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눈물…

억겁의 세월 화마와 함께 사라졌다

탄소흡수원’ 산림 사라진다


도 산림면적 2020년 기준 6323㏊↓
20년새 축구장 9000여개 면적 소실


대규모 난개발·불법 전용 등 ‘몸살’
최근 5년사이 재선충병 확산도 심각


100년 이상 된 고목들 한 순간 잿더미
피해 나무 ‘2차 사고예방’ 벌채 불가피


태양에너지 반사율 높아져 ‘온실효과’
기후 조절·재해 방지 등 공익가치 훼손

 

/이설화

▲ 강릉 저동에 2023년 4월 산불로 잘려나간 나무 밑동이 남아있다.

 

축구장 9000여개에 이르는 산림이 20년 새 강원도에서 사라졌다.

산림청 산림 기본 통계에 따르면, 2000년 137만2967㏊였던 강원도 내 산림면적은

계속 줄어 2020년 기준 136만6644㏊가 됐다. 6323㏊가 줄어들었다.

 

대형산불이 잦았던 강원도는 그만큼 피해가 크다.

산림의 감소는 기후변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산림의 탄소흡수 능력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녹지가 줄어들면 기온이 오르고, 산사태, 홍수 등의 자연재해도 더욱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 마을 보호수였던 소나무는 2023년 경포 산불로 불에 타 몸통만 남았다.

■ “전쟁 난 것처럼 폐허가 됐다”

낮 기온이 20도까지 오른 지난 15일, 강릉시 저동 언덕배기에 올랐다.

이곳은 2023년 4월 난곡동에서 시작된 산불로 피해를 본 곳이다.

 

지대가 높은 마을에서 저 멀리 바다와 유명 호텔이 훤히 보였다.

경포 바다를 뒤로하고 바라본 저동 곳곳의 봉긋 솟은 언덕은 민머리를 드러낸 듯했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땅의 형세가 그대로 보였다.

표피가 까맣게 탄 밑동이 지난해 봄 산불 피해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솔방울과 버려진 노트북 등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동행한 윤도현 강원 영동 생명의 숲 사무국장은 “전쟁이 난 것처럼 폐허가 됐다”고 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잘려 나간 나무 밑동이 즐비했다.

두 팔로 안아도 채워지지 않았다. 흙이 무너지면서

드러난 언덕 단면에는 뻗어 나온 굵은 뿌리가 보였다.

얼마나 큰 나무였는지 짐작게 했다.

아직 베지 않은 나무의 껍질에는 연노란색 송진이 흐르다 만 채로 굳었다.

윤 국장은 송진을 가리키며 “소나무의 눈물이라고 부른다”며

“소나무가 불에 잘 타는 성질을 갖고 있어 피해가 더 컸다”고 했다.

땅을 드러낸 마을은 조용했다. 저 멀리 언덕에서 나무를 베는 전기톱 소리가 온 사방에 울렸다.

지나가던 마을 주민은 한눈에 보이는 구역에 손짓하며 “3일새 다 벴다”고 했다.

 

윤 국장은 “살아남을 거라고 기대해 남겨놓은 나무도 결국 죽는다”며

“나무를 베지 않으면 지나가는 차량이나 민가를 덮치는 2차 피해가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4월 발생한 강릉 산불 피해 면적은 120㏊다.

강원도에 따르면, 이 가운데 82㏊에 이르는 면적에서 벌채가 이뤄졌다. 벌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 15일 강릉 저동에서 2023년 산불 벌채 작업이 진행 중이다.

 

 

■ 숲 사라지며 온실효과도 심해져

대형산불은 산림 훼손의 대표적 원인이다.

산불이 발생하면 불에 탄 나무는 벌채 작업이 이뤄진다.

 

지난해 강릉 산불 현장을 비롯해 2022년 발생한 동해, 양구 산불 현장도

여전히 벌채가 이뤄지고 있다.

강원도에 따르면 2022년 동해, 강릉 등 5개 지역 산불에 따른 벌채 면적은 1187㏊다.

축구장 1662개 규모다. 2020년엔 고성 산불에 따른 벌채로

축구장 135개(97㏊) 면적 산림이 사라졌고, 2019년에도 산불에 따른 벌채로

축구장 1823개(1302㏊) 면적 산림이 사라졌다.

윤도현 사무국장은 “대형산불을 비롯해 대규모 난개발,

불법 산림 전용 등으로 산림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산림 전체가 평상시 저장하고 있는 물의 양은

소양강댐이 담고 있는 양(29억t)의 10배가 넘는다”며

“목재 자원으로서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경관, 기후조절, 재해방지 등의

유무형 공익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최근 5년 사이엔 재선충병 역시 확산하고 있다.

강원도에 따르면, 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는 2021년 5969그루, 2022년 7792그루,

2023년 8363그루 등으로 늘었다.

 

올해는 7월 기준 1만1654그루가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90% 이상이 잣나무다.

강원도산림과학연구원에 따르면, 봄철 상승한 기온으로 북방수염하늘소 등의 활동 시기가 길어졌고

이에 따라 재선충 피해도 늘었다. 매개충의 몸 안에 기생하는 재선충은

양분을 차단하면서 나무를 말려 죽인다.

 

도내 산림 면적은 감소 추세다. 산림청 산림 기본 통계에 따르면,

강원도 산림 면적은 가장 최근 통계인 2020년 기준 20년 전인 2000년보다 6323㏊가 줄었다.

 

산림 면적을 5년 단위로 살펴보면, 특히 2015년 대비 2020년 면적 감소가 두드러졌다.

축구장 8278개 면적인 5911㏊가 사라졌는데, 이는 20년 동안 줄어든 산림면적의 93%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산림과 기후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규송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는 “숲이 사라진다는 것은 숲이 주던 생태계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산불 이후엔 불투수층이 늘어 토사 유출 가능성이 커지고,

땅에 햇빛이 직접적으로 비쳐 온도가 올라간다”고 했다.

채희문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도 “기후변화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경관이 바뀌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숲”이라며 “나무가 사라지고 건물이 들어서면

태양에너지 반사율이 높아진다”고 했다.

채 교수는 “반사율이 높아지면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쌓이고, 온실효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 “이 나무를 키우려면 얼마나 걸릴까”
저동 주민들은 사라진 숲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15일 만난 박 모(63) 씨는 임시 조립주택 앞 그늘막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난곡동과 저동에서 지낸 마을 토박이다.

박씨는 “이 동네는 소나무가 빽빽했다”며

“경포 바다는 마을에서 전혀 안 보였는데, 지금은 다 보인다”고 했다.

 

산불 피해로 그의 집은 부지만 남았고, 집 뒤편에 있던 소나무는 불에 타 모두 잘려 나갔다.

겨울이면 나뭇잎 위로 눈이 소복하게 쌓였던 마을 보호수는 다듬어진 몸통만 댕강 남아 철 기둥에 받혀졌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본 기가 막히게 예쁜 나무였다”며

“몇 해 전 겨울에 눈이 쌓여있는 모습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는 “바다가 코앞이지만 나무가 방풍림 역할을 해줘 바람이 세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며

“올해 깨를 심었는데 바람이 얼마나 센 지 깨가 다 누워버릴 정도였다”고 했다.

박 씨는 일거리로 고성, 강릉 옥계 등 산불 현장에서 벌채 작업을 한 적이 있다.

그는 “10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이는 크고 좋은 나무들이 정말 많았다”며

“이 나무를 다시 키우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안타까운 마음이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국가 보물인 경포대는 지켰지만 함께 울창한 숲을 이루던 저동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규송 교수는 “산불이 나면 땅값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며

“개발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벌채한 산에 금방 나무를 심는데,

이는 토양을 교란할여지가 있다”며 “산불 난 지역 뒤편에 가보면 배나무를 심어놨다.

나중에 개발하기 쉬운 땅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저동의 산 필지 공시지가는 2023년 1월 전년 대비 7~8% 하락했지만,

2024년 1월 기준 1~2% 소폭 상승했다.

인근 다른 산지가 1~3%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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