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完의 해남 두륜산(703m)
0 위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북일면
0 코스 : 1코스: 대둔사~북암~노승봉~가련봉~만일재~두륜봉~진불암~대둔사
2코스: 대둔사~북암~천년수~만일재~일지암~표충사~대둔사


0 일자 : 2008. 3. 23(토)~24(일)
0 시간 : 6시간 /비

토말(땅끝)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밤새워 해남까지해남에서도 남쪽으로 40여km를 더 내려간 곳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잠깐 그친다준비해간 아침식사를 하고그리고 우산을 챙기고 끝을 찾아서 출발

사자봉북위 34도 17분 38초의 이곳은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 육지의 가장 남쪽 땅끝이다.남쪽으로,남쪽으로, 땅끝까지 달리면 더이상 갈 수 없는 우리나라 육지의 끝. 우리 땅의 끝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땅끝마을은 갈두리 혹은 칡머리로 불리었는데 사자봉 형세가 칡의 형상이어서 이렇게 이름지었다는 설도 있다.


(안개로 보지못한 전망대 사진)땅끝마을에서 우측 계단길바닷바람이 거센 계단길을 올라가면해발 156.2m의 사자봉 정상 토말비, 원형전망대와 봉화대가 있다.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진 다도해의 그림 같은 모습을 기대하지만바다고 육지고 온통 흰빛그리고 바람만 불어올 뿐

토말탑산기슭을 타고 급경사 계단을 내려가면 바다와 접해진 기슭에 세워진 흰 대리석의 토말탑. 높이 10m의 뾰족한 사각뿔 형태손광은이 시를 짓고 하남호가 글씨를 쓴 토말시가 새겨져 있다.이곳은 우리나라 맨끝의 땅갈두리 사자봉 땅끝에 서서/길손이여 土末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먼 섬 자락에 아슬한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당인도까지 /장구도 보길도 노화도 한라산까지/ 수묵처럼 스며가는 정한 가슴 벅찬 마음 먼 발치로 /백두에서 토말까지 손을 흔들게/ 수천년 지켜온 땅끝에 서서 수만년 지켜갈 땅끝에 서서/꽃밭에 바람일듯 손을 흔들게/마음에 묻힌 생각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되돌아 오르다 산허리를 질러땅끝마을 주차장으로이제 북으로달마산 미황사는 뒤로 미루고..

두륜산 /해남군 삼산면,북일면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은 백두대간에서 뻗은 호남정맥이 바다에 이르면서 마지막으로 솟아 오른 산이며 일명 대둔산이라고도 불린다. 서산대사는 이곳 두륜산을 '만고에 깨지지 않고 삼재가 미치지 않는 산' 이라 했는데 북으로 월출산이 하늘을 받쳐주고 남으로는 달마산이 지축을 맺어 주고 있어 옛 조상들로부터 풍수지리적으로 인정받은 산이다. 옛사람들은 머나먼 곤륜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백두산에 이르고, 다시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내려와 해남 땅에서 긴 여정을 마쳤다고 믿었다. 그래서 백두산의 '두'와 곤륜산의 '륜'자를 합해 '두륜'이란 이름을 붙였다 한다. 두륜산은 정상인 노승봉을 비롯하여, 두륜봉, 고계봉, 가련봉등 여덟 개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산기슭에는 유서 깊은 사찰 대둔사가 있다. 이 사찰은 신라 진흥왕 5년(514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경내에는 서산대사의 유물관도 있다.

두륜산 등산로 주변은 온통 동백나무 숲으로, 이 곳 동백은 이른봄에 피어 늦은 봄까지 오래도록 피어 있다고 해서 이 곳 지명을 장춘리(長春里)라 부른다.

주차장대흥사 입구 주차장밤새워 달려온 수고를 아는지 비는 그치고..

구림리 장춘동의 십리숲길은 산책 삼아 걷기에 좋은 울창한 숲 터널이다. 푸른빛 동백잎에 쌓여 붉게 물든 꽃이 피어나면 이 길이 얼마나 운치 있을까?

유선여관피안교 직전 우측에는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유선여관이 유선관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유선관으로 개명한 현판이 아쉽다

피안교를 건너면 곧이어 일주문과 함께 서산대사와 초의선사 부도가 있는 부도탑이 나오고

반야교를 지나자 비로써 대흥사로 들어서는 해탈문이 나온다. 사천왕 대신 동자승이 지키고 있는 을 지나면

대둔사비온뒤 물 흐소리가 고요한 아침을 울리고 가끔 나타나는 소나무들은 길섶에서 우리를 맞는다진불암 갈림길에서 좌측,

북암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르다일지암과 북암을 가르는 갈림길에서 북미륵암 쪽으로 향한다 비온뒤 등산로는 물길만나는 개울마다 물이 넘친다

너덜구간의 가파른 오름이 시작되는 구간이지만숲 속 여기저기에는 산죽들이 덮여있고 꽃봉우리는 보이지도 않는데춘백동백이 가득하다

북미륵암 중턱에 위치한 북암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암자마애불과 삼층석탑을 둘러보고..

비오고 바람따라 안개가 덮히고정상가는 팀과 돌아가는 팀으로 나눈다오른쪽 길은 두륜봉 아래로 가로질러 가는길 험한 오소재 길을 포기하고산아래 길을 따라 걷는다

너덜길비 온 뒤라 미끄럽다

천년수수령 1천5백년 가량으로 추정되는, 어른 여덟 명 정도가 팔을 뻗어야 감을 수 있다고 하는 느티나무.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옛날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에 천동과 천녀가 살았는데 어느날 천상의 계율을 어겨 하늘에서 쫓겨나는 벌을 받게 되었다. 이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불상을 조각해야 하는 일이었다. 지상으로 쫓겨난 천동과 천녀는 하루 만에 불상을 조각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해가 지지 못하도록 천년수 나무에다 해를 매달아 놓고 천녀는 북쪽 바위인 북암에 좌상의 불상을, 천동은 남쪽 바위인 남암에 입상의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천녀는 앉은 모습의 미륵불을 조각했기 때문에 서 있는 모습의 미륵불을 조각하는 천동보다 먼저 불상을 조각했다. 미륵불을 완성해 놓고 천동을 기다리다 지친 천녀는 그만 해를 매달아 놓은 끈을 잘라버리고 혼자 하늘로 올라갔다. 그로 인해 천동은 영원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미륵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만일암터시누대에 둘러싸인 자리에 5층 석탑이외롭게 가련봉을 바라보는 탑이 있는 자리가 바로 만일암터이다. 미륵마애불을 조각하는데 하루 시간이 모자라서 해를 지지 않게 천년수에 매어놓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 만일암

만일재 헬기장으로 다져진 널찍한 안부 주변은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능선안부 삼거리에서 바람을 피해 휴식참고로 운무로 인하여정상을 보지못한 님들을 위해 사진으로 보여드립니다

다시 산행은 이어집니다

일지암등산로는 온통 물길. 너덜길을 내려서 샘터에서 숨을 고른다

초의선사가 다성을 이룬 일지암초의선사가 40여 년간 머물면서 다선일여(茶禪一如) 사상을 확립하여 조선 후기 쇠퇴해가던 차문화를 중흥시킨 차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암자다. 널찍한 임도차도 다닐 수 있는 길에 많은 등산객이 올라오고개울의 청량한 물소리는 크기를 더한다

표충사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의 나라 사랑이 깃든 유서 깊은 건물. 조선 현종 10년(1669)에 건립되었다. 정조임금의 친필현판과 옆으로 표충비각이 있다

밖으로 나오면초의선사 동상도 세워져 있고 사명대사의 유물관인 성보박물관이 있다밀양 표충사는 사명대사의 유품을 보관하는 성보박물관이 있고 해남 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유품을 보관하는 성보박물관이 있다.

천불암바짝 쳐든 처마끝이 위용을 겸비한 채 날아갈듯..특히 천불전의 천불상은 옥돌로 만든 천개의 불상으로 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천불전 분합 문짝의 꽃창살도 아름답기도 으뜸에 놓인다.

침계루 현판글씨가 날렵하다대웅보전을 오르는 계단의 도깨비상은세수를 하지 않아 이끼가 가득한데...대둔사 경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대둔사 신라 법흥왕 1년(544)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가련봉 두륜봉을 병풍치 듯 돌아앉은 대둔사는다른 문화재도 많지만 특히 법당 현판 자체가 서예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명필가들의 글씨 천지다.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고 무량수각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로 귀양 가면서 써준 글씨이다.표충사 편액은 조선 정조가 써서 내려준 것이고 가허루 현판은 병중에도 하루에 천 자씩 썼다는 호남의 명필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주차장갈길이 멀다이제 춘천으로

지나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는 길가다서다...비와 함께한 아쉬운 未完의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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