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자연이 빚어낸 ‘하늘 병풍’따라 천가지 매력 뽐내다
속초 등 4개 시·군 걸쳐 펼쳐진 국내 대표 명산
국내 첫 유네스코 세계생물권역보전지역 선정
2011년 01월 18일 (화) .
▲ 신흥사 목조 아미타삼존불좌상.
▲ 신흥사 통일불.
#화강암의 1억년 풍화작용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

금강산의 수려함에다 지리산의 웅장함을 함께 갖춘 설악산은 남한 제1의 명산이라 한다.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는 뜻에서 예로부터 설산(雪山)이라 불렀고, 우리말로 설뫼라고도 하였다.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 중심부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향로봉과 금강산, 남쪽으로는 점봉산과 오대산이 마주한다.

설악산은 4개 시·군에 걸쳐 펼쳐져 있다. 주봉인 대청봉은 양양군에, 화채봉은 속초시에, 대승령은 인제군에,
울산바위는 고성군에 속해 매년 3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국민관광지로
한 때는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로 인기를 누렸던 곳이다.

지금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 외국전용 관광명소로 착각할 정도다.

그런 설악산을 가기 위해 이른 아침 속초시내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권금성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선
일찍 서둘러야만 했다. 자칫 꾸물거리다가는 한 두 시간을 기다려도 타기 힘든 것이 권금성으로 가는 케이블카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의 경관은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솟아오르는 울산바위와 달마봉을 비롯한 기묘한 암봉과 발아래 펼쳐지는 계곡과 신흥사는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게 만든다.

이런 자연 자원의 보고인 설악산이 각 시·군에서 10년마다 시행하는 공원구역 재조정작업으로 인해
경쟁적으로 개발계획을 세우면서 대규모 각종 위락시설과 케이블카가 더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구경이 아니라 고경(苦境)’이라 한 정철과 ‘돌산과 돌샘으로 이루어져
깊은 골짜기와 위태로운 봉우리가 겹쳐진 묏부리’라고 한 이중환에게는 케이블카가 반가운 소식이겠지만,
설악산은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우리의 자연자원의 하나이다.

▲ 신흥사 향성사지 3층석탑.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5년 전인 1965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고, 1982년 국내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생물권역보전지역으로 선정될 만큼 특별한 보호가 요구되는 천연자원의 보고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3489종의 동식물이 공원구역 내에 분포되어 있어, 이 가운데 멸종위기 10종, 보호야생종이 29종, 천연기념물이 23종에 이르기 때문에 야생동물 서식지인 흑선동 계곡, 고산식물 군락지인 대청봉 일원, 야생식물 군락지인 점봉산과 화채능선, 마식령~미시령 일원은 특별보호구역으로 설정해 2026년까지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설악산은 생물자원뿐만 아니라 독특한 지형과 지질로 새로운 매력을 지키고 있다.

수많은 암석과 폭포, 변화무쌍하고 장쾌한 경관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이는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대표적인 암석인 화강암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설악산 기암괴석은 그 중에서 화강암이 1억년 이상 풍화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신의 조각품이라 불릴 만큼 대자연의 예술 작품이다.



#계절과 지역 따라 변하는 천의 얼굴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는 설악산. 북단으로는 대간령, 남단으로는 가칠봉이 설악산의 백두대간이다. 그 사이를 상봉, 신선봉, 미시령, 나한봉, 대청봉, 한계령, 점봉산 등의 고봉준령이 연결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과 존경스러움을 느낀다.

그것은 단순히 백두대간에서 느끼는 웅장함뿐만 아니라 계절과 지역마다 색다른 옷을 갈아입는 새로운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서쪽 인제군으로 내려가는 내설악은 여성적 그윽함이 느껴지는 백담계곡, 수렴계곡, 백운계곡, 가야계곡이 펼쳐져 있고, 천불동 계곡을 중심으로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남성적인 근육질의 외설악은 대청봉에서 화채봉으로 뻗은 능선을 경계로 북쪽에 위치해 있다.

또한 오색지구에 속하는 남설악은 화채능선을 경계로 남쪽으로 대청봉의 웅장함과 오색약수, 주전골 등의 아기자기한 맛을 동시에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쪽의 해양성 기후와 서쪽의 내륙성 기후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설악산의 모습이
사람들을 자주 찾게 유혹한다.

설악산에는 조계종의 발상지인 진선사와 대한불교조계종의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 계조암, 금강굴, 만해 한용운이 기거했던 백담사, 오세암, 봉정암이 있다.

하지만 전국에서 가장 높은 해발 1224m에 위치한 암자인 봉정암에 들러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석가사리탑을 보고 와야 설악산에 오른 보람이 있다.

그래서 설악산은 1000번을 가도 질리지 않는 산, 천의 얼굴을 가진 산이라 부른다.


웅장함 자랑하는 울산바위 백두대간 중심부에 위치한 설악산은 속초·양양·인제·고성 등 4개 시·군에 걸쳐 펼쳐진 남한 제1의 명산이다. 사진은 둘레 4㎞, 높이 873m의 울산바위 모습.

#금강산으로 가다 이곳에 자리 잡은 울산바위

화강암의 보고인 설악산에 가면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작용을 통해 형성된 울산바위와 흔들바위를 만날 수 있다.
둘레 4㎞ 높이 873m인 거대한 바위인 울산바위는 그 위용만큼이나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옛날에 산신령이 금강산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바위들을 다 모이게 하는데,
울산바위도 금강산의 일부가 되기 위해 울산에서 금강산으로 가다가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바위가 필요 없다는 말에 경치가 좋은 금강산에 주저앉아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억년 전후에 형성된 설악산 화강암 가운데 울산바위는 7000만 년 전에 형성되어 금강산보다 후기에 형성된 것이다.

“비바람이 울고 하늘이 으르렁 거린다”고 하여 일명 천후산(天吼山)이라고 부른다고도 하지만
그것은 울산바위 북쪽에 있는 신선봉의 옛 지명을 말하는 것으로 울산바위와는 다르다.
울산바위는 울산에서 왔다 하여 지명을 따서 울산(蔚山)으로 부르거나 ‘막힐 울’자를 써서 울산(鬱山)으로 부른다.

설악산의 또 하나의 명물이 흔들바위다.

조금만 건드려도 흔들거린다는 흔들바위. 오랜 세월 풍화로 인한 자연의 섭리가 만들어낸 예술작품이다.
어린 시절, 몇 명이 밀면 떨어질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친구들끼리 내기하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정말 흔들리는지 밀어보고 싶은 심정이 든다.

귀중한 자연 문화유산이란 생각도 잠시 잊어버리고 호기심어린 마음으로 몇 명의 등산객이 힘을 모아 밀어보지만,
흔들리는 느낌만 들 뿐 꿈쩍도 않는다.
흔들바위는 한사람이 미는 거나 여러 사람이 미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면 정말 바위가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랜 세월 갖은 비바람에도 수천 년을 버텨오던 흔들바위는
이렇게 설악산을 찾는 관광객의 마음을 지금도 동심의 세계로 젖어들게 하고 있다.



▲ 신흥사 전경.

[설악산 신흥사] 신라 삼국통일 염원 담긴 천년가람

자장율사가 미륵·달마봉 사이 창건… 화재로 소실 의상대사가 재건

#삼국통일의 간절한 여망 담긴 절

아버지의 산으로 불리는 설악산. 신비로운 기운과 빼어난 자태로 태고적부터 묵묵히 자리한 설악산의 웅장함은
기암괴석을 안고 어우러진 봉우리들과 계곡들로 경관을 이룬다.
그중 석가봉, 문수봉, 노적봉, 보현봉, 미륵봉과 달마봉이 둘러쳐진 골짜기로 천불동과 문수담이 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불국토임을 말해주는 그런 지명이다.
그 미륵봉과 달마봉 사이에 천년가람 신흥사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시대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신흥사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미래에 출현할 미륵부처를 기다린다는 뜻에서 창건의 유래를 찾는다.

이 절은 신라 진덕여왕 6년(652)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라고 하였다.
향성사는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으로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金剛山) 철위산(鐵圍山)을 의미하며
불토국은 부처님께서 교화 할 대상적 국토라는 의미와 정치적 형태의 국가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

설악동 초입에는 삼층석탑이 홀로 외롭게 서 있다.

보물 제443호인 향성사지 삼층석탑이다. 외롭게 서 있는 이 석탑의 위치가 원래 향성사 터였다.
이 석탑은 2중의 기단위에 3층의 몸돌을 세운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양식을 하고 있다.
석탑의 높이가 4.33m로 장엄하면서도 간결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탑은 9층탑으로 조성되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현재 3층만이 남았다.
3층 중앙에 사리공으로 보이는 장방형의 구멍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던 흔적을 보여준다.
하지만 처음 해체 수리 할 때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탑에 모시고 삼국통일에 대한 간절한 믿음을
부처님의 진심 신앙으로 이루고자 했던 자장. 그런 자장이 신라 땅 북쪽 경계인 이곳에
향성사를 짓고 사리탑을 쌓았던 이유 역시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 효소왕 7년(698), 향성사는 창건된지 반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창건 46년 만에 화제로 사라진다.

그리고 3년 후, 의상대사는 지금의 내원암 터에 선정사를 짓기에 이른다.
원래 이곳은 자장이 향성사와 함께 세웠다는 능인암이 있었던 자리다.


▲ 신흥사 보제루.

#유생들의 고개 숙이게 한 보제루

‘설악산 신흥사(雪嶽山 新興寺)’라는 글씨가 써진 일주문을 지나고 돌다리 세심교를 건너면 신흥사가 나타나며,
또 하나의 문이 나온다. 바로 신흥사를 지키는 사천왕문이다.
사천왕문은 순조 11년(1811) 주운스님과 철수스님이 창건하였는데, 그 뒤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72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통 사찰에는 경 내외를 구분하는 문으로 해탈문 혹은 불이문을 두고 있으나,
신흥사는 사천왕문이 경내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다.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이것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한다는 뜻에서 세워졌다.

천왕문을 넘어서면 전면으로 장방형의 큰 누각이 앞을 가로막듯이 서 있다.
장대석으로 쌓은 2단의 축대 위에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마루식 홑처마 맛배 지붕인 이곳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4호인 보제루다.
영조 46년(1770년)에 세워진 것으로 누각식으로 되어 하층 중앙칸은 신흥사의 본전인 극락보전으로 가는 통로가 되고,
상층은 다락으로 되어 있다. 본래 사찰의 본전 앞에 세워지는 누각은
각종 법회를 거행하던 곳이었으며 사방이 개방되어 있었다.
현재는 그 기능이 사라졌으며, 세살의 분합문을 달았다.


헌데 이 누각의 아래 기둥을 살펴보면 유난히 그 높이가 낮다.
왜 그렇게 누각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낮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당시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시대 유생들은 법당 앞까지 말이나 가마를 타고 들어가는 것을 예사로 여겼다.
따라서 보제루와 같은 누각이 법당 앞에 있다면 유생들도 반드시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극락보전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했을 것이다.
보제루는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의 지혜와 겸양을 깨치라는 지혜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건물 안에는 직경 2m의 비자나무통에 황소 6마리 분의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법고(法鼓)와 3m 남짓한 크기의 용머리를 취한 목어(木魚),
신흥사와 관련된 여러가지 현판 등과 강원도 지방문화재 제 15호로 지정된 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이 경판은 17세기 중반에 새긴 19종의 목판으로
한자, 한글, 범어(梵語)가 혼합되어 있는 희귀한 것으로 그 가치가 크다.
특히 네 벽의 시판(詩板)에 추사(秋史)의 친필이 있어 유명하다.


#반야용선(般若龍船) 뜻 담은 극락보전

어지러운 세상을 넘어 피안의 극락정토로 건너 갈 때 탄다는 배가 반야용선이다.
6·25때 전투가 치열했던 설악산 지역에서 신흥사는 전쟁의 병화를 모면했다.
그중 극락보전은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교의 이상향인 극락세계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해 놓았다는 극락보전은 신흥사의 중심법당이다.
서방정토를 이 땅에 옮겨놓은 듯 극락보전은 그 모습 그대로가 아미타불의 세계이며 불국토의 모습이다.
뭇사람들을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극락세계로 이끌기 위해 사바세계에 정박한 한척의 배.
극락보전은 반야용선의 이상을 그대로 표현했다. 돌계단 소매 뜰에 새겨진 용의 모습은
피안의 세계로 배를 이끄는 뱃머리이다.
사바세계의 고해의 물결을 헤치고 나가려는
용의 기운찬 모습이 입을 벌린 채 동해바다를 향하고 있다.

극락보전으로 가까이 가면 유난히 문살무늬가 시선을 잡아당긴다.
‘빗국모란연꽃살문’이라하는 이 문살은 뭉툭한 나무 조각으로 꽃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나비며, 새, 거북이, 물고기 등이 그려져 있다.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고 제각각이다.
그 제각각이 어우러져 문살가득 꽃밭이 피어난다.



▲ 신흥사 극락보전.

오랑캐 침입 피해 쌓아 올린 ‘권금성’

자연암벽·활석 활용 구축… 적 대항 천연 요새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진 권금성은 전면과 측면, 어디하나 빠지는 곳 없는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거대한 바위산엔 외국인들이 빽빽이 모여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의 얼굴은 아침햇살을 받아 그런지 절경의 황홀감에 빠져 그런지 모두 발그레하게 상기된 듯이 보였다.
권금성(權金城). 그 이름이 말해 주듯 이곳엔 권씨와 김씨 성을 가진 두 명의 장사
오랑캐의 침입을 피해 이곳에 성을 쌓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성을 쌓은 시기가 고려 때라는 설도 있고 신라 때라는 설도 있지만 정확한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권금성의 높이가 4척이고 둘레가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난이 있을 때에 권, 김 양씨가 가족을 데리고 이곳에서 피난하던 곳이라 쓰여 있고
낙산사기에 고려 말 몽고가 침입했을 때,
이 고을에서 설악에 가서 피난했다고 한 그 피난처가 여기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어느 시대인가, 같은 마을에 살던 권씨와 김씨 성의 두 장사가 난을 피해 가족들과 산으로 피신을 했다.
적군들이 뒤쫓아 오므로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으나 정상에 다다르자 아무런 대책이 없게 되었다.
하여 적병이 찾아오기 전에 그날 밤 안에 성을 쌓기로 했지만 산꼭대기에는 성을 쌓을 만한 돌들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산 밑에 흐르는 계곡에서 성을 쌓을 만한 돌을 던지고 김장사는 그 돌을 받아서 성을 쌓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교대로 김장사가 돌을 던지고 권장사가 성을 쌓았다 한다.
이렇게 해서 하룻밤 만에 둘레 3,500m에 이르는 성을 쌓았다고 하니,
두 사람의 성을 따서 권금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성의 대부분이 자연암벽을 이용했으며, 일부는 할석을 쌓았는데, 좌우로 깊고 협소한 계곡을
이루어 적에 대항하기에 알맞은 산성이나 너무 높은 위치여서 오르내리기에 큰 힘이 들어
조선시대 이후로는 점차 퇴락하여 적극적으로 활용치 못하였고,
지금은 터전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지금은 성의 개념보다는 설악의 위용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천혜의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권금성을 가득 메운 외국인 관광객들의 밝은 모습을 보며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수차례 권금성을 찾아도 항상 새롭게 경탄하는 풍광이거늘
처음 접하는 저들의 감흥이 어떨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언젠가 다시 오게 될 이곳 권금성은 역시 변함이 없겠지만,
‘이곳을 다시 찾을 내 모습은 얼마나 늙어 있을까’라는 생각에 대자연의 위대함에 새삼 경외감이 느껴진다.


▲ 설악산 안내도.



“핵심 집객시설 유치 체류형 관광지 도약”

-천연기념물 제171호로 1013종의 식물과 1562종의 동물이 살고 있는 자연의 보고인 설악산의 관리보존 계획은.

“설악산은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으며,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공존하고 있는 소중한 유산으로 복합유산의 성격이 강한 설악산의 특징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시가 주관이 되어 설악산 내에 소재하고 있는 문화유산 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할 계획으로 우선 신흥사와의 협력을 통해 불교문화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권금성, 토왕성 등 아직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앞으로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자연유산의
훼손·멸실을 방지하기 위한 모니터링도 함께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



- 강원도의 미래 자산인 설악산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은.

“설악산은 남방과 북방을 연결하여 주는 중요한 자연자원임과 동시에
신라문화의 북방진출을 알려주고 있는 중요한 곳이다.
설악산은 그 범위가 광대하여 우리 시뿐만 아니라 설악산을 둘러싸고 있는 인근 지역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자기 지역이나 담당하는 것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설악산’이라고 하는
이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 필요한 것이다.
이미 성리학과 불교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통섭의 원리를 적용하여
설악산을 통괄적으로 관리할 조직을 만들어 체계적인 조사와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존과 개발의 논리를 아우를 수 있는 관리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국립공원 해제에 따른 설악동의 재개발 방안 및 설악산을 활용한 지역관광산업 활성화 방안은.

“현재 설악동 집단시설지구의 실상을 살펴보면, B, C지구는 투자유치를 통한
전면적인 재개발이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의 설악동 B, C지구 주민 대부분은 대규모 투자유치를 통한
토지 및 건물 전체를 매입하여 전면적인 재개발을 원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토지
및 건물 매입에 따른 막대한 투자비 소요로 인해 사업성이 떨어져
전면적 개발을 하는 투자자 유치는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이다.
앞으로, B, C지구는 부분적 개발에 포커스를 맞춘 핵심집객시설 도입을 통해 차별화되고
특성화된 관광지로 조성하여 관광객이 체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핵심집객시설을 유치해 새로운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갖추고
지역의 온천개발을 통해 휴양시설을 보강하여 관광객이 머무를 수 있는 여건이 개선된다면
자연히 주변의 숙박·상가가 활성화 되고, 이에 따른 투자가 발생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효과적인 핵심집객시설 도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공공부분에 필요한 예산은 중앙정부와 강원도로부터 최대한 확보하고자 노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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