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 선거구 획정으로 '벼락치기'한 탓이라지만⋯
당선 후도 숟가락 얹기 지속 "판단은 시민이 할 것"
한기호(춘천·철원·화천·양구 을) 국민의힘 의원이 2020년 제21대 총선 당시 내건 춘천과 관련한 선거 공약에 대해 지역 사회에서는 ‘실망스럽다’는 평이다. 대부분 공약이 이미 춘천시가 추진 중이던 사업에 ‘숟가락 얹기’ 하거나 선거 때마다 나오던 말들을 ‘재탕’한 수준이다.
한 의원은 당시 지역구에 총 35개 공약을 내걸었고 이 가운데 8개(23%)가 춘천과 관련한 공약이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춘천을 위해 직접 발굴해 내건 ‘한기호 표’ 공약은 찾을 수 없다. 나머지는 27개 공약은 국정 또는 접경지인 철원, 화천, 양구 관련이었다.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허영(춘천·철원·화천·양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허 의원은 당시 21개 공약 가운데 10개(48%)가 춘천을 위한 공약이었다. ‘춘천 물 규제 혁신’ ‘춘천호수국가정원 조성’을 비롯해 허 의원이 직접 발굴해 좋은 반응을 얻은 공약도 상당수다.
본적 원인은 기형적 선거구 획정이다. 허 의원이 춘천시 출마를 계획하고 지역구 관리에 힘써 오던 동안, 한 의원은 철원·화천·양구·인제의 2선 국회의원이었다. 그러다 21대 총선을 불과 37일 앞둔 시점에 춘천·철원·화천·양구을 선거구가 탄생하면서 한 의원의 선거구에 춘천 강북 일부 지역이 포함됐다. 한 의원은 벼락치기로 춘천 공약을 욱여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춘천-속초 고속화철도 예산 소관 상임위는 한 의원이 소속된 국방위가 아니라 허 의원이 속한 국토교통위원회이다. 허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국가 예산을 심의하는 역할이 있으니 관련이 없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해당 상임위가 국토위라 우리가 연관성이 더 깊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대로 국방위 소속이 아닌 의원이 지역구 관련 국방 예산을 따왔을 때 주도적으로 했다고 얘기하기엔 어색하지 않느냐. 이에 대한 판단은 시민들께서 해주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국회의원들이 공약을 대할 때 지역민들로부터 고용됐다는 의미의 '고용계약서'라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며 "국회의원은 당 실세가 아니라 지역민 줄에 서야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공약 실현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⑤ “내가 하면 내 공약?” 한기호 8대 춘천 공약 점검
8건 모두 국책·지자체 사업과 연계된 것 위주
“생색은 의원이 내고, 부담은 지자체에 미뤄”
“춘천시가 공모사업에 참여해 뽑힌 겁니다. 사업 준비 과정에서 한기호 의원의 역할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춘천시 공무원)
한기호 의원은 자신의 임기 전반 2년 성과와 관련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제출한 공약 이행 현황 자료에 ‘우두동, 반다비 국민체육센터 건립(이행 완료)’이라고 적었다. 공약 취지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춘천 강북지역 문화시설 건립으로 지역주민 복지 증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이 사업은 춘천시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생활밀착형 국민체육시설 확충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된 결과다. 21대 총선(2020년) 한 해 전인 2019년부터 추진됐으니 한 의원 공약과 전혀 무관한 사업이라는 의미다.
설립 취지도 한 의원 측이 자료로 제출한 강북지역 주민 복지 증진이 아니다. 시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체육센터를 건립해 사회적 약자 배려와 균형적인 체육 발전을 도모하자'는 목적이 적혀 있다.
한 의원이 21대 총선에서 내세운 선거 공약과 공약 이행의 성과로 내세운 사업들 상당수가 이런 식이다. 반다비 국민체육센터 사업을 맡았던 시 공무원은 “시가 공모사업에 참여해 사업을 기획하고 설명해 뽑힌 것뿐”이라며 “(선정 과정에서) 한 의원의 도움이 있었는지는 실무자 선에서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담당공무원이 노력해 얻은 성과를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생색낸 셈이다.
춘천시에 따르면 102보충대 주차장 부지를 동물복지센터로 건립하는 사업은 2019년 7월 확정됐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찬반투표까지 거쳤고, 선거 전에 이미 착공에 들어갔다. 더군다나 이 사업은 최초 허 의원이 강원도당 위원장 시절 시의원과 청와대를 직접 방문해 요청하면서 공론화됐다. 시가 직접 관여하고, 주민들과 협의해 결정했을 뿐, 한 의원과는 무관하다.
의암호 관광 순환벨트 조성 추진도 민선 6기 때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2018년 최동용 전 춘천시장이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순환 벨트'라는 용어도 당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공약들도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재탕·삼탕’ 공약이 대부분이었다. 서면대교 및 소양8교 건설, 제2경춘국도 노선 선정 및 조기 착공, 춘천~철원 고속도로 건설 추진 등 대부분 10여 년 전부터 국책 사업이나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된 SOC 사업이다. 이 사업들은 여야 후보가 모두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21대 총선 당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온 시점이었다. 한 의원은 새로운 내용이나 구체적인 계획 없이 '조기 착공', 'SOC 확충', '도로 건설' 등 단어만 추가해 자신의 공약으로 내세웠다.
버스노선 원상 복귀 공약도 시와 시의회에서 이미 추진하고 있던 현안이었다. 수년째 공전을 거듭하면서 시가 주도적으로 사안을 관리하다 최근 준공영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한 의원의 의견이나 관여한 사실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선거 때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숟가락 얹기식이나 재탕 공약이 무책임한 정치의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한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전부터 추진되던 사업들에 대해서도 공약을 내걸 수 있지만 그러려면 지연되거나 앞선 의원들의 공약 이행이 잘 안된 부분에 대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맞는다”며 ”(한 의원의 춘천 관련 공약에는) 이런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있고, ‘내가 하면 내 것’이라는 식이어서 제대로 된 공약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의원뿐 아니라 의원실에 공약 이행 정보를 달라고 하면 지자체 담당자 연락처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의원실에서 현안 파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며 ”공약을 낼 때나 이행됐을 때 생색은 의원이 내고, 부담은 지방정부에 미루는 사례가 많다”고 덧붙였다.
본지는 한 의원의 춘천과 관련한 공약과 이행 성과가 미진하다는 지적에 대해 한 의원 측 입장과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번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⑥ 지역 정치인이 본 한기호⋯"선거구 핑계는 그만"
지역 광역·기초의원 간 의견 분분
허영 춘천갑 의원 긍정평가 높아한기호 춘천을 의원은 부정평가↑
“한기호 의원은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로 (춘천에서) 활동이 미미했다. 지역구가 그렇게 되다 보니 의원도 주민도 손해였다.”
윤민섭(정의당) 춘천시의원은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춘천·철원·화천·양구 을)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윤 의원은 한 의원이나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춘천·철원·화천·양구 갑) 등 춘천을 지역구로 둔 두 국회의원 모두와 다른 정당에 속해 있다. 그는 “(한 의원이) 기형적인 선거구로 지역을 챙기는 데 문제가 있었지만, 춘천의 현안에 대한 목소리 정도는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이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MS투데이가 만난 춘천지역 여야 기초·광역의원들은 기형적 선거구제와 지역 안 챙기는 국회의원을 지적한 본지의 연속 보도에 공감하고 있었다. 본지는 이들에게 한기호(춘천·철원·화천·양구을) 국민의힘 의원과 허영(춘천·철원·화천·양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지역구 관련 활동 중심으로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역구에 소홀한 국회의원은 기형적 선거구가 일차적 책임이긴 하지만, 그것이 당선 이후의 소홀한 의정활동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다”는 의견이었다.
한 의원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던 윤민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허 의원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허 의원이 지역 현장에서 지역구 이점이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많이 보인 건 사실이고 국비 확보 등 의정활동도 열심히 하는 것 같다”며 “다만 개혁적인 입법 활동과 지역 현안 등에 대해서는 여야와 정파를 넘어서서 의견을 많이 나눠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고 평가했다.
야당 소속 의원들은 한 의원의 춘천 지역구 활동이 허 의원과 비교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A 의원은 한 의원에 대해 “춘천에서 별로 뵌 적이 없어서 다음 총선에는 출마를 안 하는 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의원과 같은 지역구를 둔 일부 시의원들이 소통의 어려움 등 고충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허 의원에 대해서는 “일을 열심히 해도 너무 열심히 한다”며 ”특히 지역을 너무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다른 지역구인 B 의원(야당)은 한 의원에 대해 “지역에 숙원사업이 있는데 지역 국회의원과 소통이 안 되다 보니 대신해 당의 지역위원장과 국회를 방문하는 등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허 의원에 대해서는 ”지역구가 다른데도 춘천의 현안 해결을 위해 항상 함께 의논하고 고민해준다”며 “서면대교 건설 설계비 확보 등 본인 지역구가 아님에도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내년에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춘천·철원·화천·양구을 선거구에 출마를 조율 중인 유력정치인 C 씨는 “춘천 국회의원이 뭐 하는지 모르겠다. 지역구 관리 소홀에 대해 기형 선거구 등 핑계는 이제 설득력이 없다”고 촌평했다. 이어 “허영 의원은 일부 공약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역구 활동은 활발하다”며 “최근 한기호 의원의 지역구인 철원을 방문해 보니 공약 이행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 의원과 같은 당에 속한 의원들은 한 의원에 대해 “지역구가 넓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춘천을 위해 노력했다”는 취지로 반박한다. 국민의힘 소속인 D 의원은 “한 의원은 역대 그 어떤 춘천시장들도 신경 쓰지 않은 북산면 조교리 등에 현안도 다 파악하는 등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며 “북산면 내평리와 조교리를 잇는 교량 건설 계획을 세운 것도 한 의원이다. 소양 8교 등 주민들의 불편 해소를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대로 허 의원에 대해서는 “GTX-B 등 허 의원이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열심히 하는 부분은 인정한다”며 “최근에서야 총선을 앞두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지 지난 몇 년은 지역에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시민들의 평가다. 스킨십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지역 정치권에서는 기형적인 선거구에 대해 어떻게든 손을 봐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지난 제21대 총선에서 '기형 선거구' 탄생의 희생양으로 복합 선거구가 되며, 부작용은 물론 광범위한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4월 10일)을 앞두고 여야 국회의원 121명으로 구성된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이 공식 출범했다. 강원도정치권의 경우 국민의힘에선 유상범(홍천·횡성·영월·평창) 의원 1명만 동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허영(춘천·철원·화천·양구갑)·송기헌(원주을) 의원 등 도내 당 소속 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렸다. C 씨 역시 본지 인터뷰에서 “단독 분구만이 고질적인 국회의원의 춘천 소홀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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