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덕숭산(수덕산) 산행기

0 산행일자 : 2003. 1. 11(일)
0 산행코스 : 둔리1구~둔리고개~정상~견성암~주차장
0 산행시간 : 3시간
0 날씨 : 쾌청

(산행시간)
11:15 둔리입구 팔각정
11:35 149.6봉
11:45 둔리고개
12:00 안내판
12:30 덕숭산(495m)
13:45 삼거리
14:00 수덕사
14:30 주차장

(산행기)

07:00 태백가든
새해 첫 정기산행
무사산행의 바램을 안고
새벽 공기 속으로 버스는 떠난다

11:15 둔리1구 팔각정
벌판에 놓여진 팔각정
낯선이 들에게 보여주는 경고문
폐쇄등산로
철조망이 있어 통과 불가라는데..
순간 혼란이 온다

계곡 등산로를 포기하고
마을입구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능선을 찾는다

11:20 산행시작
마지막 농가 밭머리
낯선 길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무조건 오른다

11:35 149.6봉
참나무가 가득한 작은 오름
안부에서 대열을 정비하고
좌측 능선을 따라간다
삼각점을 지나고..

11:40 185봉
소나무가 가득한 능선
이어서 소나무 숲길로 보이는 희미한 길
추수가 끝난 밭머리를 지난다

11:45 둔리고개
작은 계곡을 건너면 급경사가 시작되고
좌우를 내려다보는 전망은 일품이다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는 곳

12:15 395봉
사방이 밝아지는 작은 봉우리
건너편으로 원효봉 산행들머리가 보이고
소나무 숲속에서 휴식
아무래도 폐쇄등산로는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12:00 안내판
정상 1060m, 둔리 870m
소나무가 가득한 능선을 지나면
된비알
빤히 올려다 뵈는 능선이 숨차다
묘지에서 휴식

12:15 첫 번째 봉우리
바로 앞 원효봉 능선 속살이 다 보이고
그 앞 가야산 가사봉 위엔 군사시설물이 지키고
좌측 용봉저수지가 연못만하게 보이는 곳
동쪽 건너편으로
수암산이 납작하게 엎드린 채 용봉산까지 이어지는데
비알은 계속된다

12:30 덕숭산(495m)
차령산맥의 낙맥이 만들어 낸 덕숭산
북으로 가야산, 서로 오서산, 동에는 용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쌓인 중심부에 우뚝 서있다.
덕숭산은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낮은 구릉과 평탄한 들녘이 서로 이어지며,
계곡이 골마다 흘러내려서 옛부터 이 곳을 충남의 소금강이라고 일컬어 왔다.

정상 바로 아래 공터마다 점심을 채린다
수덕사 주차장엔 자동차만 가득한데..
남연군묘를 품은 명당 가야산이 바로 앞
/13:10 출발

13:35 415봉
정혜암 방향에서 등산객은 계속 오르지만
우리는 날등을 따라 하산하기로 한다

큰 바위들이 늘어선 상쾌한 능선
사방이 보이는 전망바위

13:45 삼거리
커다란 바위가 서있는 바위 우측으로
비탈을 내려가면 삼거리
다시 왼쪽으로 휘어
산허리를 따라 숲속을 돌아간다

13:55 견성암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선방
옛것은 사라지고 새로 지은 건물만 가득한데
겨울채비를 위한 장작쌓기가 한창이다

만공 월면선사께서 쓰신 견성암 현판만 걸려있고
여승은 보이지도 않는데..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 삼거리

14:00 수덕사
이젠 조용한 산사가 아닌 듯
새로 지어진 건물만 가득 차지하고

“선지종찰 수덕사” 글씨해독 하느라 갸우뚱
원담스님 글씨가 걸린 대웅전

수덕사는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승격된 후
1984년에 종합수도장을 겸비한 덕숭총림으로 승격되었다.
우리나라 조계종 사찰에서 총림으로 지정된 곳은
수덕사,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백양사" 5개의 사찰이 있으며,
각 총림에는 총림의 어른이신 방장스님이 있다.
덕숭총림 수덕사에는 국보 제49호인 대웅전과
보물 제1263호인 괘불과 고려시대의 석탑인 삼층석탑이 있다

14:30 주차장
수덕사 입구에 놓인 초가한 채 수덕여관
파혜쳐진 도로를 따라 상가를 지나
주차장에서 가볍게 산행을 접는다

17:00 온천장 출발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그리고 춘천으로

예산의 수덕사

문헌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없지만,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때 고승 지명이 처음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수덕사의 대웅전은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봉정사 극락전(鳳停寺極樂殿 국보 제15호)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국보 제18호)에 이어 오래된 건축물로서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과 3층 석탑(충남유형문화재 제103호)
ⓒ (주)CPN문화재방송국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柱心包) 건물로 외관의 부재가 크고 굵어 안정감이 있어 보이고,

측면에 풍판이 없어 포 조각이 그대로 드러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물 중 특이하게 백제적인 곡선을 보이는 목조건축으로 단청을 하지 않아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부재들이 이루는 조화와 곡선미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특히 더 세련된 느낌을 준다.

수덕사의 가람배치는 세월에 따라 중심법당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변화하였고,

현재 대웅전 외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보물 제1263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381호)등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원래는 대웅전 앞에 나란히 있다가 위치를 옮긴 3층석탑(충남유형문화재 제103호),

7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 제181호), 수덕사유물(거문고, 충남문화재자료 192),

수덕사 소장 소조불상좌상(충남문화재자료 384) 등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 수덕사 대웅전 내부
ⓒ (주)CPN문화재방송국

▲ 대웅전 측면
ⓒ (주)CPN문화재방송국

사찰을 둘러보던 중 대웅전 왼편으로 큰 바위와 그 틈에 비집고 자란 꽃나무가 눈에 띄었는데,

여기에는 수덕사 창건과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도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 <덕산향토지>(德山鄕土誌)에 실린 내용

▲ 수덕사 관음바위 수덕도령과 덕숭낭자의 전설이 얽혀있는 바위
ⓒ (주)CPN문화재방송국

자료들에 나오는 이야기는 조금씩의 차이가 있으나 이렇게 수덕사가 지어지게 되었고,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여 절을 크게 중창하여 바위 속으로 사라진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소문이 경향각지에 퍼져 소원을 비는 인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는 바위 앞에 관음상이 봉조되어 있고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바위에 동전을 놓으며 기도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위에서 동전이 떨어지지 않으면 효험이 있다고 믿는 것인지 바위 곳곳에 동전이 얹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풍습도 세월이 흘러 언젠가는 또 수덕사의 재미있는 전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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