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은 바다를 끼고 도는 외변산과 남서부 산악지의 내변산으로 구분한다.최고봉인 의상봉의 높이가 해발 509m에 불과하지만 400m급 준봉들이 겹겹이 이어진다.내변산의 명소로는 최고봉인 의상봉(509m)을 비롯해 쌍선봉(459m), 옥녀봉, 관음봉(433m 일명 가인봉), 선인봉 등 기암봉들이 여럿 솟아 있고, 직소폭포, 분옥담, 선녀담, 가마소, 와룡소, 내소사, 개암사, 우금산성, 울금바위 등이 있다.
변산 8경 (1) 웅연조대(熊淵釣臺) : 줄포 곰소 서해를 잇는 바다의 아름다운 정경 (2) 직소폭포(直沼瀑布) : 높이 30m로 변산의 대표적인 절경 (3) 소사모종(蘇寺募鐘) : 내소사의 은은한 저녁 종소리 (4) 월명무애(月明霧靄) : 월명암에서 바라보는 안개에 잠긴 산경과 노을 (5) 서해낙조(西海落照) :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의 낙조 (6) 채석범주(彩石帆舟) : 채석강의 돛단배 (7) 지포신경(止浦神景) : 지포리에서 쌍선봉에 이르는 숲과 산길 (8) 개암고적(開岩古蹟) : 개암사와 울금바위 및 산성일대의 고적
남여치 매표소 매표소를 지나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고 눈이 쌓여 있어 길은 제법 미끄러운데 보조난간과 알맞은 굵기의 줄이 이어진다
관음약수온산이 눈세계로 덮이고바람따라 눈가루가 흩어지는 능선길
조금씩 고도를 올리며거의 평평한 길로 능선이 이어지고 도중에 관음약수를 만난다
샘터 옆에"살아있는 것들의 행복을 위하여"란 법구경의 글귀가 있다
쌍선봉(459m) 갈림길변산의 최고봉은 물론 의상봉(509m)이지만 군사시설물로 인하여 접근이 불가능하므로 사람들이 즐겨 오를 수 있는 산은 쌍선봉이다. 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있어 쌍선봉이라고 부른다고 하는 데, 입산통제구역으로 포기하기로 한다
월명암으로 가는 대신 낙조대로 향한다. 산죽 사이로 오솔길을 따라가다왼쪽으로 휘어지는 능선의 끝으로 큰 바위
서해낙조는 변산 8경중 제 5경으로 매우 아름답다고 하지만 짙은 안개에 쌓여 바다는 보이지도 않고눈 속에 묻힌 풍경은 오히려 쓸쓸하기 조차하다다시 산죽이 가득한 능선을 따라 내려가삼거리에서 월명암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만난다
월명암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방거사와 함께 불교계 3대 거사 중 한 사람인 부설(浮雪)이 창건했다는 월명암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 내려 오고 있다. 독실한 불교 집안의 한 처녀가 자기 집에 온 스님에 연모의 정을 품는다. 스님이 며칠을 묵고 떠나려는 데 결혼을 하게 해 주지 않으면 죽겠다며 달라붙는다. 처녀의 부모까지 나서서 애원을 한다. 부설스님은 처녀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선택했다. 사람이 죽을 줄 알면서 외면한 채 수행이 될 리가 없다. 목숨을 구하고 수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환속한 부설은 처녀와 부부의 연을 맺고 아들과 딸을 낳는다. 그리고 수행을 계속해 마침내 깨달음을 이뤘다고 한다. 또한 스님을 환속케 한 묘화부인은 110세까지 보살행을 실천하고 입적했고, 아들 등운 (登雲)과 딸 월명(月明)도 출가해 모두 득도했다고 한다.용성, 고암, 만허, 서옹 등 들으면 알만한 큰 스님들이 이 절에서 정진했고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도 여기에서 불심을 키웠다고 한다.
<월명암 입구에 새워진 걸림없이 살 줄 알라>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무엇을 들어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역경을 참아 이겨내고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 법보장경 -
내변산의 속살을 내려다보는 풍광천지가 하얗게 덮인 산 그리고 나무들
오랜만에 보는 겨울산행의 묘미가 이어지고..미끄러운 능선 내리막을 조심조심 내려가면
자연보호헌장비내변산으로 접근하는 가장 가깝고 편리한 곳 지금 호수는 오랜 가뭄으로 바닥을 들어났지만여름이면 제법 운치있는 청정호수..
봉래구곡으로 흐르는 조그만 호수를 왼쪽으로 끼고 돌아가는 암릉길오르막길을 따라가다 선녀탕 가는 길에서 계단길을 오른다
직소폭포전망대 뒤로 희미한 물줄기가 보인다. 내변산 깊숙한 산중에 숨겨진 직소폭포는 오랜 가뭄으로 힘없이 걸쳐있고폭포 아래에는 푸른 옥녀담이 있다는데 흰눈에 가려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직소폭포는 채석강과 함께 변산을 대표하는 명승지로서 변산 8경중 제2경직소폭포에서 평탄한 등로를 따라 오른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가다 쉬다 다시 오름길
재백이고개고개를 지키는 이정표. 해발 190m 넓은 바위 사면을 오른다
이곳에서는 관음봉(433m)이 손에 잡힐 듯 보이고 건너편으로 보이는 능선이 장관이다흐린 하늘이 서서히 벗어지며우측으로 시원스레 탁 트인 조망.. 바로 곰소항이다.
우측은 주차장으로 직접 내려가는 길이고 관음봉으로 직진내리막길로 한번 내려갔다가 다시 힘든 계단길을 오르면커다란 너럭바위. 바로 앞이 관음봉이다우측으로 직각으로 휘어지는 바위를 따라 내려선 후다시 관음봉을 바라보며 급경사를 오르면
관음봉 삼거리(375봉)관음봉을 지나 세봉(410m)까지 1.3km거리지만 흰눈이 덮인 관음봉은 포기하기로 한다. 아쉬움을 접고 하산길로...
임암375봉에서 내소사로 하산하는 길목바위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내소사의 풍경이 편안하다
내소사 삼거리작은 목교를 건너면 넓은 공터그리고 공중화장실이 있다
결코 낮지 않는 작은 산....등산안내판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산행을 접는다
내소사 절이 예쁘기로 소문난 내소사벚나무와 노목들이 가지를 옆으로 쭉쭉 뻗은 채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길은 탄성이 절로 나는 풍경이다. 관음봉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천왕문의 당당함천왕문을 넘어서면 연세가 950세나 되는 느티나무..둘레가 7m50cm 키가 20m. ‘할아버지 당산목’이 있다. 내소사의 터줏대감이라고나 할까
종각과 누각(봉래루)을 지나 고색창연한 대웅보전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데, 오색단청으로 채색하지 않고 장엄한 금단청으로 채색하였다고 하며대웅보전은 팔작지붕(합작지붕)의 조형미가 돋보이는 양식이며 쇠못 하나 막지 않고 나무로 짜 맞춰 지은 건물이다. 내소사의 내력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해구스님이 ‘대소래사’, ‘소소래사’ 두 절집을 지었고, 그 중 소소래사가 현재의 내소사라는 것만 전해지고 있다.
역사보다 오히려 전설이 실제처럼 전해지고 있다. 대웅보전을 지을 때, 목수가 3년 동안 공들여 깎아 놓은 나무토막 중 한 개를 사미승이 장난으로 훔쳤기 때문에 천장의 일부가 비어 있다는 것과, 왠 나그네가 법당의 단청 작업을 하겠다며 100일 동안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부탁했으나 호기심 많은 사미승이 엿보는 바람에 붓을 물고 색칠을 하던 팔색조가 날아가 버려 단청이 미완성으로 끝났다는 얘기이다. 그 새가 바로 관음보살의 화신이라는 내용이다.
대웅보전의 꽃창살무늬전면 3칸은 개방되어 꽃살무늬를 조각한 문짝을 달았는데 이들은 모두 정교한 공예품들이다. 해바라기꽃, 연꽃, 국화 등이 섬세하게 양각된 창살을 보면 목공의 고매한 심미안과 정성,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돌아서는 길목에 역사드라마 대장금 촬영지라는 안내팻말이 있다.
내소사 전나무 숲아름드리 전나무가 길 양옆에 도열한 채 부처의 자비를 발산하듯 일주문까지 터널을 이루고 있는데수령이 150년 이상 되었다고 하며 내소사의 명물이다. 지나칠 적마다 전나무 특유의 나무향이 코를 진동하는데 세속의 번거러움을 잊고자 잠시 쉬기로 한다...
일주문능가산 내소사라는 현판.변산은 예로부터 영주산, 능가산, 봉래산으로 불리었다고 하는데 내소사와 개암사는 반드시 능가산이라는 산 이름을 사용한다고 한다. 눈 내린 변산을 뒤로하고 주차장에서 곰소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