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이 아니라 비혼입니다

비혼을 선택하는 청년들

 

/오마이뉴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선 결혼도 아니고 미혼도 아닌 '비혼'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많이 늘었다.

비혼은 결혼포기와는 또 다른 양상을 띤다. 포기란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 둬버리는 것을 뜻하지만, 비혼은 결혼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왜 비혼을 선택하는 걸까?

'혼자 사는 게 좋아서', '결혼시기를 놓쳐서'와 같은 이유들도 분명 있지만 최근엔 결혼 비용, 육아, 사회적 차별 등으로 비혼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내 주위에 비혼 의사를 밝힌 친구들 중엔 남자보단 여자가 많았다. 이들은 하나 같이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여성에게 메리트보다 단점이 더 많다."고 얘기했다. 결혼이란 1+1=2 이상의 시너지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남녀 한 쌍이 함께 삶으로서 혼자 살 때보다 더 많은 행복을 누려야 하는 것이 결혼이어야 하는데, 요즘 친구들에겐 결혼이 혼자 사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드니 비혼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들의 비혼 선언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직장과, 결혼제도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그것으로 인생이 거의 끝이 난다. 회사를 그만 둬야 하는 상황이 생기거나,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더라도 복직할 때가 오면 처음부터 다시 커리어를 쌓아야 하거나, 승진에 제약이 생기기 십상이다. 또 퇴근 후 집에선 혼자 애 돌보기 바쁘다. 한 친구는 최근 회사에서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했다며 단톡방에 서러움을 토로했다. 사수가 퇴근을 안 해서 자신도 퇴근을 못 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집 가면 애 봐야하니까 안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는 회사 내 임신한 선배들의 처지를 보니 자신도 그렇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어디 그 뿐이랴 주말이나, 명절이면 남편과 시댁눈치 보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사도 드리러 가야하고, 설과 추석엔 음식과 설거지와 청소에 이게 명절인지 직장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비혼을 선언한 친구들은 "우리나라에서 결혼하면 남편 이외에 딸려오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얘기한다. 이 남자와 함께 살려고 결혼한 것이지, 남자의 가족들과 함께 살려고 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은지는 엄마나 누나를 보면 아마 알 것이다. 또 매년 명절 때마다 쏟아지는 기사와 그에 달린 댓글들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여행가고, 못난 조상 만난 덕에 명절 내내 전만 부친다."는 한탄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다. 명절에 일만 하고 가는 며느리들을 위해 어느 시골마을에서는 '올해 설거지는 시아버지가 다 해주마!'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는데 요즘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비단 설거지만이 아니다.

요즘 청년들의 남녀 평등의식은 과거에 비하면 매우 높아졌다. 과거엔 여자라는 이유로 모진 일을 해야 했다. 대학교는커녕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비율도 현저히 적었으며, 남동생과 오빠의 미래를 위해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결혼하기 전엔 아버지를, 결혼 후엔 남편을 따르면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중등교육까지는 모두가 받아야하는 의무교육이 됐고, 남녀 간 구분 없이 대학에 진학하여 교육을 받는다. 아직도 옛 습관이 배여 생활 곳곳에서 성차별을 목격하게 되지만 대학교육이 마치는 23~5살까지는 임금격차나 유리장벽과 같은 사회적 차별 없이 자란다. 또 아들의 역할이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또 그렇지도 않다. 이처럼 거의 20여년을 평등한 존재로 교육받고, 부모의 사랑도 남녀 구분 없이 받아왔기에 취업 후나 결혼 후에 마주하는 차별들이 지금의 청년들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거지만 해줘서는 안 된다. 음식도 같이 해야 하고, 설에 시댁에 먼저 갔다면 추석엔 처가에 먼저 가야한다. 언제 누구 집에 먼저 갈건지도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명절 때 부리는 몸종이 아니라, 내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로서의 마땅한 대우가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겪는 차별에도 모자라 집에서 겪는 차별들 때문에 이럴 바엔 결혼을 안 하고 말겠다는 청년들이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세대 간 문화차이에서 오는 사회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저 서로 간의 차이에 대한 존중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면 혼나야 했던 과거문화의 존재를 우리도 인정하고, 그 어느 때보다 남녀 간의 평등의식이 높은 지금의 청년들을 이해하려 할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비혼이라는 개인의 의사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요즘 비혼을 선언하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단, 위와 같은 요소들 때문이 많았다. 너무 슬프지 않은가.

 

'왜 결혼 안 하니' 물으면, 마돈나처럼 대꾸하렴

결혼을 택한 나, 비혼을 택한 너를 응원한다 

 

"왜 결혼했어? 답답하지 않아?"

오랫동안 곁에서 나의 일상을 바라본 친구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결혼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결혼 뒤에 '따위'가 붙었다. 아니야. 결혼 '덕분'에 얻은 것도 많다고 말하고 싶지만 망설여진다.  

친구: "난 비혼주의자야."
나: "그걸 왜 선언해야 해? 그냥 결혼 안 하고 살면 되잖아."
친구: "사람들이 결혼 언제 하냐고 묻는 게 귀찮아."

한국 사회에 살면서 나이, 학력, 고향, 결혼 유무를 묻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질문할 때가 많다. 나 역시 이 사회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의식적으로 신경쓰지 않으면 불쑥 튀어나오는 '결혼했어요?' 혹은 '결혼은 언제 할 거예요?'라는 질문.

처음 본 사람에게 결혼을 했느냐고 묻고, 결혼을 했으면 아이가 있느냐고 묻고, 아이가 하나 있다고 하면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묻는, 지루한 질문의 꼬리를 잘라야 했다.

"나도 사실 결혼하지 않으려고 했어."

20대 초반 결혼제도 안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인생이 '절대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에코페미니스트인 현경의 책을 읽고는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세상에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까지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아야 하나 고민했다.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이 재현될까봐 두려웠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삶이 더 가벼울 거라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심지어 12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해본 적이 없고, 본능적으로 정착이라는 것을 못했던 내가 태어나서 가장 오래한 일이 결혼생활이다. 독립적으로 살고 싶었고, 인생을 누리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가난했고, 나만의 공간이 없었다.

결혼으로 도피하다

나의 결핍을 결혼으로 채웠다. 친구의 자취방을 전전긍긍했던 내게 따뜻한 집이 생기고, 내 사람이 생기는 호사를 누렸다. 그에게 내가 필요했고, 나도 그가 필요했다. 평생을 다니고 싶었던 직장을 버리고, 어느 날 나는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결혼을 너무 모르고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한 이상 아이를 낳고 싶었다. 여성의 삶에서 '결혼, 임신, 출산, 육아의 4종 세트'를 선물이라고 여겼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죽을 것 같았지만, 동시에 살아있음도 느꼈다. 그 몸부림이 내게는 성장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함께 오는 고통에 눈을 감았다. 하루 종일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결혼하지 않는 친구가 집에 놀러왔다. 탈수기에서 꺼낸 빨래처럼 축 쳐진 나를 바라보던 친구의 안쓰러운 눈빛이 생각난다. 서울로 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결혼, 안 할 수 있으면 굳이 하지 마. 다들 행복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는 지도 몰라."

결혼 기차

                    문정희

어떤 여행도 종점이 있지만
이 여행에는 종점이 없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전에
한 사람이 기차에 내려야 할 때는
묶인 발목 중에 한쪽을 자르고 내려야 한다

오, 결혼은 중요해
그러나 인생이 더 중요해
결혼이 인생을 흔든다면
나는 결혼을 버리겠어

묶인 다리 한쪽을 자르고
단호하게 뛰어내린 사람도
이내 한쪽 다리로 서서
기차에 두고 온 발목 하나가
서늘히 제 몸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서둘러 다음 기차를 또 타기도 한다

때때로 차창 밖을 내다보며
그만 이번 역에서 내릴까 말까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선반에 올려놓은 무거운 짐을 쳐다보다가
어느덧 노을 속을
무슨 장엄한 터널처럼 통과하는

종점이 없어 가장 편안한 이 기차에
승객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요즘에는 '결혼 기차'에 올라타는 손님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스스로 '비혼주의자'라고 외치며 탑승을 거부한다. '비혼주의자'도 결국 사회가 만들어낸 언어가 아닐까.

'나는 비혼주의자야. 그러니까 너희들의 틀에 나를 가두지마.'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내 삶을 누리고 싶어.'

결혼제도 안에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다는 선언.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다섯 글자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결혼을 택한 나, 비혼을 택한 너를 응원한다  

 

 결혼을 택한 나, 비혼을 택한 너를 응원한다

 

 

비혼을 선택한 너에게

'남들'의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사회에서 결혼을 선택하는 것보다 비혼을 선택하는 게 더 어려울 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내게 "왜 그렇게 일찍 결혼했냐"고 묻는 것처럼, 똑같이 누군가에게 "왜 결혼을 안 하냐"고 물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마돈나를 기억하길.
 
복잡한 결혼과 연애, 마약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녀가 기자회견장에서 한 말이다.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이 그녀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물었을 때, 마돈나는 이렇게 말했단다.

"SO? 그래서?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죠. 그건 제 사생활이에요."

천하장사 마돈나. 세상을 뒤엎을 마돈나의 한 마디. "SO?" 이미 마돈나처럼 단단하지만, 색안경을 낀 사람들에게 맞서야 할 때 떠올릴 말.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죠?'

친구야, 비혼을 선택한 너에게 결혼을 선택한 내가 해줄 수 있을 말은 이것뿐이야.

"널 응원하고 지지해."

네가 복잡한 인간관계에 들어가기 싫어서든, 누군가를 책임지고 살기 싫어서든, 마음껏 사랑을 누리며 살고 싶어서든, 지루함이 싫어서든 네가 선택한 비혼을 나는 격렬하게 지지해주고 싶다.

문정희 시처럼 '오, 결혼은 중요해. 그러나 인생이 더 중요'하니까.

 

40대 백수 싱글녀, 누가 날 '루저'라 하나

[비혼일기] 만만찮은 삶의 무게... 자책과 절망에서 벗어나기

 

 

40대 비혼의 이야기입니다

 

 마흔여섯 살의 백수 싱글녀라니. 망망대해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마흔여섯 살의 백수 싱글녀라니. 망망대해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7년 전, 나는 마흔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방송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했다.

거의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합격하기도 했고, 더 이상 이력서를 쓸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속된 말로 온몸을 불사르며 일했다.

그렇게 4년쯤 지났을까. 겨우 정규 프로그램을 맡아서 일하고 있었는데, 개편 때를 맞아 담당 PD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프로그램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기에 내 자리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했다. 육감이 발동해서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는 계속 가는 건가요?"

그러자 PD는 원고 뭉치를 정리하며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물어봤으니 말해야겠네요. 사실 함께 일하고 싶은 작가가 따로 있어서 타진 중에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나는 아웃이라는 뜻. 순간 멍했다. 너무나 불친절한 해고 통보였지만, 그래도 이 직업의 특성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조용히 그리고 즉각적으로 물러나야 한다.

해고 선고를 듣고, 집으로 오는 길, 지난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생존하기 위해 땅개처럼 박박 기었던 시간들이 억울하다며 속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마흔 다섯 살. 쌩쌩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그저 노오오오력으로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하얗게 불태우다가 이제 좀 적응했다 싶은 그 순간에 잘린 그 황당함이란!
    
게다가 마흔여섯 살의 백수 싱글녀라니. 망망대해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열심히 하면 잘 돼야 한다'는 룰이 실제 삶 속에서는 종종 삑사리를 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당할 때마다 당황스럽고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친구들이나 선배들도 말은 안 하지만 얼굴에는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너 이제 어떡하니?' 

<섹스앤더시티> '캐리' 언저리라도 갈 줄 알았는데

 적어도 40이 넘은 싱글녀라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그 언저리는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가당치도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40이 넘은 싱글녀라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그 언저리는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가당치도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서른만 넘어도 퇴물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마흔 다섯을 넘긴 여자를 환영해 주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카페를 하거나 치킨가게를 열 돈은 물론, 능력도 없었다.

현실적인 문제보다 마음을 힘들 게 한 건, 결혼도, 연애도, 일도, 모두 실패한 인생 같다는 자괴감이었다. 게다가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하기엔 46이라는 나이가 어찌나 무겁던지...

'어쩌자고! 언제! 나이를 이렇게 먹은 거니?' 

하지만 이미 먹은 나이를 뺄 수도 없고, 아닌 척 감출 수도 없고, 그저 무거운 나이를 부여잡고 다시 일어나는 것 외에 뾰족한 수도 없었다. 독립한다고 대출받은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또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하는 1인 가족의 가장이니까 어떤 일이든 해보려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제출했다.

결과는 광속탈락!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열심히 살아왔건만, 내 이력서는 더 이상 누구의 이목도 끌지 못했다. 이쯤 되면 사회가 나의 가능성 자체를 지우개로 지워버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일이 쌓이자 언제부터인가 아무도 나에게 "앞으로 뭐 할래?"라고 묻지 않았다.

나는 비굴할 정도로 움츠러들었고, 어느새 남들은 관심도 가지지 않는 내 모습과 처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적어도 40이 넘은 싱글녀라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그 언저리는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가당치도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그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도 꿇리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 현실은 어느새 망가진 몸매, 정신차려보니 늘어진 피부, 넓어진 모공, 푹 퍼지는 몸매, 염색을 안 하면 머리를 귀 뒤로 넘길 수 없을 만큼 많아진 흰머리, 게다가 백수! 아, 난 완벽한 루.저.였다.

나를 소독해준 말, "괜찮다"

어떤 누구도 내 삶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 '루저'라는 낙인을 허용해 버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사회,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나를 욱여넣어서 벌어진 참사였다. 비참한 감정 때문에 왜곡되어버린 시선이 스스로를 찌르는 칼이 되어 있었다. 내가 살려면, 먼저 칼을 버리고 상처부터 보듬어줘야겠다 싶었다. 그때 소독해주는 말이 "괜찮다"였다.

처음에 친구들이 그렇게 말할 때는 '넌 안 당해봐서 몰라' '난 안 괜찮다는데 너가 왜 괜찮다고 그래?'하면서 그 말들을 힘차게 밀어냈다. 그런데 그 말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건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 몫이고. 살고 싶어서, 정말 살고 싶어서 나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백수여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
"이쯤에서 내 운명이 잠시 쉬고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라고 쉬는 종을 쳐준 거야."
"그동안 열심히 일하느라 수고 많았어."

스스로한테 더 이상 채찍질하지 않고, 탓하지 않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은, 묶인 마음을 풀어주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힘 있는 위로였다. 밑바닥으로 추락했다면, 섣불리 오르려고 하기보다 먼저 부러진 날개를 보살펴 줘야 한다. 그래야 툭툭 털고 다시 날 수 있으니까.

이력서의 단 몇 줄에는 담을 수 없는 수많은 나의 이야기들을 소중하게 여기기로 결심하면서, 루저나 위너가 아닌 그냥 '나'로 살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자책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또 모든 문이 다 닫혀 버린 것 같아도 견디다 보면 솟아날 구멍은 생기는 법. 다행히 정기적으로 자유기고를 하는 곳이 연결되어서 많이 벌겠다는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괜찮은 정도의 일을 하고 있다. 노후 준비를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다.

누구나에게 삶은 무겁지만 48살 싱글녀의 삶도 만만찮게 무겁다.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괜찮다"고,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어야만 한다. 그것을 이제야 배우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안 괜찮은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난 오늘도 내가 꿈 꿨던 40대와는 거리가 있지만 '괜찮은'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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