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동산 542m

작지만 큰 재미가 있는 청풍호반의 조망터
교리 원점회귀 3시간 소요, 성내리~교리 6시간 소요

짙은 안개를 헤치며 도착한 성내리는 전날 내린 비로 흥건하게 젖어 있고 마을 뒤편의 먼 산들은 안개 속에 희미하다. 무암사까지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으나 날머리로 정한 교리에서의 이동을 생각해 성내리 초입의 식당에 양해를 구해 차를 세운다. 신발 끈을 조이고 고개를 드는 사이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아기를 업고 나온 촌로가 웃으며 일행이 간 곳을 손짓으로 알려준다. 안내도를 보며 오늘 코스를 점검한다.

성내리는 작성산과 동산의 대표적인 들머리이자 날머리이다. 오늘 목표한 산은 작은동산이지만 성봉의 화려한 암릉길이 탐이 나, 욕심을 부려 코스를 길게 잡았다. 성봉 오름길은 작성산과 동산의 등로다. 마을에서 벗어나 계곡 옆 도로를 따라 5분쯤 올라가면 저수지(우암 제1지)를 만난다. 저수지 오른편은 포장길이고, 왼쪽은 비포장 산길이다. 충북등산학교 강사인 윤태동씨가 저수지 왼쪽 길로 앞장선다.


▲ 제1,2,3 전망소가 아니라도 구간 전체가 전망소다. 발아래로는 학현리의 사방 골짜기들이, 앞으로는 금수산의 연릉들이, 남동쪽으로는 청풍호와 월악산과 비봉산이 보인다. / 들머리. 성내리 초입에서 황금가든 안내판을 따라가면 느티나무를 지나 우암 제1지와 만난다. 저수지와 계곡 사이로 무암사까지 포장도로가 잘 되어 있다.
깎아지른 수직 암벽 아래 조붓한 소로를 걷다가 저수지를 지나 도로와 합류하는가 싶더니 저 앞에 SBS 촬영세트장인 오래된 산채가 나타난다. 합판에 시멘트를 분사해 만든 궁궐 세트장보다 한결 친근하다. 촬영장을 벗어나 다시 무암사로 가는 도로와 합류한다. 잠시 후 오른쪽으로 동산 가는 이정표가 보이고 20분 후 장군바위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성내리를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무암사에 도착한다. 무암사 뒤편으로 안개를 뒤집어쓴 거대한 바위의 하단부가 보인다. 작성산 배바위로 클라이머 윤태동씨에겐 익숙한 곳이다.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터를 잡아 세웠다는 고찰 무암사는 안개 속에 더 없이 고즈넉하다. 다만 자연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내 욕심 탓인지 주차장 아래 생뚱맞은 조립식 건물이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이곳 스님들에게는 욕심이 없다는 표시 같아 보이기도 한다. 불자가 아니어서 그런가. 너무 거창한 불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절이 편안하고 좋다.

무암사를 오른편으로 돌아 작성산으로 직행하는 길을 버리고 계곡으로 내려선다. 20여m 내려가다 계곡을 건너면 무암사 초입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작성산과 세목재, 남근석 방향의 세 갈래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 앞에서 남근석 방향으로 접어든다. 안개 속에 알록달록한 산악회 리본들과 맞닥뜨려 고개를 드니 로프를 늘어뜨린 가파른 바위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사위는 눈이 올지 비가 쏟아질지 모르게 어두컴컴한데 십여 분,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지는 급경사의 암벽지대를 숨 가쁘게 기어오르니 안개 천지에 불쑥 나타난 거대한 남근석이 길을 막고 서 있다. 동산 산행기마다 긴 호흡으로 다루는 문제(?)의 남근석이다.

짙은 안개 속에 산의 상부는 아예 보이지 않고, 이쯤에서 사방 조망되어야 할 멋들어진 주변 산세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나온 무암사가 산 아래로 희미하게 내려다보일 뿐 골짜기 틈바구니마다 들어차 있을 청풍호 조망은 어림없다. 그러나 짧은 가시거리 안에 펼쳐지는 기암과 노송이 안개와 어우러진 비경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산에서 만나는 안개는 몽환적이고 신비롭지만 때에 따라선 그처럼 두려운 대상도 없다.
길은 암릉지대를 지나 완만한 경사의 너덜지대로 이어진다. 곧추선 암릉지대를 로프에 매달려 용을 쓰며 기어오르다 만나는 험한 너덜지대가 도리어 반갑다. 성봉이다. 소나무들을 배경으로 돌탑이 쌓여 있다.

성봉을 지나면서 허물어진 성곽의 흔적을 본다. 이천 년 전 한성백제시대 전후에 시축됐다는 작은동산성 성곽의 흔적이다. 다시 십여 분 그림 같은 참나무 숲길을 편안하게 걷다가 학현리로 갈라지는 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서 학현리 방향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작은동산 쪽 하늘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이제 됐다고 무릎을 친다.

서서히 살아나는 하늘빛에 주변산세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무소바위에서 말간 햇살에 취해 시간을 지체한다. 암릉구간의 스릴과 청풍호 조망을 즐기기 위해 등로를 벗어나자 안개가 걷힌다. 이유가 무엇일까.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인가. 무소바위 아래 설치된 줄을 잡고 바위를 오른쪽으로 끼고 휘돌아 내려가 짧은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모래재와 교리, 학현리로 나뉘는 삼거리 안부와 만난다. 작은동산까지는 650m의 완만한 숲길로 언제 힘들었나 싶게 길이 어여쁘고 편안하다. 야트막한 높이의 산에 지독한 비경들이 시치미를 뚝 떼고 펼쳐진다.

작은동산(542m) 정상 일대는 그림 같은 노송들의 동산이다. 조망도 없는 곳에 이끼낀 정상석이 서 있고, 자연석 제단이 있는 앞으로 ‘작은동산 545m’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이곳 역시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최근 발행한 지도를 보면 ‘작은동산 정상 542m’로 표기된 것과는 다르다. 정확한 정보 제공을 위해서라도 해당 지역 관리부서의 철저한 의식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안내판의 위치 또한 제단에 너무 가까워 제단이 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정상석 반대편은 평지로 된 제법 너른 터에 잘생긴 노송들이 보기 좋게 서 있다. 정겹기 짝이 없는 풍경들에 입이 헤 벌어지는데 일행이 노송 한 그루씩 끌어안고 어쩔 줄을 모른다. 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한 흔적으로 노송들의 아랫도리가 하나같이 V자로 깊게 패어 있다. 우리가 원해서 한 짓이었다면 이토록 가슴 아프지 않으리. 가난한 백성들이 먹을 게 없어서 한 짓이었다면 지금쯤 추억으로 곱씹어도 좋을 일이다. 나라를 빼앗겼던 아픈 역사의 흔적들로 비감한 풍경에 이래저래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작은동산 정상에서 10분 거리부터 터지기 시작하는 멋진 조망들이 곳곳에서 산객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이거 놔라 하며 뿌리칠 재간이 없다. 제1전망소에 이르면 발아래 학현리가 길게 누워 있고 그 위로 금수산 능선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신선봉과 미인봉, 조가리봉이 보이고, 오른편 남동쪽으로 비로소 청풍대교와 청풍호가 살짝 끼어든다.

▲ 1 여기서 성봉까지의 구간은 위험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구간이다. 속도를 늦춰 안전을 기하면 암벽을 오르는 스릴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2 남근석. 안개를 헤치며 힘들게 올라온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하는 풍경이다. 주변의 암릉구간 전체가 절경이고 날씨가 좋을 때의 조망은 자칫 넋을 빼앗기기 쉬운 곳이다. 3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터를 잡아 세웠다는 천년고찰 무암사. 안개 속에 멋진 암벽의 자태가 클라이머들을 유혹한다. 4 성봉과 무소바위 사이의 참나무 숲길.
기암과 노송들이 즐비한 너머로 청풍호를 내려다보며 걸어 내려가는 기분에 상관없이 해는 어느새 기웃하다. 제1, 제2, 제3 전망소라 이름 지은 곳들이 무색하게 곳곳의 툭 터진 조망으로 하여금 어깨춤이 절로 난다. 제2전망소를 지나 삼각점이 있는 무명봉에서 왼쪽으로 영아치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 길을 외면하고 교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교리에서 원점회귀 산행으로 작은동산을 오르면 3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지만 이 멋진 산과 3시간만 조우하고 돌아서기엔 아쉬울 듯하다. 이어 외솔봉이 나타난다. 청풍호를 뒤로하고 불쑥 몸을 일으켜 솟아난 바위는 무엇이며 거기 안긴 듯 곧게 자란 외솔은 또 무엇인가. 아낌없이 보여주는 산이다.

40m 로프가 매어 있는 긴 슬랩지대에서 아예 발이 붙어버린다. 청풍호 위로 월악산 영봉들과 청풍문화재단지와 청풍호를 차고 날아갈 듯한 비봉산의 자태가 사정없이 시선을 잡아당긴다. 고정로프가 매어 있는 슬랩이 이어지지만 눈이라도 쌓였다면 모를까, 바위가 미끄럽지 않아 굳이 로프에 의지할 필요는 없다. 미끄러운 길을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내 등산화도 바위에 착착 들러붙는다. 기암과 노송, 호수 조망과 암벽을 즐기기에 인색함이 없는 곳. 참으로 멋진 산이다.

작은 산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아침에 안개가 끼었다고 진종일 날이 어두운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고 돌아가는 산. 날머리 직전의 경사진 나무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산객들을 배려한 교리주차장이 무척 어여쁘다. 날은 이미 안내판이 안 보이게 어두운데 부르지도 않은 택시가 달려와 멈춘다. 차를 세워둔 식당에 도착하자 날 저물어 내려왔다고 식당 주인이 혀를 차며 자리를 권한다.

산행길잡이


성내리마을을 벗어나 만나는 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수직 암벽 아래 정겨운 산길이 있고 오른쪽은 무암사 가는 포장도로다. 무암사 주차장까지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면 정겨운 산길을 택하는 것이 정답이다. 거리는 차이 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작은동산 산행은 교리 원점회귀 산행이 바람직하다. 산행 시간을 단축하여 오전에 산행, 오후에 청풍문화재단지 하는 식으로 볼 것 많고 즐길 것 많은 청풍문화재단지를 다양하게 접하면 금상첨화다.

○ 성내리 버스정류장(성내편의점)~ 황금가든~우암 제1지 저수지~SBS 촬영세트장~ 무암사(계곡 건너)~ 남근석~ 성봉~ 모래재~ 작은동산 고스락~ 제1전망소~ 제2전망소~ 외솔봉~ 슬랩지대~ 안부~ 제3전망소~ 10m 로프~ 나무계단~ 교리마을 주차장 ※총 6~7시간 소요

○ 교리주차장~ 통나무다리~ 모래재~ 작은동산 고스락~ 제1전망소~ 제2전망소~ 외솔봉~슬랩지대~ 안부~ 제3전망소~ 10m로프~ 나무계단~ 교리마을 주차장 ※원점회귀 산행 3~4시간 소요



교통


버스 동서울터미널-제천(06:30 첫차/귀성막차 21:00/직행버스 30분 간격), 강남버스터미널-제천(06:30 첫차/귀성막차 21:00/30~40분 간격), 제천-청풍 성내리 하차(90번 버스 하루 22회 운행/30분~1시간 간격)

기차 청량리-제천(1일 18회 운행) 간 열차를 이용한다. 제천역에서 90번 버스 이용, 성내리 또는 교리 하차.

자가 운전


서울 출발 경부(중부)고속도로~ 호법(신갈)JC~영동고속도로~만종JC(제천 방향)~중앙고속도로~남제천IC~금성면(청풍호) 방면(597번 도로)~청풍랜드

대전 및 전라도 전 지역 경부고속도로~남이JC~중부고속도로~증평IC~증평읍(36번 도로)~충주(19번 도로)~천등산휴게소(38번 도로)~중앙고속도로 제천IC(진입하지 말 것))에서 500m 지점~단양 방면 우회도로~청풍호(597번 도로)~청풍랜드
산행 후 교리에서 성내리 이동시 택시요금은 5,000원 정도 나온다. 제천택시 청풍영업소(043-648-0502).



숙식


향어, 산천어 비빔회를 전문으로 하는 금수산송어장횟집(043-652-2088)과 황금가든(043-652-4769), 닭볶음탕·백숙·영양탕을 전문으로 하는 학현슈퍼(043-647-9941), 묵밥, 잡어매운탕·올갱이해장국이 메뉴인 성내기사식당(043-646-6577)이 있다. 숙소는 청풍리조트(www.cheongpungresort.co.kr)와 학현슈퍼(043-647-9941), 뉴월드장(043-652-384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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