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라', '삽시간', '경각', '순식간', <눈 깜짝할 사이>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산스크리트어의 '그순간'을 뜻하는 '크사나(ksana)'를 음역한 '찰라'만 해도
75분의 1초, 우리의 '인식'을 뛰어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자각할 수 있는 정도라면 1초 정도일까요? 

'째깍' 한번에 '작년'이 '올해'가 되듯 1초도 만만치 않습니다.
1초는 우리가 눈을 일곱 번이나 깜빡이는 시간이랍니다.
 
스티브 젠킨스의 <단 1초 동안에>, 브뤼노 지베르의 <1초마다 세계는>은
1초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세상의 변화를 설명합니다. 
 

  
째깍, 하고 새해가 되었다

스티브 젠킨스의 책에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책'이라는 부제가 덧붙여집니다.
3600초가 지나면 1년, 우리는 평균 25억초가 넘는 시간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4000년전 바빌론 사람들이 생각해낸 시간의 단위 초,
그 시간 동안벌새는 날개를 50번 파닥이고, 매는 90미터를 넘게 날아간답니다.
지구가 태양 둘레를 30미터나 도는 이 시간 동안 아기가 넷이 태어나고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고 하네요.

1초로 부터 시작된 <단 1초 동안에>는 1분, 1시간, 하루, 한 주, 한 달,
한 해로 시간의 길이를 늘이며 '시간'을 느끼도록 합니다.
 
1초 동안 심장이 14번이나 뛰는 작은 쥐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면
한 달 만에 새끼를 10마리를 낳을 수 있다네요.
그런 식으로 한 해가 지나면 1,000,000마리가 넘는 생쥐가 생긴다고 합니다. 

엄청나죠. 하지만 <단 1초 동안에>와 <1초마다 세계는>을 보다보면

우리보다 한 수 위인 듯한 동물들의 능력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점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치타처럼 빨리 달리거나 돛새치처럼 빨리 헤엄치지도 못하고,

딱따구리처럼 부지런히 나무를 쪼거나, 방울뱀처럼 꼬리를 흔들지도 못하는 인간은

대신 스스로 만들어내고 향유하는 '문명'을 통해 세상을 쥐락펴락합니다.


치타처럼 빨리 달리지 못하는 인간은 대신 초당 300미터를 넘게 달리는 자동차와
초당 70킬로를 넘게 날아가는 인공위성을 만들었어요.
 
독수리처럼 날 수는 없는 대신 초당 130명의 승객을 싣고 250미터를 날아갈 수 있어요.
이십 만건의 문자 메시지와 칠 천 통의 이메일도 빼놓을 수는 없지요. 

그런데 문제는 뭘 만들고 나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거지요.
1초마다 청바지 칠십 벌과 신발 100켤레를 사대는 사람들은 1500마리의 닭을 잡아먹습니다.
1초마다 만들어지는 14권의 책을 위해 40그루의 나무가 베어지는 건 어떨까요? 
  
<1초마다 세계는>의 '사람들을 돕는데 사백십 달러가 쓰이고
무기를 사는데 삼천오백 달러가 쓰여요'라는 인포메이션 그래픽(그래픽을 기반으로 
패턴과 경향을 파악하는 사람의 시각 시스템을 이용하여 정보를 더욱 쉽고 빠르게 전달한다)은
단순명쾌하지만 그래서 더욱 현실적입니다.

1초마다 구워지는 천이백 킬로그램의 스테이크, 백십개의 햄버거,
사백십이개의 아이스크림을 위해 소가 메탄 가스를 만들어 내는 방귀를 구천 킬로나 뀌고,
그걸 먹은 인간들이 만 육천킬로의 똥을 만들어요.
 
가정에서 버려지는 사천 킬로의 쓰레기는 어떻고요.
단 1초 동안에 말이죠. 한눈에 지구에 완전 '마이너스'라는 것이 팍팍 실감이 납니다.

1초 동안에 십칠만리터의 석유를 캐내고, 자동차들이
사십오만킬로미터를 달려가는 우리 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델타에서 오미크론으로, 이제 다시 델타크론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변이, 바이러스의 '공습'이 무차별한 개발로부터 비롯되었음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가 만들어 낸 소비지향적 문명에 대한
'인과응보'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눈깜짝할 사이>에서 소녀는 눈깜짝 할 사이에 할머니가 됩니다.
아마도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림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마음이 서늘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이쿠' 같은 이 짧은 단어를 통해 호무라 히로시가 말하고픈 게
그저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われ、物の哀れ 시간이 지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인생을 애틋하게 느끼기)일까요? 

<살아있다는 건>은 1971년에 발표된 다나카와 슌타로의 <살다>라는 시를
그림책으로 만든 것입니다. 마치 어린 시절의 동네같은 풍경으로 이어진 그림들은
그대로 삶의 '장면'이 됩니다. 돌아보면 그리움은 거창한 것들이 아닙니다.

새로운 한 해, 우리는 또 지금 나의, 우리의 '지금'을 충실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시작하는 한 해 이제 우리에게는 새가 날갯짓하고,
바다가 넘실대는 아직은 우리에게 남겨진 '지금'을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미래가 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지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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