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우리들의 휴식처,위도(蝟島)


과거 소풍·나들이 휴식 공간
마임축제 정착 축제의 장으로
2000년 후반 BTB리조트 착수
자금난으로 사업 계획 물거품
시 관광지 조성계획안 공고
유원지로 돌아올 가능성 낮아

/오세현

2000년대 중반 춘천에 불어닥친 개발논리의 마수는 북한강을 타고 사농동까지 뻗쳤다.갑자기 나타난 이들은 구체적인 계획도,자본도 없는 상황에서 어느 날 리조트를 짓겠다며 평화로운 섬을 차지하더니 12년 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땅으로 만들어놨다.개발광풍은 40년 간 춘천시민들이 찾았던 휴식지를 그렇게 한순간에 앗아갔다.고슴도치섬,위도 얘기다.

사농동과 서면을 잇는 중간에 위치한 위도는 중도와 함께 지난 40년 간 춘천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었다.주말이 되면 가족들은 위도로 나들이를 떠났고 평일에는 학생들이 소풍장소로 즐겨 찾았다.갈 곳 없는 청춘들을 받아준 곳도 위도다.2000년 신매대교가 들어서기 전까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위도는 ‘낭만의 도시’ 춘천을 상징했다.오동철 춘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1970년대부터 90년대 후반까지 위도는 대표적인 야유회 장소였다”며 “위도 앞 북한강변에서 수영을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휴식처였던 위도는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춘천 대표적인 축제인 마임축제가 위도에 정착했기 때문이다.축제 10주년을 맞은 1998년 도깨비난장을 시작한 마임축제는 2000년,위도에 집중했다.낮에는 평화로우면서도 밤이 되면 주변 인적이 사라져 으슥한 분위기로 바뀌는 위도는 도깨비난장이 추구하는 ‘은밀함’,‘일탈’,‘현실적이지 않은’ 이미지와 맞아 떨어졌다.섬에서 축제를 연다는 개념도 생소하던 시절이었지만 춘천마임축제는 위도를 축제의 섬으로 만들었다.섬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았다 해서 위도(蝟島)라 불렸지만 ‘고슴도치섬’이라는 이름을 다시 끄집어낸 것도 결국에는 마임이었다.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은 “위도에서 도깨비난장을 펼치다 보니 도깨비마을을 만들었고 촌장이 필요해 이외수 작가를 마을촌장으로 선임하면서 위도를 고슴도치섬으로 부르게 됐다”며 “위도의 위가 한자로 고슴도치 위(蝟)를 사용하는 데다 섬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아 그때부터 고슴도치섬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졌다”고 했다.마임축제 역시 위도에서 도깨비난장을 연 이후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깨비가 생겨났고 미친금요일,아수라장 등 대표 콘텐츠를 만들어 냈으니 마임이 곧 위도였고 위도가 마임이었던 시절이었다.

위도의 영광은 오래가질 못했다.2000년대 중반부터 춘천에 개발열풍이 불기 시작했고,위도도 예외는 아니었다.BTB리조트개발이 등장하면서 위도와 춘천시민의 운명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BTB리조트 개발은 2005년 이탈리아 베니스 형태의 마리나리조트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들고 위도 소유주 김성수씨를 찾아갔다.

그 후 2008년11월13일 7300억원을 들여 24만㎡에 요트시설을 비롯해 숙박,운동오락시설을 갖추겠다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대규모 리조트건설 실적이 전혀 없는 회사의 계획이었지만 행정절차는 순조로웠다.2009년 원주국토관리청은 위도에 위락시설이 가능하도록 하천관리구역에서 홍수관리구역으로 변경했고 강원도는 곧바로 춘천호반(위도)관광지조성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했다.BTB리조트개발의 초기 자금은 부산저축은행에서 나왔다.막대한 자금을 무단으로 대출,서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문을 닫은 곳이다.2010년 이름을 바꾼 BTB아일랜드의 자산은 2009년 말 기준 이들의 자산은 831억원,부채는 970억원으로 당기 순이익은 109억원 적자였다.

2년간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자 1년 후인 2010년 사업규모를 두 배로 늘려 1조4000억원짜리 리조트종합계획을 들고 나왔다.사업을 더욱 고급화해야 투자가 들어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BTB아일랜드는 2011년 초기 자금을 끌어다 쓴 부산저축은행이 파산한 이후에도 이렇다 할 자금줄을 찾지 못한 채 사업 중단과 재추진을 반복했다.춘천시는 2016년 6월 럭스동·버즈동에 대한 건축허가를 취소했다.결국 BTB아일랜드의 사업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춘천시민들의 추억이 쌓인 위도는 그렇게 버려진 섬이 됐다.

위도의 수난사(史)는 ‘리조트를 조성하려다 무산됐다’는 개발업자들의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춘천시민들이 갖고있는 개개인의 역사가 훼손됐다.추억이 서린 곳이 방치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고 다시는 그 곳을 찾아 그 시절을 반추할 수 없게 됐다.오동철 위원장은 “휴식처로서 역할이 충분한 데도 막무가내 개발로 추진했다 이런 식으로 끝이 났다는 것은 결국 춘천시민이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강영규 총감독 역시 “춘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애정을 갖고 있는 섬인데 그 기억에 대한 훼손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위도가 다시 춘천시민들에게 유원지로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채권자를 중심으로 한 법인이 위도를 매입,개발 계획을 수립 중이다.춘천시도 콘도미니엄,관광호텔 조성 등을 골자로 한 ‘춘천호반(위도)관광지 조성계획(변경)안’을 공고,주민의견을 받고 있다.시는 이번에는 투자확약 등 자본에 대한 검증을 철저히 하겠다고 했다.또 다시 시민들의 휴식처를 난도질 할 수 없다는,위도가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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