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의 전서(篆書) 글씨 ‘고백행(枯栢行)’
1740년대 말에 능호관(凌壺觀)이 전서로 쓴 두보(杜甫)의 시(詩) ‘고백행(枯栢行)’입니다.
28.3cm×50.0cm 크기로 종이 바탕에 쓴 이 작품은 그의 절친한 벗 김상숙(金相肅, 1717~
1792)에게 준 작품으로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글씨의 원문과 내용]
古柏行(고백행) 늙은 측백나무
杜甫 두보
孔明廟前有老柏(공명묘전유로백) 공명의 사당 앞에 늙은 측백나무가 있어
柯如靑銅根如石(가여청동근여석) 가지는 청동같고 뿌리는 돌 같은데,
霜皮溜雨四十圍(상피류우사십위) 서리맞은 껍질에 흘러내리는 빗물이 둘레로 사십 아름이니
黛色參天二千尺(대색참천이천척) 검푸른 빛으로 하늘로 높이 솟아 이천척이네.
* 參天(참천) : (하늘을 찌를 듯이)공중(空中)으로 높이 솟아서 늘어섬
君臣已與時際會(군신이여시제회) 군신이 반드시 때맞춰 함께 모이니
樹木猶爲人愛惜(수목유위인애석) 나무가 오히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였고
雲來氣椄巫峽長(운래기접무협장) 구름이 몰려오니 기운이 무협에 길게 이어지고
月出寒通雪山白(월출한통설산백) 달이 뜨니 찬 기운이 설산의 흰 눈과 통하네.
* 愛惜(애석) : 매우 사랑하여 섭섭하고 아깝게 여김. 사랑하고 아깝게 여김
* 巫峽(무협) : 장강 삼협(三峽) 중 하나. 지금의 사천성 무산(巫山) 현성 동쪽에 있으며, 호북성 파동(巴東)과
접해 있다. 무산(巫山)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憶昨路繞錦亭東(억작로요금정동) 지난날을 생각하며 길 따라 금정 동쪽을 돌아가니
先主武侯同閟宮(선주무후동비궁) 선제(유비)와 무후(제갈량)가 비궁에 함께 있는데,
崔嵬枝幹郊原古(최외지간교원고) 나뭇가지와 줄기는 크고 높고 들판은 오래되어
窈窕丹靑戶牖空(요조단청호유공) 단청은 깊고 그윽한데 문과 창은 비었네.
* 閟宮(비궁) : 종묘(宗廟)를 달리 이르는 말. 역대 임금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봉안한
사당. 유교 사회에서는 임금이 나라를 세우고 궁실(宮室)을 영위하기 위하여 반드시 종묘와
사직(社稷)을 세워 조상의 은덕에 보답하며 백성의 생업인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제사를 올렸음.
* 崔嵬(최외) : 1.높고 크다. 2.(돌이 있는) 흙산. 토산(土山).
* 枝幹(지간) : 가지와 줄기
* 郊原(교원) : 교외(郊外)의 들
* 窈窕(요조) : ① 요조하다 ② (장식·풍채가) 아름답다 ③ (궁궐·산골짜기 따위가) 깊숙하고 그윽하다
④ 여인이 얌전하고 곱다 ⑤ 유심(幽深)하다
* 戶牖(호유) : 지게문[마루와 방 사이의 문]과 창문. 창문.
落落盤踞雖得地(락락반거수득지) 가지를 늘어뜨리고 뿌리를 박아 땅을 얻었으나
冥冥孤高多烈風(명명고고다열풍) 높고 도도하여 거센 바람이 많은데,
扶持自是神明力(부지자시신명력) 어려움을 견디며 옳다고 여긴 것은 천지신명의 힘이고
正直元因造化功(정직원인조화공) 마음이 바르고 곧은 첫째 이유는 조물주의 공이네.
* 落落(낙락) : ①큰 소나무의 가지 따위가 아래로 축축 늘어짐 ②여기저기 떨어져 있음
③남과 서로 어울리지 못함.
* 盤踞(반거) : 넓고 굳게 뿌리를 박고 자리잡음 ①불법으로 점거하다 ②둥지를 틀고 들어앉다 ③도사리다
④웅거하다
* 冥冥(명명) : ① 어두컴컴하다 ② 무지몽매하다 ③ 높고 아득한 하늘 ④ 먼 하늘 ⑤ 명토(冥土)
* 孤高(고고) : ①고고하다 ②거만하다 ③도도하다 ④시건방지다
* 烈風(열풍) : 맹렬(猛烈)하게 부는 바람
* 扶持(부지) : 고생(苦生)이나 어려움을 견디어 배김 1.부축하다. 2.돕다. 지지하다. 보살피다.
* 自是(자시) : 1.자연히. 당연히. 저절로. 2.자기가 옳다고 여기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다. 제멋대로 하다.
* 造化(조화) : 1.조화. 대자연의 이치. 2.대자연. 3.창조하다. 화육(化育)하다.
大廈如傾要梁棟(대하여경요량동) 큰 집이 기울어지면 대들보와 용마루가 필요하고
萬牛回首丘山重(만우회수구산중) 산과 언덕이 무거우면 만 마리 소도 머리를 돌리는데,
不露文章世已驚(불로문장세이경) 드러내지 않은 문장에 세상은 이미 놀랐으니
未辭剪伐誰能送(미사전벌수능송) 베기를 사양하지 않더라도 누가 보낼 수 있으리.
* 大廈(대하) : ①덩실하게 큰 집 ②규모(規模)가 큰 건물(建物)
* 梁棟(양동) : 대들보와 용마루
* 丘山(구산) : 1. 언덕과 산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물건이 많이 쌓인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不露(불로) : 드러내지 않다. 나타내지 않다.
* 剪伐(전벌) : 나무를 벰
苦心未免容螻蟻(고심미면용루의) 벗어나지 못하고 애태우는 마음이 땅강아지와 개미와 같고
香葉終經宿鸞鳳(향엽종경숙란봉) 향기나는 나무 잎은 난새와 봉황이 마침내 머무는 지역인데,
志士幽人莫怨嗟(지사유인막원차) 뜻 있는 선비나 숨어사는 사람은 원망하거나 탄식하지 마라
古來材大難爲用(고래재대난위용) 옛 부터 재주가 크면 쓰이기가 어려웠다.
* 苦心(고심) : 애를 태우며 마음을 씀 1.고심. 2.고심하여. 심혈을 기울여.
* 螻蟻(누의) : 땅강아지와 개미라는 뜻으로, 작은 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鸞鳳(난봉) : 1. 난조(鸞鳥)와 봉황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뛰어난 인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怨嗟(원차) : 원망(怨望)하고 탄식(歎息)함. 원통(寃痛)한 식(歎息)
枯柏行爲季潤又書 고백행을 계윤(김상숙)을 위해 또 쓴다.
元靈 원령(이인상)
김상숙(金相肅, 1717년(숙종 43) ~ 1792년(정조 16))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계윤(季潤), 호는 배와(坯窩)·초루(草樓).
아버지는 판윤 원택(元澤)이며, 어머니는 우윤 심정보(沈廷輔)의 딸이다.
1744년(영조 20)에 진사가 되고, 1752년에 명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뒤 장례원봉사(掌隷院奉事)·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
종부시직장(宗簿寺直長)·공조좌랑·낭천현감·양근군수를 두루 역임하고, 1764년
세자익위사사어(世子翊衛司司禦)·사옹원주부·공조정랑을 거쳐,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천성이 바르고 평소 외형적인 출세보다는 내면적인 득도에 관심이 깊었다.
『주역』·『논어』·『노자』등을 애독하였으며, 두시(杜詩 : 두보의 시)와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다. 작품으로는 파주에 있는 「영상황보인표문(領相皇甫仁表)」·「참판이희조표문
(參判李喜朝表文)」과 홍천에 있는 「수타사서곡당선사탑비문(壽陀寺瑞谷堂禪師塔碑文)」
·「신흥사비문(新興寺碑文)」등이 있다.
능호관이 자신보다 7살 연하인 배와(坯窩) 김상숙(金相肅)에게 전서로 써 준 두보의
‘고백행(枯栢行)’이란 칠언절구의 율시입니다.
이 시는 두보가 제갈량의 사당을 방문하면서 느낀 감정을 시로 지은 것인데, 두보의 시를
좋아 한 김상숙의 요청으로 이 글을 새로 써 준 것으로 보여집니다.
김상숙은 능호관의 절친한 벗이자 당대의 명필로써 그의 서첩에 발문을 쓰면서 그가 지니고
있는 글씨의 평가 기준을 제시하였는데, 「옛 사람들의 묘처(妙處)는 졸(拙)한 곳에 있지
교(巧)한 곳에 있지 않으며, 담(淡)한 것에 있지 농(濃)한 것에 있지 않다.
근골기군(筋骨氣韻)에 있지 성색취미(聲色臭味)에 있지 않다.」라고 하였고, 조선후기의 학자 심재(沈梓)가 쓴
『송천필담(松泉筆譚)』에서 능호관의 글씨에 대해 평가하기를 「능호관의 전서체(篆書體)는
옥띠에 금장식을 한 것 같아서 진(晉), 한(漢)을 거슬러 올라가도 양보할 것이 없다」라고
극찬을 하였습니다.
조선후기 사대부들은 오래된 골동 기물에 큰 호기심을 가져 그릇뿐만 아니라 거기에 새겨진
글씨와 서체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나 이러한 금문이 감상의 대상이었지 정작 쓸 줄 아는
사람은 드물었는데, 능호관이 이런 옛 글을 쓰고 선물함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이 구경하고
글씨를 얻어가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능호관의 글씨에 대하여 능호관과 자주 만나던 권헌(權攇, 1713~1770)이 남긴 글이
있습니다.
鐘峴逢元靈 종현(현재 명동)에서 원령(이인상)을 만나
共作翰墨戱 함께 문장과 서화를 짓고 놀았는데
磨崖勒鍾不可得 각서(刻書)나 종정문(鐘鼎文)은 알 수가 없으니
撲筆飢臥吟秋雨 붓을 던지고 배고픈 채 누워 가을비를 읊네.
이는 과거 사대부라 하더라도 고전(古篆)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고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운
분야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능호관의 전서는 꾸준한 학습과 창의력이 결합하여 탄생된 그만의 독특한 글씨체로써
이 ‘고백행(枯栢行)’의 문장에서도 소전체와 금문의 서체를 적절히 혼합하였고, ‘千(천)’,
‘出(출)’, ‘枝(지)’ 등의 글자에서 쾌활한 조형미와 명랑한 성품이 드러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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