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풀로 뒤덮인 논밭, 일부러 그런 거랍니다

 초짜의 자연농 소개①

 

시골로 왔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먹을거리를 자급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전부는 어렵더라도 조금이나마 직접 키워 먹어보려고 계속 농사를 배우고 있다. 우리가 하는 농사는 관행농(기계화학농)도, 유기농도 아니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라는 사람이 처음 시작하였고 가와구치 요시카즈 등이 발전시켜 일본에서는 나름 많은 사람이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 '자연농'이라 불리는 방식이다.

해외에서 퍼머컬처(Permaculture, '영속적인'이라는 의미의 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를 합쳐서 만든 말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꿈꾸는 농사와 삶의 방식)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후쿠오카 마사노부와 그 저서가 꽤 유명하다. 요즘 국내에서 퍼머컬처를 배우고 실천하는 분도 많아지고 있는데 우리가 배우는 자연농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는 농사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농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현 체제에서 대량생산이 어려운 이런 방식으로 농민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우리도 여전히 많은 먹을거리를 다른 농민들이 키워낸 농산물에 의지하고 있다. 땅에서 먹을거리를 길러내는 모든 이를 존중하고 존경한다.

오랜 농사의 상식을 깬 '자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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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실 자연농이란 단순히 농사 방법이라기보다는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인가를 포함하여 지구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삶의 태도다. 내가 지금까지 배우면서 느낀 자연농의 핵심은 인간이 감히 자연의 이치를 다 알 수 없다고 보고 섣불리 무언가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여러 가지 특징으로 나타나는데 첫째로 땅을 갈지 않는다. 이게 자연농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땅을 갈아 농사짓는 방법은 그 시작을 알기가 어려울 만큼 오래되었다. 적어도 천년 이상 인류 농사와 함께 해온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이어온 농사의 상식을 깼다.

 


손모내기 개구리님 자연농 논에서 여럿이 함께 손모내기하는 장면

▲ 손모내기 개구리님 자연농

 

 

논에서 여럿이 함께 손모내기하는 장면 둘째로 밖에서 뭔가를 가져다 넣지 않는다. 한자어로 무투입이다. 쉽게 말해 비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화학비료뿐 아니라 유기농에서 쓰는 친환경비료나 퇴비도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밭에 풀(흔히 잡초라고 하는 작물이 아닌 풀)이 나면 뽑거나 베어서 그 자리에 둠으로써 땅으로 돌아가게 한다. 논 같은 경우에는 쌀을 수확하고 남은 볏짚을 논에 다 돌려준다.

그밖에 대량의 퇴비가 아닌 그 논밭에서 난 것을 먹고 우리 가족이 눈 똥오줌이라든지, 논둑, 밭둑에 잔뜩 자란 풀을 베어 밭에 주는 등 인간이 없더라도 자연에서 본래 일어나는 과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땅을 기름지게 해나간다.

실제로 땅을 갈지 않는 상태로 이 과정을 반복하면, 외부에서 다량의 비료나 퇴비를 넣지 않고도, 매년 작물을 재배하여 수확물을 먹으면서도 조금씩 땅이 더 비옥해진다는 것이 자연농 선배들의 경험이고 가르침이다.

풀과 벌레는 적이 아니다

셋째로 풀과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처음 자연농을 제안한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정말로 인간의 손을 대지 않는 방향을 추구하였다 한다. 그는 점토단자(영어로는 Seed ball 또는 Seed bomb이라 부른다)라고 하여 씨앗을 진흙 속에 넣고 뭉친 것을 뿌렸다.

다양한 씨앗을 섞어 넣은 점토단자를 숲 여기저기에 뿌려두고 여러 씨앗 중에 그곳 환경에 가장 적합해서 다른 씨앗과 야생풀들을 이기고 자라나 열매를 맺는 녀석이 있으면 먹었다고 한다. 그 외에는 사람이 뿌리지 않아도 야생에서 자라는 것들을 주로 먹었다. 농사보단 채집에 가까운 방식이다.

다만 우리는 그 정도로 모험을 하긴 어렵고, 한정된 밭에서 안정적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싶기 때문에 가와구치 등이 했던 비교적 생산이 보장되는 방법을 배운다. 그래서 우리는 키우고자 하는 작물을 돕기 위해 풀도 베고 때로는 벌레를 잡기도 한다. 작물은 야생성을 잃은 녀석들이 많아 야생 들풀들과 경쟁하면 거의 이길 수가 없다. 따라서 그 작물을 먹고 싶은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붉은땅콩 우리 밭에서 잘 자라고 있는 토종 붉은땅콩

▲ 붉은땅콩 우리 밭에서 잘 자라고 있는 토종 붉은땅콩

 

 

그럼에도 풀과 벌레와 싸우지 않는 농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풀과 벌레를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풀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농사와 크게 관계없는 곳이라도 풀이 나있으면 당장 약을 치거나 뽑아버린다. 작물이 아닌 풀이 나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고 풀을 내버려두는 사람이 있으면 나무란다. 밭에는 비닐을 덮고 약을 쳐서 풀과 벌레를 없앤다.

우리는 작물 근처에서 작물을 직접 방해하는 풀 정도만 베어 거기에 그대로 덮어준다. 자연농 논밭은 온통 풀로 덮여있다. 살아있는 풀과 죽은 풀로 모두 덮어 맨땅, 흙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최대한 없게 한다. 이렇게 되면 흙이 바람에 날려 유실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고, 흙에서 수분이 증발하는 것도 막아 흙이 습기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 또한 그 안에서 벌레와 작은 동물도 살아갈 수 있다.

땅을 갈지 않음으로써 그 속에 살고 있는 작은 동물과 미생물이 계속 살 수 있게 한다. 그 생명들이 살아서 활동함으로써 땅이 점점 비옥해진다. 땅을 갈면 지렁이고 뭐고 다 죽는다. 그래서 갈았을 때 당장은 흙이 부드럽지만 해가 갈수록 땅이 점점 딱딱해진다. 갈지 않고 풀이 그 위에서 나고 죽고 그것들이 쌓이게 두면 점점 더 부드럽고 푹신푹신한 흙층이 두텁게 생겨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천천히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비옥한 땅이 되는 것이다.

비료나 퇴비를 잔뜩 쌓아놓고 주면 먹이가 많으니 특정 벌레가 잔뜩 꼬이고 번식하기 마련이다. 또 어느 벌레가 문제라고 해서 약을 치면 그 벌레뿐 아니라 여러 다른 생명들도 함께 죽는다. 그렇게 한 벌레를 잡으면 또 다른 벌레가 생겼을 때 천적이 없을 수도 있고 그러므로 여러 문제가 생긴다.

본래 자연 생태계는 수없이 많은 동식물이 얽혀있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는 어느 한 벌레만 대량으로 증식하는 일은 웬만해선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이 생태계를 건드리니까 한 문제를 해결했나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해서 자꾸만 이 비료 주고 저 비료 주고, 이 약 치고 저 약 치고 하는 일거리가 생겨나는 게 아닐까? 환경은 환경대로 파괴되고 말이다.

인간은 자연의 원리를 감히 다 알 수 없다

이런저런 효과나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핵심은 역시 위에서 말한 생태계나 자연의 원리에 대해 인간이 감히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농을 하는 우리 역시 인간의 지혜로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어느 방법이 좋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원래 자연에서 벌어지는 생명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최대한 적어야한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인간이 이성적으로 이 생명활동들을 속속들이 다 알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하고 위험한 생각이라고 본다.
이렇게 해서 농사 잘 짓고 있느냐고 한다면 아직 초짜인 데다 게으르기까지 한 탓에 뭘 많이 수확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른 변명을 하자면 자연농으로 바꾼 게 올해 2년차인 밭이라 비료 없이 뭐가 많이 나올 만큼 거름기가 충분하지 않다. 자연농은 갈수록 땅이 좋아지게 하는 방법이라 시간이 필요하다.

또 다른 변명거리는 우리가 농사짓는 밭이 논으로 쓰던 땅이라 습하다는 것이다. 봄은 봄대로 가뭄이 심해서 문제지만 일단 장마가 오기 시작하면 물이 잘 안 빠진다. 밭에서 자라는 작물은 보통 물이 고여 있는 걸 싫어한다. 그렇지만 역시 꾸준히 가서 돌보아주지 못한 게 가장 크다. 특히 작물이 어릴 때는 옆에 난 야생풀에 밀려 죽거나 성장이 멈추지 않도록 잘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걸 성실하게 해주지 못했다.

욕심이 많아서 이 작물 저 작물 심고 싶은 것은 많은데 능력이 모자라 큰일이다. 심기는 심는데 거두지 못하는 것도 많고 시기를 놓쳐 심지도 못한 것도 있다. 뭘 많이 못해줘도 꿋꿋이 잘 커서 열매도 잔뜩 달린 딸기가 고마울 뿐이다. 땅콩도 다른 작물에 비해 까다롭지 않게 잘 자라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씨앗부터 직접 키우는 토마토는 참말 까다롭다. 모종을 사다 심은 이웃의 토마토는 곧 토마토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리 토마토는 아직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만큼 작다.

당분간은 이렇게 다양한 작물을 심고 키워보면서 어떤 녀석들이 우리에게 맞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하나하나 우리가 평생 함께할 친구들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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