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회관 매각 10년 "상상과 달랐다"

 

①지키지 못한 약속
관광객 50만명 기대했지만 절반 수준
사회공헌 한다더니⋯카페 수익 어디로?
춘천시민 할인 찾기 어렵거나 사라져

/한승미

 

어린이회관은 춘천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시민의 정서와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그 때문에 시의회는 지역사회의 역사적 자산인 어린이회관의 민간회사 매각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매각이 불가피할 경우 앞으로 다른 용도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대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는 2012년 7월 어린이회관 매각과 관련해 “어린이회관이 매각되더라도 지금 같이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문화 공간 외에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하는 방안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시는 매수자의 행위 제한 기한을 30년으로 제한하고 다른 용도 전환 등의 해지사유가 발생하면 매매계약을 해제하는 특약 등기를 계약서에 명시하겠다고 했다.

 

또 시민단체와 시의회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현 건물 외형 유지 △어린이 프로그램 강화 △최소한의 비용으로 시민 이용 △지역 문화예술 단체 참여 △캠프페이지 내 어린이모험동산 등 대체시설 확보 △임의 처분, 다른 용도 전환 불가 등의 보완책을 마련해 시의회 동의 절차를 밟겠다고 강조했다. 

 

▶관광객 50만명, 150억원 경제효과 낸다더니

상상마당은 KT&G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해 공연, 전시, 축제, 체험, 문화, 예술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상상마당 춘천은 2007년 서울, 2011년 논산에 이어 세 번째로 문을 열었다. 

 

KT&G상상마당은 2014년 상상마당 춘천을 개관하며 이곳이 춘천시민과 관광객을 포함해 향후 강원도의 대표적 관광명소이자 문화예술 명소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상상마당 춘천은 부지 2만1530㎡(6512평), 건축 연면적 7397㎡(2237평)의 공간으로 상상마당 홍대의 약 3배, 논산의 약 2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상상마당 춘천에는 2021년까지 7년간 150만명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간 약 20만명이 방문한 것으로 개관 초기 내세웠던 50만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상상마당 춘천에 따르면 지난해 아트센터 방문객은 15만여명. 스테이 방문객을 포함해도 20만여명에 그쳤다. 연간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로 기대됐던 150억원도 결국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사회공헌 한다더니⋯카페 수익 어디로?
상상마당 춘천 아트센터나 스테이 방문객보다 월등히 높은 방문객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바로 카페다. 상상마당 야외공간 앞 가장 목 좋은 곳에 자리한 이 카페는 오픈 초기 ‘춘천에서 가장 비싼 카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지역 내 카페들과 차별화된 음료값을 받았다. 카페는 현재도 아름다운 의암호 풍광을 보기 위한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엄청난 매출이 예상되는 카페 수익금은 춘천을 위해 사용되고 있을까.

 

기대와 달리 카페와 상상마당 춘천은 운영 주체가 달라 수익 관리도 별도로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A카페와 스테이 내 B레스토랑은 담배인삼공제회가 별도 관리하고 있다. 담배인삼공제회는 KT&G 공제조합으로 회원들의 퇴직 후 생활 안정을 위한 자산운용과 부동산업이 주 사업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회공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소개다. 

 

연간 20만명이 7000원짜리 카페모카를 1잔씩 마셨다고 가정하면 14억원. 10년간 판매됐다고 가정하면 140억원이다. 지역의 역사적 자산이 상업공간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매각을 극구 반대했던 이원규 전 시의원은 “KT&G가 공익과 사회 환원을 위한 사업을 한다면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닌데 굳이 임대를 거절하고 매입한다는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던 것”이라며 "관광객이니 유입 효과니 하는 것도 의례적인 뻥튀기로 내세웠던 것으로 현재 상황은 과거에도 예상됐던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원 생활 중 가장 아쉬운 일을 뽑으라면 어린이회관 매각을 막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숨기거나 없애거나⋯지역민 할인
상상마당 춘천의 많지 않은 프로그램 가운데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상상실현페스티벌’이다.

티켓판매도 조기 마감할 정도로 인기인데 정작 춘천시민은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상상마당 춘천 홈페이지에서 과거 홍보 페이지를 살펴보면 SNS 친구추가에 대한 할인 혜택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춘천시민 할인에 대한 문구는 찾기 어렵다. 상상마당 춘천 관계자에 의하면 과거 홈페이지 구조상 할인 문구를 노출하기 어려웠고 예매 페이지로 넘어가면 공지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혜택마저도 2019년 이후 사라졌다. 춘천시민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만큼 많은 시민이 관람하지 않아서라는 것이 이유다. 관계자는 오히려 시민 할인 혜택을 없앤 후에 강원도 예매자가 2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해명했다.

 

숙박 기능을 하는 스테이 공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테이는 옛 강원도체육회관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로 총 58실, 약 200여명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개관 당시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숙박 공간으로 음악·공연예술 연습실, 컨벤션 시설로 구성돼 새로운 문화를 논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반 숙박업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 주말 객실료는 최대 24만1000원으로 춘천시민을 대상으로 한 할인 혜택은 없다. 컨벤션 시설에 대한 할인 혜택도 스테이 자체 홈페이지에는 별도 공지되지 않고 있다. 전국 5곳 상상마당이 함께 쓰는 홈페이지에는 춘천지역 단체와 관계학과는 30~50% 할인한다고 게재되어 있다. 지역민을 위한 혜택이 있는 시설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요구된다. 

 

KT&G 측은 “관광객은 기대에 근접하던 중 코로나19 영향으로 감소했고 다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카페와 레스토랑은 수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상마당을 통한 사회공헌 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매계약에는 복합문화예술센터인 상상마당 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 외에는 명시된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②사라져버린 자산
어린이회관 건립 취지 어디에
어린이행사·교육 찾기 어려워
축제·미술 등 문화의 요람 실종
어린이회관은 건물 자체로서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는 건축문화 유산이었다. 한국 건축의 거장 고 김수근 건축가가 1980년 건축한 것으로 그의 자연주의 공간 미학이 잘 드러나는 건물이다. 호수 앞에 내려앉은 한 마리의 새를 형상화한 것으로 지역 어린이 누구나 이곳에서 꿈을 키웠다. 
 

▶어린이회관의 가치와 역할

춘천시는 KT&G와의 매각 협의 과정에서 상상마당을 당초 어린이회관 건립 취지에 맞게 운영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현재 상상마당에서는 과거 이곳이 어린이회관이었다는 역사를 확인할 관련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그러니까 춘천사람들은 여기를 ‘어린이회관’이라고 부른다 이거지?⋯여기가 이렇게 변하고 난 다음에 온 세대는 전혀 모를 테니까. 춘천에서 나고 자란 9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여기서 그림 한 번 안 그려본 어린이는 거의 없을걸.”-「내가 사랑하는 춘천, 그곳」中

 

지난해 춘천지역출판연대가 펴낸 「내가 사랑하는 춘천, 그곳」에서 윤한 소양하다 대표가 친구에게 어린이회관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상상마당이 어린이회관의 취지를 이어받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공간도 교육도⋯갈 곳 잃은 어린이

상상마당 춘천의 설립 목적은 ‘지역을 포함한 문화예술 활성화에 기여’였다. 설립에 따른 기대효과로는 ‘교육문화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하고 아동·청소년의 창의력과 상상력 발달 기여 등을 꼽았다. 또 어린이회관의 최초 설립 목적을 살려 어린이와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키즈페스티벌’ 등 공연 프로그램을 매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관 당시 KT&G상상마당 총괄사업본부장은 한 인터뷰에서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초로 키즈 페스티벌을 기획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어린이가 춘천에 와서 문화를 즐기고 향유하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개관 초기 교육사업에도 비중을 두며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 청소년 창의 예술교육, 크리에이티브 워크숍 등을 펼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개관 3년여 만에 교육팀이 해체되면서 개관 초기와 같은 수준의 교육사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사라진 지역 문화의 요람

어린이회관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일 뿐 아니라 지역 문화를 탄생시킨 요람이기도 했다.

춘천인형극제가 처음 시작된 곳이 어린이회관이었고 춘천마임축제도 ‘도깨비난장’의 새로운 장을 이곳에서 열었다.

또 다른 지역의 대표 예술축제인 춘천연극제의 전신인 춘천국제연극제도 이곳에서 태동했고 춘천무용축제, 춘천공연예술축제 등 지역 대부분의 축제가 어린이회관을 통해 시민을 만났다.

 

어린이회관에서 수많은 축제를 열었던 문화기획자 박동일 문화통신 대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린이회관을 전국 최고의 야외공연장을 보유한 문화 공간으로 생각했다”며 “춘천의 공연 축제들이 모두 다 이뤄진 예술의 메카로 지역 축제의 모든 것이 출발한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춘천미술인의 염원으로 마련한 춘천미술관이 시작된 곳으로 양대 미술 단체가 처음 운영한 전시공간이 존재한 곳이기도 하다. 지역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상상마당 자리에 시립미술관이 들어섰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미술협회 춘천지부(이하 춘천미협)는 1995년 어린이회관 구석 작은 방에 ‘춘천미술관’을 열고 전시와 지역 미술인 교류 장소로 사용했다. 이듬해에는 ‘일요미술학교’를 열어 어린이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미술교육을 진행했다.

 

미술관으로 기능이 충분할 것으로 판단되자 당시 전태원 춘천미협회장은 어린이회관을 춘천시립미술관으로 만들자고 춘천시장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실내는 전시실, 교육공간은 물론 복도에도 작품을 걸 수 있는 구조였고, 야외에서는 조각 등 야외전시와 사생이 가능한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춘천미술관이 옛 춘천중앙교회로 이전한 이후에는 민족미술인협회 춘천지부가 갤러리 ‘스페이스 공’을 운영했다. 

 

전태원 전 회장은 “현재까지도 시립미술관 건립 부지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가능만 하다면 옛 어린이회관만 한 곳이 없다”며 “과거 강원도립미술관 건립 내정 부지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미술관을 짓기에 좋은 장소”라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회관은 미술은 물론 소극장 인형극, 야외 공연 등이 열렸던 춘천의 명소로 이미 복합문화공간이었다”며 “지금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겠고 장사만 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춘천의 유일한 등록미술관이 상상마당에 있다.

2017년 상상마당은 ‘아트센터’ 명칭을 ‘KT&G 상상마당 춘천 미술관’으로 변경했다. 옥천동에서 춘천미술관을 운영하는 춘천미협은 유사중복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시민에게 혼동을 주고 지역 미술계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옥천동에 있는 춘천미술관은 옛 교회를 리모델링한 것으로 열악한 시설과 운영비 부족으로 미술관 등록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춘천시립미술관은 시장이 건립 의지를 밝혔음에도 부지를 확정 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사라진 지역 문화예술 단체 참여

지역 문화예술 단체가 기존대로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최웅집 춘천공연예술제 총감독은 매각 이후 상상마당에서 예술제를 열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최 감독은 “춘천시나 다른 위탁기관이 운영했을 때는 사실상 무료로 이용했는데 상상마당 매각 이후에 터무니없는 비용을 요구해 공연을 할 수 없었다”며 “야외무대를 사용하려면 직원들이 추가 근무를 해야 하니 600만~8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야외공연장도 무용이나 연극 공연을 하기 어려운 형태로 리모델링해서 공연장의 장점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춘천시는 어린이회관을 매각하며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문화공간 외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하는 방안이 마련됐다고 논란을 잠재웠다. 또 해지사유가 발생하면 매매계약을 해제할 안전장치를 명시한다며 모두를 안심시켰다.

 

시는 춘천시민과 강원도민의 땅을 매각한 책임을 지고 잘 활용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춘천시청의 담당 업무를 살펴보면 이런 역할을 맡은 담당 부서가 없어 사실상 방치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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