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복면가왕

이규섭 시인 /춘천교차로 18.06.22 12:03:28

 



어머니의 날씨 예보는 신통방통 잘 맞았다.

몸이 무겁고 찌뿌둥하면 “비가 오려나 보다”했고 비는 어김없이 내렸다.

기상 관측 방법도 다양하다. 저녁연기가 낮게 깔리거나 제비가 낮게 날면 비를 예견했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내일은 맑고 무덥겠다.”고 전망했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예측이다.

저기압으로 구름이 잔뜩 끼면 혈액이 무거워져 순환이 잘 되지 않아 몸이 찌뿌둥해진다.

저기압에 공기가 무거워지니 저녁연기는 낮게 깔리고 제비의 비행도 낮아진다.

 

우리나라는 중위도 지역으로 연중 편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저기압과 고기압 등 기상 현상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인다.

 

서녘 노을은 날씨를 예측할 수 있지만 동쪽 하늘은 날씨와 연관 지을 수 없다.

어머니의 날씨 예측은 조상들의 체험적 바탕에서 터득한 생활의 지혜다. 


기상 예보 방법도 변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 1호 기상캐스터 김동완 통보관은 날씨를 이해하기 쉽게

기상도를 손으로 그려가며 예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불쾌지수가 높으면 “감정 관리에 각별히 유념하시라”는 멘트를 날린 것도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다.

 

요즘은 대부분 여성 기상캐스터가 몸에 딱 붙은 옷을 입고 나와 시선을 끈다.

벨기에 TV에선 만화 캐릭터가 날씨 예보하는 걸 보았다.

재미있고 인건비도 절약되겠구나 싶었다. 


날씨의 관심도 달라졌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자외선 지수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

눈을 뜨자마자 미세먼지 기준치까지 확인한 뒤 아침 운동을 나갈까 말까 결정한다.

 

미세먼지가 보통 수준에서 약간 나쁜 수준으로 떨어져도 대부분 나간다.

근린공원엔 숲이 있으니 인근 관측소 보다 공기가 좋을 것이라는 자의적 판단에서다.

 

800여m 둘레를 돌다 보면 도로 쪽 보다 숲이 있는 언덕 쪽 하늘이 더 투명하다.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프랑스 파리 보다 두 배 많고

미국 LA보다 1.3배 높은 것으로 드러나 갈수록 신경 쓰인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때는 외출을 자제해야 하고

바깥 활동 때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는 것은 상식이 된지 오래다. 


비 그친 다음 날 미세먼지를 체크 해보니 초미세먼지까지 ‘좋음’이다.

근린공원의 하늘은 가을하늘을 닮았다. 공기는 달고 상큼하다.

녹색 잎 새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은 찰랑찰랑 눈부시다. 

 

이런 날에도 마스크를 끼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천식이나 감기 때문이려니 이해하려다가도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챙이 넓은 투명 모자로 얼굴을 가린 것도 모자라 오리주둥이 같은

이상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모습은 꼴불견이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음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스타도 아닌데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마스크는 말 그대로 입과 코를 가리는 데 쓴다.

스페인에서는 얼굴을 가린 마스크를 쓰면 피부병이나 나병환자 취급을 한다고 들었다.

 

 오스트리아는 공공장소에서 부르카를 비롯하여 얼굴을 가리는 복장을 법으로 금지한다.

아무리 제 잘난 멋에 산다지만 보는 이들이 혐오감을 느낀다면 삼가 하는 것이 미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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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좋은 날 마스크 낀 사람 혐오스럽다는 시인

[주장] 이규섭 시인의 칼럼 '거리의 복면가왕'은 왜 문제인가

 

오마이뉴스 18.06.24 19:14

 

 

지난 22일, 출장 차 들른 춘천에서 일을 마치고 용산으로 가는 itx청춘열차를 타기 전

잠시 남춘천역 근처 카페에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필자는 출장길을 여행길이라 생각해 지방으로 출장을 가면

숙소 근처를 충분히 둘러보고, 지역 신문을 꼭 읽어보려고 한다.  


다행히 카페 테이블 위에 6월 22일자 춘천 '교차로'가 놓여 있어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는 춘천 지역의 소식이 궁금해 펼쳐보았다.

 

그러나 고작 3페이지까지밖에 읽지를 못했다. 지면을 대표하는 칼럼에

이 시대의 커다란 문제 중 하나인 '혐오'를 조장하는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 생활정보, 구인구직, 아파트/주택 등의 정보가 나열된 '빠른 지면 안내' 다음 페이지에

 '거리의 복면가왕'이라는 제목의 '아름다운 사회 칼럼'이 실려 있었다.

글쓴이는 언론인회 편집위원인 이규섭 시인.

"어머니의 날씨 예보는 신통방통 잘 맞았다"로 시작된 칼럼은 

시민들의 달라진 날씨에 대한 관심을 소개하며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프랑스 파리보다 두 배 많다며 외출할 때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는 것은 상식이 된 지 오래"라며 환경에 따라 달라진 '상식'에 대해 썼다.

그런데 총 7문단의 이 짧은 글에서 가장 길게 쓰여진 마지막 문단은

그의 주장과는 달리 '상식'적이지 않았다.

 

비가 그친 다음 날 "이런 날에도 마스크를 끼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천식이나 감기 때문이려니 이해하려다가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로 시작하는 이 문단은

그의 말처럼 필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아니, 갸우뚱을 넘어 45도로 꺾인 고개가 똑바로 서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갑자기 "챙이 넓은 투명 모자로 얼굴을 가린 것도 모자라

 오리주둥이 같은 이상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모습은 꼴불견"이라고 각설한다.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주장을 이어 나간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음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스타도 아닌데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패션 아이템으로 사용한 지도 꽤 됐는데 글쓴이는

이 같은 현상은 모르면서 복면가왕만 챙겨보는 모양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는 스페인에서는 마스크를 쓰면 "피부병이나 나병환자 취급"을 한다면

개인의 취향이나 건강권에 따라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을 '환자' 취급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복장을 법으로 금지"한다며

마스크 쓴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하기에 이른다.

 

이 정도 불편함이면 잠 잘 때 잠옷 안 입는 사람, 등산 갈 때 등산복 안 입는 사람,

명절에 한복 안 입는 사람들도 '환자' 취급하고, '범죄자' 취급 할 기세이다.

 더욱이 마지막 문장은 압권이다.

"아무리 제 잘난 멋에 산다지만 보는 이들이 혐오감을 느낀다면 삼가 하는 것이 미덕 아닐까."

날씨 좋은 날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이 어떻게 '아름답고 갸륵한 덕행(미덕의 뜻)'이 될 수 있느냐는 차치하고

이 글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바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홍성수 교수가 강조한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말들"이

 "별다른 제지 없이 발화된다면 어느 순간 사실로 굳어지게" 되는 문제이다.

다행히?! 이 글은 "제 잘난 멋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특정 소수자 집단'을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날씨 좋은 날 마스크 쓰는 사람들을 '환자'나 '범죄자' 취급하고,

이들에게 느끼는 자신의 '혐오'를 '아름다운 사회 칼럼'이라며 떳떳하게 세상에 소개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지를 소개한 책 <혐오사회 Gegen den hass>에서

저자인 카롤린 엠케Caroline Emcke는 "증오는 언제나 위 또는 아래로, 어쨌든 수직의 시선축을 따라 움직이며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이나 '저 아랫것들'을 향한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 것'을 억압하거나 위협하는 '타자'라는 범주"라고 썼다.

문제의 칼럼 '거리의 복면가왕'에서 '자기 것'은 이 사회의 '미덕'이고,

날씨 좋은 날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은 글쓴이의 기분을 불편하는 것을 넘어,

이 사회의 미덕을 해치려는 '타자'가 되었다.

글쓴이는 특정 소수자 집단을 혐오하지는 않았지만,

'거리의 복면가왕'은 우리 사회에서 문제시되는

 '여성 혐오' '동성애자 혐오' '장애인 혐오'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불편함을 끝까지 쫓아가보지 않고, 그저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멸시하고 적대시하고 혐오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공모되는 것"이다.

 

근거 없는 혐오 가득한 칼럼이 춘천의 거리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교차로의 대표칼럼으로 게재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불과 10여일 전 막을 내린 지방선거 기간에는 박훈 변호사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벽보를 보고

 "개시건방진" 벽보라며 "찢어버리고"싶다고 본인의 페이스북에 쓴 뒤,

거센 비판을 받자 사과문을 쓴 바 있다.

필자는 이 사회의 미덕이 무엇인지는 차츰 알아가고 있으나,

이 사회에서 혐오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는 비교적 잘 느껴진다. 

 

그리고 고작 마스크 쓴 사람들조차 혐오하며 사회의 혐오를 조장하는

이규섭 시인과 춘천교차로신문사에 해당 칼럼에 대한 사과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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