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가 말하는 것들

/이지영

 ‘미투(#MeToo)’는 역사의 변곡점이 될 만한 사회 현상이다.

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고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것.

그 마땅한 권리를 오랜 세월 성폭력 피해자는 누리지 못했다.

 

피해자가 도리어 부끄러워했고, 범죄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했다.

피해자를 보호 못한 사회가 도리어 피해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잔인하고 뻔뻔한 시대였다.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미투 현상은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권력자가 자신의 힘을 무기로 타인의 존엄을 해치는 행동은 더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미투 증언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했다.

한때 강간범을 가정파괴범이라고 불렀던 시절이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의 가정은 당연히 깨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미투에선 다르다. 피해자의 남편들도 자주 등장한다.

 ‘이윤택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추은경씨의 남편 구민혁씨, 홍선주씨의 남편 변진호씨 등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려 아내의 미투에 힘을 보탰다.

 

구씨는 “이제 갓 스무 살, 딸뻘 되는 꼬맹이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라며 함께 분노했고,

변씨는 “아내의 어려운 결정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지지한다”며 응원했다.

 

우리나라 미투의 선구자 격인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이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실을 알렸을 때, 그의 가족조차 폭로를 말렸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이제 성폭력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인생이 망가지는 쪽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현직 비서의 성폭행 폭로로 정치생명이 사실상 끝났다.

 

유명 연출가·배우 등의 성폭력 사실이 대거 밝혀지면서

쑥대밭이 된 문화예술계는 새로운 기준으로 생태계가 정리되고 있다.

 

이제 ‘미투’에서 자유로운 자가 살아남는다.

일례로 국립극장장 후보 1순위였던 연출가 김석만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시절 저지른 성추행 사실이 드러나면서 탈락했다.

 

조민기·조재현씨는 드라마에서 하차했고,

 ‘천만요정’으로 불렸던 오달수씨는 다 찍어 놓은 영화에서조차 사라지게 됐다.

 

또 고은씨의 고향 군산에서 추진 중이었던 ‘고은 생가 복원사업’은 중단됐고,

박재동씨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 자리를 내놨다.

 

해외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초상화 화가 척 클로스는

모델을 성희롱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올 5월로 예정됐던 워싱턴 국립미술관 전시가 취소됐다.

 

도덕성 없는 예술가가 예술적 성취만으로 평가받던 시대는 막을 내린 것이다.

 ‘인성이 실력’이라는 추상적 명제가 현실이 됐다. 바야흐로 새 시대다.



[출처: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 ‘미투’가 말하는 것들

침묵하는 남자들

/김경희

 

 

“그 남자가 좋았으면 로맨스고 별로였으면 미투하는 거냐.”  
미투(#MeToo) 운동에 관한 기사에 달린 한 인터넷 댓글에 실소가 나왔다.

피해자들을 조롱하려고 쓴 글인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어서다.
 
문제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자신이 정말 ‘별로’라는 사실을 몰랐거나 모르는 척 했다는데 있다.

 “왜 이제와서 폭로하느냐” “○○ 취향 참 독특하네” 식의 무분별한 2차 가해는 몰상식의 극치다.

자신의 삶까지 송두리째 흔들어가며 실명으로 용기를 낸 이들에게 익명의 그늘에 숨어 할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누군가는 또 ‘미투’ 얘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한국사회에도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이슈가 다른 이슈를 덮어버리기 일쑤인 ‘다이내믹 코리아’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미투는 계속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미투의 힘은 지리한 법정 공방을 거치지 않고도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게 만드는 데 있다.

피해자들이 실명으로 진실을 얘기할 때 가해자들은 우르르 무너졌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한 김지은 비서는

 “제가 증거이고, (잘못된 일이란 건) 무엇보다 안 지사가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가해자가 유명인사가 아닌 경우 형식적인 사과조차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미투의 한계일 수 있다.

그래도 우리가 미투를 지지하는 이유는 가해자들이 폭로의 두려움 속에서 반성이라도 하도록,

끊임없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또 다른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투 운동을 그저 남녀의 문제,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서초동에선 “여기자, 여검사랑 술 마시기도 꺼려진다”,

 

여의도에선 “어떤 정치인이 여자들하고 악수도 잘 안 하려고 한다더라”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마치 여성들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듯한 이런 프레임은 여성들의 활동을 제약하는 또 다른 덫일 뿐이다.
 
미투 운동의 핵심은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다.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 본질을 봤으면 좋겠다.

 

남자들도 얼마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성폭력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자보다 남자가 더 약자일 수 있다.

 

“너도 즐긴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뒤따를까 봐 입을 다물게 된단다.

 이젠 군대·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남자들의 미투도 이어지길 바란다.

 #남자미투를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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