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억 혈세 날리고 승진⋯도청에는 ‘책임’이 없다

[책임지지 않는 도정] 상. '일단시켜'의 씁쓸한 퇴장
강원 공공배달앱, 3년도 안 돼 서비스 종료
"무리한 사업" 경고에도 일사천리로 진행
최기용 당시 과장 등 담당 공무원은 줄승진
12년만 도정 교체에도 건재⋯시스템 개선해야

 

 

2020년 12월 강원특별자치도(당시 강원도)는 중개수수료와 가입비, 광고비가 없는 공공 배달앱 ‘일단시켜‘를 출시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구상이었다.

도는 가입자 수와 매출액이 증가할 때마다 보도자료를 뿌리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일단시켜에는 총 27억원의 혈세가 들어갔지만, 오는 15일 출시 3년도 안 돼 서비스를 종료한다.

가입자 수와 이용 건수가 저조하다는 이유다. 일단시켜는 강원자치도가 벌인 세금 낭비의 대표 사례로 남게 됐다.

강원특별자치도는 3년간 공공 배달앱 개발과 홍보 등에 27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강원특별자치도 전임 도정이 혈세를 들여 추진한 사업들이 잇따라 실패로 귀결되고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시 최문순 도지사는 3선을 채운 후에 퇴임했고, 실무를 담당했던 공무원들은 오히려 승진해 요직을 맡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기업처럼 성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도지사를 비롯해 윗선에 얼마나 잘 보였느냐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는 특유의 문화 탓이다. 나철성 강원평화경제연구소장은 “도지사는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도민의 선택을 받을 수라도 있지만 실무 공무원들은 책임 소재로부터 자유롭다. 이러니 공무원들은 도민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도지사 치적 쌓기에 열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작부터 실패 예고⋯사업 타당성 조사도 없어

강원자치도에서 ‘일단시켜’ 앱 개발을 주도한 곳은 경제진흥과였다. 당시 최기용 경제진흥과장은 보도자료를 내면서 소상공인과 소비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강원자치도 대표 배달앱으로 안착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중개수수료, 가입비, 광고비가 없는 ‘3무(無)’ 혜택으로 소상공인 부담을 덜어 많은 가맹점이 가입할 것이라고 했다. 소비자도 지역 상품권으로 결제하면 5~10%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어 소상공인과 소비자 모두 상생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당시 도는 일단시켜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을 선전했던 것과 달리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무리한 사업이었다고 지적한다. 배달앱을 이용하는 이유는 편리함인데, 공공이 만든 앱이 이미 활성화된 민간 배달 플랫폼의 편리성을 뛰어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학자가 “수수료 수익이 없는 만큼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세금 투입이 늘어나 오래 지속하기도 어려운 사업”이라고 경고했다. 그렇지만 일단시켜는 경제성이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타당성 조사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당시 강원도가 일단시켜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배경에는 최문순 당시 도지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 전 지사는 당시 민관협력 플랫폼 사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당시 코로나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어려움과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고, 민간 배달앱이 높은 배달료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기도 했다.

 

도 관계자는 “수수료가 없는 공공 배달앱은 도지사 치적을 빛내기 위한 아이템으로 그야말로 제격이었다”며 “공무원들은 도지사에게 들이밀기 좋은 아이템이니 성공 가능성을 제쳐두고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실패 주도하고 줄줄이 승진⋯도정 교체에도 건재

일단시켜 개발을 주도했던 최기용 당시 과장은 현재 도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경제국장이 돼 있다. 지난 7월 최 국장은 도의회 경제산업위원회 제321회 회의에서 일단시켜 사업 폐지에 대해 “완전한 일상회복과 대면 소비 트렌드로 전환되면서 배달시장의 성장이 둔화해 공공배달앱 운영을 종료하겠다”고 말했다.

 

3년 전 “강원자치도 대표 배달앱으로 안착시키겠다”고 공언했는데 그 사이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강원자치도는 현재도 “일단시켜는 사업 실패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니 혈세를 낭비한 일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일단시켜를 주도한 당시 경제진흥과 직원들은 도지사가 바뀐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기용 당시 과장은 2021년 1월 1일 일단시켜 출시 한 달 만에 국장으로 승진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당시 승진 사유는 “전국 최초 코로나19 자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 강원도 최초 배달앱(일단시켜)출시”이며 다른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이후 경제진흥국과 문화관광체육국을 거쳐 현재 경제국장 자리에 앉았다.

 

소상공인의 디지털 전환과 온라인 판로 지원을 위한 라이브커머스 사업과 사회적기업 재정지원 사업 등을 진행한다. 일단시켜 사업을 함께 기획했던 당시 김태훈 경제진흥국장과 김권종 경제진흥과 경제분석팀장도 각각 원주부시장, 균형발전과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6월에는 12년 만에 도정 교체가 이뤄졌음에도 전임 도정의 실무 담당 공무원들이 그대로 중용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실력보다 인맥에 의해 좌우되는 공무원 사회의 생태를 잘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임 도지사 입장에서도 ‘흔들림 없이 도지사에 충성하는’ 공무원이 나쁠 게 없다는 것이다. 도청 내부 관계자는 “최기용 국장은 강원자치도 공무원 노조가 행정망 시스템을 통해 국·과장급 간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베스트·워스트 설문조사에서 최악의 간부로 뽑힌 사람”이라며 “명백히 실패한 사업인데 이를 주도한 사람이 엄청난 경쟁을 뚫고 핵심 국장이 된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설령 도지사가 지시하는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하더라도 실무자에게도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무원이 권력을 위한 충복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공복(公僕)이 되기 위해 철저하게 실적과 실력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 결국 공직자의 책임감과 소신, 강직함이 있어야 하며, 인사권자인 단체장은 뭐든지 시키면 따라야 한다는 제왕적 인식을 버려야 지금 공직사회에 만연한 수많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직사회에서 뭔가 서비스를 내놓을 때는 높으신 분 보여줄 시연작을 만드는 데만 심혈을 기울이고 이후로는 내버려 두는 경향이 있다”며 “실무 공무원들은 설령 잘못된 지시가 내려오더라도 반대할 것은 반대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고, 도지사도 이런 공무원들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도정이 추후에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결국 김진태 강원특별자치도지사의 엄격한 인사 검증이 앞으로 필요하다는 의미다

 

 

디피코·나야나 실패 뒤에는 ‘예스맨’ 공무원 있었다

도지사의 충신들
디피코·우리도 등 전임 도정 사업 성과 부실
부실 관리·이용률 저조에도 책임지는 이 없어
도 "책임 소재 파악 중. 도민 우려 없도록 할 것"

 
 
강원특별자치도는 2020년 전기 자동차를 강원 대표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전기차 생산 업체 디피코를 횡성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도정은 233억원을 투입해 ‘전기차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2030년까지 3000여명의 고용 창출과 3조원이 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디피코는 자금난으로 지난달부터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그 여파로 전기차 관련 기업들의 유치나 추진 중이던 조곡농공단지·이모빌리티 연구 실증단지 분양까지 줄줄이 스톱될 위기에 놓였다.
 

전임 도정이 야심차게 진행한 대형 사업들이 실패로 판명나는 사례는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단시켜’ 사례처럼 도지사가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도청 국장급 고위 간부들이 충실히 이행한 사업들이 대부분이다. 실무 책임자이자 전문가인 공무원들이 소신껏 반대 의사를 밝혔다면 낭비되지 않았을 혈세가 너무 많다. ‘공무 수행을 해치는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는 거부해야 한다’는 공무원 행동강령은 잊힌 듯한 모습이다.당시 도정이 전기차 클러스터의 ′중심′이라고 홍보하던 디피코는 추진 전부터 자금 조달 문제로 우려를 샀다.

은행 대출 140억원 등 외부 자본을 대규모로 끌어오는 만큼 조금만 차질이 생겨도 지금과 같은 부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당시 예상대로 디피코는 임금 체불, 이자연체 등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달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실패가 예견된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된 배경에는 최문순 전 지사의 의지가 있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전기차(이모빌리티) 사업은 최 전 지사가 재임 당시 “강원도 대표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공언했던 분야다. 당시 국가 지원을 위한 판로 개척 설명회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국가 공모에 선정된 후엔 “이모빌리티 산업의 지속적인 사업 발굴과 행재정적 지원, 정주 여건 개선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이라고 자신 있게 밝혔다.

 

도청 실무진들은 최 전 지사의 의지에 따라 사업의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반박했다. 최정집 당시 첨단산업국장은 2020년 강원도의회 경제건설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디피코의 자금 조달 문제를 묻는 도의원들의 질문에 “자금 조달 문제는 전혀 없다”며 “2021년까지 관련 기업들이 모두 이전해 700억원을 투자,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을 갖고, 정부 설득도 마쳤다”고 자신했다. 도 관계자는 “추진 당시에도 실패할 사업을 왜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 ‘이용자 후기 3건’ 텅 빈 도민 행정 플랫폼

강원도가 51억원을 들여 야심차게 출시한 통합 비대면 행정 서비스 플랫폼 ‘우리도’도 비슷하다.

도는 87종의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행정복지센터 등에 방문하지 않고도 각종 복지 수당과 지원금 등을 비대면으로 신청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출시 당시 최문순 전 도지사가 “나야나(우리도)를 통해 유튜브 꺾을 것” “서비스를 확대해 외국 정부에 수출할 것”이라며 성공을 자신했다.

 

우리도는 당초 ‘나야나’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4월 출시, 저조한 이용률로 3개월 만에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출시 후 1년 6개월간 겨우 13만명이 다운로드하는 데 그쳤다. 앱스토어(16일 기준) 내 평점은 2.3점(5점 만점)에 머물렀고 40여개의 리뷰 가운데 올해 올라온 후기는 3개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인증 번호 오류, 강제 종료 등 기본적인 앱 기능의 부실함을 지적하는 이용자가 대부분이다. 도민 개개인의 행정정보 87종을 이용해 도정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신청할 수 있는 지원금은 6~7개뿐이다. 우리도 관계자는 “종류를 확장하고 싶어도 중앙부처와 연계된 지원금 등은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임 도정이 성공을 자신하며 투자한 디피코는 현재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으며, 우리도는 일부 지원금 신청만 가능한 상황이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책임지는 사람도, 책임 묻는 사람도 없다

담당 공무원들은 실패한 사업들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다. 디피코 사업을 추진한 최정집 당시 국장은 이후 2급에 해당하는 도의회 사무처장에 승진 임명되기도 했다. 현재는 강원테크노파크로 소속을 옮겼으나 디피코 사업 실패와는 관련 없는 인사 조치였다

 

 ‘우리도’ 실무를 담당한 양원모 첨단산업국장과 윤인재 전략산업과장 역시 현재는 각각 도 재난안전실장, 강원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승진에서 밀려난 상태지만 우리도와 관련은 없다. 올해 초 성과 부실로 지원금 회수 및 수사가 시작된 ‘드론택시 시제기 개발지원 사업’의 담당자로서 문책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결과적으로 수십억~수백억원의 혈세를 낭비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실패 책임을 묻는 이도 없다. 설령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있어도, 이미 물러난 전임 도지사에게만 화살이 돌아갈 뿐이다. 우리도의 경우 오히려 2021~2023년 국무총리상, 행안부 기관상 등을 수상했다는 업적을 홍보한다. 강원자치도 산업국 관계자는 “우리도는 공공 행정 앱으로 배달, 숙박 등 민간 분야와 경쟁하는 플랫폼과 달리 이용자 수 등 수치로만 평가하긴 어렵다”며 “현 정부의 과업이기도 한 디지털 플랫폼 구축은 서비스 안착을 위해 최소 3년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자치제에 따라 도지사가 선거로 선출되는 상황에서 책임 있는 도정이 이어지려면 공무원들이 도민을 위한 공복(公僕)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지사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사업을 밀어붙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설사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절차가 부실한 사업을 지시받더라도 거부해야 한다는 것.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공무원 행동강령’ 제2장 4조에는 ‘공무원은 상급자가 자기 또는 타인의 부당한 이익을 위해 공정한 직무수행을 현저하게 해치는 지시를 했을 때 그 사유를 그 상급자에게 소명하고 거부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성시경 단국대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간부급 공무원일수록 지자체장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정치적이고 단기적 성과에 집중한 사업을 벌이는 경향이 있다”며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은 집행부와 의회가 합의해 5년 이상 단위의 중기 재정 계획을 수립하는 등 절차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균 강원자치도 대변인은 실패한 전임 도정 사업 실무자들의 인사 책임에 대한 본지 지적에 “제기된 문제에 대해 책임 소재를 파악 중이며, 세출 구조조정을 포함 도민들의 우려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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