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꿀벌이 남긴 ‘다잉 메시지’…

이상기후 ‘지구의 경고’

/이설화 

 

[2024 기후위기 리포트] 꿀벌이 사라졌다

 


도내 양봉농가 월동벌 피해율 52%진드기 증가 꿀벌 영양실조 집단 폐사
응애 확산·기존 약제 저항성 주원인
2020년 벌꿀 수입량 10년 전 대비 2.6배↑
베트남 꿀 관세 인하 2029년 완전 철폐
“농작물 결실에 수정 필수, 꿀벌 역할 중요”

 

지난 4일 북한강 상류인 소양강댐 옆에 위치한 인제읍의 한 양봉사. 봉군 열개가 일렬로 놓인 구역마다 꿀벌이 원을 그리며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봉군은 꿀벌 2만여 마리가 머무르는 일종의 벌집이다. 이날 최고기온은 19.8도로, 평년보다는 4.5도가 높았다.

 

윙윙거리는 벌무리를 보며 봉주 도기학 씨가 말했다. “본래 월동에 들어가야 하는 시기인데, 밖에 나와 있어요.” 꿀벌은 통상 10월 중순쯤엔 월동에 들어간다. 봉군 안에서 벌무리가 모여 겨울을 났다가 2월이면 겨울잠에서 깨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11월인데도 봉군 밖에는 벌이 가득했다.

 

도 씨는 “날씨가 따뜻하니 나와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체력을 소모하면 수명이 짧아진다”고 했다. 고성에서 양봉을 하는 이기현 씨도 “오늘(4일)도 분봉(여왕벌 산란 후 집을 옮기는 일)난 것처럼 새까맣게 벌이 나왔다”며 “봉군 소문에는 ‘경계병’을 맡은 벌이 있어야 하는데, 경계병이고 일벌이고 더워서 다 나와 논다”고 했다. 꿀벌이 사라졌다.

■“벌 한 마리 안 보여… 50년만 처음”

양봉협회 강원도지회가 지난 2월 도내 708개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월동벌 피해를 조사한 결과, 피해율이 52%에 달했다. 월동 전인 지난해 가을 봉군 수는 9만1155개였지만, 이듬해인 올 봄에 벌이 남은 봉군은 4만3946개였다.

 

봉군 당 2만마리가 있었다고 가정하면, 9억5200만마리의 벌이 사라진 셈이다.

양봉업 종사자들에 따르면, 특히 2022년에 피해가 컸다.

고성 간성읍에서 50여년째 양봉업에 종사한 안상희(77) 씨도 키우던 꿀벌이 올 봄 모두 사라지는 피해를 봤다. 그는 지난해 가을 봉군 400개를 관리하고 있었다. 안 씨는 “마음 고생이 심했다”며 “한 개 봉군을 고사하고 벌 한 마리도 없었다.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주변에서도 믿지 않았다”고 했다.

도 씨는 2022년 피해가 극심했다. 지난 2022년 월동 전 150개 봉군을 갖고 있었지만, 이듬해인 2023년 봄 봉군을 열어보니 20개가 남았다. 부랴부랴 세종시에서 봉군을 사 입식을 했다. 그렇게 지난해 80군으로 늘린 월동벌은 또 사라져 올 봄엔 50군이었다. 도 씨는 “10여년 전만해도 벌 한통에서 꿀 두 말(40리터)을 땄는데, 지금은 한 말 따기도 힘들다”며 “예측을 할 수 없으니 참 어렵다. 이전엔 노력하는 만큼 꿀을 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게 안 된다”고 낙담했다.

■날 따듯해져 진드기 피해까지 극심

양봉업 종사자들은 꿀벌 집단 폐사의 원인으로 ‘진드기 피해’를 지목한다. 날이 더워 진드기 피해가 늘었고, 진드기에 영양분을 뺏기면서 벌이 영양실조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도 씨는 “제일 무서운 게 진드기 응애병”이라며 “날개가 없거나 다리가 없는 벌이 나온다”고 했다. 이기현 씨도 “약을 쳐야 할 시기에 정확하게 치는데도, 워낙 진드기가 많으니 당해내질 못한다”며 “개미산이라는 독한 약을 일주일에 한 번씩 봉군에 둔다”고 했다.

양구에서 밀원식물연구원을 운영하며 꿀벌 연구를 하는 이영기 씨는 “온난화로 인해 응애가 번식하는 온도가 맞았던 것 같다”며 “약처리를 해도 번식하는 속도가 빠르고, 약에 내성이 생기다보니 벌이 폐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역시 지난 2022년 등 꿀벌 집단 폐사의 원인 중 하나로 꿀벌응애 확산과 기존 약제 저항성을 꼽고 있다.

이영기 씨는 온난화로 인한 식물의 생리장애도 언급했다. 이 씨는 “꿀벌은 꽃가루와 꿀을 영양소로 삼는데, 온난화로 인해 식물이 꽃가루와 꿀을 규칙적으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 “월동을 마친 벌들이 집을 나갔지만 갑자기 기온이 낮아지는 등 기온변화가 크면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벌이 늘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법은 없는데, 외국산 꿀 수입은 급증

양봉주들이 진드기와 싸우는 동안 벌꿀 수입량은 매년 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살펴본 결과, 지난 2010년 대비 지난해 천연꿀 수입량은 2.6배 늘었다. 2010년 542t이던 수입 규모는 2015년 900t, 2020년 1006t으로 늘었고, 지난해엔 1424t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수입액은 1800만 달러로 한화로 약 250억원에 이른다.

안 씨는 “외국에서 수입 꿀이 들어와서 국내 농가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그게 제일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수입을 막아볼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불법 수입도 만연하다”며 “앞으로 몇년 사이 국내 농가는 더 어려워질 것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베트남산 수입 천연꿀의 관세는 계속 낮아져 올해 81%가 됐고, 오는 2029년부터는 관세가 완전히 철폐된다.

양봉업 종사자들은 수입꿀이 늘어나는 반면, 진드기 피해 연구 및 지원은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한다. 도 씨는 “진드기 피해를 연구해서 약을 개발한다든지, 우리나라 환경에 맞게 약제 보급을 해줘야 한다”며 “약제 효과를 모르는 채로 쓰니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이기현 씨 역시 “약 종류는 무수히 많은데, 효과가 규명된 게 없다”며 “다 죽이고 벌이 살면 된다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꿀벌 실종 생태계 전반 악영향… 농작물 생산도 어려워

설악산이 좋아 인제읍에서 양봉업으로 정착했다는 도 씨는 1975년부터 15년 간 이동 양봉을 했다. 그는 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지역 간 개화시기가 비슷해졌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도 씨는 제주 유채꽃에서 시작해 대구·경북, 대전 대덕구, 경기 수원·안산·김포 양곡, 인천 강화도 쪽으로 옮겨가며 아카시아 꿀을 땄다. 강원 인제 한계리가 마지막 채밀 지역이었다. 그는 “지역을 옮겨다

니며 대여섯번 꿀을 뜨곤 했는데, 지금은 여기나 아랫지방이나 개화시기에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도 씨는 꿀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벼부터 시작해 각종 과일나무, 농작물이 열매를 보려면 수정을 해야 하지 않으냐”며 “농작물을 재배, 관리하는 농협 등에 꿀벌 농가의 중요성을 말해도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다”고 했다.

이영기 씨는 “참외, 수박, 멜론 등은 대표적으로 수정이 반드시 필요한 과일”이라며 “꽃방이 네개 정도로 구성이 되는데 하나라도 수정이 덜 되면 제대로된 과일을 만들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의 손, 바람, 벌 등에 의해 수정이 될 수 있는데 정확하게 수정할 수 있는 것은 꿀벌 뿐”이라며 “품위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핵심이 꿀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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