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균관에 있는 명륜당 편액 선조 때 황태손의 탄생을 알리는 정사로 온 주지번에 쓴 글이다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주 학당에 편액을 쓴 사람은 누굴까?
주지번(朱之蕃 ?~1624)은 평소 기자가 강연 시에 많이 이야기하는 인물인데, 그가 명륜당의 편액을 썼다는 데 놀랐다.
그는 어떻게 해서 명륜당의 편액을 썼을까?
편액을 바라볼 때 오른쪽에는 명나라 만력 병오년 여름(大明萬曆丙午孟夏)이라고 적혀 있으니,
글을 쓴 시기는 서기 1606년(선조 39년)이다.
왼쪽에는 그가 사신단의 정사(正使)로 온 한림원수찬(翰林院修撰)이며
금릉(金陵) 사람 주지번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주지번은 조선과 누구보다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아마 조선이 없었다면 과거에 장원급제 후 정사라는 신분으로 이 땅을 찾아올 인연이 있을 리 만무한 사람이었고,
아마도 도시의 초라한 평민으로 살 수 밖에 없을지 모르는 인물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그의 인생에서 변화가 발생했을까.
이 사건은 그가 조선을 방문하기 14년 전인 1592년(선조 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 일의 조선쪽 인물은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耉 1556~1620)다.
완주(完州, 지금은 전주·익산) 출신은 그는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584년(선조 17)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해,
1592년 체찰사 정철(鄭澈, 1536~1593)의 종사관으로 베이징을 찾는다.
그가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밖에서 낭랑하게 남화경(南華經, 불경)을 외는 소리가 들렸다.
송영구는 호기심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지번이 과거에 수차례 낙방해 호구지책으로 막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송영구는 대화로 그가 적잖은 지식을 가진 것을 알고, 제출했던 답안을 써보라고 말한다.
송영구가 답안을 보니 문장은 좋지만 과거의 격식을 갖추지 못한 것을 알고,
조언과 더불어 서책과 공부할 수 있는 비용을 준 뒤 귀국한다.
이 만남이 있은 후 3년 뒤인 1595년(萬曆 23년)에 주지번은 당시 회시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예부우시랑(礼部右侍郎)으로 관직을 시작한다.
유교는 물론이고 불경까지 통달했던 주지번은 초굉(焦竤), 황휘(黃輝)와 더불어 3대 학자로 불릴 만큼 빼어난 실력을 선보였고,
1606년에는 다른 신분으로 그의 평생의 은인인 송영구가 사는 나라를 찾은 것이다.
만력제가 황태손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보낸 사신단의 정사로 온 주지번의 존재는 당시 조정에서도 큰 화두였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을 보면 주지번이 정사로 선정된 후 조정에서는 그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법도를 따라 그가 한양에 머무는 시간에는 여성들의 외출을 금해야 예의에 맞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간다.
▲ 전주 객사 풍패지관 편액 역시 주지번에 쓴 글로 풍패는 한고조 유방이 태어난 고장이라는 뜻이다.
전주가 조선의 개국집안인 이씨집안의 탄생지라는 뜻
하지만 조선에 도착한 후 주지번은 다른 무엇보다 일행을 쉬게 하고, 소박한 차림으로 송영구의 고향 완주에 내려온다.
하지만 정작 그가 만나려한 송영구는 당시 청풍(지금의 충북 제천)에 군수로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는 은인 고향 사람의 요청으로 전주 객사에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는 편액을,
송영구의 고향인 익산에는 망모당(望慕堂)이라는 편액도 남긴다
(신광철의 역사산책 http://blog.naver.com/shinc050 참고).
주지번의 한양에서의 활동도 다양했다.
선조에게는 직접 12화첩의 난죽석도((蘭竹石圖)를 선물하고,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탄 영은문(迎恩門)의 재건시 편액도 써준다.
영은문은 나중에 사대의 느낌으로 인해 철거되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는데,
그 편액은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인적인 교류도 활발해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와 교류한다.
이후 허균과는 지속적으로 서신을 왕래하고, 허난설헌의 문장이 중국에 유명해진 것도 주지번의 영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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