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두 편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최근 한·일 양국 정부가 발표한 ‘위안부 합의’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이 끓고 있다.

명예와 진실규명, 사과와 법적 책임은 간 곳 없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과 소녀상 이전,

그리고 불가역적이고 항구적인 침묵 서약 등 해괴한 단어들만 떠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이 버젓이 존재하건만, 그들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양국 정부가 ‘창조적 해석’만 번지르르한 문건을 만들고는 헤어졌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미안하다고 ‘창조적’으로 말하고 돈도 조금 줄 테니, 앞으로 다시는 입도 뻥끗하지 말아라.

그리고 꼴 보기 싫은 저 소녀상 좀 치워라.”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모습은 지금부터 정확히 50년 전인

1965년 대일 청구권 자금을 둘러싼 한일협정(정확한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똑같다.

 

그때 한국정부는 무상원조 3억달러, 유상 차관 2억달러(민간 차관 3억달러 별도)를

일본 정부로부터 받는 조건으로 모든 문제제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징용 근로자가 배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일본으로 넘어간 문화재를 반환받지 못하는 이유도,

그리고 위안부가 배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이번 위안부 협상은 과거의 이 잘못을 바로잡을 천재일우의 기회였는데,

우리 정부는 또다시 돈 몇 푼에 국격과 진실과 양심을 팔아넘겼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때 5억달러 받아서 경제성장에 요긴하게 썼으니 그걸로 넘어가자고. 정말 그런가.


피와 눈물과 땀의 대가인 대일 청구권 자금 5억달러를 가장 많이 받은 곳이 바로 외환은행이다.

외환은행은 전체 자금의 26.7%인 1억3200만달러를 받았다. 포항제철보다 더 많이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외환은행을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는 가장 모범적이고 번듯한 은행으로 키워냈는가.

아니다. 론스타라는 산업자본에 불법적으로 팔아먹고,

 그 잘못을 덮기 위해 수조원의 이익을 주고 론스타를 탈출시키지 않았는가.

그것도 모자라서 지금 국제투자자 중재라는 형태로 국민 세금까지 퍼줄 준비를 마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거기에 “이제는 론스타를 떠나보낼 때”라고 나팔 불던 사람들은 무엇인가.

어쩌면 그들은 지금 “이제는 소녀상을 떠나보낼 때”라는 새로운 나팔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법의 증거인 외환은행을 하나은행과 합병시켜 역사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듯이,

침략의 상징인 소녀상을 하루빨리 철거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독일이 폴란드 남부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시설을 철거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은

“떠나보내는” 망각의 미학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아픈 기억을 지우지 않음으로써 과거에 대해 사죄하고

미래에는 그런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조용하게 다짐하기 위함이다.

 

만일 일본이 진정으로 위안부 문제에 사죄한다면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존하고 그를 통해 양국 간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다.

필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따라서 이번 합의를 후대의 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자기가 아는 분야에서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눈앞의 당면 사건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인 주형환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다.

주 후보자는 외환은행을 불법적으로 론스타에 팔아넘기기로 사실상 확정했던

2003년 7월15일의 소위 ‘10인 비밀대책회의’에 청와대 행정관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주 후보자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가기 전 재경부 은행제도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산업자본에는 어떤 경우에도 은행을 매각할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간 은행법 개정을 주도했다.

자신이 산파역을 한 은행법이 버젓이 눈앞에서 휴지가 되는 상황을 보고도 그 불법성을 그대로 용인한 것이다.

주 후보자는 이 문제에 대해 국민 앞에 그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고하고 장관 후보자직을 사퇴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후대 사가들의 평가를 기다려야 한다.
 

어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수요시위가 있었다.

그것은 졸속 밀실 합의를 규탄하는 분노의 장이자,

역사를 바로 세우라는 준엄한 명령이기도 했다. 광복 70주년은 그렇게 저물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50년 전 국격과 양심을 팔아넘긴 한일협정과 빼닮았고,

외환은행과 론스타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다시 론스타는 주형환 산자부 장관 후보자, 나아가 소녀상과 연계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꼬챙이에 음식물을 꿰듯 역사의 궤적을 일목요연하게 묶어낸 통찰이 돋보이는 칼럼이다

 

 

 

훈장과 국격

 

지난달 25일 자 <한국일보>에 실린 이동준 일본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의 '훈장과 국격'이다.

 이 칼럼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가 담긴 KBS 프로그램 '훈장 2부작'이 불방되고 있는 문제를 짚었다.

 

탐사보도팀이 힘겹게 만든 다큐멘터리 ‘훈장’을 몇 달째 방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짐작하건대 다큐멘터리 ‘훈장’은 과거 정부, 특히 박정희 정권이 국가가 아니라

오로지 정권에 충성한 인사들에게 부적절하게 훈장을 달아준 사실을 까발렸을 터이고,

이것이 지금 정권의 역린을 건드렸을 것이다.

 

수신료를 받고 있고 이마저 더 올려 달라는 방송사가 공공성을 상실한 채 정권 입맛에 놀아나는 것 같아 불쾌하다.

훈장은 국가를 위해 크게 공을 세운 분들에게 국가가 주는 최고의 영예이지만,

동시에 이를 수여하는 측은 권력을 잡은 위정자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국가에 많은 공을 세웠더라도 정권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훈장을 받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정권을 잡은 측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훈장을 달아주면서 국가가 아니라 사실상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서훈 내역을 살펴보면 특정 정권의 국가관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를 성찰하는 계기도 된다. KBS 제작진이 ‘훈장’을 만든 의도도 대충 이런 것이었을 터이다.

 

 

 

 

이승만 박정희 정부 시절 친일행적자 등에게 훈장을 수여했다는 내용의 ‘훈장 2부작’.

KBS 탐사보도팀이 2013년부터 취재해 만든 이 프로그램의 방영이 명확한 이유 없이 미뤄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황당한 사실은 우리 정부가 국가의 최고 포상행위인 훈장 수여 내역의 상당 부분을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숨겨왔다는 것이다.

국가가 무슨 조폭 집단도 아닐 터인데 첩보 작전을 벌이듯이 훈장을 준 사실조차 감춰왔다니,

단적으로 국가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때문에 KBS 제작진이 2년여의 정보공개 소송 끝에 올해 초 70만 건의 서훈 명단을 확보한 것은

그 자체가 커다란 특종이면서, 훈장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금껏 훈장을 받은 사람 대부분은 물론 멸사봉공한 훌륭한 분들이다.

하지만 특정 정권의 입맛에 따라 훈장이 남발되었고 이것이 은폐되어온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친일 인사들이 최고 훈장인 건국훈장을 받았는가 하면,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사람들이 훈장을 달았다.

2년여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 기간 중에 본인에게 수여한 이른바 ‘셀프 훈장’들을 일부 반납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훈장사(勳章史)에는 여전히 구린내가 진동한다.

 

특히 박정희 정권 18년간 훈장은 특정 이해관계에 의해 ‘거래’되기 일쑤였다.

무고한 국민을 잡아 고문해 간첩으로 둔갑시킨 공안조작 사건의 실행자들에게 국가안보에 기여했다며 훈장을 달아줬다.

 

 반면, 차가운 감방에서 수십 년을 보내야 했던 고문 피해자는 이런 적반하장의 국가에 태어난 것을 저주했다.

잇단 재심 판결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저지른 후안무치의 역사는 쉬 해소될 리가 없다.

 

박정희 정권 시절 무더기로 일본의 우익 인사들에게 훈장을 준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조부이자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는 1970년 8월 상훈법에 따라

 ‘국권의 신장 및 우방과의 친선에 공헌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한다’는 수교훈장을 받았다.

 

일제 식민지 때 이른바 ‘황도(皇道)’ 사상을 부르짖으면서 각종 전쟁 이권을 챙기고 전후에는

암흑 조직의 거간꾼으로 맹활약한 고다마 요시오도 이 훈장을 받았다.

일본에서조차 ‘검은’ 인물로 치부되는 인사들을 한국 정부는 왜 영웅으로 받들어 모신 것일까.

 

훈장은 그 나라의 국격(國格)을 대변한다. 모든 국민들이 훈장을 받기 위해 국가에 충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대국가에서 훈장은 훌륭한 국민의 징표이자 국가권력의 발로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고자 한다면 제대로 된 국가관에 입각해 서훈해야 마땅하고,

이것이 국가를 유지ㆍ발전시키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한 것은 교과서 국정화를 통한 국가 미화(美化)가 아니다.

국민들이 나라가 주는 훈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자면 잘못된 훈장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역대 정권들이 국가를 팔아 잘못 수여한 훈장은 당연히 다시 거둬들여야 한다.

 그 출발은 다큐멘터리 ‘훈장’을 보는 것이다.

 

 

KBS 프로그램 '훈장'이 불방되고 있는 2015년 현실을 보고 정권의 이해관계에 의해 '거래'된

구린내 나는 훈장과 특히 일본 우익에게 훈장을 달아준 낯부끄러운 과거를 불러냈다.

나아가 훈장은 교과서 국정화와 공공성을 상실한 수신료 받는 KBS라는 불편한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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