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만물상 능선 - 만물의 형상 띤 ‘자연의 교향악’
기암괴석 향연으로 등산객 맞아… “이렇게 좋은 경관 있었다니” 감탄

“야, 이렇게 좋은 경관이 가야산에 있었다니…. 뒤늦게 보지만, 보면 볼수록 다시 보고 싶은 만물상이네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 구미 등산객


“수십 년 동안 등산을 다녔지만 평일에 이렇게 많은 등산객은 처음 봅니다.” - 창원 단체 등산객


“만물상 코스는 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경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등산로입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가다 다시 뒤돌아보고 가는 등산로가 만물상 등산로입니다.” - 가야산 국립공원 가천분소 변정수 분소장


▲ 가야산 국립공원 가천분소 변정수 분소장(맨왼쪽)과 김지연씨가 가야산과 만물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립공원 지정 이후 38년 만에 등산로를 개방한 가야산 만물상. 한마디로 ‘기암괴석의 향연’이고 ‘자연의 교향악’이었다. 코끼리바위, 돌고래바위, 기도바위(일명 부처·불상바위), 두꺼비바위, 쌍둥이바위 등 갖가지 모양을 한 바위가 지천에 뽐내는 듯 널려 있다. 기도바위는 아직도 기도가 끝나지 않은 듯 세상을 등지고 면벽 좌선하는 모양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버텨온 그 자세가 언제쯤 끝이 날지….


코끼리바위는 몸통을 감추고 수줍은 듯 길쭉한 코만 드러내고 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다. 가만히 턱을 괸 형상의 얌전한 돌고래바위가 있는 반면, 마치 먹이를 달라고 점프를 하는 듯한 모습도 있다. 두꺼비바위는 원체 덩치가 큰 녀석이라 옆을 지나쳐도 그 형체를 금방 알아차릴 수 없다. 한참을 지나 뒤돌아봐야 제대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광개토대왕비석처럼 생긴 바위, 쌍둥이바위 등등 그 형상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 마당바위

비바람에 깎이고 씻긴 기암괴석들은 억겁의 세월을 대변하고 있다. 그 긴 세월 동안 각각의 바위들은 마치 ‘자연의 교향곡’이라도 연주하는 듯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모습으로 거듭났다. 스스로 ‘교향악’이라 불러달라는 듯했다.


만물상 능선의 백미는 그 능선 끝 지점에 있는 상아덤까지 계속된다. 상아덤에 올라서면 만물상의 모든 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참을 이리저리 뜯어본다. 이쪽, 저쪽으로 방향을 돌아가며 살펴본다. 카메라 셔터를 아무리 눌러도 지겹지 않다. 그런 만 가지 형상을 한 만물상이다.


▲ 돌고래바위

가야산은 원래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천재 고운 최치원 선생의 산이었고, 예로부터 오대산, 소대산과 더불어 삼재(三災, 화재·수재·풍재)를 피할 수 있는 깊은 산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귀중한 유산 팔만대장경도 가야산 첩첩산중 깊은 곳에 보관했던 것이다. 또 <여지승람> 권30에 옛 기록을 빌어 ‘가야산의 모양새는 천하에 으뜸이요, 지덕이 또한 비길 데 없다(古記云伽倻山形絶於天下之德雙於海東)’고 기록하고 있다. 예로부터 명산으로 꼽힌 기록은 곳곳에 나온다.


가야산의 대표적 인물인 최치원은 당나라 과거시험에 합격한 뒤 반란을 일으킨 황소를 글로써 격퇴한 ‘토황소격문’으로 신라에서보다 당나라에서 더 유명해진 인물이다. 고향이 그리워 17년간의 당나라 생활을 접고 귀국한 고운 선생이 6두품 집안 출신으로 엄격한 골품제 사회였던 신라의 신분장벽에 막혀 더 이상 오르지 못하자, 세상을 등지고 이곳저곳 떠돌다 마지막 입산한 곳이 바로 가야산 홍류동계곡이었다. 홍류동계곡 주위엔 지금도 그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깊었으니 당연히 삼재를 피할 수 있었던 산이기도 했다.

코끼리바위·기도바위·돌고래바위 등 다양


고운 선생이 가야산의 깊은 계곡과 흐르는 물을 노래한 시 ‘題伽倻山讀書堂(제가야산독서당, 가야산 독서당에서)’가 있다.


미친 듯이 포효하는 물이 층층 바위돌을 치니 / 아주 가까운 곳의 사람의 말소리조차 구별키 어렵네 / 시비 가리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 일부러 흐르는 물더러 온 산을 돌게 하였네


狂噴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농산)


그러나 세월은 흘러 깊은 계곡과 산은 허리가 잘려 동강나고, 다리와 팔은 찢겨져, 그 옛날 심산유곡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산허리까지 차가 올라가고 여러 등산로는 사람들의 발길을 받아들이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 또한 현실이다.


▲ 솟구치는 돌고래바위

19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개방하지 않았던 만물상 등산로도 38년 만에 처음으로 속살을 드러냈다. 그동안 뭘 감추고 있었으며,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난 7월 7일 가야산 국립공원 가천분소 변정수 분소장과 김지연씨의 안내로 만물상 코스를 답사했다. 변 분소장은 “만물상 코스 개방은 이번에 했지만 그동안 불법적으로 다닌 등산객이 제법 있었다”며 “이들을 정상 등산로로 유도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등산로를 정비하고 안전하게 등산객들이 다닐 수 있도록 개방했다”고 소개했다.


▲ (왼쪽부터)기도바위(부처, 불상바위) / 코끼리바위

이들과 함께 만물상 코스로 출발했다. 가천분소 탐방지원센터에서 기존에 다니던 용기골 등산로 방향은 오른쪽이고, 왼쪽으로 정비된 돌계단이 만물상 등산로라고 안내하고 있다. 바로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직원 김지연씨는 “1㎞ 남짓 계속 오르막길이라 조금 힘들지만 그 이후부터는 무난할 겁니다”라고 안내했다.


시작부터 가파른 길이 계속됐다. 개방한 지 불과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은 등산로가 제법 오랜 시간 사람이 다닌 길 같아 보였다. 변 소장은 “옛날에 있었던 길이고, 그동안 불법적으로 다닌 등산객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르막길이지만 우거진 숲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대부분 참나무 종류의 활엽수라 햇살을 빠짐없이 잘 막았다. 변 분소장은 “옛 문헌에 의하면 백운동 지역은 잣나무로 유명하다고 했는데, 지금 잣나무는 간혹 눈에 띄는 정도이고, 대부분 활엽수여서 가을에 특히 단풍이 좋다”고 자랑했다.


▲ (왼쪽부터)주름바위 / 쌍둥이바위

해발 550m쯤 되는 탐방지원센터에서 계속 오르다 해발 954m 지점에서 사방이 확 트인 조망처를 처음 만났다. 서쪽으로는 완만한 능선의 가야산이지만 오르고 있는 북쪽과 동쪽은 바위산이 우뚝 우뚝 솟아 마치 키 경쟁이라도 하는 듯했다. 방향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만물상 코스도 출발부터 1㎞ 남짓까지는 숲속길이지만 그 뒤부터 각종 암벽 사이로 난 길로 가야만 한다. 위험한 구간은 나무데크로 정비가 잘돼 있었다. 암벽 능선 아래로는 완전 낭떠러지다. 사진작가들이 만물상의 아름다운 기암 모습을 담기 위해 간혹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변 분소장이 귀띔했다.

만물상 끝 지점이 가야산 전설 지닌 상아덤


등산로 바로 옆 바위와 바위를 조그만 돌들이 연결하고 있었다. 가야산성이었다. 산성이 둘러싸고 있는 내부 계곡은 도저히 사람이 기거할 만한 장소가 못 돼 보였다. 그런데 어찌 이런 곳에 산성이 있을까? 아직 축성 시기와 목적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엔 ‘석축 주위 1만5935척(4,828m), 높이 5척(15m)인데 반은 퇴락했다. 성내에는 계곡 6개소와 10개의 샘이 있으며, 평탄하고 험한 것이 반반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부터 평탄하지 않은 지형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또 <성주목읍지>와 <성산지>에 따르면 ‘1594년(선조 27)에 여러 지역 의병장들이 이 성에 의지해 적의 침입에 대비했고, 제찰사 이원익이 조정에 건의해 승장 신열을 시켜 가야산성을 다시 고쳐 쌓게 하여 주민들이 병란을 피하게 했다. 이 때 신열이 이 성의 남문을 건립했는데, 후일 이항복이 문루에 액부초(扼?醮)라는 현판을 만들어 붙였다’고 전한다.


▲ 비석바위

산성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외곽으로는 도저히 적이 침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등산로 옆 산성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수백 미터 낭떠러지다. 한마디로 완전 철옹성이다. 하지만 내부는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성 안에는 용기사, 백운암, 일요암 등의 터전이 남아 있으나 전부 조그만 절이다. 그런 산성을 따라 등산로는 계속됐다.


만물상이 자태를 서서히 드러냈다. 하나 둘씩 드러낸 암벽은 수천, 수만 년의 풍상을 견딘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서로 뽐내는 듯했다. 평일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면서 전부 감탄을 절로 자아냈다. ‘자연의 교향악’ 앞에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기암의 향연에 등산객들은 발길을 멈춰 산행 속도는 더욱 늦어졌다. 늦어진들 어떠리. 흔치 않은 기암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니. 다들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향연을 즐겼다.


만물상의 끝은 상아덤이다. 상아덤에 올라서면 만물상이 시원스레 늘어서 펼쳐진다. 두루마리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형상들이다. 발 아래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만물상의 험난한 코스를 어떻게 지나왔을까 싶다. 실제로 그리 위험한 길은 아닌데도 말이다.


▲ 38년 만에 개방된 가야산 만물상 등산로를 등산객들이 오르고 있다.

상아덤은 바로 가야산의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가야산 여신(산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와 하늘신(천신) ‘이비하(夷毗訶)’가 노닐었다는 전설이다. 성스런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우러러 받드는 여신이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을 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가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상아덤에 내려왔다. 천신과 산신의 만남이었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아버지 천신을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면서 불그레했고, 아우는 어머니 여신을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형은 대가야의 첫 왕인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됐다. 최치원이 지은 <석순응전(釋順應傳)>과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대략의 줄거리다.


최치원과 이항복, 가야산에서 시 남겨


상아는 여신을 일컫는 옛말이고, 덤은 바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상아덤은 하늘의 여신이 사는 바위란 뜻이다. 그 바위 위에 올라섰다. 천신과 산신이 만난 그곳이며, 가야산 정기가 서린 곳이다. 괜히 숙연한 마음이 든다. 어디로 내려왔으며, 어디서 만났을까, 요리조리 살펴봤다. 신들의 흔적이 인간의 눈에 보일 리 없겠지만.


사방이 내려다보인다. GPS 고도상으로 1,160m였다. 물론 동북쪽으로 가야산 정상 상왕봉(일명 우두봉 1,430m)과 바로 그 옆 최고봉 칠불봉(1,433m)이 더 높은 봉우리지만 별로 높아 보이지도 않았다. 상아덤은 따로 떨어진 독립 봉우리로, 신이 내린 정기를 받아 기암괴석의 만물상 형상을 다스리고 있는 듯했다.


▲ 새로 개방된 가야산 만물상 등산로는 평일에도 수백 명의 등산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 있는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가야산은 고운 최치원 선생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도 인연이 깊다. 그도 가야산을 보고 ‘伽倻山中作(가야산중작, 가야산 속에서 짓다)’이란 시를 남겼다.


창연한 저문 빛은 서리 낀 등나무에 내리고 / 초승달은 숲에서 나오고 서산의 해가 진다 / 묻노니 너 산중의 늙은 나무 정령아 / 오늘 밤 응당히 최 고운이 지나는 것을 보았지 않으냐


蒼然暮色來霜藤(창연모색래상등) / 新月出林西日下(신월출림서일하) / 問爾山中老樹精(문이산중로수정) / 今宵應見孤雲過(금소응견고운과)


최치원과 이항복, 시대는 다르지만 그 시대 최고의 천재들로, 가야산을 배경으로 수백 년을 뛰어넘는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 가야산이 만물상을 지나는 산객들에게 다시 한번 최치원과 이항복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가야산 정상은 어디일까?… 정상은 상왕봉, 최고봉은 칠불봉 ‘혼란’


가야산 정상 논쟁을 수년째 벌이고 있지만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가야산 최정상은 이미 다 아는 바와 같이 해발 1,433m의 칠불봉이다. 논쟁 발단 전까지는 우두봉(상왕봉)이 최고 높으며, 당연히 정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바로 그 옆 칠불봉이 누가 보더라도 조금 더 높게 보인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자 국토지리정보원에서 GPS로 실측했다. 실측 결과 실제로 정상이라고 알려진 상왕봉은 1,430m로 나왔고, 그 옆 칠불봉은 1,433m로 나왔다. 당연히 정상이 칠불봉으로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 정상은 상왕봉으로 인정하고 있다. 행정상으로 정상은 상왕봉, 실제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칠불봉으로 혼돈되고 있는 상황이다.


▲ 상아덤에 오르기 직전의 만물상 코스 마지막 구간을 등산객들이 뒤돌아서 주변을 조망하며 오르고 있다.

이는 기존 정상을 고수하려는 행정구역의 문제에 국토지리정보원의 우유부단함과 애매한 발표 때문이다. 우선 기존의 상왕봉은 행정구역이 경남 합천이다. 합천은 가야산 국립공원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해인사와 남산제일봉, 상왕봉, 최치원이 묵었다는 청량사, 홍류동계곡 등 주요 유적도 합천에 있다.


그러나 실측 결과 최정상으로 나온 칠불봉은 경북 성주 관할이다. 성주는 가야산 정상이 당연히 칠불봉이라고 발표한다. 정상이 바뀌면 행정구역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전체 산의 관할도 달라질 수도 있다. 합천은 당연히 정상이 상왕봉이라고 발표한다. 두 개의 정상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산과 지도와 관련된 행정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도 애매한 발표를 했다.


“하나의 산에는 여러 봉우리가 있으며, 그 중에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해도 정상이 아니며 전체의 봉우리 중에 제일 중심이 되는 봉우리가 그 산의 정상이다.”


▲ 가야산 용기계곡의 모습.

이에 따라서 가야산 정상은 제일 높은 칠불봉이 아니라 중심이 되는 상왕봉이라는 것이다. 모든 공식 지도표기엔 가야산 정상은 상왕봉으로 나온다. 상식적인 판단은 당연히 칠불봉이 가야산 정상이지만 애매한 기준과 행정구역의 관할 때문에 현재 가야산 정상은 상왕봉이다.


교통


서울에서 승용차로는 경부고속도로→당진상주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성주IC로 빠져나와 33번 국도를 잠시 타고 913번 도로로 바꾼다. 줄곧 가다 가야산로 중간 지점에서 백운동탐방지원센터로 우회전하면 된다.


백운동행 대중교통은 다소 불편하다. 서울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 가야산 백운동으로 직접 가는 고속버스는 없고 고령을 경유해야 한다. 서울→고령 고속버스는 하루 5회(10:08, 12:00, 14:00, 15:00, 16:45)뿐이며, 요금은 2만원. 경북 고령에서 백운동 주차장행 버스는 하루 3회(8:20, 14:45, 19:30), 고령 시외버스터미널(1666-4455)에서 출발한다.


맛집


백운동 주변엔 가야산 관광호텔(054-931-3500)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주변에 식당 몇 곳이 있다. 가야산 관광호텔은 온천도 있어 등산객들이 하산 후 사우나와 샤워를 즐길 수 있다.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차로 10여 분 거리에 오리고기 전문점인 살다보면식당(054-956-1947 또는 010-3809-1942)도 찾을 만하다.


/ 글 박정원 부장대우 jugnwon@chosun.com
사진 김영훈


가야산 만물상코스
금강·설악이 부러우랴, 神도 감탄할 이 비경
1972년 폐쇄 이후 38년 만에 전격 개방
'해동 제일 명산' 가야산 암릉미의 백미
백운동 기점, 만물상 거쳐 서성재서 하산
기암괴석 즐비한 7㎞…짧고 굵은 명품길


'해동 제일의 명산', '조선 팔경의 하나', '6가야의 시조산'. 경남 합천군과 거창군, 경북 성주군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 가야산(伽倻山·1430m)은 수많은 별칭을 갖고 있는 빼어난 산이다.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까지 품고 있다 보니 산꾼이 아니더라도 가야산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다.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경북 성주의 가야산 산행 도중 상아덤 아래 암봉에서 단풍과 어우러진 만물상의 암릉을 조망하고 있다. 38년 만에 개방된 만물상코스는 가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유명한데 특히 단풍이 고운 가을철에 좋다.
그런데 올가을 가야산에는 유난히 산꾼들의 발길이 잦다. 38년 만에 개방된 만물상코스 때문이다. 1972년 10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당시부터 출입이 제한됐던 만물상코스가 지난 6월 12일 전격 개방됐다. '해동 제일의 명산' 가야산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만 자자했던 코스이다 보니 새로운 풍광에 목말랐던 산꾼들이 뒷짐만 지고 있을 리 없을 터. 특히 단풍이 불타오르는 가을을 맞은 만물상코스에는 '인산인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전국의 산꾼들로 붐비고 있기도 하다.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올여름 개방과 동시에 답사를 계획하다가 이왕이면 단풍철에 찾아가자며 잠시 후순위로 미뤄 둔 바 있었지만 마침내 답사에 나섰다. 만물상코스는 그 명성에 걸맞게 수없이 많은 기암괴석과 타는 듯한 단풍이 어우러져 절정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필설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빼어난 풍경이다. 코끼리바위 기도바위 곰바위 애기바위 등 기암들을 휘돌아가며 느끼는 암릉산행의 짜릿함은 그만이다. 뿐만 아니라 만물상코스 능선을 둘러싼 서쪽의 사자바위 능선과 북쪽의 칠불봉~동성봉 암릉, 동쪽의 동성재 능선의 압도적 풍광을 둘러보며 걷는 맛은 마치 천상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황홀경에 젖게 한다. 숨 막힐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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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만물상은 금강산 만물상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수려한 풍광 면에서는 별로 손색이 없다고 평가받는다. 상아덤(서장대)에서 만물상 능선을 바라보던 한 산꾼은 '금강전도를 그린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명인 겸재 정선이 환생해서 다시 그린다고 한들 이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있을까'라며 혼잣말을 되뇌기도 했다.

가야산을 흔히 합천 가야산으로 부르지만 만물상코스는 합천 땅이 아니라 경북 성주 땅에 속한다. 산행 기점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백운동지구 주차장이다. 만물상코스의 개방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성주군 측에서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에 지난 3년여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백운동지구 주차장을 들머리 삼아 진행하는 가야산 산행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만물상과 상아덤 서성재를 거쳐 정상부의 칠불봉과 상왕봉에 오른 뒤 해인사가 있는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지구 홍류동 쪽으로 하산하는 종주코스다. 두 번째는 백운동에서 만물상을 지나 칠불봉과 상왕봉까지 갔다가 서성재로 되돌아와 용기골을 따라 백운동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들 수 있다. 종주코스와 거리는 별 차이 나지 않는다. 세 번째는 만물상코스로 올라 상아덤에서 서성재로 내려선 뒤 정상은 오르지 않고 용기골을 따라 백운동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등산객들이 가야산 만물상 부근 바위에서 풍경을 즐기고 있다. 오른쪽 멀리 상왕봉과 칠불봉이 보인다.
취재팀은 과거 수도산~가야산 능선 종주산행, 해인사~백운동 종주산행 등을 통해 상왕봉과 칠불봉은 몇 차례 오른 바 있기에 '여유롭게 즐기는 명품 단풍 산행'을 주제로 한 이번 답사에서는 가장 짧은 세 번째 코스를 택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백운동주차장~관리초소 만물상코스 입구(백운교)~전망대~만물상~상아덤(서장대)~서성재~백운4교(옛 백운동대피소 터)~백운3교~주차장 순이다. 총거리 7.3㎞, 걷는 시간만 4시간가량 걸리는 단출한 코스지만 인파가 많이 몰리는 10월 말~11월 초 주말의 경우 1시간쯤 더 잡는 것이 좋다.

백운동 주차장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포장도로를 따라 가야산야생화식물원 쪽으로 간다. 도로변에 '상왕봉~해인사 방면 하산시 문화재관람료 징수'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어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식물원을 지나 200m쯤 가면 백운동탐방지원초소 및 산행안내도 앞. 정면에 보이는 계곡은 용기골. 골짜기 머리 위로 멀리 칠불봉~동성봉 암릉이 울룰불룩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 초소 앞에서 왼쪽 능선으로 곧바로 붙으면 만물상 탐방로로 오르게 된다. 노약자 및 어린이, 산행초보자는 위험하니 출입을 피해 달라는 경고 문구가 선명하다.

상아덤(왼쪽 먼 암봉)과 칠불봉 사이 서성재 고원의 단풍.
본격 산행에 들어서면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김해 허씨 묘와 전주 이씨 묘를 잇따라 지나며 20분쯤 땀을 쏟으면 첫 번째 나무 계단에 닿는다. 계단을 올라 주변을 살피면 서서히 가야산의 멋들어진 기암과 암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2분 후 '서성재 2.4㎞'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통과하고 5분 뒤 두 번째 나무계단을 지나면 남서쪽 심원골 건너편 사자바위 능선과 만물상코스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상아덤까지 이어진 암릉이 단풍의 물결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닥의 단단한 흙과 바위가 미끄러워 은근히 신경이 쓰이지만 이후부터는 발길 닿는 곳마다 저절로 탄성이 빚어지는 풍광의 연속이다. 경북 포항에서 왔다는 50대 후반의 한 산꾼은 "내 나이 스무 살 때 벗들과 이 능선을 타면서 모험을 즐겼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 기뻐. 이제 굳이 단풍을 보러 멀리 설악산까지 갈 필요도 없어졌다고 봐"라며 감흥에 젖기도 한다.

가을 만물상코스는 암릉과 단풍을 함께 즐기는 산행지다.
많은 산꾼들이 한 굽이 돌 때마다 기념촬영을 하는 탓에 산행 속도도 자연스럽게 더뎌진다. 산행에 미숙한 부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그렇지만 정성껏 한걸음씩 옮기고 있는 어느 노신사의 모습도 만물상코스 단풍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바위 끝 소나무 멋들어진 전망대를 지나 암릉을 오르락내리락하며 20분쯤 더 가면 좌우는 물론이고 정면의 상아덤과 가야산 정상부 상왕부 칠불봉 동성봉 능선까지 확 트이는 멋진 조망처 겸 쉼터에 닿는다. '서성재 1.2㎞'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우뚝 솟은 원뿔형 바위가 두드러지는 이곳이 바로 만물상코스의 백미인 '만물상'의 정점이다. 솟은 바위 아래에서 점심 도시락 먹기 딱 안성맞춤인 이 지점에서는 상아덤과 가야산 정상부가 훤히 드러나지만 정작 만물상의 오묘한 암릉은 볼 수 없다. 살짝 내려섰다가 이어지는 다음 암봉으로 계단을 밟고 올라서 뒤돌아봐야 비로소 만물상의 모습이 드러난다. 계단을 오르며 되돌아본 만물상은 두꺼비 코끼리 물개 곰 독수리 등 온갖 동물의 모양을 한 바위들이 즐비해 말 그대로 천하 만물을 모아놓은 듯하다. 신의 솜씨일까. 산꾼들의 탄성은 그칠 줄 모른다. 상아덤까지는 두 차례 더 암봉을 오르내려야 한다. 가야산성의 석축 흔적도 곳곳에 역력하다. 안부에 설치된 '서성재 0.7㎞' 이정표를 지나 오른쪽으로 살짝 우회해 5분 만에 올라선 상아덤 직전 암봉은 만물상을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붉게 물든 가을의 만물상을 바라보노라면 과연 '조선8경 가야산, 그중에서 만물상이 으뜸'이라는 평가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10분 후 꼭대기에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는 해발 1158.9m의 상아덤은 서장대, 삼리등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이번 답사 코스의 최고봉이다. 거칠 것 없는 조망이 하도 빼어나 '가망(可望) 사백리(四百里)'라고도 일컬어지는 상아덤에서 바라본 풍광은 장엄하기 그지없다. 거쳐온 만물상 능선은 물론이고 남서쪽 멀리 남산제일봉과 매화산 비계산 오도산 등의 연봉이 줄지어 가야산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듯하다. 특히 북쪽의 모습이 장관인데, 가야산 정상부의 근육질 암릉과 그 아래 펼쳐진 서성재 부근 고원지대가 마치 '파도치는 단풍의 바다'를 연상케 한다. 땅의 여신인 '정견모주'와 천신인 '이질하'의 전설을 기록해 놓은 상아덤 안내판을 지나 서성재까지는 불과 10분이면 충분하다.

벤치와 평상 등 휴식시설이 설치된 서성재에서 직진하면 칠불봉과 상왕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 계곡은 용기골을 따라 백운동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오른쪽 용기골을 따르는 길은 절정에 이른 '단풍터널'이다. 또한 천상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환속의 길'이다. 완만한 경사도의 단풍 흐드러진 계곡길을 따라 느릿하게 걸으며 백운4교가 있는 옛 백운동대피소 터와 백운3교 등을 거쳐 1시간30분가량 내려서면 출발지인 주차장에 닿는다.


◆ 떠나기 전에

- 11월15일부터 한 달간 입산 통제 유념해야

서성재에서 백운동으로 내려서는 용기골의 단풍이 곱다.
38년 만에 개방된 가야산 만물상 코스는 산불 방제기간인 11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입산 통제된다. 따라서 만물상코스에서 암릉과 어우러진 단풍산행을 즐기려면 그 이전에 찾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취재팀이 답사를 한 당일인 지난 22일의 경우 단풍이 7부 능선까지 내려와 있었다.

최근 들어 뜨거워진 가야산 정상에 대한 논쟁도 관심거리다. 기존의 정상은 합천군에 속하는 상왕봉(우두봉이라고도 함)으로 해발 1430m였지만 경북 성주군의 요청으로 국토지리정보원의 실측 결과 칠불봉이 해발 1433m로 측정됐다. 높이로만 따지면 칠불봉이 최고봉인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야산 정상은 상왕봉으로 인정받고 있다. 칠불봉은 만물상 능선의 최고봉인 상아덤(서장대·1158.9m)에 전해지는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와 천신 이질하 사이에 얽힌 전설과 관련된 이야기를 갖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에 따르면 정견모주가 백성의 안녕을 위해 상아덤에서 기원하자 하늘에서 천신 이질하가 내려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부는 형제를 낳았는데, 큰 아들인 뇌질주일은 자라서 대가야국의 시조인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인 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됐다고 한다. 수로왕은 허황옥과 결혼해 10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7명의 왕자가 허황옥의 오빠인 장유화상을 따라 칠불봉에 들어와 칠불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수도해 생불이 됐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칠불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 교통편

- 고령에서 해인사행 버스 탄 후 택시 이용

가야산 만물상코스 산행에 나선 한 등산객이 중간 전망대에서 남서쪽 사자바위 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고령행 버스를 이용한다. 부산에서 오전 7시, 8시20분, 9시20분 등 하루 13회 출발한다. 1만 원. 고령터미널에서 20~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해인사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합천군 가야면 소재지에서 백운동까지 택시를 이용한다. 고령에서 백운동행 버스(606번)는 오전 8시20분과 오후 2시40분 등 하루 3회만 운행하기 때문에 버스 시간 맞추기가 힘들다. 총 2시간30분 소요.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 칠원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고령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 광주 해인사 방면으로 간다. 88고속도로 해인사IC에서 내려 우회전, 가야면 야천삼거리에서 성주방면 59번 국도를 타고 고개를 넘으면 백운동지구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다. 2시간2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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