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서(篆書)

 

전서글씨가 자전형태로 올라와 있는 자료가 있어 옮겨 왔습니다.

/오똑이(kalsanja)

 























































 

 

조선 후기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의 전서 글씨[書巢觀瀾]

 

 

[글자의 원문과 내용]

 

書巢觀瀾(서소관난)    글씨의 보금자리(서재)에서 물결을 본다.

 

 

因樹爲屋(인수위옥)     나무로 집을 짓네.

書于雲華石室 寶山人   운화석실에서 쓰다. 보산인

 

※ 출전 : 후한서 신도반전(申屠蟠傳)

 

 

[출전의 원문과 내용]

 

乃絶迹於碭之間 因樹爲屋 自同傭人

「반은 옛 양나라 땅 탕이란 곳에 숨어서 뽕나무에 의거하여 그것을 기둥으로 삼아 집을

만들고 스스로 머슴들과 똑같이 처신하였다.」

 

신도반(申屠蟠)

 

후한 진류(陳留) 외황(外黃) 사람. 자는 자룡(子龍)이다. 집안이 가난해 칠공(漆工)이 되었다.

군(郡)에서 주부(主簿)로 불렀지만 나가지 않았다.

숨어살면서 학문에 정진해 오경(五經)에 두루 정통했고, 도위(圖緯)에도 밝았다.

한나라 황실이 기울어가는 것을 보고 양탕(梁碭)에 자취를 감추고 나무를 심어 집을 삼았다.

태위(太尉) 황경(黃瓊)과 대장군 하진(何進)이 연이어 불렀지만 역시 나가지 않았다.

나중에 동탁(董卓)이 황제를 폐위시키고 대신하자 순상(荀爽) 등이 모두 협조했지만 그만

홀로 끝까지 고귀한 뜻을 지켰다.

 

 

[느낀점]

 

이 글은 출전의 내용이 후한 시대 기울어져 가는 조정을 보고 자취를 감추어 은둔하며

살았다는 신도반(申屠蟠)에 얽힌 고사가 있는 사자 성어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능호관 선생의 종강모루에서 은거하는 심정을 신도반의 처지에 빗대어

쓴 글로써 종강모루에 들어올때 이미 조정이 어떤 이유로 자신을 벼슬길로 부르더라도

결코 나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의 다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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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의 전서(篆書) 글씨 ‘고백행(枯栢行)’

 

 

 

1740년대 말에 능호관(凌壺觀)이 전서로 쓴 두보(杜甫)의 시(詩) ‘고백행(枯栢行)’입니다.

28.3cm×50.0cm 크기로 종이 바탕에 쓴 이 작품은 그의 절친한 벗 김상숙(金相肅, 1717~

1792)에게 준 작품으로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글씨의 원문과 내용]

 

古柏行(고백행)      늙은 측백나무

杜甫                   두보

 

 

孔明廟前有老柏(공명묘전유로백) 공명의 사당 앞에 늙은 측백나무가 있어

柯如靑銅根如石(가여청동근여석) 가지는 청동같고 뿌리는 돌 같은데,

霜皮溜雨四十圍(상피류우사십위) 서리맞은 껍질에 흘러내리는 빗물이 둘레로 사십 아름이니

黛色參天二千尺(대색참천이천척) 검푸른 빛으로 하늘로 높이 솟아 이천척이네.

 

* 參天(참천) : (하늘을 찌를 듯이)공중(空中)으로 높이 솟아서 늘어섬

 

君臣已與時際會(군신이여시제회) 군신이 반드시 때맞춰 함께 모이니

樹木猶爲人愛惜(수목유위인애석) 나무가 오히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였고

雲來氣椄巫峽長(운래기접무협장) 구름이 몰려오니 기운이 무협에 길게 이어지고

月出寒通雪山白(월출한통설산백) 달이 뜨니 찬 기운이 설산의 흰 눈과 통하네.

 

* 愛惜(애석) : 매우 사랑하여 섭섭하고 아깝게 여김. 사랑하고 아깝게 여김

* 巫峽(무협) : 장강 삼협(三峽) 중 하나. 지금의 사천성 무산(巫山) 현성 동쪽에 있으며, 호북성 파동(巴東)과

                    접해 있다. 무산(巫山)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憶昨路繞錦亭東(억작로요금정동) 지난날을 생각하며 길 따라 금정 동쪽을 돌아가니

先主武侯同閟宮(선주무후동비궁) 선제(유비)와 무후(제갈량)가 비궁에 함께 있는데,

崔嵬枝幹郊原古(최외지간교원고) 나뭇가지와 줄기는 크고 높고 들판은 오래되어

窈窕丹靑戶牖空(요조단청호유공) 단청은 깊고 그윽한데 문과 창은 비었네.

 

* 閟宮(비궁) : 종묘(宗廟)를 달리 이르는 말. 역대 임금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봉안한

                   사당. 유교 사회에서는 임금이 나라를 세우고 궁실(宮室)을 영위하기 위하여 반드시 종묘와

                   사직(社稷)을 세워 조상의 은덕에 보답하며 백성의 생업인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제사를 올렸음.

* 崔嵬(최외) : 1.높고 크다. 2.(돌이 있는) 흙산. 토산(土山).

* 枝幹(지간) : 가지와 줄기

* 郊原(교원) : 교외(郊外)의 들

* 窈窕(요조) : ① 요조하다 ② (장식·풍채가) 아름답다 ③ (궁궐·산골짜기 따위가) 깊숙하고 그윽하다

                    ④ 여인이 얌전하고 곱다 ⑤ 유심(幽深)하다

* 戶牖(호유) : 지게문[마루와 방 사이의 문]과 창문. 창문.

 

落落盤踞雖得地(락락반거수득지) 가지를 늘어뜨리고 뿌리를 박아 땅을 얻었으나

冥冥孤高多烈風(명명고고다열풍) 높고 도도하여 거센 바람이 많은데,

扶持自是神明力(부지자시신명력) 어려움을 견디며 옳다고 여긴 것은 천지신명의 힘이고

正直元因造化功(정직원인조화공) 마음이 바르고 곧은 첫째 이유는 조물주의 공이네.

 

* 落落(낙락) : ①큰 소나무의 가지 따위가 아래로 축축 늘어짐  ②여기저기 떨어져 있음  

                    ③남과 서로 어울리지 못함.

* 盤踞(반거) : 넓고 굳게 뿌리를 박고 자리잡음 ①불법으로 점거하다 ②둥지를 틀고 들어앉다 ③도사리다

                   ④웅거하다

* 冥冥(명명) : ① 어두컴컴하다 ② 무지몽매하다 ③ 높고 아득한 하늘 ④ 먼 하늘 ⑤ 명토(冥土)

* 孤高(고고) : ①고고하다 ②거만하다 ③도도하다 ④시건방지다

* 烈風(열풍) : 맹렬(猛烈)하게 부는 바람

* 扶持(부지) : 고생(苦生)이나 어려움을 견디어 배김 1.부축하다. 2.돕다. 지지하다. 보살피다.

* 自是(자시) : 1.자연히. 당연히. 저절로. 2.자기가 옳다고 여기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다. 제멋대로 하다.

* 造化(조화) : 1.조화. 대자연의 이치. 2.대자연. 3.창조하다. 화육(化育)하다.

 

大廈如傾要梁棟(대하여경요량동) 큰 집이 기울어지면 대들보와 용마루가 필요하고

萬牛回首丘山重(만우회수구산중) 산과 언덕이 무거우면 만 마리 소도 머리를 돌리는데,

不露文章世已驚(불로문장세이경) 드러내지 않은 문장에 세상은 이미 놀랐으니

未辭剪伐誰能送(미사전벌수능송) 베기를 사양하지 않더라도 누가 보낼 수 있으리.

 

* 大廈(대하) : ①덩실하게 큰 집  ②규모(規模)가 큰 건물(建物)

* 梁棟(양동) : 대들보와 용마루

* 丘山(구산) : 1. 언덕과 산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물건이 많이 쌓인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不露(불로) : 드러내지 않다. 나타내지 않다.

* 剪伐(전벌) : 나무를 벰

 

苦心未免容螻蟻(고심미면용루의) 벗어나지 못하고 애태우는 마음이 땅강아지와 개미와 같고

香葉終經宿鸞鳳(향엽종경숙란봉) 향기나는 나무 잎은 난새와 봉황이 마침내 머무는 지역인데,

志士幽人莫怨嗟(지사유인막원차) 뜻 있는 선비나 숨어사는 사람은 원망하거나 탄식하지 마라

古來材大難爲用(고래재대난위용) 옛 부터 재주가 크면 쓰이기가 어려웠다.

 

* 苦心(고심) : 애를 태우며 마음을 씀 1.고심. 2.고심하여. 심혈을 기울여.

* 螻蟻(누의) : 땅강아지와 개미라는 뜻으로, 작은 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鸞鳳(난봉) : 1. 난조(鸞鳥)와 봉황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뛰어난 인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怨嗟(원차) : 원망(怨望)하고 탄식(歎息)함. 원통(寃痛)한 식(歎息)

 

 

 

枯柏行爲季潤又書      고백행을 계윤(김상숙)을 위해 또 쓴다.

元靈                       원령(이인상)

 

 

김상숙(金相肅, 1717년(숙종 43) ~ 1792년(정조 16))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계윤(季潤), 호는 배와(坯窩)·초루(草樓).

아버지는 판윤 원택(元澤)이며, 어머니는 우윤 심정보(沈廷輔)의 딸이다.

 

1744년(영조 20)에 진사가 되고, 1752년에 명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뒤 장례원봉사(掌隷院奉事)·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

종부시직장(宗簿寺直長)·공조좌랑·낭천현감·양근군수를 두루 역임하고, 1764년

세자익위사사어(世子翊衛司司禦)·사옹원주부·공조정랑을 거쳐,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천성이 바르고 평소 외형적인 출세보다는 내면적인 득도에 관심이 깊었다.

 

『주역』·『논어』·『노자』등을 애독하였으며, 두시(杜詩 : 두보의 시)와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다. 작품으로는 파주에 있는 「영상황보인표문(領相皇甫仁表)」·「참판이희조표문

(參判李喜朝表文)」과 홍천에 있는 「수타사서곡당선사탑비문(壽陀寺瑞谷堂禪師塔碑文)」

·「신흥사비문(新興寺碑文)」등이 있다.

 

 

 

능호관이 자신보다 7살 연하인 배와(坯窩) 김상숙(金相肅)에게 전서로 써 준 두보의

‘고백행(枯栢行)’이란 칠언절구의 율시입니다.

이 시는 두보가 제갈량의 사당을 방문하면서 느낀 감정을 시로 지은 것인데, 두보의 시를

좋아 한 김상숙의 요청으로 이 글을 새로 써 준 것으로 보여집니다.

 

김상숙은 능호관의 절친한 벗이자 당대의 명필로써 그의 서첩에 발문을 쓰면서 그가 지니고

있는 글씨의 평가 기준을 제시하였는데, 「옛 사람들의 묘처(妙處)는 졸(拙)한 곳에 있지

교(巧)한 곳에 있지 않으며, 담(淡)한 것에 있지 농(濃)한 것에 있지 않다.

 

근골기군(筋骨氣韻)에 있지 성색취미(聲色臭味)에 있지 않다.」라고 하였고, 조선후기의 학자 심재(沈梓)가

『송천필담(松泉筆譚)』에서 능호관의 글씨에 대해 평가하기를 「능호관의 전서체(篆書體)는

옥띠에 금장식을 한 것 같아서 진(晉), 한(漢)을 거슬러 올라가도 양보할 것이 없다」라고

극찬을 하였습니다.

 

조선후기 사대부들은 오래된 골동 기물에 큰 호기심을 가져 그릇뿐만 아니라 거기에 새겨진

글씨와 서체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나 이러한 금문이 감상의 대상이었지 정작 쓸 줄 아는

사람은 드물었는데, 능호관이 이런 옛 글을 쓰고 선물함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이 구경하고

글씨를 얻어가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능호관의 글씨에 대하여 능호관과 자주 만나던 권헌(權攇, 1713~1770)이 남긴 글이

있습니다.

 

鐘峴逢元靈         종현(현재 명동)에서 원령(이인상)을 만나

共作翰墨戱         함께 문장과 서화를 짓고 놀았는데

磨崖勒鍾不可得   각서(刻書)나 종정문(鐘鼎文)은 알 수가 없으니

撲筆飢臥吟秋雨   붓을 던지고 배고픈 채 누워 가을비를 읊네.

 

이는 과거 사대부라 하더라도 고전(古篆)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고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운

분야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능호관의 전서는 꾸준한 학습과 창의력이 결합하여 탄생된 그만의 독특한 글씨체로써

이 ‘고백행(枯栢行)’의 문장에서도 소전체와 금문의 서체를 적절히 혼합하였고, ‘千(천)’,

‘出(출)’, ‘枝(지)’ 등의 글자에서 쾌활한 조형미와 명랑한 성품이 드러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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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진흥법' 제정…내년 6월12일 시행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우리나라의 전통 서예 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가기 위한 법이 만들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1일 '서예진흥에 관한 법률'(서예진흥법)이 제정됐다고 밝혔다. 이 법은 지난달 23일 국회를 통과했다.

 

한글날 서예 퍼포먼스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서예가 쌍산 김동욱 씨가

길이 120m, 폭 1.6m 크기의 광목천에 훈민정음 서문을 쓰는 서예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8.10.8 jin90@yna.co.kr

 

이 법에는 문체부 장관이 5년마다 '서예진흥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하고,

서예진흥 정책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하도록 하는 조항이 담겼다.

 

서예 교육과 서예교육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국고를 지원하고,

서예의 국제협력과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서예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나 단체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서예진흥법은 제정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9년 6월 12일부터 시행된다.

 

문체부는 법 시행에 필요한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을 법 시행에 맞춰 마련할 예정이다.

법이 시행되면 서예 실태조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2020년 서예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앞으로 서예진흥법을 바탕으로

 현장 관계자들과 함께 서예진흥과 교육을 위한 정책을 수립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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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째 모은 문화재급 소장품 300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21일 손창근씨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불이선란도'.

손씨는 이 작품 외에도 총 304점의 소장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중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급 304점, 국립박물관에  
'아버지에서 아들로….' 

손세기·손창근컬렉션 국립중앙박물관에 21일 기증
국립박물관, 22일 '손세기·손창근기증 명품 서화전'

한 가문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정성을 다해 모아온 문화재급 명품 소장품 304점을 21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소장품 중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만년에 그린 불후의 명작 '불이선란도'와 15세기 최초의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초간본(1447년)등이 포함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21일 손창근(89)씨로부터 '손세기·손창근컬렉션' 을 총 202건 304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손세기·손창근컬렉션은 개성 출신 실업가 고故 석포(石圃)손세기(1903~1983) 선생과 장남 손창근씨가 대를 이어 수집한 문화재다. 이 컬렉션은 17세기 명필 오준(吳竣)과 조문수(曺文秀)의 서예 작품을 비롯해 18세기~ 20세기 초 대표적인 한국 서화가인 정선, 심사정, 김득신, 김정희, 전기, 김수철, 허련, 장승업, 남계우, 안중식, 조석진, 이한복 등의 작품, 그리고 오재순, 장승업, 흥선대원군 등의 인장으로 이뤄져 있다.  
 
겸재 정선(1676~1754)이 그린 '북원수회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겸재 정선(1676~1754)이 그린 '북원수회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 컬렉션에는 값을 따질 수 없는 지정문화재급 명품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4)이 서울 장의동(장동)안 북원에서 마을 원로들의 장수를 기원한 축하 잔치 장면을 그린'북원수회도(北園壽會圖)'가 수록된 『북원수회첩(北園壽會帖)』(1716년 이후)도 그중 하나다.

 

김정희의 40대 작품으로 추사체가 형성돼 가는 과정과 청나라 문인과의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함추각행서 대련(涵秋閣行書對聯)(1831년 이전) 그리고 김정희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불이선란도'와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도 있다. '잔서완석루'는예서 글씨 편액인데, 조선시대 문인들이 지향한 학문과 예술 그리고 기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걸작으로 꼽힌다. '불이선란도'는 난초 그림으로 김정희가 지향한 학예일치의 경지를 보여주는 걸작 중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손씨, "죽을 때 가져갈 수 없으니…"

손씨는 21일 열린 기증 기념식에서 "한 점 한 점 정이 든 물건들이다.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 고민 생각하다가 박물관에 맡기기로 했다"며 "우리나라의 귀중한 국보급 유물들을 저 대신 길이길이 잘 보관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앞으로 기중품에 '손아무개 기증'이라고 붙여달라.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컬렉션은 일찍이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회화' 특별전을 비롯해 다수의 전시와 서적에 소개됐으며 한국미술사 연구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손창근씨는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전시와 연구에 써달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컬렉션을 기탁한 바 있다. 금년 11월 아흔 살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조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고 손세기 선생은 일찍이 고향 개성에서부터 인삼 무역과 재배에 종사한 촉망을 받은 실업가였고, 특히 우리 겨레의 토착 자본의 성장에 기여한 개성삼업조합에서도 중심 역할을 했다. 그의 아들 손씨는 서울대 공과대학을 졸업 후 공군을 예편하고, 1960년대 외국인 상사에서 다년간 근무한 이후 사업에 매진했다. 
 
대를 이은 나눔 정신 손세기 선생은 생전인 1974년 서강대에 '양사언필 초서'(보물제1624호) 등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다. 이어 선친의 나눔 정신을 계승한 손씨는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으로 1억원을 기부했다.

 

2012년에는 50여년간 매년 자비로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경기도 용인의 1,000억대산림 약 200만평(서울 남산의 2배 면적)을 국가에 기부하기도 했다. 이미 산림녹화 공적으로 1966년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한 그는 전대미문의 기부로 2012년 최고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현재 이 산림은 선친의 아호를 딴 ‘석포숲 공원’으로꾸며져 많은 시민의 휴식처가 됐다.

또한  88세가 되던 2017년에도 50억 상당의 건물과 함께 1억원을 KAIST에 기부했다.  

 
국립중앙박물관, 22일부터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은 손세기·손창근부자의 숭고한 기증 정신을 길이 기리고자 상설전시관 2층 서화관에 ‘손세기·손창근기념실’을 마련했다. 이 기념실은 손세기·손창근컬렉션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서화 소장품을 전시해 우리나라 서화 유산의 정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이 기념실의 첫 번째 전시는 김정희 서화에 초점을 맞춘 '손세기·손창근기증 명품 서화전'을 22일부터 연다.  


  이 전시에는 김정희의 '불이선란도','잔서완석루' 등과 김정희 제자 허련이 그린 '김정희 초상', 그리고 19세기를 대표하는 남계우의 '호접묘도(胡蝶猫圖), 장승업의 회화가 전시된다. 두 번째 기증 명품 서화전은 내년 3월에 열리며, 여기에는 정선의 『북원수회첩』,'비로봉도'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서강대박물관은 10월 12일 '(故)석포 손세기 선생 기증 서화의 특징과 문화사적 의의'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고 ‘(故)석포 손세기 선생 기증 서화 특별전’을 12월 14일까지 연조선시대 서예 전반과 후기의 회화를 중심으로 소개하는 자리다.                                                                               
 
배기동 중앙박물관장은 "이번 손세기·손창근컬렉션 기증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넘어 대한민국 역사상 손에 꼽을 경사스러운 일"이라며 "우리나라 기증 및 기부 문화가 퍼져 문화강국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기증자의 아름다운 뜻이 널리 알려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정희 殘書頑石樓(잔서완석루)

 

 


전서와 예서, 해서, 행서의 필법이 함께 녹아있는 추사의 잔서완석루.

제주도 유배후 강상 시절에 쓴 완당의 대표작이다.

'다 떨어진 책과 무뚝뚝한 돌이 있는 서재'로 풀이된다.

 

 

모든 글씨가 위쪽에 정연하게 맞춰져 있고 거기서부터 아래로 늘어져 있는데

유홍준 교수는 이를 두고 글씨를 빨래줄에 걸어놓은 듯 하다고 표현했다.

완당의 범접할 수 없는 필력과 서권기(書卷氣)를 느낄 수 있는 작품. 보자마자 홀딱 반했다.

 

 

김정희 글씨 중 명작의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예서(隸書)이지만

전서(篆書)의 字形을 응용한 데다 해서(楷書)와 초서(草書)의 運筆法을 섞어 썼기 때문에

횡액으로는 보기 드물게 장중함과 활달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글자의 변화는 심하지 않지만 붓끝의 힘은 종이를 뚫을 듯하여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또한 거친 붓질은 희끗희끗한 飛白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 깨진 빗돌의 글씨를 연상시킨다.

이것이 김정희 글씨에서 느낄 수 있는 金石氣이다.

 

  ‘잔서완석(殘書頑石)’에서 ‘殘’은 깨지고 남아 있는 부스러기를 뜻하고 ‘書’는 책이 아니라 글자를 의미한다.

‘殘書’는 세월이 흘러 깨지고 뭉그러져 겨우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글자 몇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頑은’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말이고 ‘頑石’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을 말한다.

이것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깨지고 부서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돌을 의미한다.

 

 따라서 ‘잔서완석(殘書頑石)’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비바람에 깎인

볼품없이 깨진 빗돌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몇 개의 글자’라는 의미가 된다. 

  ‘殘’과 ‘頑’의 대비, ‘書’와 ‘石’의 대비는 더욱 강렬하게 가슴을 울리는 문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글씨에 있어서 김정희 서권기(書卷氣)의 일면을 보여준다.

 

글씨에 있어서 ‘서권기’란 수많은 독서를 통해 가슴속에 온축된 기운이 표현된 것을 의미하지만,

 이렇게 종종 글씨를 쓰는 사람이 만들어낸 문구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당시 청나라의 문사들이 김정희의 글씨를 좋아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의 찬구(撰句; 자신이 새로운 문구를 만들어냄)와

집구(集句; 다른 사람의 글을 모아 새롭게 문구를 만들어냄)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대련(對聯)으로 표현되지만 글자 수가 적은 편액(扁額)에서 더욱 강한 느낌을 전하기도 한다.

(이상 ‘추사 김정희 학예의 일치’에서

 

 잔서완석루를 ‘왕가의 족보를 꿰어 맞춰(殘書) 아둔한 종친(頑石)을 국왕으로 옹립하려는 시도가

대왕대비의 치맛바람(樓)으로 세 번 만에 성사되었다.’로 풀이하고 있다

.

이 해석에 등장하는 왕은 강화도령으로 익히 알려진 25대 국왕 철종(1831~1863)이다.

 ‘잔서 완석루’의 뜻풀이로 내세운 전거는 ‘송사(宋史)’와 ‘시경(詩經)’이다.

 

‘송사’에서 ‘잔서’는 ‘상대를 설 득하기 위해 옛 자료를 모아 작성한 글’이라고 풀이한다.

‘완악할 頑’은 ‘둔하다’ ‘어리석다’는 의미 로 사람의 속성을 일컫는 글자이다.

‘시경’은 바위(岩)나 돌(石)을 천자의 종친이란 의미로 자주 사 용한다. 즉 ‘완석’이란 ‘아둔하고 고집 센 종친’을 지칭한다.


추사는 書자의 아래 부분에 ‘가로 曰’ 대신 옛글자를 사용하여 ‘사람 者’를 채워 넣었다.

특히 ‘者’의 대각선 획을 세 번에 걸쳐 완성했다.

이는 세 번 만에 왕위 계승권자로 결정됐다는 의미라 고 지은이는 풀이한다.

 

‘石’자는 어떨까. 비정상적으로 길게 뻗은 대각선 획이 2번에 걸쳐 이어 붙 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동 김씨들이 종친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대비의 치맛바람을 빌려 3 번 만에 성사시킨 것을 의미한다는 풀이다.

 

 ‘누각 樓’도 마찬가지다. ‘계집 女’부분을 관찰하면, 추 사가 3획으로 女자를 그린 뒤

가필을 하여 획을 이어 붙였으니 ‘치마를 휘젓고 있는 계집’이란 뜻 을 그려내기 위함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국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친정식구들에게 권세를 몰아 주던 대비의 치맛바람을

‘樓’자 속에 담아내기 위해 추사는 특별한 모양의 ‘계집 女’자가 필요했다 는 분석이다.


         -서울=뉴스1,2016.5.3 이기창,추사는 왜 글씨에 암호를 심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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