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깎여 나간 강원 동해안 백사장
기후 온난화에 오늘도 깎여 나간 강원 동해안 백사장
해변 52% 침식 우려·심각…
D등급 속초·강릉 각 3, 삼척 2, 양양 1 순
"해수면 상승에 난개발이 침식 부추겨…
더 빠르고 심각하게 삶 위협할 것" 정부,
10년마다 피해 대응하나 '사후약방문'…
근본적인 대책 마련 시급
해안 침식이 심각한 강릉 안인·하시동 사구
[촬영 류호준]
"심각하다고 듣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 몰랐네요."
강원 동해안 백사장의 해안 침식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해안 침식의 주된 원인으로는 '기후 온난화'가 지목된다.
기후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동해안 백사장 모래가 빠른 속도로 유실 중이다.
최근에는 동해안 일대 난개발이 해안 침식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안 침식이 심한 곳은 해안 도로가 무너지거나 해변 인근 건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기후 위기의 직격탄을 가장 크게 맞고 있는 동해안 일대를 찾아 해안 침식의 심각성을 살펴봤다.
◇ "옛 모습 기대는 접었죠"…강릉 안인 사구 일대 '아수라장'
성인 키만큼 깎여나간 강릉 사근진해변 백사장
[촬영 류호준]
지난 10일 방문한 강릉 사근진해변 일대에서는 파도에 깎여나간 백사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성인 키만큼 깎인 곳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2021년 연안 침식 실태 조사에서 해안침식 D등급(심각)을 받기도 했다.
이날 사근진해변에서 만난 관광객 김근하(45)씨는 해안 침식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놀랐다.
김씨는 "해안 침식이 워낙 뉴스에 자주 나오다 보니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5년 전쯤 왔을 때는 이 정도로 깎여있지는 않았던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생각보다 침식 구간도 길어 해변을 걷기 불편하다"며
"백사장보다는 바위나 해중 전망대 등에서 놀다가 가야 할 거 같다"고 덧붙였다.
인근의 강릉 안인·하시동 사구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이곳은 동해안에서 해안 침식이 가장 심한 곳으로 손꼽힌다.
2천4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해양 생물 다양성의 보고와도 같았다.
해양 생태계 보전 측면에서 큰 학술 가치를 지니고 있어
환경부는 2008년 12월 안인·하시동 사구 23만3천㎡를
동해안 최초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곳도 기후 온난화의 습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
특히 주민들은 인근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해안 침식이 매우 심각해졌다고 전했다.
최근 이 일대에서 돌제 등 침식 저감 시설 설치가 시작됐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해안 침식과 이를 막기 위한 공사로 안인 사구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이제 안인 사구가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조차 접었다.
평생을 이 동네에서 산 주민 김모(78) 씨는 이러한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기후 온난화가 원인이든, 화력발전소 공사가 원인이든
주민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정말 아름다웠던 안인 사구가
이제는 중장비와 침식 방지 시설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강원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동해안 해변 중
52%가 해안 침식 우려나 심각 단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변 101개소를 대상으로 침식 현황을 조사한 결과
A등급(양호)과 B등급(보통)은 받은 해변은 각각 5곳과 43곳이다.
또 C등급(우려)과 D등급(심각) 해변은 각각 44곳과 9곳이었다.
D등급을 받은 해변은 속초와 강릉이 각각 3곳으로 가장 많았고,
삼척 2곳, 양양 1곳 등 순이었다.
◇ "해안 침식 속도 빨라질 것…정부 정책, 사후 복구에 집중해서는 안 돼"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강릉 안인·하시동 사구
[촬영 류호준]
해안 침식이 주요 환경 문제로 대두되면서 관련 연구와 대책도 논의되고 있다.
녹색연합은 올 상반기 국내 시민단체로는 최초로 동해안과 서해안 일대 해안 침식 실태를 조사했다.
해당 조사에 참여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앞으로 해안침식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재철 전문위원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을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앞으로 해안 침식은 더 빠르고, 더 심각한 양상으로 우리의 삶을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연안관리법에 따라 2000년부터 10년마다 연안 정비계획을 수립,
해안 침식 피해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특히 대부분의 예산과 정책이 사후 복구에 집중돼 있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 위원은 "연안 정비계획을 바탕으로 정부에서도 침식 피해에 대응하고 있지만
사후 복구를 위한 해안구조물 건설 등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각 연안에 맞는 맞춤형 해결책과 연안 개발 및 모래 흐름에 대한
통합적 관리 방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비슷한 주장을 했다.
임 의원은 해안 침식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직접 강릉을 방문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는 침식을 막기 위해 수중 방파제, 이안제, 돌제 등의 침식 저감 시설물을 설치했다.
그러나 속초 등 일부 지역에서는 2차 침식을 유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 의원은 "연안 침식 문제는 근본적인 관리 체계의 부재를 보여준다"며
"침식 저감 시설물을 설치하거나 개발사업을 진행할 때 철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 대책 마련에 분주…강원도, 연안항만 방재센터도 조속히 추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자체에서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강릉·동해·삼척·속초·고성·양양 등 동해안 6개 시·군은 지난달
강원도 동해안권 상생발전협의회 제11차 정례회에서 채택한 공동건의문을
국회사무처와 기획재정부, 해양수산부, 강원도 등 관계 기관에 발송했다.
해당 건의문에는 '해안침식 연안정비 사업 국가 시행' 등 해안 침식 대응을 위한 내용이 포함됐다.
강원도 역시 해양수산부와 함께 동해안 해안침식 문제 해결을 위해 연안항만 방재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대지 확보 등에 난항을 겪으며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다.
애초 도는 강릉 옥계면 일대의 부지를 해양수산부에 제공하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현행 공유재산법상 도가 해수부에 토지를 무상 제공할 수 있지만
해당 부지에 연구 시설은 들어설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 관계자는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에 공유재산법 특례조항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른 시일 내 연구시설 문제를 매듭짓고서 해안 침식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후 격변]
⑤ 녹색 괴물이 점령한 소양호…언제까지 하늘 탓만 하나
대규모 녹조 거듭해 '청정 수자원' 무색…오염원 유입·폭염 영향 커
흙탕물 등 비점오염 저감 대책 확대 필요…치수 정책 개선 목소리도
'수도권 식수원' 소양호 상류에 녹조 발생
강원 인제·양구지역을 둘러 흐르는 소양호 상류는 본디 청정 수질을 자랑하며
내수면 어업인들에게 싱싱한 물고기를 한 아름 선물해왔다.
하지만 작년 여름 유래를 찾기 힘든 대규모 녹조가 수면을 점령했고,
올여름에도 이를 거듭해 '청정 수자원'이라는 자랑거리가 무색해졌다.
전문가는 물론 주민들까지 날씨 탓만 할 수 없다며 여러 대책을 찾고 있지만,
지금 같은 불볕더위가 계속된다면 강과 호수를 점령한 녹색 괴물을 쫓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뙤약볕 아래서 한증막에 들어가 작업하는 기분입니다. 등에 땀띠가 날 지경이네요."
최강 폭염이 이어지던 작년 여름 한강 최상류인 인제군 소양호 일원에서는 녹조 제거 작업이 벌어졌다.
수자원공사 관계자 10여명은 30도를 훌쩍 뛰어넘는 더위 속에
상체까지 덮는 방수복 차림으로 허리춤 높이의 호수에 들어가
긴 띠를 이용해 녹조를 뭍으로 긁어모으며 구슬땀을 연식 닦았다.
수온마저 30도 넘게 치솟아 바라만 봐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곳에 대규모 녹조가 발생한 것은 소양강댐이 건설된 1973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례적인 녹조는 올해도 거듭했다.
지난 7월 말 공중에서 바라본 소양호 일대는 이미 녹조가 점령한 상황이었다.
인제대교에서부터 시작한 녹조는 38대교까지 4㎞ 넘게 퍼졌고
아래로 10㎞ 넘게 떨어진 양구대교 인근까지 뻗쳤다.
물가에 떠밀린 녹조는 장마에 떠내려온 쓰레기 등 각종 부유물과 뒤엉켜 부패해 역한 냄새를 풍겼다.
물가에 정박한 어선 2척은 녹조에 발이 묶여 출어를 포기한 모습이었다.
녹조 제거 작업 모습을 지켜보던 한 어민은 "여기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작년부터 녹조가 심하게 발생했다"며 "악취도 심하고 이런 물에 사는 물고기를 잡아봤자
내다 팔 수도 없어서 그냥 쉬고 있다"고 말했다.
녹조를 발생시키는 남조류는 독성을 함유하고 있고 악취를 유발해
상수원을 오염시키며, 용존산소 부족으로 물고기 등의 집단폐사가 발생해
수생태계 교란이 일어나 어족자원 고갈로 경제적 피해마저 초래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강수·폭염·지형 복합 원인…오염원 유입 원천 차단 급선무
소양호 대규모 녹조 발생은 강우로 인해 유입된 오염원과 이어지는
폭염, 지형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수자원공사 한강유역관리처 자료에 따르면 긴 장마와 집중 호우로
내린천과 인북천 상류에서 오염물질이 소양호로 유입된 상황에서
고온과 폭염, 강한 햇빛이 수온을 높여 녹조를 형성하는 조류가 급속도로 번성했다.
여기에 강폭이 넓어지는 인제대교의 지형 특성상 유속이 감소하는 구간에
물이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대형 녹조 발생을 부추겼다.
2021년은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많았으나 강수량이 적고
소양강 수위가 평년보다 낮았고 재작년의 경우 5∼7월 강수량이 500㎜ 이상 기록했지만
기온이 낮아 녹조 발생이 억제된 것으로 조사됐다.
수자원공사는 녹조가 하류로 번지는 것을 막고자 다중 차단막과 물 흐름 촉진 장치,
에코 로봇, 선박, 오일 붐 등을 활용하면서 환경청과 비상 대응 체계를 구축,
도 보건환경연구원과 합동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규모 녹조 발생에 제때 대응하기에는 애를 먹고 있다.
이에 오염원 발생 정보 파악과 더불어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맞춤형 오염원 관리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고농도 오염물질이 대량으로 유입하기 쉬운 상황에서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는 오염원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견해다.
지역의 고질적 문제로 꼽혀온 흙탕물 유입을 예방할 수 있는
비점오염 저감 대책사업의 확대 추진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이는 단년생 작목을 다년생 작목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밭고랑 댐 설치,
밭 경계 식생대 조성 등 농경지에 적용할 수 있는 토사 유출 저감 기법을 발굴하고 확대 적용하는 사업이다.
이수현 인제군의원은 "비점오염 저감 대책사업은 많은 예산이 필요한 만큼
환경부 등에 녹조 발생 억제 정책을 위한 사업비를 별도 신청하는 등
비점오염 저감을 위해 많은 예산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소양호 점령한 녹조
[연합뉴스 자료사진]
◇ "고인 물 흐르게 해야"…정부 치수 정책 개선 목소리도
거듭한 대규모 녹조 발생을 계기로 오염원 저감과 유입 방지 정책을 넘어
정부의 치수 정책 개선 요구도 지역 환경단체에서 나오고 있다.
사단법인 인제천리길에 따르면 녹조가 발생한 인제대교부터 38선휴게소까지
드넓은 땅은 지역의 대표적인 평야였지만, 소양강댐 건설 이후로 댐 수위에 따라 들판이 잠기기 일쑤다.
댐 수위가 180m를 넘으면 땅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는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곳의 지형 특성상 유속이 감소하는 구간에 물이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고이게 된다.
수온이 오르기 쉬운 여름철에 댐이 높은 수위를 유지하게 된다면
넓고 얕게 고인 물에 강한 일사가 더해지고, 여기에 오염원이 대거 흘러든다면
말 그대로 '녹조 양식장'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시민·환경단체들은 소양강댐의 여름 저수율을 낮추고
물을 자주 흘려보내 인제대교 인근에 물이 고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호진 인제천리길 대표는 "소양호 녹조 발생은 오염원을 강으로 흘려보내는 주민 책임도 있지만,
수도권 용수 공급을 위해 소양강댐을 높이 채워놓는 정부 정책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치수 정책을 고치지 않으면 환경 오염은 물론 수도권 시민들의
마실 물을 정화하는 비용도 치솟을 것"이라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방제보다는 예방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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