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우리나라 시골마을 입구에서 만나는 고목나무의 대부분은 느티나무다. 껑충하게 키만 키우기보다 옆으로 넓게 가지를 펼쳐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느티나무의 특징이다.

 

우리의 세시(歲時)풍속을 보자. 설날에는 가족과 함께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올리고, 정월대보름에는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비는 공동행사가 이어진다. 느티나무는 따로 시설을 하지 않아도 나무 아래 자그마한 제단 하나만 놓으면 이런 당제(堂祭)를 올릴 수 있는 당산나무가 된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마을에 처음 정착을 시작할 때는 입구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먼저 심었다.

 

느티나무는 은행나무와 함께 오래 사는 나무로 유명하다. 아름드리 굵기라면 짧게는 조선왕조, 길게는 고려나 신라인과 삶을 같이해 온 역사를 간직한다. 몇백 년에서 때로는 천년이 훌쩍 넘어간다. 긴긴 세월 묵묵히 한 자리를 지켜온 탓에 백성들의 희로애락에서 나라의 큰일까지 온갖 사연을 다 꿰고 있다.

 

예를 들어 충북 괴산이란 지명도 느티나무와 관련이 있다. 신라 진평왕 때 찬덕이란 장수는 지금의 충북 괴산 근처에 있던 가잠성을 지키다가 백제군이 쳐들어와 성을 잃게 되자 그대로 달려나가 느티나무에 부딪쳐 죽었다. 이후 가잠성을 느티나무 괴()’자를 써 괴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또 경남 의령 세간리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곽재우 장군이 북을 매달아 놓고 군사훈련을 시켰다는 현고수(懸鼓樹)’란 느티나무가 있다. 자람 형태도 자라 북 걸기에 안성맞춤이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마을 앞의 펑퍼짐한 느티나무는 주위에 경쟁자가 없이 홀로일 때의 모습이다. 느티나무는 숲 속에서 다른 나무와 섞여 자라면 곧바르고 우람한 덩치가 된다. 20~30m에 둘레 두세 아름은 보통이다. 기둥감은 물론 불상과 같은 큰 조각품이나 여러 기구를 만들 수 있는 크기다. 아울러 느티나무 목재는 결이 곱고 윤기 나는 황갈색에 아름다운 무늬가 돋보인다. 썩고 벌레가 먹는 일이 적은 데다 건조 과정 중에 갈라지거나 비틀림이 잘 일어나지 않으며 단단하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나무가 갖추어야 할 모든 장점을 다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및 일본에 주로 자라는 동양의 나무로 사랑받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질 좋은 나무로 널리 알려진 마호가니(mahogany)나 월넛(walnut)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느티나무를 두고 당당하게 나무의 황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옛사람도 느티나무를 널리 이용했다. 경주 천마총을 비롯해 삼국 초기의 임금님 관재, 경북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경남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 보관 건물인 법보전과 수다라장 등의 나무 기둥의 전부 혹은 일부도 느티나무다. 흔히 스님들이 자기 절의 대웅전 기둥이나 구시(큰 나무밥통)는 싸리나무로 만들었다는 주장을 심심찮게 듣는다. 고작 손가락 굵기 남짓이 자라는 싸리나무로는 가능한 쓰임이 아니다. 현미경으로 세포조사를 해보았더니 실제로는 거의 느티나무였다.

 

그 밖에 사방탁자·뒤주·장롱·궤짝 등 조선시대 가구까지 느티나무의 사용 범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2000, 산림청에서는 새 천년을 맞아 우리나라의 번영과 발전을 상징하고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밀레니엄 나무로 느티나무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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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백두대간을 타고 점봉산·태백산·소백산·덕유산을 거쳐 바다 건너 한라산까지 태산준령의 꼭대기에는 늙은 주목들이 터를 잡고 있다. 비틀어지고 꺾어지고 때로는 속이 모두 썩어버려 텅텅 비어버린 몸체가 처연하다. 그런 부실한 몸으로 매서운 한겨울 눈보라도, 여름날의 강한 자외선도 의연히 버텨낸다.

 

 오래 산 주목이 모두 이렇게 육신이 병들고 허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몸 관리를 잘해 빈 속 없이 꽉꽉 채워져 있는 주목의 육신은 쓰임새가 너무 많다. 껍질도 속살도 붉은 주목(朱木)은 잡귀(雜鬼)를 물리치는 데 쓰이는 벽사(<8F9F>)의 나무였다. 아울러 몸체 일부에서 택솔(Taxol)’이라는 항암물질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나무를 썩게 하는 미생물들도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 금상첨화로 나무의 질이 좋기로도 이름이 나 있다. 주목은 천천히 나무 속을 다져가면서 정성스레 명품 몸을 만들어 간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주목이 명품임을 먼저 알아준 이는 바로 절대 권력자들이었다. 살아 생전에 누리던 영광을 저승길에서도 언감생심 주목을 함께 가져가고 싶어 했다. 우선 자신의 주검을 감싸줄 목관(木棺)으로 썼다.

 

 일제강점기 평양 부근의 오야리 고분에서 출토된 낙랑고분의 관재, 만주 지린(吉林)성 지안(集安)현 환문총 및 경주 금관총의 목곽(木槨) 일부가 모두 주목이다. 그 외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왕비의 두침(頭枕)도 주목이었다. 활을 만들거나, 톱밥을 물에 우린 다음 궁중에서 쓰는 붉은색 물감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 두위봉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목 세 그루가 천연기념물 433호로 지정돼 있다. 나이는 천 년이 넘었고 가운데 맏형은 자그마치 1400년이나 됐다. 김유신 장군과 계백 장군이 그와 동갑내기다. 삼국통일의 소망을 달성한 승자나 백제의 최후를 몸으로 저항하던 패자나 모두 영욕의 세월을 뒤로한 채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주목은 지금도 두위봉의 터줏대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주목은 낙랑고분 관재처럼 죽어서는 2000년을 넘나들고 살아서도 1000년을 훌쩍 넘기고 있으니 흔히 주목을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고 하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주목은 아스라이 먼 3억만 년 전 지구상에 나타났으며, 한반도에서 새 둥지를 마련한 세월만도 200만 년이 훨씬 넘는다. 몇 번에 걸친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자자손손 삶을 이어왔다. 터득한 지혜는 어릴 때부터 많은 햇빛을 받아들여 더 높이, 더 빨리 자라겠다고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아주 천천히 숲속의 그늘에서 적어도 몇 세기를 내다보는 여유가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성급한 주위의 다른 나무들은 어느새 수명을 다할 것이니 그날이 오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바쁘다로 하루를 지새우는 현대인에게 주목이 주는 메시지는 한번쯤 곱씹어 볼 만하다.

 

 주목은 솔방울을 매다는 다른 침엽수와는 달리 특별한 모양의 열매를 만들어 낸다. 열매는 작디작은 컵처럼 생겼는데 빨강 육질의 가운데에 흑갈색의 독이 든 딱딱한 씨앗을 담아두고 있다. 먹이로 하는 새들이 말랑말랑한 열매의 육질만을 소화시키고 자손을 퍼뜨릴 수 있도록 멀리 날아가서 볼일을 봐달라는 희망이 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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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목

지금쯤 피기 시작하는 회양목 꽃(위 사진). 경기도 여주 효종 왕릉 재실의 회양목. 천연기념물 제459.이제 곧 봄꽃 세상이다. 매화·진달래·산수유·목련 등 익숙한 꽃들이 저마다 예쁜 자태와 향기로 갓 깨어난 대지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이들 사이에 회양목이 끼어 있다. 아직 눈발이 흩뿌리는 이른 봄날 꽃잎도 없이 손톱만 한 크기의 연노랑 꽃이 핀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이 작은 꽃이 서둘러 피는 것은 빨리 씨앗을 만들어 경쟁이 적은 늦봄이나 초여름에 자손을 퍼뜨리겠다는 책략에서다.

 

자연 상태로 회양목이 자라는 곳은 충북 단양을 비롯해 한반도 중부 석회암지대의 척박한 급경사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1736~1806)이 지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선 단양 도담삼봉 일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푸른 석벽이 만 길이나 되어 보이는데 회양목이 바위틈에 거꾸로 나 있고, 바위에 구멍이 문같이 생겨 있어 바라보면 딴 세상 같다.’ 북한 땅 강원도 회양(淮陽)에 많이 자란다고 하여 회양목이며, 나무 속 색깔이 연한 황색이라 옛 이름은 황양목(黃楊木)이었다.

 

회양목은 열악한 환경과 작게 자라는 유전인자까지 겹쳐 시간이 지나도 자랐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는 황양목이 일 년에 한 치씩 더디게 자라다가 윤년을 만나면 오히려 세 치가 줄어든다는 속설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황양액윤(黃楊厄閏)’이라고 하면 무슨 일의 진행 속도가 늦음을 빗대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설마 줄어들기야 하랴마는 사람들이 키가 줄어든다고 느낄 만큼 자람이 늦다는 뜻이다. 오늘날 회양목은 척박한 바위산에서 내려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정원이나 잔디밭 가장자리에 동그랗게 깎아놓은 자그마한 나무는 대개가 회양목이다. 생명력이 왕성해 사람들이 기분 나는 대로 이리저리 잘라대도 금세 가지를 뻗어내는 늘푸른나무다.

 

주변에 흔히 보는 회양목은 작은 정원수로 친숙할 뿐이지만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번 등장할 만큼 쓰임새가 귀중했다. 1000여 종에 이르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세포 크기가 가장 작아서 나뭇결이 고우며 치밀하고 단단하기까지 하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에 간행된 두루마리 형태의 목판인쇄물인데, 필자는 회양목 목판으로 찍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정밀한 글자를 새기거나 귀중한 서책의 인쇄에 필요한 나무활자도 대부분 회양목을 썼다. 구하기 쉽고 가공이 간편하면서 마치 상아나 옥에다 글자를 새겨둔 것과 다를 바 없이 정교해서다.

 

이렇게 우리나라 인쇄문화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바로 자그마한 회양목에서 나온 것이다. 그 외에 점치는 도구, 관리들이 차고 다니던 호패(號牌), 머리빗, 장기 알, 각종 공예품 등에도 빠지지 않았다. 임금님의 옥새(玉璽), 관인(官印), 그림이나 글씨를 쓰고 찍는 낙관(落款), 개인 인장도 회양목으로 만들었다.

 

경기도 여주 효종대왕의 능인 영릉 재실(齋室)에는 키 4.7m, 지름 20, 나이 300여 년에 이르는 회양목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 제459호로 지정돼 있다. 가로수 크기와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 살고 있는 회양목이다. 1년에 자란 평균 나이테 너비가 0.3남짓에 불과하여, 50전후인 다른 나무와 비교해 보면 윤년이 아니더라도 회양목은 매년 액운이 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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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하얀 얇은 껍 두르고 있는 자작나무는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띈다. 하얗기 때문에 추위를 많이 탈 것 같지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동토(凍土)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람 터는 우리나라 북한지방에서 만주·시베리아를 거쳐 북유럽까지 북반부의 한대지방이다. 자작나무는 외롭게 한 그루씩이 아니라 여러 그루가 함께 모여 숲을 이루어 자라기를 좋아한다. 홀로보다 숲이 추위를 버티는 데 효과적인 때문일 터이다.

 

 시인 백석(1912~95)1938년 함경도에서 쓴 백화(白樺·자작나무)’를 읽어본다.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이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북한의 산골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참나무를 만나듯 이렇게 자작나무가 많다. 백석이 노래한 자작나무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강원도 인제읍 원대리의 이름도 예쁜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 바로 그런 곳이다. 3.2에 걸치는 산길을 따라 좌우로 곳곳에 자작나무가 무리 지어 숨어 있다. 눈 속에 묻힌 지금쯤 찾아가면 이름처럼 조용히 누군가와 속삭이면서 걸을 수 있는 낭만의 숲이다.

 

 자작나무는 우리 문화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선 화피(樺皮)라고 하는 껍질의 쓰임부터 알아보자. 줄기에 하얀 종이를 겹겹이 붙여둔 것같이 생긴 화피는 얇게 벗겨내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1973년 경주 천마총에서는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천마도 장니(障泥)가 출토됐다. 32인치 TV 화면 크기 남짓한 장니는 말안장에 깔아 흙 튀김 방지에 쓰인다. 천마도의 바탕 캔버스가 바로 자작나무 종류의 껍질이었다. 이외에도 서조도(瑞鳥圖) 등 천마총 출토 유물의 여러 장식품에도 널리 쓰였다. 잘 썩지 않고 오래 보존할 수 있어서 북부지방의 서민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도 화피로 싸서 묻었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고 보온효과도 뛰어나 지붕을 이는 데 애용됐다.

 

 화피는 활을 만드는 재료로도 빠질 수 없었다. 조선 성종 22(1491) ‘활은 모름지기 화피를 써서 겉을 감싸야만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사용할 수 있다라는 기록에서 그 쓰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화피는 기름기가 많아 촛불이나 호롱불 대신 불을 밝히는 데에도 애용했다. 우리는 흔히 결혼을 화혼이나 화촉을 밝힌다고도 하는데, 이 단어에 들어 있는 ()’자가 바로 자작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다. 자작나무란 이름도 껍질이 탈 때 자작자작하는 소리가 나는 데서 따온 의성어다.

 

 자작나무 목재도 기둥에서 장작까지 북부지방 사람들에게는 일상생활의 필수품이었다. 근세에 들면서 자작나무는 중요한 쓰임이 하나 더 생겼다. 목재를 잘게 갈아 펄프를 만들면 품질 좋은 종이를 생산할 수 있어서다.

 

 자작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라는 곳은 북한지방이 남쪽 한계선이므로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을 비롯해 남한에서 만나는 자작나무는 모두 심은 것이다. 하지만 중남부의 고산지대에는 껍질 생김이 비슷한 거제수나무 및 사스래나무가 자라고 있어 자작나무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 자작나무 종류는 곡우 임시에 수액을 받아 건강음료로 마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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