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쳔 소요산(587m)

1. 산명/높이 : 소요산 /2001.11.11
2. 위 치 : 경기 동두천시, 포천군 신북면

3. 등산 코스 : 주차장-일주문-자재암-하백운대-상백운대-의상대(정상)-공주봉-구절터-주차장(4시간)

4. 특징/볼거리

화담, 양봉래,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며, 경기도 도립공원과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명산이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의 녹음과 폭포, 계곡, 가을단풍 또한 유별나서 예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부른다.

계곡에는 원효폭포, 청량폭포, 선녀탕등 선경지대가 있으며 신라 무열왕 7년(660)경에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고 하는 자재암이 유명하며,

조선 세조 10년 간행된 반야바라밀다 심경약소 언해본이(보물1211호)이 보관되어 있다. 소요산에는
곳곳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스며있으며.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별궁터,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대, 요석공주를 두고 지은 공주봉 등이 있다

6. 산행길잡이
소요산은 자재암을 가운데 두고 하, 중, 상백운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까지 6개의 봉우리가 말발굽
모양으로 능선으로 펼쳐져 있는데 이 능선을 타고 산행한다. 식수는 자재암 나한굴 옆의 샘에서 미리
준비한다. 자재암에서 하백운대 오르는 길은 대단히 가파르다.

하백운대에서 상백운대 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며, 중간에 전망 좋은 바위, 소나무 그늘이 있다.
상백운대에서 나한대 까지는 바위가 많고 오르락 내리락을 되풀이 한다.
나한대에서 의상봉 까지는 100m이상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급경사길 이다.

의상대에서 30분정도 완만한 능선을 타다가 가파르게 조금만 오르면 공주봉이다.
공주봉에서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구 절터를 지나 일주문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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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소요산(587m)

0 위 치 :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0 코스 : 주차장~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나한대~의상대~공주봉~자재암~주차장
0 일자 : 2009. 11.22(일)
0 시간 : 5시간20분/맑음

<산행시간>

08:30 주차장
08:35 매표소
08:40 의상봉갈림길
09:45 하백운대(440m) /중백운대0.4km, 자재암0.7km,
10:00 중백운대(510m) /상백운대0.5km, 하백운대0.4km
10:05 530봉/중백운대0.3km,상백운대0.3km,덕일봉0.7km,자재암1.3km
10:10 삼거리 /상백운대0.2km, 중백운대0.4km,선녀탕0.7km
10:20 상백운대(559m)/나한대1.2km,중백운대0.2km,선녀탕1.0km
11:10 칼바위
11:15 삼거리 /나한대0.5km,상백운대0.7km,선녀탕0.9km
11:20 삼거리 /나한대0.2km,칼바위0.3km,선녀탕0.6km
11:35 나한대(571m)/의상대0.3km,상백운대1.2km,금송굴0.9km
11:50 의상대(587m)/나한대0.3km,공주봉1.1km
12:15 삼거리/샘터0.5km,일주문1.0km,공주봉0.3km,의상대0.9km
12:25 공주봉(526m) /의상대1.0km,일주문1.0km
12:30 샘터갈림길 /샘터0.5km,구절터1.1km
12:35 돌탑
13:05 삼거리 /공주봉0.9km,일주문0.4km,의상대1.0km
13:20 자재암
13:30 폭포
13:45 일주문
13:50 주차장

포천 왕방산에서 갈라진 두 갈래능선 중 북동쪽 능선은 영중면 영평천까지 이어지고,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국사봉에서 또 두 갈래로 갈라진다.
국사봉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지는 능선은 잠시 새목고개를 지나 수위봉을 경유해,
소요산 칼바위능선이 T자형으로 갈라져 서쪽으로 소요산 정상인 의상대를 솟구친 후
공주봉을 거쳐 신천으로 가라앉는다.

매월당 김시습과 화담 서경덕, 그리고 양사언 선생이 유유자적 노닐었다는
아담한 규모의 산이지만 부챗살 모양의 특이한 산세와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
선경을 방불케 하는 계곡과 만물상을 연출하는 뾰족뾰족한 암봉,
곳곳에 산재한 명소들로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한수 이북 최고의 명산이다.

경원선이 지나는 소요산은 198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고
등산로는 자재암을 중심으로 부채 모양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에 원점회귀산행에 적합하다.

주차장
왼쪽으로 난 오솔길로 올라가면
자재암을 거치치 않고 바로 능선을 따라 하백운대로 갈수 있다.
일주문쪽으로 들어가는 곳은 입장료를 받는다


예상보다 춥지 않아 기분이 상쾌하다
초입의 초겨울의 풍경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올라갈수록 산세는 아기자기해지며 조망이 시원해지기 시작한다.

하백운대(440m)
하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다소 험하기는 하지만
바위와 소나무, 활엽수가 적당하게 어울려 있어 힘든 줄을 모른다
건너편은 나한대, 의상대가 손짓하는 능선이다.
/중백운대0.4km, 자재암0.7km,

중백운대(510m)
하백운대를 지나자 참나무가 울창하다
간간이 나타나는 노송들의 멋진 자태는
바위틈에서 수많은 세월 동안 온갖 시련을 겪어낸 예술품이다

노송군락이 그늘을 드리운 너럭바위 오른쪽으로는 수십 길 절벽이다.
이곳에서는 상백운대가 지척으로 보이고
노송 사이로 의상대 오른쪽 공주봉도 시야에 들어온다.
/상백운대0.5km, 하백운대0.4km

북릉삼거리
덕일봉 방면과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 능선으로 선녀탕 방면과 만나는 안부 삼거리가 나오고,
이후 상백운대~칼바위암릉~나한대를 경유해 의상대로 향한다
/중백운대0.3km,상백운대0.3km,덕일봉0.7km,자재암1.3km

선녀탕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면
/상백운대0.2km, 중백운대0.4km,선녀탕0.7km

상백운대(559m)
하백운대와 중백운대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다면 상백운대는 편안한 육산이다.
육산이 이어지다가 아기자기한 암릉이 나타나기도 한다.
/나한대1.2km,중백운대0.2km,선녀탕1.0km

칼바위 능선
상백운대에서 남릉으로 가면 원판형 푯말에서부터 0.2km까지가 칼바위능선이다.
푯말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날카로운 암릉길이 이어w;는데
작은칼을 수만 개 세워놓은 듯, 뾰족바위들이 촘촘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크고 작은 바위는 나무를 붙잡고 쉽게 넘어설 수 있다.
분재 같은 노송군락들이 하늘을 가려 특이한 풍광을 자아내는 칼바위 능선길
/나한대0.5km,상백운대0.7km,선녀탕0.9km
/나한대0.2km,칼바위0.3km,선녀탕0.6km

나한대(571m)
철봉과 로프를 잡고 차고 가파르게 오르면 공터
안내판이 주저 앉았다. 한 대 맞음이 분명하다.

북쪽으로 전곡과 연천의 너른 들판이 평화롭고
들판너머로 휴전선이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다.

서쪽으로 감악산이 뾰족한 모습을 하고
동쪽에서는 멀리 포천과 가평 사이에 솟은 청계산, 운악산등이 이어진다
/의상대0.3km,상백운대1.2km,금송굴0.9km

의상대(587m)
상백운대에서 나한대 그리고 다시 하강했다가 오르는
의상대까지 코스가 힘은 들지만 멋진 능선길이다

10월 하순이면 단풍인파로 인산인해라는데
남쪽으로 동두천 시내가 내려다 보이고.
동쪽으로는 포천과 가평쪽의 산줄기가 첩첩이다.
/나한대0.3km,공주봉1.1km

삼거리
의상대에서는 평탄한 길을 따라 공주봉까지 곧장 갈 수도 있고
보조로프가 걸린 능선을 따라 금송굴 방면으로 하산하는 길도 있다.
/샘터0.5km,일주문1.0km,공주봉0.3km,의상대0.9km

공주봉(526m)
원효가 요석을 위해 직접 붙여준 공주봉이다
아기자기한 바위 숲이 번갈아 나타나고 동두천 시내가 발아래 와 있다.

"높은 산 불끈 솟은 바위는 지혜로운 이가 들 곳이요,(원효대)
푸른 소나무 깊은 골은 수행자가 깃들 곳이니라.(자재암)"
"주리면 나무열매를 먹어서 주린 창자를 달랠 것이요,(소요산)
목이 타면 흐르는 물을 마셔 그 갈증을 식힐 것이니라.(원효폭포)"
"메아리가 울리는 바위굴을 염불하는 법당으로 삼고,(나한전-굴)
슬피우는 기러기를 기쁘게 마음의 벗으로 삼을 것이니라."

공주봉에서 요석공주를 만납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홀연히 떠나버린 원효를 찾아
아들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에 온 요석공주는 조그마한 별궁을 짓고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원효가 수도하고 있는 원효대를 향하여 절을 올렸답니다.
그 때 절을 올렸던 곳을 공주봉이라 불렀습니다.
요석공주가 머물렀던 별궁터는 지금도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는데...

/의상대1.0km,일주문1.0km

샘터갈림길
구절터를 거쳐 자재암 일주문으로 내려가는데,
너덜 주변의 단풍은 비록 말라버렸지만
햇빛에 역광으로 비치는 의상대 암릉은 거대한 말갈기 같다.

/샘터0.5km, 구절터1.1km
/공주봉0.9km,일주문0.4km,의상대1.0km

자재암
자재암(自在庵). 자재무애(自在無碍). 자유자재(自由自在).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가 창건 할 당시에는 절 이름이 소요사였다.
이후 자재암으로 재건된 다음, 영원사로 한 번 고쳐진 연후 다시 자재암으로 복원된다.
현재의 건물들은 6.25 때 다시 폐허가 된 것을
1961년 대웅전 등을 몇 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복원 건립한 것이다.

보물 제1211호인 반야다라밀다심경약소 언해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요석공주가 설총과 함께 기거했다는 별궁지 등 원효대사와 관련한 유적이 남아있다.

사방이 절벽으로 막힌 협곡 가운데에 법당이 있고
청량폭포 옆으로 원효가 참선했다는 동굴이 나한전이라는 편액을 달고 있다.

청량폭포
나한전 왼쪽 옆에는 높이 20m에 이르는 청량폭포가 있다.
의상대로 오르는 본격적인 등산길은 여기에서 시작되는데,
청량폭포에서 중백운대로 이어지는 능선길과
계곡으로 들어가 선녀탕을 지나는 두 가지 코스가 있다.

주차장
고요하던 산길은 속리교를 건너
일주문을 벗어나자 사람들로 요란해진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산행
이보다 더 즐거울 수는 없다.

Love in Live.
쭈욱~~~함께 한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

속세의 성은 설씨로, 압량군 남쪽 불지촌의 율곡 사라수 밑에서 태어났다.
불지촌이란 마을 이름으로서 살지촌이라고도 하며, 사라수라는 나무에는 이런 유래가 있다.

원래 원효의 집은 율곡의 서남쪽에 있었는데, 그 어머니가 만삭의 몸으로
마침 율곡의 밤나무 아래를 지나던 길에 갑자기 진통이 와서 해산을 하게 됐다.
너무 급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남편의 옷을 나무에 걸어놓고
거기서 해산을 했다. 그래서 그 밤나무를 사라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 나무는 열매가 보통 것과 달리 아주 특이해서 지금도 그것을 사라율이라 부른다.
밤나무가 있는 골짜기를 율곡이라 부른다.

원효는 출가하고 나서 자기 집을 절로 만들고 이름을 초개사라 했다.
또 자신이 태어난 그 밤나무 옆에도 절을 지어 사라사라 일컬었다.

원효의 어렸을 때 이름은 서당인데 집에서는 보통 신당이라고 불렀다.
그 어머니가 원효를 밸 때 별똥별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해산할 때는 오색구름이 땅을 뒤덮었다. 그때가 바로 진평왕 39년(617)이었다.

그는 날 때부터 남달리 영리해서 스승이 없이 혼자서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의 행적은 당나라 『승전』과『전기』에 자세히 실려 있다.

661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도중, 밤중에 목이 말라
바가지에 괸 물을 달게 마셨는데, 이튿날 아침에 그것이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으며 사물 자체에는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음을
크게 깨닫고 유학을 포기하고 되돌아왔다.

원효의 이름이 이미 신라에 널리 알려졌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원효가 아침부터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쏘다니며 큰 소리로 이런 노래를 불러댔다.

누가 내게 자루빠진 도끼를 빌려주려나.
내가 하늘 받칠 기둥을 찍어내리라.

사람들은 원체 이상한 행동을 잘 하는 원효대사가
이번엔 또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러나 하면서도 그 노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태종 무열왕이 대궐에서 이 노래를 듣고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스님이 귀부인을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런 분의 자식이라면 영특할 것은 틀림없고,
나라에 훌륭한 인재가 생기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지."

마땅한 여자가 없을까 궁리하던 무열왕은 마침 요석궁에서 혼자 살고 있는 공주를 떠올렸다.
무열왕은 됐다 싶어서, 즉시 원효를 찾아 요석궁으로 안내하게 했다.
관리들이 원효를 찾아나섰을 때,
원효는 이미 일이 그렇게 될 줄 알고 먼저 문천교 다리로 나가 기다렸다.

저 편에서 관리들의 모습이 보이자 원효는 모르는 척하고 다리를 건너오다가
일부러 발을 헛딛고 물에 빠졌다. 관리들은 허겁지겁 원효를 건져내서 요석궁으로 데려갔다.

원효는 젖은 옷을 말린다는 핑계를 대고 옷을 벗고 궁에서 머물렀다.
요석공주는 처음엔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스님답지 않은 자유분방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둘은 함께 밤을 보냈다.

열 달 만에 요석공주가 아이를 낳으니 그가 바로 설총이다.
설총은 나면서부터 어찌나 총명하던지 어릴 때 이미 유학과 역사에 통달했다.
이두문자를 만들은 공적 때문에 설총은 흔히 신라를 대표하는 10대 현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원효대사는 파계해서 설총을 낳은 후로는 가사장삼을 벗고
속세 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고 다니며 스스로 소성거사라 했다.

어느 날 우연히 그는 광대들이 춤출 때 쓰는 커다란 뒤웅박을 얻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그 모양을 본따서 기구를 만들고
화엄경의 '일체 막힌 데가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생사의 길에서 벗어난다.'는 구절을 따라
그 악기의 이름을 '무애(無碍)'라고 지었다.

그리고 거기에 해당하는 「무애가」라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원효는 이 기구를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을 교화했다.

스스로 계율을 어긴 것을 뉘우치며 불교의 대중화를 위하여 전국을 돌며 불도를 전하고,
당나라에서 들여온 <금강삼매경>을 강론하여 신라 최대의 승려로 존경을 받았다.
또한 여러 파로 나누어진 불교를 통일시켜, 우리 나라 고유의 불교로 발전시켰다.
저서에는 <대승기신론소>, <화엄경소>,<법화경종요> 등이 있다.

스스로가 붙인 원효(元曉)라는 법명은 부처님의 세상을 처음으로 빛나게 한다는 뜻으로,
원래 우리 말의 '해가 돋는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효는 이처럼 대중들에게 널리 부처의 가르침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화엄경』과『금강삼매경』에 대한 해설을 써서 후세에 길이 도움이 되게 했다.

원효대사가 입적하자 아들 설총은 유해를 화장한 뒤 그 가루로 살아계실 때의 모습을
조각하여 분황사에 모셔 놓고 일생 동안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했다.
그런데 하루는 설총이 아버지의 소상(塑像)옆에서 절을 하는데
그 상이 갑자기 돌아다보았다. 그때부터 소상은 돌아본 채로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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