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보다는 관산 탁족, 즐풍과 거풍
옛사람들의 산행은 정상 정복이 목표가 아니었다.
정도껏 올라 능선에 기대 산봉우리를 감상하는 걸 즐겼다. 관산이다
그러다 땀이 흐르면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이른바 선비들의 피서법, 탁족(濯足)이다.
체통 있는 선비들이 웃통을 벗어젖힐 순 없고 발만 물에 담가 더위를 쫓았다.
탁족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발을 씻는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는
맹자(孟子)의 굴원(屈原)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옳지 못한 것에 물들지 않는다는 의지 표현이다.
오늘날 그 뜻은 사라지고 그저 더위 쫓기로만 전락한 탁족이다.
드물었지만 ‘즐풍(櫛風)’과 ‘거풍(擧風)’도 있다.
즐풍은 상투를 풀어헤쳐 머리카락을 바람에 말리는 것이다.
장자 ‘천하(天下)’장에 나오는 말로,
우(禹)임금이 거센 바람에 빗질하고(櫛疾風)
퍼붓는 빗물로 목욕하며(沐甚雨) 홍수를 다스렸다는 고사다.
몸을 돌보지 않고 국사에 전념한다는 뜻의 사자성어
‘즐풍목우(櫛風沐雨)’가 거기서 나왔다.
시원하게 머리도 빗으면서 즐풍목우 정신을 되새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바람도 가렸다. 북풍이나 서풍은 안되고 오로지 동남풍이어야 했다.
그래서 동남풍이 부는 날 즐풍을 위한 산행을 했다.
거풍이란 원래 서울의 춘추관과 지방의 외사고에 있는
‘실록(實錄)’ 책을 주기적으로 꺼내 말리는 ‘포사(曝史)’ 행사를 말한다.
산 정상의 거풍은 바지를 내리고 하늘을 보고 누워
실록만큼이나 중요한 남근에 햇볕을 쬐는 행위다.
체면에 얽매였던 사대부들의 유쾌한 일탈이자,
정상을 정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보상이며,
보다 하늘 가까운 순정한 태양의 양기를 받는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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