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인선이 뒤집혔어요."

김덕년 삼척석탄화력발전소(삼척블루파워) 반대투쟁위원회 위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석탄화력발전소 항만 공사로 인한 해안침식 보수 공사장을 살펴보던 기자는 곧바로 김 위원의 차를 타고 사고 현장으로 갔다. 승용차에서 내리니 숨이 턱 막혔다. 예인선에서 유출된 기름 냄새가 거센 바람을 타고 해변의 공기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지난 15일 오전 7시30분경, BTS 앨범 촬영지를 알리는 맹방해수욕장의 대형 구조물 바로 앞이다. 2.5m 높이의 파도가 모래사장에 처박힌 예인선 '삼양호'를 연거푸 덮쳤다. 바로 뒤쪽에서 모래와 중장비를 실은 바지선이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파도에 뒤뚱거렸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삼척블루파워가 무리한 공사를 하다가 벌어진 사고였다.
박윤준 414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 조직팀장과 함께 삼척블루파워(주) 현장을 방문한 건 전날인 14일이다. 이날 동해역까지 마중 나온 김 위원은 삼척블루파워 공사현장 뒷산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거친 숲길을 헤치며 20여분 정도 오르니 산 정상이 채석장이다. 그 뒤로 까마득한 절벽. 대형 굴뚝이 우뚝 선 블루파워 공사장이 동해 바다를 배경으로 한 눈에 들어왔다.

"블루파워는 내년 4월이면 완공한다고 하는데 터빈을 돌릴 수 있을지..."

김 위원은 말끝을 흐렸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유를 알았다.

  삼척블루파워 공사장

   

[석탄 육상운송] 당신 집 앞으로 매일 25톤 덤프트럭 680대가 지난다면?

삼척블루파워는 1050㎿ 터빈 2기(총 2.1GW용량)를 장착한다. 2013년 7월 이명박 정부 때 '동양파워'가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다. 이를 인수한 포스코는 2018년 1월 인가를 받았고 그해 8월 삼척시 적노동 일대 114만㎡ 부지에서 첫 삽을 떴다. 1호기는 2023년 10월, 2호기는 2024년 4월이 준공 목표다. 4조9000억 원을 들여 국내에 건설하는 마지막 석탄화력 발전소.

당초 환경영향평가에서는 준공 1년 전에 시험가동을 하도록 했는데, 6개월로 단축됐다. 따라서 1호기는 오는 4월부터 시험가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거대한 터빈을 돌릴 석탄 운송부터 차질이 생겼다. 항만공사로 인한 해안침식 등 환경파괴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0월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지적됐고, 산업통상자원부는 8개월간에 걸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침식 해변을 채운 오십천 하구의 오니, 펄을 거둬내고 적법한 적치장에 치울 것, 또 해안침식 저감시설을 적법하게 시공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저기 삼각형 건물 보이죠. 1달치 석탄을 보관하는 시설입니다. 항만이 만들어져야 석탄이 들어올 텐데, 해안 침식이 심해져서 보수공사를 벌이고 있어요. 언제 끝날지는 모릅니다. 이 회사는 회사채를 발행했고 만기일이 도래할 텐데, 상업운전으로 이윤을 내지 못하면 타격이 크겠죠."(김덕년 위원)

이는 또 정부와의 계약 불이행으로 계약취소 요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삼척블루파워는 동해항에서 삼척시내를 경유하는 육상운송 노선을 추진했고 2022년 6월 산자부로부터 육상운송 노선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삼척석탄화력반대 투쟁위의 기자회견 등을 이 사실이 공론화 되자 삼척시는 지난 2월 승인 철회 요청 공문을 보냈고, 삼척시의회도 육상운송 철회 촉구 성명서를 발표했다.
 

  삼척블루파워가 산자부에 보낸 육상운송에 관한 평가서에 나온 노선

 

 
이 같은 반발은 예견된 일이었다. 삼척블루파워가 육상운송 노선으로 제시한 7번 국도는 아파트 밀집지역인 시내 한복판을 관통한다. 그런데 터빈을 돌리려면 하루에 1만8000톤의 석탄을 때야한다. 25톤 덤프트럭 680여대가 매일 아파트 앞으로 지나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시간당 28대이다. 소음, 분진, 진동, 매연... 집단민원이 불보 듯하다.

이에 산자부는 지난 2월 삼척블루파워에 공문을 보내 삼척시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육상운송 주민수용성 확보방안을 제출했다. 삼척블루파워는 홈페이지에 게재한 사과문을 통해 앞으로 지역사회와 소통하겠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주민 반발로 난망한 처지다. 작년 11월 최초 점화한 1호기의 시험운전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다. 오는 10월 예정된 상업운전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진퇴양난이다.

[허물어지는 '명사십리'] 동해안에 모래 채운다고?
 

  하태성 삼척석탄화력발전소 반대투쟁위 상임대표가 해안 침식의 심각성을 보여주려고 보강 공사장 앞에 서 있다.

항만공사로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명사십리' 맹방해수욕장 모래사장이 침식되고 있다는 주장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다음날인 16일 오전 일찍 하태성 삼척석탄화력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 상임대표와 함께 찾아간 곳은 맹방해수욕장 북쪽의 삼척블루파워 항만공사장 인근이다. 해변도로 앞쪽 모래사장에 방파제로 쓰이는 테트라포드가 줄지어 쌓여있다.

"이걸 죄다 해안 침식방지용으로 바다에 쏟아 부을 겁니다."

하 대표는 해변에 떠있는 바지선 앞에서 차를 세웠다. 공사장 인부들은 모래를 가득 채운 바지선 앞의 모래톱 위에서 물을 뿌리고 있었다. 해변침식으로 움푹 팬 모래사장을 다시 채우는 양빈작업 현장이다. 하 대표는 보강공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섰다. 그 모습을 보니 해안 침식의 엄청난 규모가 실감났다. 모래 높이가 그의 키를 뛰어넘었다.

"이게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항만건설로 인한 해류 변화로 쌓으면 유실되고, 쌓으면... 저기 바다 위에 꼭지만 나온 게 보이죠? 저건 독도. 또 저기 테트라포드 대가리만 살짝 나온 것, 저건 울릉도랍니다. 침식을 막으려는 인공 구조물인데 저것도 몇 번이나 다시 쌓는지 모르겠어요. 한강에 돌 던지기가 아니고 '동해안에 모래 채우기', 이런 신조어가 나올 겁니다."

하 대표는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해변 침식 상태를 확인하려고 드론을 날렸다.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겠지만, 양빈을 마친 구간은 해변을 따라 300m 정도였다. 100m의 넓이의 해변에 2~3m 정도 높이로 모래를 쌓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부터 1km 정도 떨어진 명사십리 휴양지 맹방해수욕장까지 움푹 팬 구간은 군데군데 이어졌다.

시험가동을 위해서는 빨리 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모래는 하염없이 유실되고... 이날, 갈 길이 바쁜 해변 침식 보강 공사장으로 모래를 실어 나르는 바지선의 예인선은 높은 파고에도 무리하게 운행하다 사고가 난 것이다.

[온배수] 초당 70톤 쏟아지면 해양생태계와 지역 상권 붕괴
 

  삼척블루파워 공사장 전경


 
이것 말고도 반대투쟁위가 우려하는 문제들은 더 있다. 삼척블루파워는 홈페이지에 '친환경발전소'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삼척시 상공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삼척블루파워 공사장 뒷산 절벽에 서서 삼척과 동해 시내를 내려다보니 해안가에서 내륙 쪽으로 움푹 들어간 분지 형태이다. 북쪽에 두타산과 중봉산이 서있다. 서쪽은 멀리 태백산국립공원이 보이고 그 앞으로 덕항산과 대덕산이 있다. 남쪽은 삿갓봉과 장송산 등으로 막혀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석탄화력발전소만도 2개입니다. 북쪽 정면에 보이는 게 북평화력입니다. 그 옆 건물은 동해GS화력입니다. 저쪽 시민들은 문도 못 열고 지낸다는 민원을 내고 있습니다. 삼척시민들도 삼표시멘트가 대도시에서 버리는 쓰레기를 태우는 바람에 몸살을 앓고 있는데, 삼척블루파워까지 들어서면 발암물질에 포위된 채 살아야 합니다."

김경년 위원은 이어 "맹방 지역 농가들은 대부분 시금치와 딸기 등 채소를 키우고 있는데, 미세먼지가 박힌 채소를 어떻게 파느냐"면서 "그나마 덜 오염되려면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굴뚝을 60m 이상으로 높게 세워야 하는 데 지금 서 있는 곳과 굴뚝 정상의 등고선이 같다, 실패작"이라고 탄식하듯 말했다.

지역에 이런 시설물이 들어설 때에는 으레 지역균형발전을 내세운다. 삼척블루파워 홈페이지 대문에는 지금까지의 '지역상생효과 3972억 원' '발전소 주변지원사업 80.4억 원' '고용효과, 일평균 1000~3000명)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김 위원의 셈법은 달랐다.

"온배수가 초당 70톤 나옵니다. 매초마다 25톤 트럭 3대 분량입니다. 해양 생태계는 붕괴될 겁니다. 물 온도가 올라가면 저 가두리 양식장 3곳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삼척 경제 30~40% 이상의 상업권이 형성된 정라항 횟집과 상가도 타격을 입을 겁니다. 또 해양수산부가 삼척블루파워로 인해 해수욕장이 망가졌을 경우 삼척시 관광수익 손실액을 산정한 적이 있는데, 매년 700억 원에 달한답니다."

[탈탈탈 집회] 내연기관차 500만대가 내뿜는 온실가스... 견딜 수 없다
  삼척석탄화력반투위 공동대표인 성원기 강원대학교 명예교수가 삼척 우체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15일 현장 취재를 마치고 뒤늦게 간 곳은 삼척우체국 앞이었다. 이날 4시경부터 이곳에서는 삼척블루파워 반대 천주교 미사가 열렸다. 이날 미사를 집전한 아일랜드 태생의 함 패트릭 신부(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1년 전부터 매월 3째주 선교회에서 연대 방문을 했는데, 올 때마다 맹방의 아름다운 해변이 망가지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면서 "석탄발전소가 생기면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가 망가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 아름다운 자연을 후손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 옆에서 1인 시위 피켓을 든 이는 삼척석탄화력반투위 공동대표인 성원기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였다. 694일째다. 이 단체는 2020년 7월 14일부터 주말을 제외한 평일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매일 이곳에서 시위를 했다.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은 '탈탈탈 순례'. '탈핵' 탈석탄' '탈송전탑'의 앞 글자를 딴 조어인데, 우체국에서 출발해 삼척시청을 돌아오는 순례이다.

성 대표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석탄화력발전소는 주거지역 안으로 들어와 있고, 발전소 반경 5km내에 삼척 시내가 다 들어온다"면서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 지역은 무조건 보상을 해줘야 하는 피해지역"이라고 말했다.

성 대표는 이어 "이 비극이 시작된 건 민간 기업으로 석탄화력발전소 허가권을 넘겨준 이명박 정부 때부터였다"면서 "민간기업인 동양시멘트가 자기들이 석회석을 다 파먹은 폐광자리를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복원을 해야 하는데, 대신 발전소 허가를 받아서 꿩 먹고 알 먹겠다는 심산으로 시작된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삼척블루파워의 터빈 2기가 돌아가면 최대출력 가동 기준으로 시간당 약 389톤, 연간 340만8480톤의 석탄을 태운다. 이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연간 약 1282만t이다.

성 대표는 "지역주민들이 주거권과 생명권, 건강권을 잃고, 아름다운 맹방 해변까지 잃게 되는 사업이지만 지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는 지엽적인 문제"라면서 단호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삼척화력 1·2호기가 모두 완공되면 매년 내연기관차 500만대, 국가 전체 배출량의 1.8%에 달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저감비용만도 연간 5650억 원이랍니다. 주민들과 해변을 죽이고, 지구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석탄 화력을 21세기에 대한민국 정부가 짓고 있다? 이건 지역주민으로서, 생명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결코 받아들 수 없죠."

[기후정의 간담회] 세종뿐만 아니라 삼척에도 3만5천명 모이자
 

  지난 15일 오후, 삼척에서 박윤준 414기후정의파업 조직위 조직팀장의 사회로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저녁, 박윤준 조직팀장의 사회로 4월14일에 세종에서 열릴 기후정의파업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김지은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집행위원장도 참석했다. 박 팀장은 414파업의 취지와 의미를 설명했고, 반투위 관계자들은 삼척블루파워의 실상이 삼척뿐만 아니라 전국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박 팀장은 "기후정의를 향한 사회공공성 강화로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하면서 자본의 이윤축적을 위한 생태학살을 막아야 한다"면서 "4월 14일 하루라도 멈춰 서서 이 체제를 굴리는 세종정부청사의 관료들을 향해 공동의 전선을 만들어 한 목소리를 내보자"고 호소했다.

박 팀장은 특히 "세종에 있는 산자부 공무원들이 삼척블루파워의 육상운송 허가를 내줬던 것은 삼척 시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포스코만을 위해서였다"면서 "세종시에 몰려있는 대한민국의 관료들을 포위해서 너희들이 지금껏 누구를 위해 행정을 했는지를 고발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414기후정의파업조직위와 반대투쟁위 관계자들의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 맹방해수욕장 인근 숙소에서 일어나 해변으로 나갔더니 항만공사 굉음이 파도소리에 실려 왔다. 그 소음을 듣고 있자니, 전날 간담회에서 하태성 상임대표가 한 말이 떠올랐다.

"기후위기는 침묵의 살인자처럼 다가오기에 실감하기는 어렵지만, 사실상 우리는 불 때는 냄비 속에 있는 개구리 같은 신세죠. 작년 9월 서울 시청역에서 3만5000명이 모여서 기후위기 대처를 촉구했는데, 4월에 세종에서도 3만5000명이 모이고, 이후 거점투쟁을 하듯이 삼척에서도 3만5000명이 모인다면 삼척블루파워를 멈출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부터 승리의 도미노를 시작합시다."  

 

 
  414기후정의파업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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