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

남녘의 대지에 생명이 깨어나는 첫 신호는 매화로부터 들린다.

1월 말 제주도에서 피기 시작하는 매화는 남부 지방을 거쳐 4월 중순 서울의 궁궐에 이를 때까지 거의 3개월에 걸쳐 핀다.            

  

 이렇게 오랜 기간 피는 것은 일단 기온의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오랜 세월 매화가 사람 곁에 있으면서 수많은 품종이 생기고, 또 꽃피는 시기가

각각 다른 탓도 있다.

 

우선 색깔로는 백매(白梅)와 홍매(紅梅), 꽃잎 모양에 따라 홑꽃과 겹꽃, 꽃을 주로 감상하는 화매(花梅)와 열매 수확을 주목적으로 하는 실매(實梅)가 있다.
오래된 고목 매화(古梅)는 젊은 매화보다 꽃이 늦게 핀다. 대체로 3월 중순에 고매가 피기 시작한다. 옛 선비들이 눈발이 흩날리는 이른 봄날 나귀 등에 얹혀 고매 찾아가기를 했듯, 오늘날의 매화 매니어들은 지금쯤 탐매(探梅) 일정 잡기에 여념이 없다.

유명한 고매는 대부분 선비들의 옛집과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절에서 수백 년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선비매화의 대표는 경남 산청 단속사지의 조선 초 문신 강회백(1357~1402)이 심었다는 정당매(政堂梅), 그리고 이곳에서 약 8㎞ 떨어진 남사마을에 고려 말 문신 하즙(1303~1380)이 심었다는 원정매(元正梅)다. 둘 다 원줄기는 죽어버리고 밑둥치에 곁가지가 나와 간신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쉬운 대로 고매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산천재(山天齋)에는 조선 중기의 학자 조식(1501~1572)이 심었다는 남명매(南冥梅)가 비교적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스님들이 아끼고 가꾸어온 매화로는 순천 선암사 선암매(仙巖梅), 장성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구례 화엄사의 흑매(黑梅) 등이 있다. 남쪽의 웬만한 절에는 고매 한두 그루가 꼭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화는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수수하지도 않은 품격 높은 동양의 꽃이다. 중국의 쓰촨성이 고향인 매화가 처음 사람과 맺은 인연은 꽃이 아니라 열매였다. 청동기 시대 옛 사람들은 소금과 함께 식초를 만드는 원료로서 매실을 이용했다. 중국고전 『시경』의 ‘국풍’ 편에는 ‘매실따기(<647D>有梅)’란 이름으로 꽃이 아니라 열매부터 먼저 등장한다.

매화가 꽃으로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한무제(기원전 141∼87) 때 궁궐에 심으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매화는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소재로 사랑을 받아왔다.

 매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비교적 이르다. 고구려 대무신왕 24년(41)에 첫 기록을 찾을 수 있고, 『삼국유사』에는 ‘모랑의 집 매화나무가 꽃을 피웠네’라는 시가 있다. 매화는 중국을 떠나 우리 땅으로 건너오면서 몸만 달랑 온 것이 아니다. 꽃과 열매로 사람과 맺어둔 소중한 인연도 고스란히 함께 갖고 왔다.

하지만 매화가 널리 알려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까지 매화의 흔적은 그리 많지 않다. 고려 후기에 이르러 매화는 서서히 선비들의 글 속에 녹아 들어간다. 그래도 매화가 정말 활짝 핀 시기는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다. 난초·국화·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의 첫머리에 꼽혔고, 세한삼우(歲寒三友)에는 소나무·대나무와 함께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문화이고 멋이었다.

매화나무는 꽃으로 본 이름이고, 열매로 보면 매실나무라고 하나 둘은 같은 나무다. 살구나무와도 구별이 어려운데 꽃잎에 꽃받침이 꼭 붙어 있으면 매화나무, 서로 떨어져 있으면 살구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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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우리나라의 봄은 산수유·생강나무·개나리꽃에서부터 노랑나비·노랑병아리에 이르기까지 유독 노란빛이 돋보인다. 산수유는 다른 노랑꽃나무보다 가장 먼저 꽃이 핀다. 잎이 나오기 전의 나뭇가지에 산수유가 송골송골 꽃 치장을 하면서 우리의 산하는 칙칙한 겨울 풍광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콩알만 한 작은 노랑꽃이 20~30개씩 모여 만든 예쁜 꽃송이가 나무 전체를 뒤덮는다.

 

 산수유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정원이나 크고 작은 공원의 조경수로 애용된다. 꽃나무이자 약용식물이기에 수십, 수백 그루를 한꺼번에 심어 가꾸기도 한다. 전남 구례 상위마을, 경북 의성 사곡마을, 경기 이천 백사마을은 산수유가 무리 지어 자라는 대표적인 곳이다.

 

 꽃이 진 산수유는 주위의 짙푸름에 숨어 버린다. 그러다가 가을이 깊어가면서 한 나무에 수천 개씩 갸름한 오이씨 모양의 붉은 열매가 달리면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색 하늘과 환상적인 어울림을 연출한다. 봄날 샛노란 산수유 꽃의 변신이 잘 믿기지 않을 정도다. 산수유 열매는 아름다운 모양새는 둘째 치고 원래 약제로 유명하다.

 

 『동의보감()을 왕성하게 하며 정력과 신기(腎氣)를 보하고 성기능을 높이며 음경을 딴딴하고 크게 한다. 오줌이 잦은 것을 낫게 하며 늙은이가 때 없이 오줌 누는 것도 낫게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대표적인 정력 강장제다.

 

 그렇다면 수많은 여인에게 둘러싸여 산 왕조시대 임금들이 정력제로 산수유를 먹었을까. 가까이 조선왕조실록에서 임금님께 올린 탕제(湯劑)를 보면 산수유탕은 찾기 어렵다. 오늘날 남자한테 좋긴 한데로 시작하는 어느 회사 광고 카피처럼 정력에 좋다는 소문을 임금님도 알았을 터이다. 탕제를 올리는 의관이 민망해 기록을 빠뜨린 것인지, 아니면 임금의 건강을 생각해 아예 차단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산수유는 우리 땅에 자생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원래 고향은 중국 중서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삼국시대로 짐작한다. 이와 관련된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신라 48대 경문왕(861~875)은 임금이 되자 귀가 갑자기 당나귀의 귀처럼 길게 자랐다. 이런 사실은 오직 임금님의 모자를 만드는 장인(匠人)만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이 일을 남에게 말할 수 없었는데,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자 용기를 냈다. 홀로 도림사(道林寺)의 대나무 숲 속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마음껏 외쳤다. 그는 평생 가슴에 담아 왔던 비밀을 떨쳐내 버리고 편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 속에서 장인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왕은 이게 듣기 싫어서 대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 하지만 임금님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겨우 당나귀란 말만 빠지고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는 여전히 났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산수유 고목 한 그루가 자란다. 16m, 뿌리목 둘레 세 아름에 이른다. ‘산수유 시목(始木)’이라 하며 1000년 전 산둥반도에서 시집온 처녀가 처음 가져왔다고 전해지나 실제 나이는 300~400년 정도다. 지금 달려가면 이 나무는 꽃이 절정이다. 바로 옆 상위마을 산수유 축제는 덤으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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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꽃만 말고 이마음도 함께 따가 주.’

 

시인 김동환(1901?)봄이 오면첫 구절이다. 이처럼 진달래는 봄의 도착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꽃이다. 따뜻한 바람을 타고 잎보다 먼저 연분홍 꽃이 산등성이에 무리 지어 핀다. 진달래의 먼 선조들은 생존경쟁에 밀려 비옥하고 아늑한 땅은 다른 나무에게 빼앗기고 척박한 산꼭대기로 쫓겨나게 됐다. 바위가 부스러져 갓 만들어진 흙으로 말이다. 수분이 부족해 대부분의 식물이 싫어하는 산성(酸性) 땅으로.

 

경쟁자가 많지 않아 좋은 점도 있다. 그러나 평생 고난의 행군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진달래는 생명력이 강인하다. 사이좋게 오순도순 모여 그들만의 왕국을 이룬다. 특히 우리나라 진달래는 중국이나 일본 진달래보다 꽃이 곱고, 양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품종개량이란 성형수술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예쁜 자연미인이다. 다만 숲이 우거지면서 그 영토가 차츰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 옛 문헌에 나오는 진달래는 모두 두견화(杜鵑花)로 기록돼 있다. 중국 이름을 받아들인 것인데, 이런 전설이 있다. 중국의 고대국가인 촉나라 임금 두우는 벌령이란 신하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추방당한다. 억울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죽어서 두견새가 돼 촉나라 땅을 돌아다니며 목구멍에 피가 나도록 울어댔다. 그 피가 나뭇가지 위에 떨어져 핀 꽃이 두견화란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계모의 구박에 못 이겨 죽은 어린 여자아이의 혼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는 슬픈 전설도 있다. 음력 33일 삼짇날에는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라 하여 꽃전(花煎)을 부쳐 먹는 풍습이 있었다. 꽃전이란 찹쌀가루에 꽃잎을 얹어서 지진 부침개를 말한다. 이 풍속은 고려 때도 있었으며, 조선시대는 창덕궁 비원에서 중전이 궁녀들과 함께 화전놀이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진달래 꽃잎에다 녹말가루를 씌워 오미자 즙에 띄운 진달래 화채 역시 삼월 삼짇날의 계절음식이다. 조선말기 문신 김윤식이 쓴 운양집(雲養集)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은 큰 병에 걸려 고향인 당진 면천에서 휴양하고 있었다. 그의 열일곱 된 딸 영랑이 날마다 아미산에 올라가 기도를 했더니 어느 날 꿈속에 신선이 나타났다. ‘아비의 병을 낫게 하려면, 아미산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과 찹쌀로 술을 빚어 마시게 하라고 했다. 신선의 말대로 하자 아버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것이다.

 

 이후 진달래꽃으로 빚은 두견주는 약술로 애용됐으며 기침을 멈추게 하고 신경통·류머티즘 등 성인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부지방에서는 진달래보다 참꽃이란 이름에 더 친숙하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진달래가 필 즈음에 굶주린 아이들은 진달래꽃을 따먹고 허기를 달랬기에 진짜 꽃이란 의미로 참꽃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너무나 친숙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비롯해 옛 선비들의 시문집에도 진달래 시가 수없이 실려 있다. 아래는 백성에서 임금님까지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사랑한 꽃이었다. 진달래 축제가 벌어지는 여수 영취산, 강화 고려산, 대구 비슬산의 진달래 등 지금부터 우리의 산은 진달래 천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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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삼국유사에 목련과 관련된 첫 기록이 등장한다. 가야 시조 김수로왕 7(48)에 신하들이 장가들라고 권하자, 왕은 하늘의 뜻이 곧 있을 것이라며 점잖게 거절한다. 얼마 뒤 갑자기 서쪽 바다에서 붉은 돛을 단 배 한 척이 북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 목련으로 만든 키를 잡고,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그들을 맞아들였다. 배에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허황옥 공주가 타고 있었다. 그가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다. 원문의 난요(蘭橈)’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다르나 단국대 김원중 교수는 목련 키로 번역했다. 목련이 꽃만이 아니라 목재로서도 귀중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는 자료다.

 

목련은 가야가 있던 남해안에서 제주도에 걸친 따뜻한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30~40년 전까지만 해도 한라산에는 자연산 목련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깊은 숲 속에 들어가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목련(木蓮)은 연꽃처럼 생긴 꽃이 나무에 달린다는 뜻이다. 봄기운이 살짝 대지에 퍼져나갈 즈음, 6~9장의 꽃잎을 가진 주먹 크기의 새하얀 꽃이 가지 꼭대기마다 한 개씩 핀다. 수백 송이가 무리로 피는 모습은 하얀 꽃구름을 연상할 만큼 장관을 이룬다.

 

 

 

 

목련은 꽃을 피우기 위한 겨울 준비가 남다르다. 겨울눈은 크기나 모양이 영락없이 붓을 닮았고 겉에는 연한 갈색의 긴 털이 촘촘히 덮여 있다.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목련만의 특별한 고급외투다. 옛 이름은 목필화(木筆花)동의보감에는 목련의 꽃봉오리가 약간 맵다고 하여 신이(辛夷), 우리말로 붇곳(붓꽃)이라 했다.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를 따서 약재로 썼다. 효능은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코가 막히거나 콧물이 흐르는 것을 낫게 한다. 얼굴의 부기를 내리게 하고 치통을 멎게 하며 눈을 밝게 한다는 것이다.

 

광해군 6(1614) 이수광이 편찬한 지봉유설훼목부(卉木部)에는 순천 선암사에 북향화(北向花)란 나무가 있는데 꽃은 보라색이며 반드시 북쪽을 향하여 핀다고 했다. 오늘날의 자목련을 말하는데, 이외에도 목련 종류의 꽃봉오리는 대부분 북쪽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꽃봉오리의 아랫부분에 남쪽의 따뜻한 햇볕이 먼저 닿으면서 반대편보다 세포분열이 더 빨라져 끝이 북쪽을 향하게 된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목련은 대부분 백목련이다. 우리 토종 목련을 잘 심지 않고, 중국 원산인 백목련이 오히려 더 많이 보급된 탓이다. 목련꽃은 꽃잎이 좁고 완전히 젖혀져서 활짝 핀다. 백목련은 꽃잎이 넓고 완전히 피어도 반쯤 벌어져 있으므로 둘을 구별할 수 있다.

 

자목련은 이름 그대로 보랏빛 꽃이며 목련이나 백목련보다 조금 늦게 핀다. 이외에 5월 말께 숲 속에서 잎이 나고 난 다음에 꽃이 피는 함박꽃나무(산목련)도 역시 목련의 가까운 형제다.

 

북한에서는 함박꽃나무를 목란(木蘭)이라 하며 국화로 지정해 극진히 대접한다. 전남 진도 석교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토종 목련 한 그루가 자란다. 나이는 100년 정도며, 12m에 뿌리목 둘레가 거의 두 아름에 이른다. 땅 위 70쯤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졌고 부채꼴 모양으로 가지를 뻗어 나무 모양새가 아름답다.




학 명 / Magnolia spp. 영 명 / Kobus magnolia

꽃 말 / 자연에의 사랑

 

 목련(木蓮, Magnolia kobus)은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낙엽교목으로 크고 아름다운 흰색꽃이 핀다. 꽃눈이 붓을 닮아서 목필(木筆)이라고도 하고, 꽃봉오리가 피려고 할 때 끝이 북녘을 향한다고 해서 북향화라고 한다.

높이 10m, 지름 1m이다. 가지는 굵고, 털이 없고 많이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며 넓은 난형 또는 도란형으로 길이 5-15cm, 너비 3-6cm이다. 꽃은 4월 중순부터 잎이 나기 전에 핀다. 꽃잎은 백색이지만 기부는 연한 홍색이고 향기가 있다. 열매는 원통형으로 길이 5-7cm이며, 씨앗은 타원형으로 길이 12-13㎜이고 외피가 붉은색이다.

 

 제주도 한라산의 높이 1,800m의 개미목 부근에서 자생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서도 월동이 가능하다. 물기가 있는 땅을 좋아하고 음지에서는 개화·결실이 불가하며 충분한 햇볕을 받아야 꽃이 잘 핀다.

꽃이 아름다워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에서는 7등에 속하였다. 목련의 나무껍질에서 나온 수액은 감기를 치료하거나 기생충을 없애는 데 쓰인다. 정원수로 가장 많이 심는 나무이다. 목재의 재질이 치밀하고 연하여 상을 만들거나 칠기를 만드는 데에도 적합하다.

 

 꽃말은 자연애이며, 북향화라는 또다른 이름은 전설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공주가 북쪽에 사는 사나이를 좋아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때문에 봉우리가 필 때 끝이 북쪽을 향한다는 의미가 있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등 목련꽃을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 노래와 시들이 많은걸 보면 동서양 모두 좋아하는 것 같다. 나무위에 피는 연꽃이라 부르는걸 보면 순백의 자태가 고결함마저 느껴진다. 학명 중 ‘kobus'는 ’주먹‘을 나타내는 말로 꽃 피는 모양이 주먹을 쥐었다 펴는 모양을 닮은데서 유래한다.

 

 햇볕이 잘 드는 정원이나 공원의 관상수로 좋고, 가지를 잘라 꽃꽂이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털 코트를 입은 듯한 꽃봉오리는 한방에서는 빠지지 않는 감기약의 재료이다. 화단이나 조경용으로 봄에 피는 대표적인 화목류로써 꽃이 피기전의 봉오리 상태, 꽃이 지고난 뒤의 모습도 좋으며 잎도 크고 아름답다.

 

 기르기

양지바르고 너무 습하지 않은 곳에서 잘 자라며 추위에 강하고 생장속도도 빠르며 공해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는 식물이다. 번식은 씨앗으로 하거나 3-4월에 묵은 가지를 잘라 번식한다.

 

 목련과에 속하는 낙엽성 교목이다. 우리나라에서 목련이라 함은 제주가 자생지인 목련과 북한의 국화인 함박꽃나무(산목련)가 있다. 중부 이남지역의 화단, 공원 및 도로변에 흔히 심겨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자생목련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여온 백목련이나 자목련이 대부분이다.

 

 목련꽃은 차로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효소는 설탕물을 삭인 것으로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설탕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듯 효소의 부작용도 많으니 목련 같은 경우는 꽃차로 먹으면 좋다.

명나라 때 콧병이 나서 코가 막히다 계속 콧물이 흐르고 피가 나는 증상을 가진 사람이 약을 찾아다니던 중 신해년 어느 날 어느 변방의 소수 민족이 사는 작은 마을에서 받아 온 꽃으로 병을 낫게 되었다.

이 꽃은 옥란화라는 꽃으로 주변에 흔한 나무였다. 그래서 이 꽃잎의 이름을 신해년(辛亥年)의 '신(辛)'과 소수 민족을 부르는 '오랑캐'라는 뜻의 '이(夷)'를 합해 '신이(辛夷)'라고 짓게 되었다.

이름에 대한 다른 유례도 있는데 신이라는 이름의 이(夷) 띠의 어린 싹을 뜻하는 제(荑)에 왔다고 하는데 목련의 꽃봉오리가 처음 생길 때 띠의 어린 싹과 비슷하기 때문이며 맛이 매워 생긴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꽃이 아직 피기 전 꽃봉오리가 작은 복숭아처럼 털이 있어 후도(侯桃)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는 꽃봉오리가 처음 생길 때 붓의 끝부분처럼 생겨서 목필(木筆)이라고 하기도 하며 꽃이 가장 일찍 피기 때문에 영춘(迎春)이라 부르기도 했다.

 

◑ 목련(木蓮) 신이화(辛夷花)란

목련과의 백목련 또는 동속식물의 꽃봉오리를 말린 약재(한국)이며 일본에서는 백목련, 망춘화, 일본신이, 향신이, 무당옥란을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백목련, 망춘화, 무당옥란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 목필화(木筆花), 방목(房木), 신신(辛矧), 영춘(迎春), 목필(木筆), 신치(辛雉), 후도(侯桃) 등이 있다.

 

◑ 목련(木蓮) 신이화(辛夷花)의 효능

이 약은 특이한 향기가 있고 맛은 매우며 성질은 따듯하다.

풍사(風邪)를 몰아내고 규(竅)를 통하게 하는 효능을 가진 약재이다.

신이는 몸 안에 있는 차가운 기운과 풍으로 오는 코 막힘, 축농증을 치료하며 콧물이 흐르며 냄새를 맡지 못하는 증상, 두통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증상, 오한, 발열, 전신통을 치료하며 가래가 많이 나오는 기침 등에 효과가 있다. 약리작용으로 수렴작용, 모세혈관 확장작용, 항염증작용, 혈압강하작용, 진통, 진정작용, 피부진균과 포도상구균 억제작용이 보고되었다.

 

◑ 목련(木蓮) 신이화(辛夷花)을 먹는 법

‘신농본초경’의 주해서 ‘본경소증’은 신이화의 치료 용처를 이렇게 설명한다. ‘조금만 피곤하거나 무리를 해도 바로 코가 막히면서 콧물이 나오고 얼굴이 붓는 증상을 치료한다. 재발을 반복하면서 여러 해 동안 낫지 않을 때 사용한다.’ 찬란한 봄에, 코가 막히고 답답한 사람이 있다면, 신이화 15∼20g을 물 1L에 넣어 끓여 차처럼 마실 것을 권한다.

목련차의 효능은 항균작용, 항산화 효능, 항염증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두통, 치통, 복통, 요통 등의 각종 통증에도 목련차가 도움이 된다.

목련꽃은 꽃을 약용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꽃봉오리]를 쓴다.

목련꽃 봉오리는 생약명 [신이] 또는 [신이화]라 한다.

 

◑ 신이(辛夷)

성질은 따뜻하며[溫] 맛은 맵고[辛] 독이 없다.

풍으로 속골이 아픈 것을 낫게 하며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코가 메는 것, 콧물이 흐르는 것 등을 낫게 한다.

얼굴이 부은 것을 내리게 하며 치통을 멎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수염과 머리털을 나게 한다.

얼굴에 바르는 기름을 만들면 광택이 난다.

음력 정월과 2월에 꽃이 피는데 털이 부시시한 작은 복숭아 비슷하며 흰빛에 자줏빛을 띤다. 꽃 피기 전에 따야 한다.

활짝 핀 것은 약 기운이 떨어진다.

북쪽 찬 지방에서는 음력 2월에 꽃이 피는데 목필(木筆)이라 하고 남쪽 따뜻한 지방에서는 정월에 피는데 영춘(迎春)이라고 한다.

쓸 때는 심과 겉의 털과 꽃받침을 없애고 쓴다.

 

◑ 목련꽃 채취

- 개화기 : 3~4월

- 채취기 ; 3~4월

- 효 능 : 편도선 / 갑상선 / 기관지염 / 두통 / 치통

 

◑ 목련차 만드는 법

꽃잎을 소금물에 5~10분정도 담갔다가 살짝 쪄서 그늘에 말려 차를 마실 때마다 적당량의 꽃잎을 넣어 먹으면 된다.

 

◑ 술로 담금을 하는 방법

목련주는 화향의 목적으로 담그는 술이다.

이른 봄 꽃이 만개하기 전에 꽃 봉우리와 꽃을 따서 꽃 양의 3~4배의 술을 붓고 약간의 설탕을 넣어 만든다.

- 담그기

재료 / 목련꽃 400g, 설탕 100g, 소주 1800ml

위의 재료를 넣고 2개월이 지나면 숙성되는데 이 때 건더기를 건져 내야 한다.

숙성이 다 되면 호박색의 은은한 술이 된다.

열매로 술을 담그려 할 때는 10~11월에 채취하여 빨간 씨로 과일주를 담그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붉은 빛의 술이 된다.

- 효용

목련은 두통, 피부병, 콧병에 효과가 있다는 한방 처방이 있기는 하나 목련주는 단순히 향화주로서 반주로 마시는 술이라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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