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청첩장이라면... 
서로 가고 싶어 안달일 걸?

/오마이뉴스

결혼 잔치에 초대된 게 기뻐야 하는데, 받고도 기분이 떨떠름해지는 청첩장이 있다. 
우연찮게 마주쳤는데, "어 그래, 너!" 하면서 여분을 꺼내 급하게 쥐어주는 청첩장이 그렇다. 

날 세워놓고 봉투에다 이름을 휘갈겨 쓰는데, 이름마저 틀린다. 별로 축하해주고 싶지도 않은데, 
내 성마저 바꿔놓은 청첩장을 들고 억지로 "축하해"라는 말을 한다. 어색하게 헤어지는 그 순간, 손에 든 청첩장을 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반대로 몇 년이 지났음에도 고이 모셔둔 청첩장이 있다. 당시엔 애인도 없어서 "대체 내 결혼식은 언제일까" 절규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청첩장에 적힌 글귀 하나하나가 정성스러워 쉬이 버리지 못했던 그 내용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 꼭 정장을 입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날씨가 추우니 편하고 따뜻한 옷차림으로 오십시오 *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세요 * 신부 대기실을 마련하지 않고, 예식 30분 전부터 신랑 신부가 입구에서 하객을 맞이하겠습니다. * 두 사람이 살림을 합친 후 겹치는 책들을 모아서 입구에 놓아두겠습니다. 원하시는 책이 있으면 골라가세요. 청첩장 글귀 하나하나를 읽으며,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꼭 가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혼식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허례허식이 될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대신 좋은 기억으로 남겠다 싶은 부분은 충분히 활용했다.

우선 신부 대기실. 대기실에 오도카니 앉아 억지 웃음을 지으며 흘러가는 시간이 지혜씨에겐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또 반대로 생각하면 신랑은 사람들을 맞이 하느라 지인들과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예식 30분 전부터 식장 앞에 같이 나와 하객들을 맞이했다. 단체촬영 없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하객들과 두 부부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식장에 장식된 꽃. 일회용으로 버려질 꽃장식들은 예식장에서 가장 비싼 비용을 들여야 하는 품목 중 하나다. 두 사람은 이 꽃을 잘 활용했다. 꽃길을 꽃바구니로 만들었고, 그간 고마웠던 사람들의 이름을 써놓았다. 식이 끝나고 미리 말을 들었던 사람들이 꽃바구니를 한아름씩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기억에 남는 근사한 선물이 된 것이다. 웨딩드레스 나중에 리폼해서 평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도록 하나 맞췄어요. 하루 대여하는 데 몇 백씩 드는 드레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요. 그런 화려한 드레스는 저랑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으로 입고 싶었고, 또 이렇게 간직할 수 있으니 좋아요. 게다가 식전에 하객들 맞이할 때, 바닥에 놓아두었던 촛불에 드레스 뒤가 조금 그을렸어요. 비싼 돈 주고 빌린 드레스였으면 어쩔 뻔했어요. 하하.

단 한 번 있는 결혼식에 세심한 배려들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쓰느라 고생했던 날이었다. 실수도 있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맺은 아름다운 결실 앞에서 그 어떤 일도 불만스럽지 않았다. 축하해주러 온 이들도, 두 사람도 모두가 마음 따뜻해지는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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