심각한 해변에 소나무가 뿌리채 뽑혀 쓰러져 있다.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해안 개발로 인해 해안선 변화가 가속화한 것도 해송으로 인한 침식을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해송을 방풍림으로 심는 조경 방식이 오히려 파도·바람의 영향을 막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이는 모래층 유실로 이어진다. 태풍과 폭풍 등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강력해진 자연재해 속에서 해송만으로 해안을 보호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김희석 반려식물연구원 박사는 15일 기자화의 통화에서 "해송이 방풍림 역할은 하지만 해안선 고정과 침식 방지에는 적합하지 않다"면서 "해안 특성에 맞는 사구식물이나 뿌리가 깊고 단단한 해안식물을 심어 모래층을 안정화하고 해안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큰사진보기
해송 군락지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 바닷가를 따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심각한 해안가 침식현장에 해송이 있다

동해안에서 심각한 해안 침식지대로 알려진 삼척 원평해변과 강릉 안인해변은 과거 해송이 잘 자라던 곳이었다. 침식이 발생하기 전에는 바다 모래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었다.

삼척 원평해변은 궁촌항 건설 이후 해안 침식이 발생하며 인근 해변인 원평해변까지 피해를 입었다. 원평해변은 해송 군락지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였고,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야영에 적합했었다. 그러나 큰 파도를 견디지 못한 소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바닷속으로 잠기게 됐다.

큰사진보기
연안침식이 심각했던 삼척시 근덕면 원평해변(2022년 촬영)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큰사진보기
삼변 원평해변소나무 숲사이로 나있던 레일바이크 철길이 무너지고 그 앞에있던 소나무는 쓰러져 바닷속으로 잠겼다(2022년 촬영).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강릉 안인해변은 인공시설로 인해 사구지대가 깎이고 도로가 유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안인화력발전소 공사가 시작되면서 연안 침식이 발생했고, 강한 파도에 소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해안 사구를 보호하던 소나무는 결국 제 역할을 잃었고, 도로 유실이라는 큰 피해로 이어졌다.

아래 사진을 보면,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 3~5m 높이의 절벽이 생겼고 도로까지 유실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안침식을 연구하는 장성렬 박사는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 해안침식이 심각했던 지역은 대부분 해송군락지대였다"며 "삼척의 원평해변과 안인해변은 해송이 뿌리째 뽑히면서 침식 속도를 높였고, 그로 인해 피해가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강릉시 하시동.안인해안사구(2023년 7월 촬영)해안사구에 소나무가 뿌리채 뽑히면서 연안침식이 가속화 되는 현장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사구식물 복원 목소리 커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송을 대체할 수 있는 적합한 식물 연구와 조경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안방재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동해안의 해안선은 점차적으로 유실되며 해양 생태계까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구식물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뿌리 시스템에 있다. 사구식물은 모래와 토양 속 깊이까지 뻗는 뿌리 구조를 가지고 있어, 해안가에서 바람이나 파도에 의해 토양이 쉽게 유실되지 않도록 고정시킨다. 특히 동해안은 태풍과 같은 기후 영향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구식물은 자연적인 방어벽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사구식물로는 순비기나무, 통보리사초, 좀보리사초, 갯그령 등이 있다. 이 식물들은 염분에 강하고, 바닷바람에도 잘 견디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척박한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특히 갯그령은 뿌리가 땅 속 깊게 뻗은 뿌리로 모래층을 단단히 붙잡아 준다. 사구식물을 심으면 해송 식재에 드는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다. 이는 해양 환경의 안정성과 생물 다양성 유지에도 중요하다.

이규송 강릉원주대 교수는 사구 지역의 생물 다양성을 보호해야 한다며, 고산대 생태계, 암벽지 식생, 사구 식생 등은 훼손 시 회복이 어려운 만큼 우선적으로 관리해야 할 생태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당 지역에 적응해온 고유 생물들을 보호하는 것이 생물 다양성 유지의 핵심 정책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큰사진보기
각종 염생식물모래의 이동이 심한 전사구에 주로 분포하고 바람에 날려온 모래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큰사진보기
고성군 송지호해변사구식물이 파도나 바람의 완충역할을 함으로서 연안침식을 막아준다 ⓒ 진재중관련사진보기

사업 실패 책임지라” 퇴사 종용

직장 내 괴롭힘’ 첫 인정   

 

노동부, 정보문화진흥원장에 과태료 처분
직원 A씨 “시·기관장 실패를 나에게 돌려”
업무 배제·사직 종용에 정신과 진료까지
“악덕기업 해고 방식⋯춘천시도 책임져야”

 

춘천시의 대표 공공기관의 기관장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용노동부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2019년 7월 이후

시 출자·출연 기관 가운데 이 법에 따른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건은 특히 공공기관이 특정 사업 실패 책임을 물어 직원을 징계하고

사퇴를 종용하는 행위가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며 노동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처분이 공공기관에 팽배한 구시대적 ‘갑질 문화’에 대한 경고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고용노동부 강원지청은 강원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 직원 A씨가 

서병조 진흥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 진정 사건에 대해

지난 8일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고 과태료 300만원 및 운영 기관에 대한 재발 방지 개선지도 처분을 내렸다.

강원정보문화산업진흥원은 매년 시 출연금 28억원이 투입되는 춘천 대표 출연기관 중 하나다. 

 

이 사건의 쟁점은 춘천시가 진흥원에 위탁한 원도심 르네상스사업단 부실 운영의 책임을 묻겠다며 

지난해 7월부터 A씨를 업무 배제(직위 해제)하고, 퇴사를 종용한 것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에 있었다.

 

진흥원 측은 당시 경영기획본부장이었던 A씨에게 사업의 총괄책임자로 실패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직위 해제 등의 인사 조처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는 춘천시가 직접 사업을 진행하고 기관장 직속으로 운영한 만큼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왔다. 

 

▶직위해제 이어 정직, 평사원 발령까지

진흥원이 추진한 원도심 르네상스 사업은 지난해 5월부터 ‘스마트상권 통합시스템 구축 및

운영관리 용역사업’ 선정 과정에서 특혜가 있다는 의혹에 따라 특정감사를 받았다.

관련 책임을 묻기 위해 A씨와 사업단장 B씨에 대한 수사가 있었지만

강원경찰청은 ‘범죄 혐의 없음이 명확하다’라며 입건 전 조사를 종결했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범죄 혐의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사업 실패와도 직접적 연관이 없는데도

시와 진흥원이 자신에게 실패 책임을 뒤집어씌웠다고 주장한다. 

 

A씨는 이후 3개월간 세 차례의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직위해제 기간에는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2개월, 정직 1개월 처분이 연이어 내려졌다.

이 기간에도 진흥원은 계속해서 A씨에게 사표를 내라고 강요하고 보직을 주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A씨는 “사업에 대한 책임은 기관장과 춘천시에 있었음에도 책임을 지고 사직하도록 강요하고,

사표를 내지 않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일관한 것”이라고 했다. 

 

진흥원이 A씨에 대해 내린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정은 이미 내려졌다.

 강원지방노동위원회가 A씨에 대한 중징계 2건이 모두 부당하고 양형기준이 지나쳤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진흥원은 오히려 더 강도 높은 사실상 해고에 해당하는 직권면직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 역시 노동위로부터 부당해고라는 판정이 나왔지만, A씨의 원직 복귀가 이뤄지지 않자

노동위는 지난 10월 진흥원장을 형사고발했다.

 

현재 A씨는 본부장이 아닌 평사원으로 복직해 계속 출근하다가 최근 ICT벤처센터장으로 발령 받았다. 

이에 대해 진흥원 측은 “본부장직에 최대한 유사한 자리로 원직복직 명령을 수행했다”며

“원직복직은 복직 시점의 기관 상황을 고려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1년 4개월간 힘든 싸움⋯목소리 내야 했다”  

A씨는 직권면직(해고)을 비롯해 평사원 발령, 직위 해제 등의 징계가 지속되자

지난 3월 서 원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본지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A씨가 원장, C본부장(A씨 직위해제로 인한 후임) 등이

대화한 녹취록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명예를 지킬 마지막 기회” 

“험한 일 당하기 전에 사표” “사표 쓰면 경찰 수사 막아보겠다”

 “정직 끝나도 어떻게 더 일하냐”는 등 퇴사를 종용하며 압박하는 듯한 발언들이 확인됐다.

 

 직무교육을 명분으로 248시간의 온라인 교육을 받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장기간 괴롭힘을 받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업무 배제와 고립 등으로 

대인기피와 우울증으로 정신과 병원 진료까지 받았다고 호소했다.

 

강원고용노동지청은 지난 3월부터 8개월에 걸쳐 이 사건을 조사한 끝에 

근로기준법 76조에 따라 서 원장이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진흥원이 사업 실패의 책임을 묻겠다며 A씨를 직무 배제하고

사직을 압박한 것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근로기준 조항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 범위 넘는 행위일 것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켰을 것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강원지청 관계자는 “제시된 자료와 다른 판단 사례 등을 살핀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을 구성하는 모든 요건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A씨는 이번 고용노동청의 처분과 관련 “기관장의 괴롭힘과 조직적인 폭력 자행,

지역사회로부터의 따가운 시선의 사회적 폭력까지 1년 4개월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직장 내 괴롭힘 처분은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끝까지 퇴직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 데 대해서는 “근로자의 한 사람이자 직장에서는

 선배로서 올곧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누군가는 부당한 권력에 대항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동계와 지역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의 진짜 문제는 단순히 괴롭힘을 넘어 

근로자에게 실패 책임을 전가하는 ‘꼬리 자르기’ 문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계 관계자는 “특정인에게 밉보인 한 사람을 쳐내기 위한 표적감사 식의 감사와

사퇴 종용식의 괴롭힘이 이뤄졌다”라고 지적했다. 

 

윤민섭(정의당) 춘천시의원은 “노동청의 원직복직 판정에 따르지 않아

소위 ‘생 돈’이 나가고 공적기금으로 벌금이나 변호사 자문비용 등이 투입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라며

“서 원장은 사퇴해야 하고 춘천시도 관리·감독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흥원 측은 과태료 부과 처분 등이 부당하다며 법적 다툼을 예고했다.

서 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지방노동청 결정에 대해 인정할 수 없고

민사상의 비송 절차 등 다음 단계를 갈 것”이라며 “본부장(A씨)과 정무적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조직의 입장이나 본인을 위한 방안을 권유한 것이라

업무를 수행하는 적정 범위 내에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춘천시 전략산업과 관계자는 “법적으로 최종 결론이 나온 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사라지는 꿀벌이 남긴 ‘다잉 메시지’…

이상기후 ‘지구의 경고’

/이설화 

 

[2024 기후위기 리포트] 꿀벌이 사라졌다

 


도내 양봉농가 월동벌 피해율 52%진드기 증가 꿀벌 영양실조 집단 폐사
응애 확산·기존 약제 저항성 주원인
2020년 벌꿀 수입량 10년 전 대비 2.6배↑
베트남 꿀 관세 인하 2029년 완전 철폐
“농작물 결실에 수정 필수, 꿀벌 역할 중요”

 

지난 4일 북한강 상류인 소양강댐 옆에 위치한 인제읍의 한 양봉사. 봉군 열개가 일렬로 놓인 구역마다 꿀벌이 원을 그리며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봉군은 꿀벌 2만여 마리가 머무르는 일종의 벌집이다. 이날 최고기온은 19.8도로, 평년보다는 4.5도가 높았다.

 

윙윙거리는 벌무리를 보며 봉주 도기학 씨가 말했다. “본래 월동에 들어가야 하는 시기인데, 밖에 나와 있어요.” 꿀벌은 통상 10월 중순쯤엔 월동에 들어간다. 봉군 안에서 벌무리가 모여 겨울을 났다가 2월이면 겨울잠에서 깨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11월인데도 봉군 밖에는 벌이 가득했다.

 

도 씨는 “날씨가 따뜻하니 나와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체력을 소모하면 수명이 짧아진다”고 했다. 고성에서 양봉을 하는 이기현 씨도 “오늘(4일)도 분봉(여왕벌 산란 후 집을 옮기는 일)난 것처럼 새까맣게 벌이 나왔다”며 “봉군 소문에는 ‘경계병’을 맡은 벌이 있어야 하는데, 경계병이고 일벌이고 더워서 다 나와 논다”고 했다. 꿀벌이 사라졌다.

■“벌 한 마리 안 보여… 50년만 처음”

양봉협회 강원도지회가 지난 2월 도내 708개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월동벌 피해를 조사한 결과, 피해율이 52%에 달했다. 월동 전인 지난해 가을 봉군 수는 9만1155개였지만, 이듬해인 올 봄에 벌이 남은 봉군은 4만3946개였다.

 

봉군 당 2만마리가 있었다고 가정하면, 9억5200만마리의 벌이 사라진 셈이다.

양봉업 종사자들에 따르면, 특히 2022년에 피해가 컸다.

고성 간성읍에서 50여년째 양봉업에 종사한 안상희(77) 씨도 키우던 꿀벌이 올 봄 모두 사라지는 피해를 봤다. 그는 지난해 가을 봉군 400개를 관리하고 있었다. 안 씨는 “마음 고생이 심했다”며 “한 개 봉군을 고사하고 벌 한 마리도 없었다.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주변에서도 믿지 않았다”고 했다.

도 씨는 2022년 피해가 극심했다. 지난 2022년 월동 전 150개 봉군을 갖고 있었지만, 이듬해인 2023년 봄 봉군을 열어보니 20개가 남았다. 부랴부랴 세종시에서 봉군을 사 입식을 했다. 그렇게 지난해 80군으로 늘린 월동벌은 또 사라져 올 봄엔 50군이었다. 도 씨는 “10여년 전만해도 벌 한통에서 꿀 두 말(40리터)을 땄는데, 지금은 한 말 따기도 힘들다”며 “예측을 할 수 없으니 참 어렵다. 이전엔 노력하는 만큼 꿀을 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게 안 된다”고 낙담했다.

■날 따듯해져 진드기 피해까지 극심

양봉업 종사자들은 꿀벌 집단 폐사의 원인으로 ‘진드기 피해’를 지목한다. 날이 더워 진드기 피해가 늘었고, 진드기에 영양분을 뺏기면서 벌이 영양실조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도 씨는 “제일 무서운 게 진드기 응애병”이라며 “날개가 없거나 다리가 없는 벌이 나온다”고 했다. 이기현 씨도 “약을 쳐야 할 시기에 정확하게 치는데도, 워낙 진드기가 많으니 당해내질 못한다”며 “개미산이라는 독한 약을 일주일에 한 번씩 봉군에 둔다”고 했다.

양구에서 밀원식물연구원을 운영하며 꿀벌 연구를 하는 이영기 씨는 “온난화로 인해 응애가 번식하는 온도가 맞았던 것 같다”며 “약처리를 해도 번식하는 속도가 빠르고, 약에 내성이 생기다보니 벌이 폐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역시 지난 2022년 등 꿀벌 집단 폐사의 원인 중 하나로 꿀벌응애 확산과 기존 약제 저항성을 꼽고 있다.

이영기 씨는 온난화로 인한 식물의 생리장애도 언급했다. 이 씨는 “꿀벌은 꽃가루와 꿀을 영양소로 삼는데, 온난화로 인해 식물이 꽃가루와 꿀을 규칙적으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 “월동을 마친 벌들이 집을 나갔지만 갑자기 기온이 낮아지는 등 기온변화가 크면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벌이 늘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법은 없는데, 외국산 꿀 수입은 급증

양봉주들이 진드기와 싸우는 동안 벌꿀 수입량은 매년 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살펴본 결과, 지난 2010년 대비 지난해 천연꿀 수입량은 2.6배 늘었다. 2010년 542t이던 수입 규모는 2015년 900t, 2020년 1006t으로 늘었고, 지난해엔 1424t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수입액은 1800만 달러로 한화로 약 250억원에 이른다.

안 씨는 “외국에서 수입 꿀이 들어와서 국내 농가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그게 제일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수입을 막아볼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불법 수입도 만연하다”며 “앞으로 몇년 사이 국내 농가는 더 어려워질 것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베트남산 수입 천연꿀의 관세는 계속 낮아져 올해 81%가 됐고, 오는 2029년부터는 관세가 완전히 철폐된다.

양봉업 종사자들은 수입꿀이 늘어나는 반면, 진드기 피해 연구 및 지원은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한다. 도 씨는 “진드기 피해를 연구해서 약을 개발한다든지, 우리나라 환경에 맞게 약제 보급을 해줘야 한다”며 “약제 효과를 모르는 채로 쓰니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이기현 씨 역시 “약 종류는 무수히 많은데, 효과가 규명된 게 없다”며 “다 죽이고 벌이 살면 된다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꿀벌 실종 생태계 전반 악영향… 농작물 생산도 어려워

설악산이 좋아 인제읍에서 양봉업으로 정착했다는 도 씨는 1975년부터 15년 간 이동 양봉을 했다. 그는 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지역 간 개화시기가 비슷해졌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도 씨는 제주 유채꽃에서 시작해 대구·경북, 대전 대덕구, 경기 수원·안산·김포 양곡, 인천 강화도 쪽으로 옮겨가며 아카시아 꿀을 땄다. 강원 인제 한계리가 마지막 채밀 지역이었다. 그는 “지역을 옮겨다

니며 대여섯번 꿀을 뜨곤 했는데, 지금은 여기나 아랫지방이나 개화시기에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도 씨는 꿀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벼부터 시작해 각종 과일나무, 농작물이 열매를 보려면 수정을 해야 하지 않으냐”며 “농작물을 재배, 관리하는 농협 등에 꿀벌 농가의 중요성을 말해도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다”고 했다.

이영기 씨는 “참외, 수박, 멜론 등은 대표적으로 수정이 반드시 필요한 과일”이라며 “꽃방이 네개 정도로 구성이 되는데 하나라도 수정이 덜 되면 제대로된 과일을 만들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의 손, 바람, 벌 등에 의해 수정이 될 수 있는데 정확하게 수정할 수 있는 것은 꿀벌 뿐”이라며 “품위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핵심이 꿀벌”이라고 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