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논밭 2708만평을 삼켰다···
농촌 파괴하는 '검은 악재'
전남 영암 학산면 일대 농지의 상당수가 태양광 패널로 뒤덮여 있다. 강대석 PD
전남 영암의 특산품 ‘달마지 쌀’은 정부가 인정한 12개 쌀 브랜드 중 하나다. 그러나 몇 년 뒤엔 ‘달마지 쌀’을 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 주산지인 영암군 삼호·미암면 일대 농지 500만평에 원전 2기와 맞먹는 2G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 건립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주민 갈등도 커지고 있다. 평화롭던 농촌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농토를 잃은 농민들
영암군 학산면 일대는 불과 4~5년 전만 해도 전국 최고 수준의 우량농지로 이름났었다. 호남의 젖줄인 영산강변에 위치해 있고, 넓은 평야지대가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둘러본 이곳은 더 이상 농촌 풍경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드론을 띄워 학산면 일대를 살펴보니 농지 대다수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바로 태양광 패널이다.
학산면 은곡리 이장 최도선(55)씨는 “몇 년 전부터 갑자기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마을 생태계가 무너졌다”고 했다. “농토의 3분의 2 가량이 태양광 패널로 뒤덮였기 때문”이다. 최씨도 원래는 5만평을 빌려 벼농사를 지었지만 현재는 3만평으로 줄었다. 최씨는 “임차농 입장에선 태양광 패널이 삶의 터전을 빼앗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광 발전으로 큰 이익을 보는 건 주로 외지인들이다. 최씨는 “이 일대만 60만평의 태양광 패널이 깔려 있는데 원래 지주들은 땅을 이미 팔아 현지인 소유는 2만평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생에너지 정책도 좋지만 멀쩡한 농토를 파괴하고 농민들의 터전을 없애는 게 과연 옳은 일이냐”고 반문했다.
더 큰 문제는 인근에 위치한 삼호·미암면 일대의 농지 500만평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양심(60) 영암군농민회 태양광반대공동대책위원장은 “전국에서 농사짓기 가장 좋은 농토가 패널 밭으로 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발전업자들이 마을을 들쑤셔 놓으면서 주민들 간 갈등도 커졌다”고 했다.
이곳에 태양광 발전소 건립이 추진되기 시작한 건 2020년 하반기부터다. 개발업체들이 고가의 임대료를 내세워 토지 소유주를 설득했다. 자작농인 신 위원장은 “경작용 임차료가 평당 1000원인데 태양광업체에선 6000원을 준다고 하더라, 지주들 대부분 고령이다 보니 임대계약을 맺거나 아예 토지를 파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논. 김은지 PD
신 위원장은 특히 “정부가 각종 보조금으로 태양광 전기를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사가면서 발전업자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정책의 목표가 탄소를 줄이는 건데, 우리에게 식량과 산소를 함께 제공하는 농지를 없애고 패널 밭으로 뒤덮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영암군청도 무분별한 태양광 개발엔 부정적이다. 군청 투자경제과 이석준 주무관은 “우량농지가 파괴되고 있는 것에 대해 군 차원의 우려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발전사업 허가권이 1000kw 미만만 기초지자체에 있고, 1000~3000kw는 광역지자체, 3000kw 이상은 산업통상자원부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태양광 밀어붙이기
영암군과 같은 우량농지에 태양광 발전소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농지법을 개정해 간척농지를 태양광 시설로 전용할 수 있는 염도 기준을 6.5에서 5.5(dS/m)로 낮췄다. 아울러 시행령을 바꿔 태양광 발전 허용기간을 7년에서 20년으로 늘렸다.
간척지인 삼호·미암면도 농지법 개정과 함께 태양광 개발 사업이 본격화 됐다. 염도 조사에서 기준치 이상의 염분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농민들은 조사가 엉터리라고 말한다. 십여년째 이곳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신학순(58)씨는 “정부가 인정한 프리미엄 쌀을 생산해온 농토가 이제 와서 염해지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신씨는 염도 측정 방식이 불합리하다고 꼬집었다. 30~60cm의 심토를 기준으로 염분 조사를 하는데, 벼농사는 표토(30cm 이내)에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삽으로 논에서 벼 뿌리를 파 보여줬다. “뿌리는 길어야 15cm내외다. 간척지의 특성상 퇴적층이 가라앉은 심토에만 염분이 있고, 표토는 강물을 끌어다 담수화시키기 때문에 염분이 없다.”
15cm 내외인 벼 뿌리는 표토(30cm) 이내에서 자란다. 김은지 PD
실제로 한국농어촌공사가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까지 접수된 간척지의 염분 조사 결과 83.3%가 염해지로 판정 났다. 윤영석 의원은 “무리하게 태양광 발전소를 늘리다 보니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멀쩡한 농지는 검은 패널로 뒤바뀌어 생태계까지 망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남 신안군에선 태양광 패널이 집 앞마당까지 점령할 위기인 곳도 있다. 임자면 일대 염전 33만평이 2020년 1월 발전사업 허가가 나 현재 터파기 공사 중인데, 공사 현장으로부터 불과 3m 떨어진 곳에 A씨의 주택이 있다. 이곳에서 11년째 소금유통업을 하고 있는 그는 “집 코앞에 패널을 깐다는 게 말이 되느냐,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이곳 주민 16명도 A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어 함께 소송을 준비 중이다. 사건 대리인을 맡은 강상용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주민의 생활권까지 침해하며 태양광 발전소 건립을 추진하는 게 옳은 일인지 의문”이라며 “신안군 일대의 많은 염전이 태양광으로 바뀌며 소금 값도 급등하고 있다”고 했다.
전남 신안군 A씨의 집으로부터 불과 3m 떨어진 곳에 태양광 설비 공사를 위한 파란 깃발이 꽂혀 있다. [법무법인 YK]
무분별한 태양광 개발은 나주시 동강면과 무안군 망운면·청계면, 해남군 문내면 등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연대회의에 따르면 전남에서만 12개 시·군 27개 지역에서 주민들이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를 절대선인 듯 밀어붙이면서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 무시한 재생에너지 정책
시골 마을에 갑작스런 태양광 광풍이 불어 닥친 이유는 뭘까. 정부는 2017년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2017년 5.7GW 수준의 태양광을 2030년까지 36.5GW(전체 재생에너지의 57%)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는 10GW 규모의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패널 면적으로는 1만3000ha, 발전량으로는 신월성 1호기(1GW) 10개 규모다.
처음엔 산지의 숲을 갈아엎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산사태와 환경훼손이 심각해지자 농지로 방향을 틀었다. 윤영석 의원에 따르면 산지 태양광 허가 건 수는 2018년 5533건에서 2019년 2129건으로 급감한 반면, 농지는 급증했다. 2017년 6593건에서 2018년 1만6413건으로 폭증한 뒤 매년 1만 건대를 유지하고 있다. 2017~2020년 농지에 설치된 태양광 면적은 8955ha로, 축구장 1만2542개 넓이(2708만평)다. 이전 4년간(1453ha)의 6배가 넘는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최범진 정책실장은 “태양광발전의 효율을 높이려면 일조량이 높은 평지에 대규모로 들어가야 한다”며 “멀쩡한 논밭에 급속도로 패널이 깔린 이유”라고 설명했다.
농지 감소는 식량안보에도 위기를 부른다. 한농연에 따르면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16년 50.8%에서 2020년 45.8%로 매년 떨어지고 있다. 가축 사료를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같은 기간 23.7%→20.2% 줄어 감소 속도가 더욱 빠르다. 최 실장은 “가뜩이나 농토가 부족한 나라에서 식량주권까지 위협한다”며 “한 번 훼손된 농지는 복구가 힘들고, 패널 철거 때 발생할 엄청난 폐기물도 큰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30년까지의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2017년 대비 24.4% 줄이기로 했었는데, 2018년 대비 40%로 높인 것이다. NDC 40%는 연평균 4.17%씩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수치로 미국·영국(2.81%)보다 높고 EU(1.98%)의 배가 넘는다.
대통령의 발표 뒤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도 2030년까지 20%에서 30%로 바뀌었다(‘3030 계획’). 이렇게 되면 2030년까지 태양광 설비 목표가 36.5GW에서 51.4GW로 늘게 된다. 윤영석 의원은 “원전 수십기에 해당하는 태양광 발전소를 건립하려면 수많은 농민들이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며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 농촌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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