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진 대학 못 가게 막기,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결말인가

 

/오마이뉴스

오래된 문제, 학폭의 해법을 묻는다①

우리의 질문은 열여덟 문동은의 구출이다 박연진 대학 못 가게 막기

 

"입 안 다물어? 니가 팔이 부러졌어, 다리가 부러졌어? 사지 멀쩡하게 잘도 돌아다니는데 뭐가 폭력이야? 뭐가 방관이야! 너 그 정도면 정신병자야, 알아? 친구끼리 한 대 때릴 수도 있는 거고!"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 담임 교사 김종문이 한 말이다.


"선생님 아들도 친구들한테 한 대 맞아도 괜찮으시겠어요?"

문동은은 김종문에게 항의하다 오히려 모질게 구타를 당한다.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없던 때라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합의로 끝났고(엄마가 합의금을 챙겨서 도망갔다), 견디다 못해 자퇴를 하게 된다. 교사들은 문동은을 돕지 않았고, 문동은의 친구들은 박연진 패거리의 눈치를 봤다. 문동은의 자퇴서에는 딱 한 줄, "부적응"이라고만 적혔다.
 

 
드라마가 아닌 2023년의 현실은 어떨까. 문동은이 학교에 신고하면 일단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 조치하고, 학교장이 학폭위에 넘길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2주 이상의 진단서가 발급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거나 재산상 피해가 발생한 경우라면 학교의 손을 떠나 교육지원청으로 넘어가 곧바로 학폭위로 가게 된다.

문제는 학폭위가 열리면 변호사들을 동원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진실 공방이 시작되고 그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데 있다. 그때까지 문동은과 박연진은 한 교실에서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한다. 학폭위에 소송까지 맞물리면 1년 이상 늘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국가수사본부장 후보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아들 사건의 경우 신체적 폭력은 전혀 없었지만 언어 폭력이 심각했다. "제주도에서 온 새끼는 빨갱이"라거나 "돼지는 가만히 있어", "구제역 걸리기 전에 꺼져라" 같은 모욕적인 발언을 "횟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냈다고 한다.

피해 학생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극심한 불안과 우울을 겪었다"고 호소했지만, 정순신 아들은 재심 청구와 징계 취소 소송을 거치면서 시간을 끌었다. 1차 학폭위에서 서면 사과와 전학 조처를 결정한 뒤 실제로 전학을 가기까지 11개월이 걸렸고, 그 사이에 피해자는 학교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정순신 아들은 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언어 폭력 정도로 피해를 입는다고 보기 어렵다"거나 "본인의 기질이나 학업 관련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해 학생이 변호사를 내세워 소송을 치르는 동안 피해 학생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2년 가까이 수업을 거의 듣지 못했고 결국 대학 진학에도 실패했다.

문동은의 경우도 박연진과 전재준 등이 거물급 변호사들을 끌어들여 쌍방 폭행으로 몰고 갔을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폭위 사건 가운데 퇴학까지 가는 비율은 0.2%, 전학도 4.5% 밖에 안 된다. 퇴학 처분을 받고도 행정 소송으로 끌고 가서 처분 취소를 받아낸 경우도 있다. 학폭위와 별개로 형사나 민사 고소를 할 수도 있겠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문동은이 변호사 없이 싸워서 이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쌍방 폭행이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정순신 사건 이후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4·12 대책은 여론을 의식해 만든 땜질 처방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기간을 3일에서 7일로 늘리고 생활기록부 기록을 4년까지 보존하기로 했지만,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 처벌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처벌을 피하려는 방어 논리도 강해지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부당한 공격이 쏟아지는 경우도 많다.

학폭위의 징계 조치는 다음 9단계로 이뤄진다.
 

1호 :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
2호 : 피해 학생 및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3호 : 학교에서의 봉사
4호 : 사회 봉사
5호 :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 치료
6호 : 출석 정지(정학)
7호 : 학급 교체
8호 : 전학
9호 : 퇴학


모든 징계 조치가 일단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만, 1호부터 3호까지는 졸업과 동시에 삭제하고, 4호와 5호는 졸업 이후 2년까지, 6호와 7호는 졸업 이후 4년까지 보존하지만 졸업 직전 심의를 거쳐 삭제할 수 있다. 8호는 예외 없이 4년 동안 보존하고 9호는 영원히 남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박연진은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더라도 무난히 대학교에 진학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 대학에서 학폭 사실을 점수에 반영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순신 아들은 2점이나 감점되고도 서울대에 합격했다. 모든 학교가 학교 폭력 가해자를 불합격 처리하는 상황도 아니고, 박연진이 특정 대학을 노리는 게 아니라면 애초에 입시나 생활기록부 기재 여부가 별다른 압박이 안 됐을 수도 있다.

박연진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대학에 갈 것이고 문동은은 좌절할 것이다. 결국 누가 더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느냐는 힘의 대결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학폭위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이미 발생한 문제를 수습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다.

박연진이 대학 못 가게 만드는 게 우리가 원하는 결말인가? 과연 이 시스템에서 문동은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박연진을 퇴출시키는 것으로 문동은을 지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 폭력의 해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실패 사례를 분석하고 현장의 전문가들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애초에 문동은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조금 더 넓게 들여다 보면 박연진 패거리도 처벌과 퇴출에 앞서 교육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형사 처벌과 별개로 학교 폭력 사건은 잘못을 깨닫고 바로 잡도록 하는 게 목표고 전학이나 퇴학 조치는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

교육부는 해마다 학교 폭력 실태 조사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 설문에서 학교 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비율이 2022년 기준으로 1.7%까지 늘어났다. 심의 건수는 2만3602건에 이른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늘어난 규모다. 여기에 2019년부터 학교장 자체 해결 사안까지 포함하면 6만3041건으로 늘어난다.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성현석은 "엄벌주의를 강화하면 할수록 엄벌을 피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되고 결국 얼마나 실력 있는 변호사를 동원할 수 있느냐의 대결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는 사건을 축소한다는 민원이 두려워 무조건 학폭위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누가 피해자냐를 두고 갈등을 빚는 경우도 많다.

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 이해준은 "지금도 소송이 많은데 입시에 반영되면 소송이 더 늘어날 것이고 학폭위 시장의 최종 승자는 변호사들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말 큰 문제는 교사가 학생을 보호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학생을 보호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건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해준은 "많은 부모들이 처리 절차와 결과에 집착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오히려 위기를 마주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가해 학생의 처벌 보다는 자녀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음 그림은 교육부가 해마다 실시하는 학교 폭력 실태 조사 결과다.
 

 학교 폭력 응답률(%)과 심의 건수(건). 교육부 학교 폭력 실태 조사. ⓒ 교육부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수업이 많았던 2020년과 2021년 학교 폭력 심의 건수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2022년에 다시 크게 늘었다. 2019년부터 학교장 자체 해결이 가능하게 됐기 때문에 실제로 이를 반영하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학교장 종결 사건이 적지 않았고 비교적 가벼운 사건들이 집계되면서 통계적 착시를 불러 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다.
 

 학교 폭력 심의 건수와 학교장 자체 해결 건수. 교육부 학교 폭력 실태 조사. ⓒ 교육부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답변한 학생이 모두 5만3812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1.7%를 차지했는데 초등학생은 3.8%, 중학생은 0.9%, 고등학생은 0.3%로 나타났다. 언뜻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갈수록 학교 폭력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초등학생이 상대적으로 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기 때문이고 학교 폭력의 강도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갈수록 훨씬 심각하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학년별 학교 폭력 응답률 비교. 교육부 학교 폭력 실태 조사. ⓒ 교육부

 
실제로 피해 후 힘든 정도를 묻는 질문에 초등학교는 21%가 "많이 힘들었다"고 답변한 반면, 이 비율이 중학교는 27%, 고등학교는 42%나 됐다.
 

 교육부 학교 폭력 실태 조사. ⓒ 교육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밝힌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답변이 30%였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신고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21%였다. "이야기해도 소용 없을 것 같아서"가 17%, "더 괴롭힘을 당할 것 같아서"도 14%나 됐다.
 

 학교 폭력을 당하고도 방관한 이유에 대한 응답 비율. 교육부 학교 폭력 실태 조사. ⓒ 교육부


학교 폭력의 유형을 비율로 보면 언어 폭력이 41.8%, 신체 폭력이 14.6%를 차지한다. 신체 폭력은 줄어드는데 언어 폭력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유형별 학교 폭력 발생 비율(중복 포함). 교육부 학교 폭력 실태 조사. ⓒ 교육부

 
학교 폭력은 오래된 문제다. 우리는 수많은 실패를 겪었고 여전히 해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거의 매일 폭력을 경험한다는 비율이 22%나 됐고, 1주일에 1~2번이라는 비율도 26%나 됐다.
 

 학교 폭력 피해 빈도. 교육부 학교 폭력 실태 조사. ⓒ 교육부


문화평론가 이승한은 <한겨레> 칼럼에서 "문동은의 아픔에 공감했다면, 지금 중요한 건 '가해자를 어떻게 사후적으로 처벌할 것인가'에서 그치는 논의가 아니라 '지금 발생하는 피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서른여섯 문동은의 복수를 응원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 내 주변에 있을 열여덟의 문동은을 구할 생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학교 폭력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열여덟 문동은을 절망에서 구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좀 더 정확한 질문이 필요할 때다.

 

못 본 척하는 친구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오래된 문제, 학폭의 해법을 묻는다②

구경하는 당신이 공범이라는 발상의 전환

"내 친구가 다른 친구를 괴롭힐 때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시작이다.

교육부 실태 조사에서는 34.6%가 "학교 폭력을 목격한 뒤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푸른나무재단 조사에서는 "모른 척했다"는 답변이 26.7%나 됐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나섰다가 피해를 입을까 봐"가 32.4%로 가장 많았다. "남의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가 29.9%, "서로 잘못했다고 생각해서"가 15.3%, "이 정도 학교 폭력은 일상인 데다 누구도 학교 폭력을 없애거나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해서"도 10%였다.

교육부 2021 학교 폭력 실태 조사. ⓒ 교육부

 
학교 폭력의 해법을 이야기할 때마다 거론되는 노르웨이의 올베우스 프로그램(OBPP)과 핀란드의 키바(KiVa) 프로그램은 이처럼 주변 친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접근에서 출발했다.

지금까지의 괴롭힘 대책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등과 충돌에 집중했다면, 키바 프로그램은 괴롭힘에 간접적으로 가담하는 방관자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팔짱 끼고 웃으면서 지켜보는 아이들이 괴롭힘의 공범이라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올베우스 프로그램은 학교 전체의 개입을 넘어 지역 사회의 참여를 확대하고 또래 중재자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또래 집단에서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려는 욕망이 있다.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은 단순히 힘이 셀 뿐만 아니라 또래들 사이에서 권력의 중심에 있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친구들을 괴롭히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괴롭힐 수 있는 힘이 있고 그 힘을 인정받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선을 넘게 된다는 이야기다. 친구들의 암묵적인 방관과 지지가 권력의 기반이고, 그걸 무너뜨릴 힘이 그 친구들에게 있다는 새로운 접근이었다.

실제로 다양한 조건에서 실험한 결과 주변의 친구들이 웃거나 박수를 칠 때 괴롭히는 아이의 권력이 강화되지만, 다른 친구들이 너무 심하다거나 그만 하자는 등의 반응을 보이면 급격히 권력이 무너지게 된다. 누군가를 괴롭혀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괴롭히는 것이고, 그 명분이 사라지면 멈추게 된다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더 이상 멋지지 않다는 걸 일깨울 뿐만 아니라 부끄럽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그러려면 괴롭히는 아이에게 힘을 실어줘서는 안 된다는 걸 모두가 알아야 한다.

 
[키바 프로그램] 키바 코울루, 괴롭힘에 맞서는 학교

지금이야 세계적인 대안 모델로 꼽히지만 핀란드도 한때 학교 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2004년 WHO(세계보건기구) 조사에서 11~15세 아이들에게 학교 생활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34개 나라 가운데 가장 낮게 나타나 충격을 안겨줬다. 핀란드 정부가 70억 원의 예산을 들여 투르쿠대학교에 학교 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고 2년 동안 시범 운영을 거쳐 도입한 게 키바 프로그램이다.

키바 코울루(KiVa Koulu)는 괴롭힘에 맞서는 학교라는 의미다. '키바(KiVa)'는 괴롭힘에 맞선다(Kiusaamista Vastaan), '코울루'는 학교를 말한다.


키바 프로그램은 1년 동안 진행되는 20시간 분량의 커리큘럼으로 구성돼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생각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교사 3명이 팀을 구성하고 단계별 대응 방안을 학습한다.

키바 프로그램은 크게 일반 지침(general actions)과 문제 해결 지침(indicated actions)으로 나뉜다.

일반 지침은 첫째, 방관자의 역할을 생각해 보게 하고, 둘째, 피해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하고, 셋째, 피해 학생을 도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게 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문제 해결 지침은 실제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대응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다. 2~4명의 동료 학생들이 참여해서 프로그램 진행을 돕게 된다.

일반 지침이 모의 훈련이라면 문제 해결 지침은 실전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테면 박연진이 문동은을 괴롭히는 걸 김경란이 보고 신고했다면, 반 전체가 모여 이 문제를 두고 토론을 진행할 수 있다. 아이들은 문동은의 입장에서 이 상황이 왜 잘못됐는지 이야기할 수 있고 박연진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의견을 모을 수도 있다. 박연진이 아니라 문동은에게 힘을 실어주는 또래 압력을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만약 박연진이 적절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문동은이 아니라 박연진이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애초에 가해자의 징계나 퇴출이 목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키바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올베우스 프로그램에서도 학교 전체의 개입을 강조한다.

교사나 부모를 비롯해 어른들이 적절하게 개입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고자질이 아니라, 괴롭힘을 멈출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고발하는 학생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키바 프로그램의 핵심은 누군가가 다른 누구를 부당하게 괴롭힐 때 우리가 그걸 멈출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키바 프로그램은 토론과 협동 과제, 역할극, 게임 등으로 구성된다. 다른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지점은 첫째,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자료와 행동 패키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둘째, 인터넷과 가상 학습 등 미디어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다. 셋째, 방관자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역할을 강조하는 걸 넘어 공감과 자기 효능감, 노력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키바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키바 게임은 5단계로 구성된다.

로그인을 하면 "괴롭힘을 당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보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같은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옳지 않다고 말한다", "선생님에게 이야기한다",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같은 답변을 선택해야 한다. "모른 척 한다", "자리를 피한다" 같은 답변을 선택하면 다시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괴롭힘 당하는 친구를 구출하는 게임도 있고, 선물을 던지면서 친구를 격려하는 게임도 있다. 간단한 게임이지만 퀴즈를 풀면서 핵심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핀란드 에스포의 카람지닌초등학교는 키바 프로그램을 도입한 첫 해에 학교 폭력이 67%나 줄었다. 2800개 학교 가운데 90% 정도가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1000개 이상 학교에서 학교 폭력이 의미 있는 정도로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피해 학생의 98%가 상태가 좋아졌다고 답변했다는 분석 결과도 있었다.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병찬은 핀란드의 경험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 키바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연구를 기반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당장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졸속 정책을 내놓으면 현장에서 외면하게 된다.

둘째, 처벌 위주가 아니라 교육 위주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대화와 토론으로 개선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그때 처벌을 논의해도 충분하다. 처벌은 응징이 될 수 있지만 변화는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셋째, 환경을 바꾸는 게 목표다. 학교 폭력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로 봐야 한다. 방관자들의 방관적 태도를 바꾸는 게 핵심이고 해법도 집단에서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넷째, 교사를 믿고 맡긴다. 키바는 철저하게 교실에서 진행하고 교사가 주도한다.

 키바 홈페이지. ⓒ 오마이뉴스

[올베우스 프로그램] 1982년 노르웨이에서 학생 3명이 자살한 이후

핀란드에 키바 프로그램이 있다면 노르웨이에는 이보다 앞서 올베우스 프로그램이 있었다.

1982년 3명의 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교 폭력에 대한 문제 의식이 확산됐다. 베르겐대 교수 단 올베우스(Dan Olweus)가 베르겐 지역 42개 학교를 조사한 결과, 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학생이 45~50%나 됐다. 가해자들은 평소에 특별히 문제가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피해자들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어린 학생들이 많았는데 피해자의 80%가 자신이 심약하고 무능력해서 반항을 못했다고 진술했다.

올베우스는 불링(Bullying, 괴롭힘)이란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이다. 올베우스는 불링을 "학생이 다른 한명의 학생 또는 집단 학생의 부정적인 행동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괴롭힘을 당하거나 희생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 글에서는 불링을 괴롭힘으로 번역해서 쓰기로 한다.

올베우스가 정의한 괴롭힘의 세 가지 요소는 힘의 불균형과 고의성, 반복성이다. "자신을 방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학생에 대해 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의도적, 반복적으로 가하는 부정적인(불쾌하거나 상처를 주는) 행동"을 말한다.

올베우스 프로그램은 다음 다섯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 학교 폭력의 특성과 현황 파악을 위한 무기명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관심과 참여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한다.

둘째, 학교 폭력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학교 컨퍼런스(School Conferece Day)를 운영한다. 교장과 교감, 학교 폭력 전담교사를 비롯해 학교폭력위원회와 부모, 학생 등 학교 구성원 대표가 모두 참여한다.

셋째, 학교폭력예방조정위원회(BPCC)를 운영한다. 교장과 교사 대표, 전문 상담가, 정신건강 전문가, 심리학자, 학부모, 학생 대표 등으로 구성된다. 학교폭력 예방과 관련된 모든 프로그램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넷째, 학교 폭력이 빈번한 장소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

다섯째,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학부모의 협조를 요청한다. 정기적인 학부모 면담을 만들고 전화 통화를 하거나 가정통신문을 보내 학교의 노력을 공유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한다.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교사가 즉시 개입하거나 가해 학생을 불러서 상담할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이 없다. 교사들은 흔히 권위주의적인 접근을 선호하지만, 교사의 개입이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올베우스 프로그램에서는 가해 학생과 진지한 토론을 통해 징계의 수위를 결정하라고 제안한다.

올베우스 프로그램의 네 가지 규칙은 다음과 같다.
; - 규칙 1 : 우리는 다른 친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 규칙 2 : 우리는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도울 것이다.
- 규칙 3 : 우리는 혼자 있는 친구들과 함께 갈 것이다.
- 규칙 4 : 만약 누군가가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학교나 집의 어른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학생들은 이런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 학교폭력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가?
-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 학교폭력을 목격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 학교폭력을 당하는 사람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가?
- 학교폭력에 참여하라는 또래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 학교폭력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경기대 교수 김철은 올베우스 프로그램의 교훈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적인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에 의해 완성된 프로그램이었다.
둘째, 발생 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셋째, 자율성과 독립성을 키운다.
넷째, 구체적인 예방과 대책을 제시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 박효정은 올베우스 프로그램이 한국 교육에 주는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사후 발생 보다는 예방과 조기 대응에 집중한다.
둘째, 친절과 상호 존중, 인간 존중의 가치에 높은 비중을 둔다.
셋째, 학교의 힘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역 사회의 참여를 확대한다.
넷째, 꾸준한 실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
키바 프로그램과 올베우스 프로그램은 방관자 효과에서 해법을 모색했다. 누군가가 위험에 빠졌을 때 다른 사람들이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으면 먼저 나서기가 조심스럽다.

- 혹시 저 사람이 잘못되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아닐까.
- 누군가 하겠지. - 내가 괜한 오해를 받게 될 수도 있어.
- 다른 사람들도 가만 있는데 굳이 내가 나서야 할까.
- 다른 사람들이 나서지 않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처럼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 한다.

키티 제노비스 살인 사건은 <뉴욕타임스>의 왜곡 보도로 밝혀졌지만 실제로 심리학 실험에서는 방관자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같은 방에 있는 사람이 간질 발작을 일으켰을 때, 한 사람만 있을 때는 도와주는 확률이 85%였는데 다섯 명이 있을 때는 31%로 줄어들었다. 키바 프로그램과 올베우스 프로그램은 학습된 방관자 효과를 극복하는 실천 매뉴얼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가 먼저 뛰어들면 모두가 뛰어들게 된다.

다음은 <슬로우뉴스>와 인터뷰한 학교폭력가족협의회 사무국장 김소열의 말이다.

"저는 우리 사회가 방관자를 만든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는 현실 속에서 아, 학교폭력 문제가 신고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라고 하는 인식이 저는 방관자 학생의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학교 문제와 학교 폭력 문제가 신고됐을 때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되고, 피해자가 보호받고 치유받고 회복되는 게 눈에 보인다면 저는 많은 학생들이 방관자의 자세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고 치유받고 회복되는 과정을 본다면, 그리고 가해자가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면, 그리고 또 신고자들도 보호되고 그런 것들이 보여졌다면, 방관자에 머무는 학생들이 더 적었을 것으로 봅니다.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죠."

 

"내 새끼 운명 건 전쟁"... 학폭위가 해법 될 수 없는 이유

오래된 문제, 학폭의 해법을 묻는다 ③ 

학폭위라는 컨베이어 벨트의 실상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아래 학폭위)는 컨베이어 벨트와 같다.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장이 자체 해결하거나 학폭위로 보내거나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학교장이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은 다음 네 가지로 한정돼 있다. ① 2주 이상의 신체적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은 경우 ②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③ 학교 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④ 학교 폭력에 대한 신고, 진술, 자료 제공 등에 대한 보복 행위가 아닌 경우 등이다.

이 네 가지 요건과 별개로 피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의 부모가 요구하면 아무리 경미한 사건이라도 무조건 학폭위로 간다. 그러니까 사안이 가볍거나 무거운가를 떠나 피해 학생과 부모가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를 테면 놀이터에 두고 간 친구 가방에서 포켓몬 카드를 훔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실제 사례)도 부모들끼리 합의가 되지 않으면 학폭위로 간다. 간다면 가는 구조인 것이다.

2020년 3월 학폭위 담당 기관이 학교(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교육지원청(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으로 이관되면서 학교에서는 웬만큼 무거운 사안이 아니면 학폭위로 넘기고 발을 빼는 경향이 강해졌다. 교사 입장에서도 학부모들 민원에 시달릴 가능성을 우려해 자체 해결보다는 학폭위를 선호하게 됐다.

2022년 기준으로 학폭위 사건은 6만3041건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학교장 자체 해결은 3만8439건이었다. 세 건 가운데 두 건이 학폭위로 간다는 이야기다.

3건 중 2건 학폭위로... 현장에서 말하는 시스템의 한계

<슬로우뉴스>는 학폭위의 운영 현황과 학교 폭력의 근본적 해법을 찾기 위해 교육 현장과 정책에 관여하는 여러 전문가들을 만났다.

2011년 말 대구에 한 중학생이 집단 괴롭힘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교 폭력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고 이듬해 교육부가 학교 폭력 대책을 발표하면서 여기에 결정적인 조치를 포함한다. 바로 학폭위 결과를 생활기록부에 남긴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학폭위는 '내 새끼의 운명'을 건 전쟁터로 변질됐다. 게다가 2020년 3월 학폭위를 교육청으로 이관하면서 가뜩이나 사법화 경향을 보였던 학폭 문제는 매뉴얼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행정 절차로 변질됐다.
  
동암중학교 교장 성기선은 이렇게 말한다.

귀한 내 자식의 미래를 망치지 않으려다 보니 소송을 하게 되고 기록을 삭제하려고 하니 또 소송을 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거죠.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그것도 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힘 없는 사람은 변호사 살 비용을 만들지 못하지만,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변호사를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죠. 학교가 그런 변호사들과의 다툼으로 그게 또 엄청난 업무가 됩니다.


성기선은 "피해 학생이나 가해 학생이나 학교가 중립적인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느끼는 부모는 거의 없다"면서 "차라리 양쪽 이야기를 정확하게 듣고 제3자 입장에서 조절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해서 교육청으로 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사의 성향에 따라 이왕이면 학교 안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교적 가벼운 사안까지 학폭위로 넘기는 경우도 많다.

광운대 교수 한재경은 '공공사회연구'에 기고한 논문에서 "담임 교사가 자체적으로 화해를 유도해서 처리하게 되면 자칫 학교 폭력을 축소 또는 은폐한다는 반발에 부딪혀 징계를 받거나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경미한 사안이라도 학폭위로 끌고 가는 문화에서는 담임 교사가 교실 공동체의 관계 회복적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학교폭력예방법의 목적(법1조)은 첫째, 피해 학생의 보호, 둘째,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 셋째,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의 분쟁조정이다.


학교폭력가족협의회 사무국장 김소열은 "학폭위는 가해자의 징계에 초점을 두고 있고 피해 학생은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학폭위 시스템은 여전히 피해자 보호가 미흡하다"고 말한다. "긴급 분리조치가 3일에서 7일로 늘어났지만,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복도와 식당, 화장실 등에서 계속 마주치기 때문에 피해 학생이 학교 가는 것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정순신(국가수사본부 본부장 후보) 아들 사건에서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과 11개월 가까이 한 반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이 기간 동안 거의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한국교직원총연합회 교권본부장 김동석은 "학교 폭력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사안이 많고 쌍방이 서로 피해를 주장하는 경우는 분리 조치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12일 발표된 종합대책에 따르면, 피해 학생이 요청할 경우 학교장 긴급조치로 학교 심의기구의 사안 조사(3주)와 학폭위 심의(4주)로 이어지는 최대 7주까지 출석 정지(6호) 또는 학급 교체(7호)를 할 수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해준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 이해준은 학폭위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했다. 학교는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거짓말을 해도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교장이 폭력인지 장난인지를 판단하고 교사들이 그 판단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이해준은 "교사들과 이야기해보면, 교장 의견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곤 한다"고 말했다.

 

어떤 교장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던데요. 우리 학교는 한 번도 학교 폭력이 일어난 적 없다, 이런 이야기는 학교 폭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하고 같습니다. 학교 폭력이 없다기 보다는 신고되기 전에 무마했다는 거고, 교사가 찍어 눌렀다는 거죠. 외부에 알려지면 학교 이름에 먹칠이고 아이들한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니까, 너 전학 갈래 아니면 그냥 여기서 사과하고 마무리 할래, 이렇게 압박하면 부모들 입장에서는 안 받아들일 수가 없죠.


운명을 결정하는 30분 
학폭위는 학교 폭력에 대한 수십 년의 고민과 시행 착오를 담은 시스템이지만, 여전히 미완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크게 세 가지 문제를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전 조사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올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애초에 학교에 조사 권한이 없는 데다 학부모들 눈치를 보느라 기본적인 사실 관계 조차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교사들의 이야기다.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주장이 엇갈릴 때는 더욱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학폭위도 인력이나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심의위원들은 학폭위 심의 30분~1시간 전에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개인정보 누출 위험 등을 고려한 절차라고는 하지만, 학생의 운명이 걸려 있는 사건을 면밀하게 다루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폭력의 정도가 무겁거나 관련된 학생이 많은 사건은 자료만으로 진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불만도 많다.

셋째, 심의위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았다. 학폭위는 각 교육지원청(서울시교육청의 경우 11곳) 단위로 10~50명으로 구성된다. 관내 학부모를 3분의 1 이상 포함하는 것 외에는 별도 규정이 없다. 심의는 학폭위 산하 소위원회(소위)가 담당하는데 소위는 통상 5~10명으로 구성된다. 심의위원은 학부모와 교원(장학사), 법률가(변호사), 청소년전문가(상담사, 푸른나무재단 등 NGO 활동가 등) 등이 참여한다.

이해준은 "학부모들은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 심사위원들은 피해 학생을 마치 가해 학생처럼 몰아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가톨릭대학교 교수 유금란 등의 연구에 참여한 한 초등학교 학폭위 위원들의 말이다.

애들이 충분히 자중하고 애들 스스로 갈등을 풀 수가 있는데, 학폭이란 법이 만들어지면서 애들이 스스로 갈등을 풀지 않고 조금만 불편해도 이런 게 있으니까 나는 이거를 이용해서 너를 뭐 할 거야 이런 식으로 자꾸 진행되고, 오히려 학폭위가 만들어지면서 아이들의 문제가 어른의 문제로 심각하게 번지고, 그게 결국은 법의 테두리까지도 하는 역할에 있어서, 학폭위 법 자체가 저는 싫어요.  교육청으로 넘어가는 거는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 하세요. 선생님들이랑 아이들이랑 같이 사용하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선생님들이 빠지고 학교가 빠지면 이건 안되는 게 정말 맞거든요. 솔직히 이 학폭위부터 공론화를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소열은 "막상 회의 일정이 잡히면 외부 전문가들은 일정 문제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학부모들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문제는 현장을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지역 사회에 서로 인맥으로 얽혀 있다 보니 서로의 관계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가해 학생이 변호사를 동원하면 진실 공방으로 치닫게 된다. 가해자가 피해를 주장하거나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뭉개는 경우도 많다.
  반성할 때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인생 망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방어하는 노력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게 결국은 아이를 망치는 길이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학폭 사건을 전담하는 한 로펌은 "학폭위에 변호사가 출석하는 건 위원들로 하여금 압박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 로펌은 "학교 측에 대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여 학교 측에 압박감을 미리 심어줌과 동시에 학폭위에서 한 아이의 부모로서 해당 학교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어떠한 심경을 느끼고 있는가를 어떻게 어필할까를 궁리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대원대학교 교수 김주한은 충북 지역 학폭위 위원 10명을 인터뷰한 연구에서 학폭위 시스템에 여러가지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음은 김주한이 인터뷰한 학폭위 위원들의 발언을 발췌한 것이다.

첫째, 30분 질의 응답으로 정확한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가.
  심의가 진행 되는 동안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에게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매우 엄숙해서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진술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질문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해 학생의 경우 심의위원회 개최 이전에 질문의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자신을 변호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가해학생의 진술이 심의 결과에 영향을 주게 되지만 적극적인 변호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 가해 학생이 진심으로 반성하게 만들 수 있는가.
  낙인이 찍히게 되는 가해학생은 삶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다른 사건의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기 쉽습니다. 처벌을 통하여 반성을 하는 하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학교 폭력을 일으키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폭력의 피해학생들이 가해학생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가해학생의 전학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사안의 내용에 따라 가해학생을 전학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셋째, 피해 학생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가해학생이 전학을 안가면 피해학생이 전학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학을 간 피해학생도 새로운 학교의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이 어렵기에 학교를 자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폭력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는 모두 기피하는 자리입니다. 열심히 해도 쉽게 예방 효과가 나올 수 없는 교육환경을 교사들은 알고 있습니다. 넷째, 폭력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가.
  모든 것을 교사의 책임으로 몰아가기에는 교사의 능력이 한계가 있습니다.  과거처럼 교사를 존중하기 보다는 교사에게 대항하는 경우도 자주 있어 생활 지도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김주한은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담임 교사가 질책을 당하는 동시에 1차 조사를 맡게 되기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폭력 사안에 대하여 선도 위주의 적극적인 교육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녀의 상처와 부모의 욕망
  이해준은 "피해자 중심으로 학폭 사안을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난과 폭력의 기준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정하는 것이고, 어제는 장난이라고 하더라도 오늘 폭력이라고 피해자가 말하면 그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해준은 "그래서 장학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해 학생의 주장이 의심되면 학교에 추가 자료를 요구하거나 목격자가 더 있는지 조사해야 하는데, 실제로 장학사 직권으로 추가 조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성기선은 "엄벌주의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가해자를 끌어내리면 행복할 것 같지만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겠다고 하니 학폭위 사건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이제 와서 엄벌주의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하면 결국 부자들만 살아남는 구조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소한 다툼이 부모들의 감정 싸움으로 확산되고 몇 년씩 법정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전쟁에서 이긴다고 한들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해준은 먼저 학부모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많은 부모들이 처리 절차와 결과에 집착한다. 결과가 좋게 나와야 피해 학생의 상처가 치유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해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아이들은 부모가 위기에 맞서는 모습을 보면서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가해 학생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전관 변호사 써서 몇 천만 원이 들더라도 막아줄게, 이런 태도가 오히려 자녀를 망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해준은 "학교 폭력에서 제일 중요한 건 가해 학생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피해 학생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피해 학생은 부모에게 의지하게 되고 부모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게 된다. 피해 학생은 부모나 교사가 가해 학생을 대신 혼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문제를 바로 잡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어른들이 중재자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해준은 많은 학부모들이 자기 객관화가 안 되고 실제로 피해 부모들이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녀의 상처보다 부모의 욕망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번 한 학기만 잘 참고 다니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데, 이런 생각으로 자녀가 힘들어하는 걸 부모들이 외면하는 거죠. 너 대학 들어가면 다 저절로 해결된다, 이런 식이죠. 학부모에게 이렇게 조언을 합니다. 자녀의 상처와 부모의 욕망, 두 가지가 있다면 자녀의 상처에 더 집중해야 된다고. 공부는 나중에 할 수 있지만, 지금 상처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면 훨씬 더 오랜 시간 걸릴 수 있다,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다음에 상담을 안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학교와 교사가 배제되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해준은 "가장 화가 나는 건 교원 단체들이 사회의 관심과 공동체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책임져야 할 일이 있는데 스스로 방관자로 만드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김동석은 "덴마크는 학교 폭력 사안이 발생할 경우 36시간 안에 교사와 피해 학생, 가해 학생의 부모가 만나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우리도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기획국장 최선정은 "학교 폭력도 사회의 반영이라고 보면 이걸 바꿀 수 있는 힘은 학교에 있다"면서 "학생과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권한을 부여해야 해결이 되는데, 아무리 법을 바꿔봐야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선정은 현장에 있는 교사들에게 권한을 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를 더 불행하게 만들어서 해결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학폭위는 사후적으로 처리하는 절차일 뿐 예방은 커녕 가해 학생의 선도나 피해 학생의 상처 치유에 한계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객관적인 심의를 위해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교사들을 배제하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서 더욱 멀어졌다. 우리는 응보적 정의 보다는 회복적 정의, 공동체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에 동의한다. 다음 연재에서 좀 더 구체적인 해법을 제안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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