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빨대가 플라스틱보다 친환경적이다?
/ 최보금 기자
[독이 된 녹색, 친환경의 배신: 숲이 위험하다④]
계속된 '종이 빨대' 실효성 논란, 까보니 '관련無' 연구들
흐름 끊은 정부…기업은 '도입 중단', 업계는 '도산 위기'
해외선 '종이빨대' 열풍…그들은 단순했다
판정 결과, '절반의 사실'
암스테르담 시내 한 카페. 아이스 커피를 주문하자 종이 빨대가 꽂혀 나왔다. '종이 빨대를 쓰는 게 진정 친환경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자, 반응은 단순했다.
"It's better than nothing(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요)"
카페 점원은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고 이같이 말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카페, 마트에선 플라스틱 빨대를 찾아볼 수 없었다. 판매가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환경 정책이 복잡하게 얽혀버린 한국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암스테르담 카페에 종이 빨대가 구비돼 있다. 암스테르담=최보금 기자
한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플라스틱 빨대, 종이컵, 비닐봉지 등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사실상 철회했다. 2022년 11월 식당과 카페 등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할 시 최대 300만 원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1년의 계도 기간을 두었으나, 기간 만료를 앞두고 무기한 연장한 것이다.
요란했던 '빨대 규제'의 허무한 끝이었다. 당시 환경부는 브리핑을 통해 "소비자는 종이 빨대가 음료 맛을 떨어뜨리고, 쉽게 눅눅해져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입장"이라며 "사업자는 비싼 종이 빨대를 구비하고도 고객과 갈등을 겪는다"며 이중고를 언급했다.
이와 관련한 CBS노컷뉴스의 추가 질문에 정부는 "플라스틱 제품과 종이 제품 중 어느 것이 더 친환경적인지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어 단정 짓기 어려운 부분"이라 답했다.
종이 빨대, 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대안이 됐을까?
계속된 '종이 빨대' 논란…"환경 친화적" VS "탄소 배출 더 많다"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는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사실상 철회했다. 사진은 25일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비치해 둔 모습. 최보금 기자종이 빨대를 둘러싼 논란은 진행 중이다. 환경친화적이라는 입장, 오히려 인간에게 더 유해하다는 입장이 충돌한다.
종이는 원료를 자연(나무)에서 얻는다. 석유·천연가스를 가공해 만드는 플라스틱보다 친환경이라는 통념이 주를 이뤘다. 실제로 플라스틱은 사용 후 썩는 데에 최대 500년이 소요되지만 종이는 수개월이면 자연 분해된다고 알려졌다. 또 플라스틱은 땅에 묻혔을 때 주변을 오염시킬 뿐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으로 바다에 흘러들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한다.
전 세계적인 플라스틱 퇴출 운동에서 대체안으로 주목받은 건 종이다. 우리 정부 역시 지난 2018년 '플라스틱 빨대 등의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해 나갈 것'을 선언하면서 종이 빨대 등으로의 대체를 독려했다.
플라스틱 대신 종이를 권고하는 환경부 홍보 영상들. 환경부 제공
그러나 이후 종이 빨대의 친환경성을 반박하는 연구결과가 잇달았다.
지난해 벨기에 연구진은 "종이 빨대에서 각종 암을 유발할 수 있는 PFAS(Perfluoroalkyl Sulfonate) 물질이 가장 자주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자국에서 판매되는 39개 브랜드의 5가지 종류 빨대를 분석한 결과 △종이(90%) △대나무(80%) △플라스틱(75%) △유리(40%) △스테인리스(0%) 순으로 PFAS가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또 2022년 미국 환경보호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 '일회용 빨대의 생애 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 of environmental impact of disposable drinking straws: A trade-off analysis with marine litter in the United States)' 보고서는 종이(PA)·생분해(PLA)·플라스틱(PP) 빨대에 대한 생애 주기 평가 결과, 플라스틱 빨대를 다른 소재로 대체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환경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이 같은 연구들이 전해지자, 국내에서 그동안 대안으로 여겨졌던 종이 빨대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무엇이 친환경 빨대인지 논쟁이 이어졌고, 한국 정부의 정책 혼선은 이와 맞닿아 있다.
환경부는 '종이 빨대의 친환경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단정 짓기 어렵다"면서 "미국 환경보호청은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 대비 탄소배출량이 5.5배 높다고 발표한 바 있다"고 근거를 들었다.
"종이 빨대 유해하다"?…까보니 '미흡한' 연구들
환경부가 "미국 환경보호청은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 대비 탄소배출량이 5.5배 높다고 발표한 바 있다"는 근거를 들며 참고했다고 언급한 사진(왼쪽). 하단에 'epa.gov'라고 출처를 명시하고 있지만, 미국 환경보호청 홈페이지에선 해당 원문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림이 게시된 사이트에서 풀빨대를 판매하고 있다(오른쪽). 사이트 캡처그러나 실제 미국 환경보호청은 이러한 공식 입장을 '발표'한 적이 없다. 취재진의 추가 질문에 25일 환경부는 "EPA(미국 환경보호청) 검색했을 때 원문 자체는 사실 못 찾았다"고 답했다.
대신 환경부는 출처가 'EPA'라고 명시된 그림을 참고했다고 언급했는데, 이 그림이 게시된 사이트는 풀 빨대를 판매하는 사이트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앞서 언급한 '일회용 빨대의 생애 주기 평가 보고서'가 그나마 최근 반대 논거로 가장 빈번히 인용되고 있는데, 플라스틱 빨대가 종이 빨대보다 훨씬 유해하다는 일부 실험 결과도 포함하고 있다. 정리하면, 이 역시 종이 빨대가 더 낫다고 단정 짓기엔 미흡하단 뜻이다.
'사용 후 100% 매립지로 보내진다'고 가정한 경우엔 종이 빨대가 지구 온난화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력이 플라스틱 빨대보다 약 4.56배 높았다. 반면 '사용 후 100% 소각된다'고 가정한 경우엔 플라스틱 빨대의 오존층 파괴 잠재력이 종이 빨대보다 약 27만 2075배 더 높았다.
2022년 미국 환경보호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Life cycle assessment of environmental impact of disposable drinking straws: A trade-off analysis with marine litter in the United States" 보고서 발췌
종이 빨대 생산 업체 리앤비의 최광현 대표는 "종이 빨대 생산 과정은 워낙 단순하다"며 "원료 조달, 냉각 열, 공정 과정 전반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만들 때보다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될 여지가 전혀 없다. 종이를 돌돌 말아 열을 살짝 가해 만들 뿐이다"고 반박했다.
종이 빨대에서 PFAS가 검출됐다는 벨기에 연구의 경우, 국내와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 대표는 "PFAS는 국내 제품에서는 일절 나오지 않는 물질"이라며 "이미 8-9년 전 햄버거를 쌓아놓은 종이에서 검출되었다가 (논란이 된 후) 종이 산업에서 완전히 퇴출됐다"고 말했다.
이어 "벨기에 연구 당시 아시아 원산지로 표기된 종이 빨대는 전부 중국산이었다"고 강조했다.
정책 혼선에…기업은 '도입 중단', 업계는 '줄도산'
지난해 11월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종이 빨대 생산 업체 대표들이 "정부가 플라스틱 빨대 금지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해 플라스틱 빨대를 써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줬다"며 플라스틱 사용 규제 계도기간 무기한 연기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는 정책 철회 근거로 '경제적 부담'을 들었다. "가격이 2.5배 이상 비싼 종이 빨대를 구비했으나, 고객의 불만을 들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번복이 오히려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종이 빨대 생산 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네이처페이지 측은 "회사가 위기"라며 "(종이 빨대를) 납품하기로 기업들과 접촉하고 있었는데 정부 발표 이후로 대부분 다 무산돼 버렸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종이 빨대만 가지고 사업했던 데는 다 도산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면서 "다른 사업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거 가지고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아마 이 사업으로 올해 넘길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에선 여전히 플라스틱 빨대가 활발히 유통되고 있다. 최보금 기자
리앤비 최 대표도 "법 시행을 앞뒀을 때의 출고량에 비해서 (현재) 10분의 1 이하로 줄었다. 남품이 아예 끊긴 데도 있고 폐업·파산·압류당한 업체도 있더라"고 했다.
그는 "(정부는)정책 철회가 아니고 연기한 것이라지만, 언제 종료할지 알려 달라는 요청엔 '종료 시점을 정하지 못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장은 "(정부가) 종이 빨대 단가가 떨어지고 있는 흐름을 반영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종이 빨대 사용이 본격화되고 규모의 경제가 되면 충분히 플라스틱 빨대를 대체할 수 있는 경제성은 확보할 수 있는 문제였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화학연구원은 지난 2022년 경제성·상품성 등 기존의 단점을 보완한 종이 빨대를 개발한 바 있다.
해외선 '종이빨대' 열풍…그들은 단순했다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선 플라스틱 빨대 판매 자체가 금지돼있다. 오스트리아 슈퍼마켓에서 판매하고 있는 종이 빨대. 빈=최보금 기자취재진이 방문한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선 현재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나 식기류 등의 유통 및 판매가 전면 금지돼 있다. 네덜란드 환경청은 "EU의 모든 회원국은 EU의 지침에 따른다"고 설명했다.
EU의 일회용품 규제안은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지난 2019년 플라스틱으로 만든 빨대 등 10개 품목에 대한 시장 판매 금지를 주요 골자로 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Single-use Plastics Directive)'을 발효했고, 이후 모든 회원국이 자국 법에 적용했다. 2021년부터 해당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시장 출시를 금지하면서 규제 범위와 정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플라스틱 규제 정책의 '실시→폐지→부활', '금지→완화→무기한 연장' 등을 반복하며 피상적인 논쟁을 거듭하는 한국의 모습과 대조된다.
EU는 2019년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Single-use Plastics Directive)'을 발표한 이후 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강화 중이다. 플라스틱 규제 정책의 '실시→폐지→부활' 등을 반복하며 피상적인 논쟁을 거듭하는 한국의 모습과 대조된다.
분명한 건 "종이는 탄소 중립"
분명한 건 종이는 순환 자원이자 탄소 중립 자원이라는 점이다.
국내 제지 업체들은 순환림에서 원료를 조달한다. 순환림은 나무를 베고 다시 심기를 반복하며 목재를 생산하는 숲을 뜻하는데,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가 조림펄프(순환림에서 채취된 펄프) 제품에만 FSC 인증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홍 소장은 "플라스틱은 탄소를 계속해서 대기 중으로 날려 보내는 셈이지만, 종이는 나무를 베고 심고 순환되는 방식으로 원료를 조달한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사이클이 돌아가기 때문에 화석 연료로 만드는 플라스틱을 쓰는 것보다 종이로 대체하는 것이 탄소 중립"이라 설명했다.
이어 "종이 빨대도 안 쓰는게 제일 좋다"면서도 "다만 일회용품 규제 취지는 장기적으로 우리 소비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자는 것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종이 원료의 조달은 지속 가능한 점,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우리 소비를 바꾸자는 차원에서 (플라스틱 빨대 금지는) 하나의 상징적인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부도 "규제의 계도기간이 연장됐을 뿐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권장하는 것도 아니다"며 "빨대를 (부득이하게) 사용할 땐 종이 빨대와 같은 대체품을 이용하길 바란다는 입장이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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