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음식쓰레기 2만t 비밀…

4분의 1은 먹기도 전에 버려진다

/중앙일보
1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마트. 생선·정육 등 신선식품 코너에 있는 주방 한편에 200ℓ짜리 음식물 처리기가 있었다. 직원들은 수시로 뚜껑을 열고 음식 쓰레기를 집어넣었다. 처리기에 들어간 음식 쓰레기는 건조·분해돼 액체 형태로 하수도로 빠져나간다. 마트 관계자는 "쓰레기가 계속 나오다 보니 기계를 24시간 돌려도 꽉 차곤 한다"고 말했다.

육류 등을 가공하면서 나오는 쓰레기 뿐 아니라 당일 판매 원칙인 야채나 생선도 팔리지 않으면 버려진다. 하지만 하루에 버려지는 양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마트 관계자는 "배출량이 얼마인지 정확히 모른다. 포장용 플라스틱은 재활용하지만, 솔직히 음식 쓰레기를 줄이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버려지는 음식이 무방비로 쏟아지고 있다. 세계식량기구(FAO)는 매년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9400억 달러(약 1120조원)의 식품 중 30% 이상이 낭비된다고 추정한다. 버리는 음식만 줄여도 수억명이 배고픔을 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음식 쓰레기는 기후 위기와도 직결된다. 음식 쓰레기를 수거·재활용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인천 부평구 부평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주민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장진영 기자

모든 국민이 매일 400g '음쓰' 버리는 셈

국내에서 하루 배출되는 식품 관련 쓰레기는 2만t이 넘는다. 올림픽 수영장(2500㎥) 8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음식 쓰레기 문제는 10여년 전 종량제 배출 제도가 안착한 이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탄소중립이나 플라스틱 등 다른 환경 이슈에 주목하는 동안 음식 쓰레기는 조용히 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공개한 식품 손실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종량제 봉투 혼합배출·분리배출·동식물성 잔재물을 모두 합친 식품 폐기물 전체 발생량은 2017년 1만9106t에서 2019년 2만1065t으로 증가했다. 2013년(1만6032t)과 비교하면 6년 만에 약 31% 늘었다. 1인당 식품 폐기물 발생량(2019년)도 하루 407g에 달한다. 모든 국민이 날마다 삼겹살 2~3인분을 버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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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내 음식 쓰레기의 4분의 1은 먹기도 전에 버려진다. 가정·식당 등의 음식 쓰레기는 2016년 1만4669t에서 2019년 1만4548t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제조·생산에 따른 사업장 폐기물 수치는 같은 기간 계속 올랐다. 법적 정의가 모호한 식품 제조업발(發) 동식물성 잔재물도 2017년 3203t에서 2019년 5066t으로 급증했다. 전체 음식 쓰레기(2만1065t)의 4분의 1에 가까운 수치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연구를 진행한 주문솔 한국환경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소비자보다 산업계에서 음식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이 약한데다 각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이 적절히 처리됐는지도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간편식, 가공식품 증가에 업체發 '음쓰' 급증

전문가들은 사업장에서의 음식 쓰레기 급증이 국민 식생활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진단한다. 주문솔 부연구위원은 "식품 제조 과정에서의 발생량이 늘어난 것은 배달 음식과 가공식품, 간편식 소비 증가 같은 식생활 패턴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이러한 폐기물이 꾸준히 늘어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식품이 만들어지고 팔리는 중에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폐기되는지 정확한 통계가 없다는 것이다. 아파트나 주택가 등은 공공 수거·재활용이 이뤄지지만, 대형 사업장들은 대부분 별도 계약을 맺은 민간 업체에 모든 처리를 맡겨서다. 그렇다 보니 음식 쓰레기 자체에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취재팀이 주요 식품 유통·제조 업체 11곳에 문의한 결과, 음식 쓰레기 관련 수치를 파악하거나 감량 대책을 세운 곳은 거의 없었다. 한 식품 업체 관계자는 "폐기 업체에 맡기고 있어 정확히 파악한 바가 없다"라고 했다. 식품 체인 업체 관계자는 "멀쩡한 음식이 많이 남지만 딱히 쓸 방법이 없다. 음식 쓰레기 줄이려는 노력은 하지만 통계를 챙기진 않는다"고 했다.

14일 울산 남구의 음식물쓰레기 처리 시설 내부 모습. 음식쓰레기를 모은 뒤 바이오가스로 자원화한다. 울산=송봉근 기자

세부 통계 불명확…'업사이클링' 정책 세워야

이를 관리해야 할 정부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음식 쓰레기의 기초 자료인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 통계도 시군구 단위로 폐기물 분류, 처리 방식 정도만 공개한다. 경로 추적이 안 되다 보니 어떤 부산물이 주로 나오는지, 이 중에서 쓸 수 있는 건 뭔지 알기가 어렵다. 환경부 관계자는 "대개 동식물성 잔재물 등은 필요한 업체가 알아서 챙겨간 뒤 처리하는 식이다. 실제 재활용하거나 처리한 양 등을 알아야 하는데 사업장에서 별도 신고를 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일부 기업들이 그냥 버려지는 식품 부산물을 챙기고 재활용하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 가공 업체 관계자는 "쌀겨, 콩비지 같은 부산물이 많이 나와서 또 다른 식품 등에 활용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우리나라는 식품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업사이클링 관점이 전혀 없다. 단순한 음식 쓰레기가 아닌 식량 자원으로 봐야 한다"라면서 "남는 식품을 그냥 버리지 않고 순환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기업도 거기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도 "산업계에서 발생하는 식품 폐기량에 대한 정확한 통계부터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이를 바탕으로 음식 쓰레기 감량 계획을 새로 세워야 한다"라고 밝혔다.

 

 

마켓서 안 팔린 음식, 프랑스선 못 버린다…

해외의 음식쓰레기

지난달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한 교회에 놓인 푸드뱅크용 긴급 식량 박스. EPA=연합뉴스

음식 쓰레기는 모든 국가의 고민거리다. 하지만 줄이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한국은 주로 분리 배출된 폐기물의 재활용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해외에선 식품 생산부터 소비, 자원화에 이르는 전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곳이 많다.

많은 나라에서 활용하는 '푸드뱅크'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팔리지 않고 유통기한이 애매하게 남은 음식들을 싸게 팔거나 기부하는 식이다. 미국은 민간 구호 단체와 식품 제조업체, 식당, 농부 등이 협력해 저소득층에 음식을 제공한다. 영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잉여 식품을 지역 자선단체 등에 재분배하면서 사회적 취약 계층을 챙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프랑스는 2016년 슈퍼마켓에서 팔리지 않은 음식을 버리는 걸 법으로 금지했다. 그 대신 자선 단체와 푸드뱅크에 기부하도록 못 박았다.

범정부 차원의 대응 법안을 내놓은 국가도 많다. 일본은 2019년부터 '식품 손실 감소 추진법'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기업, 소비자 등이 협력해 음식 쓰레기를 줄이고 식품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환경성 등 6개 부처가 소비자 교육과 업체 지원, 실태조사 등을 진행한다.

 
다른 나라에서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강력한 법안을 내놓은 국가도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버려지는 음식을 줄인다면서 아예 '먹방' 자체를 금지한 법을 시행했다. 폭식처럼 음식 낭비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행위엔 최대 10만 위안(약 1870만원)의 벌금을 매길 수 있다.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보관 방법 등만 제대로 지키면 유통기한을 넘겨 섭취해도 별문제가 없는데 지나치게 많은 음식이 버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EU에서 발생하는 연 8800만t의 음식물쓰레기 중 약 10%가 날짜 표시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음식 쓰레기를 집이나 마을 단위로 퇴비화하는 대안도 꾸준히 시행되고 있다. 호주는 가정용 퇴비 통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당 등에서 나오는 쓰레기도 비료로 바꾸는 시범사업을 장려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인 '알맹상점'의 고금숙 대표는 "인도는 길 한 쪽에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시설을 간단하게 갖추고,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관리하곤 한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각종 기술을 활용해 음식 쓰레기를 편리하게 줄이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선 버려진 빵이나 과자, 채소를 활용해 포도당·영양제 원료로 만드는 등 부가가치를 높이는 자원화가 이뤄졌다. 앱으로 식품 바코드를 찍으면 유통기한 인식 후 기한에 임박해 알려주는 기술도 해외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찌개 탓 재활용 힘든데…

음식쓰레기 500㎏ 먹어치운 벌레

건조, 분쇄된 음식물 쓰레기 위에 동애등에 유충이 올려진 모습. 편광현 기자

한국의 음식 쓰레기는 재활용이 어렵기로 유명하다. 국·찌개 국물이 들어가다 보니 다른 나라보다 훨씬 축축한 음식물 덩어리가 된다. 음식 쓰레기의 약 70%를 차지하는 '음폐수'를 제거하는 번거로움이 크다.

각종 양념이 밴 밑반찬도 문제다. 음식 쓰레기에 염분이 많으면 퇴비화가 어렵다. 특히 고춧가루는 음식 쓰레기를 빨리 썩히는 주범이다. 음식 쓰레기를 재활용한 사료나 퇴비가 국내 시장에서 외면받는 이유다.

공장서 남은 채소로 '고급화'

재활용 업계에선 음식 쓰레기를 활용한 제품의 고품질화가 가장 큰 숙제다. 자원화가 쉽지 않은 한국 음식 쓰레기를 최대한 쓸만하게 만들려는 노력이다. 음식 쓰레기를 고품질 자원으로 만들기 위한 핵심 과제는 원료 관리다. 한국에서도 염분·수분이 적은 음식 쓰레기를 별도로 분리할 수만 있다면 고품질 자원화가 가능하단 얘기다.

고양시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시설. 중앙포토

음식 쓰레기 처리 과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해진 업체에서 나오는 깨끗한 음식 쓰레기를 확보해 사료로 만드는 '에코피드'(Eco-feed) 제도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재활용사업자가 음식 쓰레기를 배출하는 식품 업체, 사료를 제공할 농축수산업자와 연계해 인증을 받는 제도다. 공장에서 식품을 만들때 나오는 채소 뿌리, 빵 등의 부산물을 공급받아 고급 사료를 만들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에코피드 인증 사료를 먹은 돼지고기가 고급 브랜드로 취급받는다.

주문솔 한국환경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원료의 질이 낮았던 것이 국내 음식 쓰레기 사료화의 문제였다. 활용도가 높은 원료를 별도로 분류한다면 고품질 사료 제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몸값 오른 '음쓰 먹는 곤충'

최근에는 음식 쓰레기 먹는 벌레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주목 받는 건 50g의 애벌레가 열흘간 500㎏의 음식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동애등에'다.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자원화 시설 한울농장의 김용식 대표는 "우리 농장에서만 동애등에가 하루 1t의 음식 쓰레기를 먹고 330㎏의 사료 원료 및 퇴비를 생산한다"고 말했다.

음식 쓰레기를 먹은 동애등에를 일부 원료로 사용해 만든 반려견 사료와 간식. 편광현 기자

업체에 따르면 동애등에는 3~5일간 건조된 음식 쓰레기를 먹고 자란다. 몸집이 커진 유충은 동물 사료 원료로 쓰고 배설물은 퇴비로 변한다. 한국음식물자원화협회에 따르면 국내 음식 쓰레기의 약 10%를 동애등에가 처리한다. 동애등에를 원료로 한 사료는 고단백이라 가축 폐사율이 줄어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분변토(퇴비)도 보통 음식 쓰레기로 만든 퇴비보다 품질이 높다고 한다.

문제는 가격이다. 동애등에를 활용한 사료나 퇴비는 일반적으로 2배 이상 비싸다. 그러다보니 수요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동애등에 부화와 관련한 특허를 취득한 심상수 리얼네이쳐팜 대표는 "전국에 동애등에 사업자가 많은데 큰 기업형은 없다. 음식 쓰레기 성분 검사나 사료 테스트만 정부에서 지원해줘도 지금보다 사업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인천 부평구 부평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감량기 업체 우람 관계자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 기기를 점검하고 있다. 비료 형태로 처리 완료된 음식물 쓰레기. 장진영 기자

소비자들이 음식 쓰레기의 원료 가치를 높이는 방법도 있다. 음식 쓰레기를 가정, 아파트 단지, 사업장 등에서 배출하는 즉시 건조하고 분쇄하는 감량기를 설치하면 된다. 통상 음식 쓰레기는 자원화 시설에 도착하기까지 2~7일이 걸려 부패 우려가 있다. 만약 배출 즉시 건조할 수 있다면 부패 시기를 늦출 수 있다. 한국음식물감량기협회에 따르면 2016~2020년 사이 전국에 판매된 음식물 감량기는 총 1만6696대다. 감량기 업체 가이아는 "100㎏ 용량 기기 한 대로 140세대에서 나오는 음식물을 처리할 수 있다. 1대 가격은 약 3000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재활용 자원의 질을 높이려면 음식 쓰레기를 배출 단계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상한 음식으로 동물 사료를 만든다는 건 일반인이 납득하기 쉽지 않다. 배출부터 제품화 단계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인증 체계를 만들어 고품질 자원화로 가야 한다"고 했다.

홍경진 환경부 폐자원에너지과장은 "정부에선 사료화·퇴비화보단 바이오가스화를 통한 에너지 확보를 장기 정책으로 보고 있다. 다만 2030년에도 52%만 바이오가스로 처리되는 만큼 음식 쓰레기로 만든 사료와 퇴비를 고품질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음식 쓰레기, 12년 전 대책이 마지막…

정부·지자체 관심이 없다

14일 인천 부평구 부평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업체 관계자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 기기를 점검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 12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의 한 대형 뷔페식 음식점 창고엔 120ℓ 용량 음식 쓰레기통이 3개째 채워지고 있었다. 전날 저녁부터 이날 점심까지 손님이 손을 대지 않은 음식이었다. 이 쓰레기는 다음날 수거업자가 5만1000원을 받고 가져갔다. 식당 관계자는 "쓰레기가 얼마나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정해진 장소에 내놓으면 처리 업체가 가져간다"고 했다.

이날 방문한 서울 마포·강남구의 대형 식당 8곳의 대답도 비슷했다. 음식 쓰레기는 ℓ당 170원을 내고 처리 업체에 맡긴다. 매년 2월 영수증을 모아 구청에 제출하지만 평소 배출량은 잘 모른다는 반응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고깃집 사장은 "처리 업체가 음식 쓰레기를 재활용한다니까 딱히 줄이려는 노력은 안 했다. 손님들이 남기는 걸 어떻게 하냐"고 말했다.

관리 사각지대 놓인 음식 쓰레기

전국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음식 쓰레기가 2만t을 넘어섰지만 대부분 음식점에선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리 비용이 비교적 저렴한 데다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도 없어서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대형식당에서 배출한 음식 쓰레기. 편광현 기자

현행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대형음식점·급식소처럼 음식 폐기물을 다량 배출하는 사업자는 각 지자체에 처리 및 감축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인증된 수거·운반업체와 작성한 계약서를 첨부하는 것만으로 이 의무를 다했다고 간주한다. 서울시의 한 구청 관계자는 "음식 쓰레기 다량 배출 사업장이 수거·처리업체와 계약을 했는지 확인하지만 별도로 감량 의무를 제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환경단체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서울·전주의 다량 배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음식 쓰레기 배출 일지를 작성하지 않거나 폐기물을 섞어 버리는 사업자가 적지 않았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정부, 지자체에서 지원은커녕 통계 관리도 형식적으로 하는데 어떤 식당이 감축하려고 하겠나"고 말했다.

음식점뿐 아니라 식품 제조 공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식재료를 가공하면서 나오는 부산물에 대해서도 별도의 지침이 없다. 한 식품제조업체 관계자는 "처리 업체에 보낼 뿐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거나 재활용하라는 지침은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10년 넘게 방치된 '음쓰 국가전략'

범정부 차원의 음식 쓰레기 대책이 마련된 건 지난 2010년이다. 당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별다른 정책이 나온 적은 없다. 음식 쓰레기 업무는 2013년 지자체로 이관됐다. 지자체에서도 일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뚜렷한 음식 쓰레기 대책은 없다.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 한편에 놓여있는 음식 쓰레기통. 편광현 기자

2022년에도 정부는 음식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뚜렷한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달 환경부는 탄소중립을 위한 한국형(K)-순환경제 이행계획을 발표하면서 폐기물을 줄이고 재활용하는 방안을 담았다. 하지만 포장재나 플라스틱, 섬유 등이 주요 대상이다.

음식 쓰레기를 줄인다는 목표는 없다. 다만 환경부는 음식 쓰레기를 이용해 바이오가스를 더 많이 만들겠다는 목표만 제시했다. 각 가정에 음식쓰레기 감량기와 배출량 측정 시스템(RFID)을 도입하는 등의 대책이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치는 없다. 업체 관리 방안에 대해서도 음식 쓰레기 감량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주문솔 한국환경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그동안 정부는 음식 쓰레기를 자원화하려는 의지를 보였지만 감축하라는 시그널은 최소 10년간 거의 보내지 않았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미화 이사장은 "지금처럼 음식 쓰레기를 배출하다간 한 번 문제가 생겼을 때 줄이기 쉽지 않다. 해외보다 싼 음식 쓰레기 처리비용을 조금 높이고 감축 목표 달성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음식쓰레기로 만든 퇴비·사료, 88% 안 팔려…"공짜로 퍼 준다"

# "동물은 음식물 쓰레기통이 아니다!"
동물 보호 단체가 2019년 6월 음식 쓰레기의 사료 이용 전면 중단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인간이 먹고 남긴 음식을 개·돼지 등에 먹이는 건 동족의 살을 먹이는 비윤리적 행위일 뿐 아니라 위생 문제도 있다고 주장했다.

# "요즘 음식 쓰레기로 사료나 퇴비를 만들어봐야 돈 못 벌죠." 12일 경기도에서 음식물 처리 업체를 운영하는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음식 쓰레기로 만든 사료·퇴비가 인기가 없어 창고에 쌓여 간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 쪽에선 동물 학대라 비판하고, 다른 쪽에선 팔리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국내 음식 쓰레기 재활용의 현실이다. 음식 쓰레기를 철저히 분리 배출하고 있지만 자원화의 그늘이 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내 음식 쓰레기 관리 체계의 핵심은 분리 배출과 자원화다. 폐기물을 최대한 분리 배출해서 모으고, 이를 사료·퇴비·바이오가스 등으로 재활용해 농가나 기업에 공급하는 식이다. 통계상 음식 쓰레기의 재활용 비율은 100%에 가깝다. 2019년 하루 평균 1만4314t이 분리 배출됐는데, 이 중 1만3773t(96.2%)이 재활용됐다. 2018년(97%), 2017년(97.1%)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일부 소각·매립하는 양을 빼면 사실상 모두 새 생명을 얻는 셈이다.

하지만 복잡한 공정을 거쳐 퇴비나 사료를 만들어도 시장에서 외면받기 일쑤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26만3669t의 음식 쓰레기가 재활용됐다. 이렇게 재활용된 제품 중 판매된 건 3만2729t(12.4%)에 그쳤다. 매년 비슷한 수준이다.

사료는 쓰레기로 만들었다는 거부감이 강한데다 위생 우려, 동물 학대 이슈가 문제다. 돼지의 경우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여파로 2019년부터 음식물로 만든 사료가 사라졌다. 닭도 조류인플루엔자(AI)때문에 수분 함량이 높은 사료를 제공할 길이 막혔다. 가축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닭·돼지가 막히다 보니 자원화 업체들은 곤충 사육 등으로 우회해야 하는 형편이다. 음식 쓰레기 전체 발생량 대비 사료화 비율도 2015년 44.9%에서 2019년 36.2%로 하락세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퇴비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음식물 처리 업체 관계자는 "요즘은 사료 대신 퇴비화를 많이 하지만, 처리가 곤란한 상황이다. 덤프트럭 한 대에 10만원으로 땡처리하거나 톱밥 대신 쓰라고 공짜로 줄 정도"라고 털어놨다.

갈 곳 없는 사료·퇴비와 임시 보관하는 음식 쓰레기는 기약 없이 쌓여 간다. 그에 따른 악취나 침출수 같은 2차 오염도 문제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퇴비나 사료를 만들어도 갈 데가 없으니 음식 쓰레기 불법 처리 문제가 끊이질 않는다. 이것들을 보관하다 새로운 환경 오염도 만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자원화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불법 개조로 논란이 된 가정용 음식물 쓰레기 분쇄기(디스포저) 업계가 대표적이다. 이들 업체에선 음식 쓰레기를 갈아서 하수도로 일정량 내보내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많은 자원을 지원해 비료·사료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다 처리장에 쌓여있다"며 "자원화 정책 대신 분쇄기나 음식물 처리 방식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 남구의 음식 쓰레기 바이오가스화 시설 내부. 송봉근 기자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달 발표한 한국형(K)-순환경제 이행계획에서 "음식물은 주로 퇴비·사료 중심으로 재활용하지만,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음식 쓰레기와 가축 분뇨, 하수 찌꺼기 등을 혼합 처리하는 바이오가스화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폐기물에서 나온 메탄가스 등을 에너지로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최근엔 바이오가스화 촉진 정책과 법안 통과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분리배출과 자원화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미화 이사장은 "국내 자원이 부족할 때는 음식 쓰레기로 사료나 퇴비 만드는 걸 장려했지만, 전염병 우려나 동물권, 농업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줄여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라면서 "결국 분리배출 전 음식 쓰레기 자체를 감축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거우면 돈 더 내게, 분리배출 방문과외…음식쓰레기 반토막

14일 울산 남구 문수로 2차 아이파크1단지 한 주민이 아파트 내 음식물쓰레기 배출장치에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카드를 접촉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약 600 세대가 사는 울산 남구의 문수로2차 아이파크 아파트 1단지엔 RFID(무선인식) 방식의 음식 쓰레기 종량기가 있다. 14일 오후 한 주민이 조그만 카드를 종량기에 갖다 대자 기계 위쪽 문이 서서히 열렸다. 검은 봉지에 담은 음식 쓰레기를 쏟아내고 나니 화면에 '302g'이란 표시가 떴다. 주민이 버린 쓰레기 무게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곧바로 등록됐다.

이 아파트는 2019년 구청 지원을 받아 RFID 종량기를 설치했다. 가정에서 버리는 만큼 비용을 매기게 되면서 도입 전과 비교해 음식 쓰레기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박종원 관리사무소장은 "예전엔 음식 쓰레기통이 수시로 넘치고 감량을 유도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무게를 재니까 주민들이 알아서 수분을 빼고 쓰레기를 버린다"고 말했다.

하루 2만t 넘게 쏟아지는 음식 쓰레기는 정부·지자체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음식 쓰레기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것 뿐이다. 그러려면 정부, 지자체의 정책적 의지가 중요하다.

14일 울산 남구에 있는 음식 쓰레기 처리 시설 내 관제실. 이곳은 남구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을 받아 바이오가스로 재활용해 에너지 기업에 공급한다. 송봉근 기자

울산 남구, 배출량 줄이려 RFID 종량기 보급

울산 남구는 RFID 종량기 보급을 늘리고 처리 비용을 높이면서 실마리를 찾았다. 2016년부터 1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에 음식 쓰레기 종량기 설치를 지원한다. 설치비 포함 약 200만원 비용을 전액 남구에서 부담한다. 꾸준한 장려 정책 덕에 종량기는 78개 단지, 485개로 늘었다. 지금도 설치 여부를 문의하는 전화가 이어진다.

폐기물 처리 수수료도 올리고 있다. 2019년엔 ℓ당 50원(가정 배출 기준)이었지만, 올해는 80원까지 올랐다. 조례 개정을 거쳐 3년 새 60%를 인상했다. 전홍억 울산 남구 환경관리과장은 "주민들이 자연스레 배출량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광주 동구선 주민 찾아 분리배출법 등 안내

광주 동구는 음식 쓰레기 감량을 도와줄 전문가를 키우고 있다. 자원순환해설사 55명이 시장·가정 등을 직접 방문한 뒤 올바른 분리배출 방법과 쓰레기 감축 필요성을 알린다. 음식 쓰레기로 버려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알려주는 식이다. 광주 동구 관계자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설사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주민 반응이 좋다"라고 설명했다.

이곳은 전국 최초로 전통시장 내에 RFID 종량기(4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자 음식 쓰레기도 2019년 1만4085t에서 2020년 1만2130t으로 감소했다.

소비기한 도입 등 정부 감량 정책 확대키로

정부도 RFID를 이용한 배출 시스템의 감량 효과가 크다고 보고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2020년 말 수립한 '제4차 지속가능발전 기본계획'(2021~2040)에 따르면 아파트부터 도입을 의무화한 뒤, 단독 주택과 소형 음식점으로 순차적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소비자기후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먹을 수 있는데도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식품도 문제다. 정부는 유통기한을 대체할 '소비기한 표시제'를 내년부터 본격 도입한다.(우유는 2031년부터) 소비기한은 식품 보관 방법을 준수하면 섭취해도 안전에 문제가 없는 기한을 뜻한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음식 쓰레기 감축은 획기적 정책 없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면서 "소비기한 도입은 시민들이 식품 섭취 습관을 다시 생각해 볼 계기가 될 거라고 본다. 폐기물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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